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09.일 산성역에서 만나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5월 9일 (화요일) 19대 대통령 투표일이다. 화살이 허공을 뚫고 날아가 정확히 과녁을 맞추 듯 가슴이 시원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인 후보가 당선될 것은 하늘을 보듯 뻔 한 일이지만 북한과의 안보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이 내 생각과 다소 빗나가 있다. 그래서 나는 2번 홍준표를 찍었다. 홍후보가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이유는 너무 표가 한 쪽으로 몰리면 자만에 빠져 다소 정치를 독선적으로 끌고 가지나 하는 염려로 찍었던 것이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누가 대통령이 돼든 국민이 마음 내려놓고 평안하게 잘 살 수 있는 올바른 정치를 해주기를 기원하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선 축하 박수를 힘차게 보냈다.
10시 30분, 약속 시간을 조금 넘겨서 우보( 현중재, 의정부 중앙초등학교 46회 동창)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산성역 1번 출구에 나타났다. 토실한 그는 어느 면으로 둘러보아도 영락없는 내 친구다. 요즘 들어 친구에 대한 개념이 많이 바뀌고 있다. 바뀐 다기 보다는 다시 생각해 본다는 말이 옳다. 손가락으로 꼽히는 세 명중에 한명인 것은 분명하다. 첫째 그의 성품은 온유하다. 배려심이 깊고 생각이 우물과 같다. 그리고 마음의 빛깔에 변함이 없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남한산성 남문(지하문) 정류장에서 내려 주차장 입구를 지나 100m 정도 올라가니, 장군의 넓은 가슴 같은 모습으로 딱 버티고 서 있는 남문을 유심히,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역사에 대한 심오함에 빠져 들었다. 내가 미리 공부해간 미진한 역사를 떠 올리며 “인간은 살기위해서 전쟁을 하는 것인지, 죽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지금도 끈이지 않는 그 진위에 잠시 어지러움을 벗어나지 못했다.
남문 앞에서 우리는 다정히 사진을 찍고, 문안으로 들어가 좌측 길을 향해 사람들이 가길래, 그냥 쫓아가다가 이상해서 앞서 가는 등반객들에게 길을 물어 보았더니, 우리가 걷고 싶었던 안쪽 성벽 길은 나가자마자 우측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자세히 설명을 해줬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다시 뒤돌아 그들이 알려 준대로 걷기 시작했다. 오르자마자 남문 누락이 있어 그곳에 올라가 성 밖을 내려다보았다. 멀리 시내가 흐릿하게 보이고 5월의 신록은 푸르러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왔다. 우측으로 보이는 산새는 험하고 성벽은 높고 튼튼해 보였다. 감히 적군들이 쉽게 넘보지 못할 요새의 진지로 보였다.
이 남한산성은 역사적으로 삼국시대인 백제, 또는 신라에 의해 축성되었다고 되어있지만, 아직도 어느 시대에 어떻게 축성 되었는지 명확히 규명되지는 못하고 있다. 단지 병자호란 때인 인조16년 청나라에게 무참히 당하여 수치스럽게 패배한 곳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성은 산새를 따라 급경사를 이루고, 평지를 만나면 수평을 이루고 또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되었다. 적의 공세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성벽을 새롭게 단장하고 증축한 성곽을 따라 가다보면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지나게 데는데, 철벽을 두른 듯한 장대한 소나무의 기상에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국민성과 소나무는 정서적으로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이다. 옅은 붉은 색을 띤 적송이 하늘을 뚫을 듯한 기세로 거대한 숲을 이룬 것을 보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러한 숲이 있어 내가 존재하고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을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환경을 보면, 연일 미세먼지로 뒤 덥혀 근거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아서 인체의 건강에 지대한 위협을 주고 있다. 호흡기뿐만 아니라 인체의 모든 곳에 보이지 않는 질병을 안겨 주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에서도 심각하게 인식하여 환경부에서도 여러번 대책을 위한 발표를 하곤 했지만 특별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심각한 환경오염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큰 재앙이 따르지 않을까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곳의 숲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고단하게 만들어낸 싱싱한 산소가, 살살 부는 솔바람을 타고 날아와 내 몸을 살포시 감싸줄 때마다 이루 말 할 수 없는 자연을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때론 이 성곽의 나이만큼이나 먹었음직한 나무를 만나면 발길을 멈추고 겸허해지기도 한다. 자연 없는 인간의 삶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남문을 지나서 만난 오래된 나무가 있었다, 지팡이에 기대어 서 있는 듯한 구부정한 나무는 늙어서 병들어 살갗 부위를 도려내었고 그 곳에 시멘트 같은, 무엇인가를 발라놓아 겨우 서있는 고목을 보면서, 지난 모진 풍파를 다 격고 또 알고 있음에도, 오직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에 한없이 가소롭고 초라하게 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나마 몇 개 안되는 가지 끝에 잎의 흔들림은 지난 역사를 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우보가 올라오는 계단에서 힘들어 한다. 몸은 조금 비대한데다가 생계를 위해 이 나이에도 장시간 택시 운전을 하다 보니 힘이 부대끼나 보다. 관절부위의 연골이 안 좋은 모양이었다. 내일이라도 병원에 가서 더 나빠지기 전에 진찰을 받아보라고 권유를 했지만……. 모든 만물은 시간 앞에 녹슬어가게 마련이지 그래도 나이 들어가며 건강이 제일인데,
가끔 쉬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성 밖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바람에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잎사귀들을 보며, 무상함을 느껴 보기도 하다가, 생활의 여건이 안정이 되면 같이 전국 유람이나 하며 자연과 같이 여생을 같이 하자고 무언의 약속을 하였다.
바쁘게 살다보니 눈 깜박할 사이에 60이 넘었고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시간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인 것이 늘 화두다.
걷다가 쉬다가, 쉬다가 걷다보니 어느덧 범봉에 이르렀다, 범봉은 제법 이 산의 정상 같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성 밖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동쪽을 향해 길게 늘어져 있는 성벽을 한 참 보기도 하다가, 옆에 보수하지 않은, 마치 그 옛날 그대로인 것 같은, 적군에 의해 뭉겨져 보이고 지난 풍화작용에 한껏 변한 것 같은 성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장승마냥 서서 한참을 바라다보았다. 옛날 그대로인 성곽에 매료된 것이다. 자연적인 저 모습,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전장에 의해 허물어진 성곽이, 그 때 형상을 그대로 지닌 성곽, 지금 말짱히 단장되거나 보수되거나 개축된 성곽보다 훨씬 보기 좋아 보였던 것이다. 다른 것들도 있는 그대로 보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안고 하산 해야만 했다.
성곽을 따라 내려오는 동안 계속 그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자연 그대로, 그대로 보전되는 그것이 역사가 아니던가,
내려 오다보니 시간이 지연 되어 어느덧 오후 5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직 갈 길은 먼데 시간은 촉박하고, 비는 보슬보슬 내리고, 날은 흐려져 어둠도 같이 내리고 있었다. 뒤를 보니 우보가 다리를 절며 어정어정 걸어오고 있었다. 힘들게 동문에 다다라서 우리는 나머지 길은 포기하고 행길을 따라 조금 떨어진 버스 정류장으로 가기로 정하고는, 오면서 오늘의 남한산성 탐방의 소견을 두런두런 나누며 오다가 시간도 늦고 배도 고파 우거지설롱탕집에 서 따끈하게 한 그릇씩 먹고 나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오다가 잠실역에서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역사탐방, 역사가 없는, 과거가 없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존재 했던,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어떠한 미미한 것일지라도 그 나름대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 나라의 역사는 그 나라 백성, 국민의 삶의 그림자를 펼쳐보는 것이다. 나의 이력서와 같이, 이러한 탐방을 통해 역사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2017.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