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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안>
제목: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일자: 2023년 5월 14일 주일
[출애굽기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설교 목적:
이번 주일은 어버이주일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연로하신 부모를 돌봐 드리라는 명령이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땅에서 우리의 생명이 길 것이라는 약속이다. 생명이 길다는 말은 번영이며 충만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기독교인이 믿는 내용에 대하여 배우고 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이 세상은 어떤 곳이며,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배우고 있다. 이런 질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최고 관심사는 무엇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한다. 또한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이번 주 설교에서 나는 하나님이 혼돈에서 질서로, 공허에서 생명 충만한 세상으로, 그리고 흑암에서 빛으로 창조하시는 분임을 다시 한번 강조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이런 일의 동역자로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것이다. 특별히 부모공경이라는 이 계명이 어떻게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그 계명이 우리의 삶에 어떤 빛을 비춰주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설교를 통하여 우리는 지난 세 과를 복습하고 이 세상이 혼란스러운 이유(4과)와 죄의 본질(5과)에 대하여 배울 것이다. 이번 설교를 통해서 우리가 더 많이 착한 일에 나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설교 개요
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본질
2.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인간이 맡은 일
3. 네 부모를 공경하라
4. 죄의 본질과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
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본질
우리는 지금 ‘21세기 현대인을 위한 복음’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 부제는 ‘기독교인은 무엇을 믿는 걸까요?’입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인지 정리한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생각하고 반성하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자신이 들은 것을 비교해 보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받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웁니다. 우리는 또한 기도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를 배웁니다.
미국에서 새들백교회를 세운 릭 워렌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문제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하나님은 환경을 통하여 우리의 성품을 성숙하게 하신다. 사실, 우리를 예수님 닮게 하려고 하나님이 더 중요하게 사용하시는 것은 우리의 성경읽기보다는 환경이다. - 릭 워렌(1954년생, 새들백교회의 설립자)
“God has a purpose behind every problem. He uses circumstances to develop our character. In fact, he depends more on circumstances to make us like Jesus than he depends on our reading the Bible.”—Rick Warren
하나님이 하신 일은 자연이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성경이 들려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요 5:17).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또는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그런데 릭 워렌 목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가장 깊이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가 발견하는 곳은 바로 우리의 환경이라고 말했습니다.
환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다듬어 가시는지를 깨닫습니다. 제가 릭 워렌 목사의 말을 들려주었을 때, 제 아내는 저에게 그 말이 맞다고 긍정하면서, 자신과 함께 일하는 동료를 통하여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고 반성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자연이며, 성경이며 그리고 우리의 환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 모든 것을 대한다면 우리는 점차 하나님에 대하여 더 많이 더 깊이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일까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종합하면 어떤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어떤 일인지를 깨닫습니다.
성경 창세기를 읽어보면,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는 좀 특이한 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전의 세상에 대하여 성경이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 이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빛을 지으시고 공간을 만드시며 그 공간에 만물을 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창조는 어둠을 밝히는 일이며, 어지럽게 뒤섞인 혼돈의 자리를 정리하여 질서를 세우심으로 공간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공간에 모든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의 본질을 요약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혼돈에 질서를, 그리고 공허에 충만을, 흑암에 광명을 비추시는 분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 흑암이 있는 그 어디에서나 지금도 일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을 종합하여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정리하면 바로 이렇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혼돈의 카오스(Chaos) 세상을 질서의 코스모스(Cosmos) 세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완성하실지에 대하여 들려주는 판타지입니다. 그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우리가 아직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판타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완성하실 세상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메마른 광야가 변하여 생명으로 충만한 생태평원이 되는 것이며, 그것은 온 세상이 마치 성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랫소리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을 아는 일에 정통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이 땅과 하나가 될 때 온 세상이 에덴의 영광으로 변화될 것을 그려줍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 모든 환상을 보여주시고 그 환상의 설계도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인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는 존재입니까?
2.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인간이 맡은 일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관리하고 지키는 관리자요 청지기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을 맡아 관리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며, 대리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계속 일하고 계시므로 인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동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과 함께 일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린도전서 3:9
사도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불렀을 때 그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하나님은 혼돈에 질서를, 공허에 충만을, 그리고 어둠에 빛을 비추시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바로 이방인의 빛으로 세움을 입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 말은 흑암에 앉은 이방인들에게 빛을 비춘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편지를 할 때 교회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본분을 명확하게 이해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한 일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맡기신 바로 그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관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 선한 일을 바르게 감당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 자기가 하나님인 양 행동하면 그는 스스로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죽음을 낳는 일을 하게 됩니다.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해야 할 일을 두 가지로 정리하자면 그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힘입어 피조세계를 잘 돌보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교회를 향하여 ‘택하신 백성이며 거룩한 나라, 그리고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한 것은 정말 핵심을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벧전 2:9).
인간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에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을 관리하고 가꾸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Worship)와 왕으로서 세상을 돌보는 봉사(Service, Mission), 이 두 가지는 인간이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맡은 본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면 그는 에덴동산을 잘 가꾸고 지키는 훌륭한 제사장이 될 것이며, 그 결과 그가 관리하는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실패하고 피조물을 섬기고 탐심의 종이 된다면 그는 결국 자기가 맡은 땅을 죽음의 땅이 되게 하고 말 것입니다.
예배와 봉사, 또는 예배와 선교는 교회의 본질적인 임무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이 땅과 세상을 복된 터전으로 가꾸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배와 선교는 그 일을 통해서 결국 이런 일이 이루어지도록 지향합니다. 이 목적을 잃어버리면 예배도 선교도 타락하게 됩니다. 구약시대에 예언자들이 백성들에게 헛된 제사를 더 이상 드리지 말고 성전을 더 이상 밟지 말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예배와 봉사의 삶을 통해서 결국 이웃을 복되게 하는 목표를 잊어버리고 착취와 포악을 행하면서 위선과 형식의 제사를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살아야 하는지 ‘부모 공경’이라는 계명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3.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그들을 통하여 일하시기 위하여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은 이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에 동참한 이스라엘 백성은 아담처럼 하나님의 세상을 관리하는 대리인이며, 아브라함의 복에 동참하는 약속의 자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이란 천하만민에게 복이 되는 민족의 조상이 되도록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계획하신 바로 그 위대한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세상을 복되게 하여 생명과 질서로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며, 그처럼 새롭게 된 세상을 물려받아 다스리는 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복을 받을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부르거나 하나님의 유산을 물려받을 상속자 또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을 위하여 율법과 성막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담은 상자를 증거궤라고 부르셨고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 성막을 증거막이라고 부르셨습니다(출 25: 22, 38:21). 율법은 언약의 증표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잘 지키면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충실한 백성이 됩니다. 그렇게 본다면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지도나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십계명의 제5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신 5:16)
하나님의 율법이 말하는 바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경한다는 말은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귀하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나이 들어 연로하신 부모님은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하실 수 없습니다. 옛날만큼 기력도 기억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약해진 부모를 중요하게 여기고 잘 돌봐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부모 공경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약한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는 분이며, 가난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나그네와 이방인을 귀하게 여기시며, 심지어 가축과 동물들도 아끼십니다. 율법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도는 약한 생명을 소중하게 대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와 같을진대 약한 생명을 아끼지 않고 돌보지도 않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며 결국 약한 존재들부터 죽음을 맞이하다가 결국 그 사회 전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꾸시는 사회는 강자가 약자를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는 생명공동체입니다.
누가 약자입니까? 어떤 것이 약한 생명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언제나 약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약자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나이가 많은 노인은 약자입니다. 고아와 과부도 약자입니다. 여성들도 약자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습니다. 아이들도 약자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횡포를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이처럼 약한 존재들이 함부로 다루어지는 세상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약자는 청년들이라고 합니다. 너무나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살다 보니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고 살아가는 처지에 있다고 오늘날의 청년들을 설명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재촉하는 일은 도리어 더 큰 고통을 주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회든지 병들면 가장 약한 존재가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며칠 전 경기도 수원에서는 개와 고양이 1,256마리를 굶겨 죽인 60대 남성이 재판을 통해 3년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그 남성은 개와 고양이를 처분해주겠다고 주인으로부터 1만원을 받고 그렇게 방치해 결국 굶어 죽게 했다고 합니다. 돈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떠받들어지는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나이 들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홀대하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도 결국 늙을 것이고 제명에 죽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오래오래 평안 가운데 살려면 병들고 나이 든 부모와 같은 약자를 중요하고 귀하게 여기고 잘 모셔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계명에는 약자와 소수에 대한 배려와 돌봄이 그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한다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이 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버이주일을 맞아 부모를 공경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이 계명이 담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를 깨닫고 우리 주변에서 약한 존재에 대한 돌봄과 배려의 마음을 훈련합시다.
4. 죄의 본질과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지 않고 도리어 생명을 죽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약자들의 한숨과 눈물이 오늘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옥이라고 탄식하는 것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며칠 전 무인점포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감시카메라를 보다가 깜짝 놀랄 장면을 방송에 제보했습니다. 그것은 무인점포에 아이들이 들어와서 5만원어치의 카드를 결제하는 척하고 상품을 그대로 들고 나가는 장면이 감시카메라에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장면은 다음날 다른 아이들이 무인점포에 들어와서 계산하는 기계에서 스크린을 서른번이나 두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키오스크라는 기계의 스크린을 그렇게 많이 두드린 이유는 제대로 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 무인점포의 주인은 지금껏 수많은 도난사건을 경험했는데 이렇게 양심적인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고 감탄했습니다. 상자를 통째로 구해야 하는데 결재할 수 없어서 그 속의 물건을 가지고 제대로 계산한 아이의 양심적인 행동은 아무도 없는 가게에 설치된 카메라에 찍혀서 온국민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적질이 왜 나쁩니까? 거짓말은 왜 나쁩니까? 그것은 사람을 속이고 마침내 죽이기 때문입니다. 비방하는 말이 왜 나쁩니까? 바로 그 비방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고 그만큼 생명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는 살인금지와 도적질 금지, 간음금지, 그리고 거짓증거 금지, 탐심 금지 등의 계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범하면 죄가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죄는 결국 생명을 시들게 하고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은 무엇입니까? 선은 생명을 소생하게 하고 다시 일어나게 하고 살리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계명이 많지만 그 모든 계명을 어떻게 지키겠습니까? 계명의 목적은 생명을 살리는 데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우리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의 이야기에서 무인점포에 들어가 양심적으로 계산하고 물건을 들고 나온 그 아이를 생각해 봅시다. 누가 그 아이에게 그런 착한 마음을 가르쳤을까요? 아마 그 부모님이 좋은 가르침과 모범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로마서 1:20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성은 하나님의 성품, 곧 신의 성품입니다. 신의 성품은 진실하고 따뜻하며 생명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유익을 얻습니다.
그런데 자연에는 사람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고 양심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양심이 자기를 가르쳐 옳은 일을 하게 합니다. 약한 사람을 돌보고, 누가 보지 않아도 자기의 책임을 다합니다. 그런 선한 마음들이 온 세상에 가득하지 않다면 이 세상은 이미 오래 전에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 사랑했던 본 훼퍼의 노래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 선한 능력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히틀러의 나치가 통치하는 엄혹한 상황 가운데서 이런 노래를 부른 신학자 본 회퍼는 온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원한 신성과 능력을 보았고 느꼈음에 틀림없습니다. 신학자는 성경에서만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연과 사람들 안에서도 하나님의 신성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본 회퍼의 시대에 히틀러가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온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의 선한 능력과 신성을 보고 기뻐했으며, 또 한 사람은 자기 마음에 가득한 탐심의 종이 되어 수백 수천만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입니까? 하나님의 신성을 발견하고 거기에 기쁨과 감사로 반응하는 것은 선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에 눈을 감아버리고 자신의 탐심에 충실한 것이 악입니다.
한 아이는 유명한 캐릭터 카드를 갖고자 하는 탐심에 삼켜져서 5만원어치를 훔쳐갔고 다른 한 아이는 그 동일한 카드를 힘든 결제방법을 동원해서 정당하게 얻었습니다. 이 동일한 일이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죄를 범하고 한 사람은 의를 행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 대해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후서 1:4
사도 베드로에 따르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정욕으로 썩어질 것을 취하는 자리를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선한 능력에 반응하여 사는 사람들을 봅니다. 동시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에 매여서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생명을 앗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셔서 하나님의 동역자와 자녀로 살게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사는 곳에서 생명을 살리는 일 곧 선한 일에 동참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마다 우리가 사는 곳은 혼돈 대신에 질서가 자리잡고, 공허 대신에 생명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자리마다 카오스의 세상이 물러가고 코스모스의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이런 방식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늘 이렇게 인사합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합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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