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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洪海里 스크랩 <서평> 洪海里 시집『푸른 느낌표!』/ 오남구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16 13.05.19 02: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평>

洪海里의 시집「푸른 느낌표!?

 

무상(無常)한 푸른 느낌의 기표

- 洪海里 시집『푸른 느낌표!』 


       오 남 구(시인)


언어철학의 기표(記標)를 설명할 때에 곧잘 인용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노자(老子)의 도덕경에서 화두로 나오는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인데,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7. 15~2004.10.9)의 차연(差延)과 비교하여 보면 무척 흥미롭다. 간략히 요약하면 차연은 차이(差異)와 연기(延期)를 말하는데, 차이에 의해 경계가 생기고 구분이 되고 이름(기표)이 생긴다. 그러나 그 차이는 변하여 구분이 없어지고 경계가 없어져서 연기된다는 것. 이 말은 무상(無常)이나 비상(非常)과 그 뜻이 다르지 않다. 결국 현대의 서구 언어철학은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형식논리를 갖춘 것이 된다. 여기에 연기(延期)되는, 즉 비상 또는 무상하게 변하는 현상을 역(易)의 개념을 도입해서 보면 의미들이 수리적[음양 괘의 배열]으로 변화하며 나타난다. 이것이 대정수[주역]이다. 동양과 서양은 이렇게 만나고 있다.

여기서 洪海里의 시를「무상한 푸른 느낌의 기표?라는 동서(東西)의 어우러진 시각으로 읽어본다.


1.

북한산 아래 우이동 골짜기에 있는 세란헌<洗蘭軒>洪海里 시인이 사는 집이다. 마음을 씻는 세심천<洗心泉>과 어울려 있다. 그의 시를 읽기에 앞서 시인이 살고 있는 이런 면면을 살피는 것은 시를 이해하는 한 단초가 된다. 특히 시집 전편에 깔려있는 난(蘭) 같은 기품과 세(洗)의 ‘씻는다’‘닦는다’란 말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이다. 여기서 그가 얼마나 ‘씻는다’에 몰입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시환(詩丸)'이란 부제가 있는 그의 시 ?시인이여 시인이여?를 보자.


시 쓰는 일 부질없어 귀를 씻으면

바람소리 저 계곡에 시 읊는 소리

물소리 저 하늘에 시 읊는 소리

티 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 하리

이 가을엔 다 버리고 바람 따르자

이 저녁엔 물결 위에 마음 띄우자

      - 洪海里의 시「시인이여 시인이여? 일부


그는 다음과 같이 시환(詩丸)에 대해서 설명을 붙여 놓고 있다.

"우리 옛 시인들은 괴로운 일이나 슬픈 일을 시(詩)로 쓰고, 그 시를 쓴 종이를 찢어 환약(丸藥)처럼 똘똘 말아 환(丸)을 만들었다. 이 종이환을 시환(詩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시환을 냇가나 강가에 앉아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내고 괴로운 일을 잊곤 했다.

잊는다 하지만 어찌 시환을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낸다고 잊어지겠는가.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잊고 싶은 일이 있거나 증오ㆍ원한ㆍ시샘ㆍ불화를 씻고 싶을 때 그 사연을 적은 종이로 시환처럼 만들어 물에 떠내려 보냈다. 냇가에 사는 사람은 시냇물에. 강가에 사는 사람은 강물에.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바다에. 무당들이 불행이나 병환을 낫게 할 목적으로 그 액살을 적어놓은 부적을 작은 배에 실어 냇가나 강가, 바닷가에서 떠내려 보내는 것도 같은 이치에서였다. 감옥소에서 나온 자식을 냇가나 강가에 데려다가 발을 씻게 하는 행위라든가, 죽을 때도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죽는 것도 같은 생각에서다.

이처럼 우리에게 있어 ‘흐르는 물’은 감정적인 것, 정신적인 것, 심지어 생명까지도 씻어 없애고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정화작용을 했다. 세월을 ‘흐르는 물’이란 뜻으로 유수(流水)와 같다고 했다. 그 무엇이건 ‘흐르는 물’에 버리면 흘러 사라지고 썩어 문드러진다는 것이 한국인들의 전통적 사상이었다."

위의 글은 그의 시 정신이 어떠한 것인가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이쯤 되면 시인의 들고 나는 일용행사(日用行事)가 시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난을 씻고 몸을 씻고 마음을 씻는 일이 하나같이 시가 될 것이다.


2.

그는 난을 씻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씻으면서 자신을 다스리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내면에 지구 깊숙한 곳에 마그마가 생기듯 응축된 불덩이가 꿈틀거리는데,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미움이며 분노며 이런 것들이 삭히고 산화하는 것, 시인이 이 불꽃을 분출하여 시를 토해낸다고 할까? 洪海里 시인은 이렇게 시 쓰기의 주체인 나[我;시인]와  난[蘭,자연]과 눈을 맞추고 살며 그들이 하나[一體;동질화]가 되어 가는 듯하다. 그러면서 로맨틱하게 사물과 눈 맞추기도 하지만 그는 먼 거리에 있고 서성인다.

       

창 앞 소나무

까치 한 마리 날아와

기둥서방처럼 앉아 있다

폭식하고 왔는지

나뭇가지에 부리를 닦고

이쪽저쪽을 번갈아 본다

방안을 빤히 들여다보는 저 눈

나도 맥 놓고 눈을 맞추자

마음 놓아 둔 곳 따로 있는지

훌쩍 날아가 버린다

날아가고 남은 자리

따뜻하다.

     -洪海里 시「흔적? 전문

   

사물과 눈을 맞추는 이런 로맨티시즘은 현대시의 어떤 수사학이 그리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직관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사물과 동질화 되지 못하는 그의 말[언어,시어]이 그들 자연[蘭]에 다가가면 먼지처럼 난다. 아니 그들에게 전혀 다가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이 피워내는 꽃은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것이며 하릴없이 떨어진다.


오른쪽 팔목을 다친

내가 기르는 왼쪽 난초밭에는

밤낮없이 별이 떠 있습니다

가슴이 가련하고 연약한 별입니다

백성들은 입술이 푸릅니다

내가 다가가면

심장이 두근두근, 파르르 떱니다

그들이 들고 있는 번쩍이는 비수 사이

나의 말들이 먼지처럼 날다

하릴없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피워내는 부질없는 꽃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 꽃과 이파리에서

이슬이 고요를 굴리고 있는 걸 보면

가슴이 서늘합니다

가슴에서 얼굴까지 열이 솟구치다

꽃 이파리들이 지고 있습니다

가련하고 연약한 별에서

천년이 그렇게 지나갑니다.

     - 洪海里의 시「가련하고 연약한 별에서? 전문

 

‘시환(詩丸)’에서 그는 이미‘시 쓰는 일 부질없다’고 한다.‘티 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 하리’라고 한다. ‘쓰는 일 부질없다’는 것은 ‘언어의 한계성’을 말한 것일 테고‘써서 무엇 하리’는 ‘무위(無爲)의 깨달음’에 이를 수 없는 한탄일 것이다. 또한「가련하고 연약한 별에서?에서, 난과 함께 살며 동질화 되어 난(蘭)의 말을 하고 그의 시가 꽃을 피워냈지만 부질없었고 ‘그 꽃과 이파리에서 이슬이 고요를 굴리고 있는 걸 보면 가슴이 서늘합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천년이 그렇게 지나갑니다.’라고 절망한다. 무위(無爲)로 가는 길이 이렇게 먼 것인가.

무위는 곧 자연으로 이해되는데, 어느 실험예술은 '인위적(人爲的)인 것은 자연의 질서를 가지지 못하고 본질을 가리는 것이라 하여' 무위의 자연스러움을 지향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상파 화가들이 '색깔을 혼합하여 그리는 선묘(線描)의 기법'이 인위적이라 하여 붓으로 색을 하나하나 찍어 점묘(點描)하게 된다. 그러자 어떤 전위작가들은 붓으로 찍는 것도 인위적이므로 보다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화판을 향해 붓을 던지기도 하고, 폴록 [Paul Jackson Pollock, 1912.1.28~1956.8.11]은 페인트 통을 몸에 매달고 뛰어 마룻바닥에 편 화포(畵布)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독자적인 기법을 개발하여 하루아침에 명성을 떨쳤다. 이것을 액션페인팅이라 하는데 그의 작품 ‘환희’는 세계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대시에 있어서도 초기 모더니즘은 작위(作爲), 즉 인위적인 관념[언어, 이미지]의 시였으나 차츰 후기 모더니즘[포스트모던]으로 이행되면서 언어철학[해체철학] 등의 영향을 받아 탈 관념시로 변하게 된다. 이것을 동양적 시각으로 보면 무위로의 이행이다.

 

3.

洪海里 시인의 난(蘭)은 '푸른 느낌표’로 인식된다. 느낌표! 즉 이 기표는 의미가 무상한 것, 그래서 언어[관념]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당면한다.

 

삼복더위, 가을을 넘더니

아세亞歲 지나

새해가 온다고, 너는

나를 무너뜨리고 있다

네 곁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의 무력함 -

겨우내 감싸주지 못한

너의 외로움

밤새도록 몸이 뜨겁더니

안개처럼 은밀하니 옷을 벗고

달을 안은 수정 물빛으로

절망의 파편들을 버리고

드디어 현신하다

수없이 날리는 향의 화살들

눈물겨운 순수의 충격이다

새 천년 첫 해오름과

첫날밤의 달빛으로

수천 억겁의 별빛을 모아

내 가슴에 쏟아 붓는,

적요의 환희와

관능의 절정

너는 불꽃의 혀로 찍는 황홀한 구두점

또는

푸른 느낌표!

     - 洪海里의 시「보세란? 전문

 

새해 첫 해오름에 보세란이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적요와 환희와 관능의 절정에 이르러 불꽃의 혀로 찍는 황홀한 구두점이며 푸른 느낌의 기표[언어]이다. 지금 난의 언어[텍스트]를 홍 시인이 읽고 있다고 해야 할까, 수용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시 쓰기는 '주체인 시인이 쓰고 시인[투사된 느낌 등]이 쓰여지고 있는 것'이므로 그 대상이 보세란이라 해도 洪海里 시인 자신을 쓰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불꽃은 난을 씻으면서 마음을 씻으면서 다스린 무의식의 심층에서 꿈틀거린 불덩어리의 불꽃이며 적요와 환희와 관능의 절정일 것이다.

마음을 비운다고 말한다. 비우는 구체적인 행위는 시인에게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가, 배설 또는 정화라고 한다면  무의식의 심층에 꿈틀거리는 불꽃을 분출하여 시로써 토해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 편의 시를 쓰고 나면 심신이 시원하다. 그런데 늘 시를 쓰고 나서 안타까움이 남는다. 이때 언어의 벽을 실감하곤 한다. 시인과 사물 사이에 있는 관념 언어의 한계성 때문이다.

난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그 절정에서 洪海里 시인이 '너는 나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은 다의적인 뜻을 가지고 있지만, 다음의  <네 곁을 지켜주지 못한 나의 무력함-> 그래서 <겨우내 감싸주지 못한 너의 외로움>이란 말로 미루어 그는 난과 나와의 거리, 즉 언어의 틈을 확인한다. 난은 제 홀로 <밤새도록 몸이 뜨겁더니 안개처럼 은밀하니 옷을 벗고 달을 안은 수정 물빛으로 절망의 파편들을 버리고 드디어 현신>한다. 그리고 그에게 <수없이 날리는 향香의 화살들>은 눈물겨운 순수의 충격이 된다. 시인 그의 언어는 난 앞에 절망한다.

그래서 그가 잠들지 못하고 절망하고 있는 새벽 3시, 시인의 창문을 두드리다가 홀로 가는 난향의 발길이 서늘하다고 한다.


시월 내내 피어오르는

난향이 천리를 달려와

나의 창문을 두드립니다

천수관음처럼 서서

천의 손으로

향그런 말씀을 피우고 있는

새벽 3시

지구는 고요한 한 덩어리 과일

우주에 동그마니 떠있는데

천의 묵언으로 펼치는

묵언 정진이나

장바닥에서 골라!골라!를 외치는 것이

뭐 다르리오 마는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눈을 살며시 뜨고

말문 트는 것을 보면

멀고 먼 길

홀로 가는 난향의 발길이

서늘하리니,

천리를 달려가 그대 창문에 닿으면

‘여전히

묵언 정진 중이오니

답신은 사절합니다’

그렇게 받아 주십시오

그러나 아직 닿으려면 천년은 족히 걸립니다.

    - 洪海里의 시 ?엽서?전문


언어를 버리고 묵언 정진 중인지, 지구는 고요한 한 덩어리 과일/ 우주에 동그마니 떠있다. 라고 직관하고 있다. 그는 그 속에서 생명이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눈을 살며시 뜨고 말문을 트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이렇듯 태어나는 그의 시, 즉 언어 또는 연서[엽서]가 천리를 달려가 난 그대 창문에 닿으면 답신을 사절해 달라고 한다. 여기서 천리라는 거리는 난과 내가 진실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언어의 틈’이다. 여기서 사물과 눈을 맞추면서 시작된 로맨티시즘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4.

이쯤해서 그는 시의 원점에 와 있다. 묵언하고 언어 이전의 사물과 마주하고 있다. 마음을 버리고 모든 관념을 비워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 있다. 그래서 그는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라고 노래한다. 그러나 시는 운명적으로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언어는 관념이므로  언어, 즉 관념의 감옥 속에 있다. 아름다운 것도 황홀한 것도 관념이다. 그는 수도자가 관념을 깨뜨리어(감옥을 깨뜨리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만행을 하듯, 언어의 탈-관념이라고 하는 미도 추도 없는 고행의 길이 놓여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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