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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호호 유모어 수다방 스크랩 당신의 다리를 노린다 - 림프사상충?
우주인 추천 0 조회 105 15.02.01 09: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당신의 다리를 노린다 

림프사상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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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프사상충증에 걸려 두 다리가 부은 필리핀 환자 <출처: CDC>

당신의 다리, 그 중에서도 한쪽 다리가 점점 붓는다면,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계속 부어서 코끼리 다리처럼 된다면? 기생충 때문이라고 해서 치료하면 나을 줄 알았는데 의사가 “기생충을 치료한다 해도 다리는 원래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무서운 이런 질환이 진짜 있을까? 있다. 그것도 전 세계 81개나 되는 나라에서. “설마 우리나라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거의 멸종하긴 했지만 우리나라에도 아직 그 기생충의 잔재가 남아 있으니까.

림프사상충증

세계보건기구(WHO)가 “육체적 장애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으로 지목한 이 질환의 이름은 림프사상충증이다. 림프란 우리 몸의 혈관에서 스며나온 조직액으로, 조직의 세포를 적신다. 한번 사용된 조직액은 다시 심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조직액을 심장까지 운반하는 관이 바로 림프관이며, ‘림프’란 조직액이 림프관에 있을 때를 지칭한다. 사상충은 벌레가 마치 실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 그러니까 림프사상충증은 실처럼 생긴 벌레로 인해 림프관이 막히고, 심장으로 가야 할 조직액이 조직에 그대로 남아있게 되어 다리나 팔, 가슴이나 고환 등이 붓는 상태를 말한다. 피부가 두꺼워지는 게 마치 코끼리 피부 같다고 해서 ‘상피증(elephantiasis)’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물론 사상충이 ‘기필코 장애를 일으키겠다’는 사악한 의도로 이런 증상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사상충이 림프를 모으는 중간 정거장인 림프절에 사는 걸 좋아한다는 게 문제다. 수컷의 크기가 4cm, 암컷은 무려 6-10cm 정도로 기니 그 존재만으로도 당장 무슨 일이 날 것 같지만, 사상충은 숙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라 벌레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의외로 별 일이 없다. 일이 터지는 건 사상충이 수명대로 (림프사상충의 수명은 5-8년이다) 살다가 죽은 뒤다. 사상충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단백질이 혈액 속으로 나오면서 격렬한 면역반응이 일어나는데, 그 결과 열이 나고 림프절과 림프관에 심한 염증이 생긴다. 림프관의 염증은 심한 통증을 유발하고, 림프가 제대로 운반되지 못하다보니 림프가 고여 팔이나 다리가 붓게 된다. 이때 붓는 것은 손가락으로 누르면 원상태로 돌아가는 그런 부종으로, 여기서 치료하면 원래의 팔. 다리로 돌아갈 수 있지만, 진단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 병변은 계속된다. 고인 림프는 세균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라 세균들이 마구 모여들고, 염증이 있다가 낫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섬유질이 두껍게 쌓인다. 이때의 부종은 섬유질이 축적된 결과인지라 손가락으로 아무리 세게 눌러도 들어가지 않고, 환자는 두꺼워진 팔이나 다리를 가지고 남은 여생을 살아야 한다. 몸의 어디가 붓느냐는 사상충의 기생부위에 따라 달라진다. 림프사상충이 사타구니 림프절에 있으면 고환이 농구공처럼 커지거나 다리가 붓고, 겨드랑이 림프절에 사상충이 있다면 팔이 붓거나 가슴이, 그것도 한쪽만,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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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프사상충증에 걸린 에디오피아 농부의 발사진 <출처: NIH>

림프사상충의 발견

이 기생충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원전 2000년 전쯤의 파라오인 멘투호텝 (Mentuhotep) 2세의 조각상을 보면 다리가 부어 있는 것이 림프사상충의 존재를 시사하는 가장 오래된 증거물이다. 그 후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문헌들에서 이 질병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16세기 말 인도 지방을 여행한 한 학자가 “이 지역 사람들은 한쪽 다리의 무릎 아래 부분이 두꺼워 코끼리 다리 같다”라고 말한 게 림프사상충에 관한 최초의 공식 기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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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크롭트사상충의 현미경 사진

사람에서 림프사상충증을 일으키는 사상충은 모두 세 종이 있다. 반크롭트사상충, 말레이사상충, 티몰사상충인데, 반크롭트사상충이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증상도 가장 심하다. 말레이사상충은 그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사상충도 바로 이것이지만, 말레이사상충은 증상이 조금 덜하다는 걸 제외하면 모든 게 반크롭트사상충과 비슷한지라 여기서는 사상충 중 가장 중요한 반크롭트사상충을 중심으로 얘기를 해보겠다. 반크롭트사상충의 학명은 부케레리아 반크롭티 (Wuchereria bancrofti), 도무지 뜻을 알 수 없게 만드는 이름이 붙은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1866년 부케러 (Otto Wucherer)라는 학자가 환자의 소변에서 사상충의 유충을 발견하고 마이크로필라리아(microfilaria, 작은 사상충이란 뜻)라고 불렀는데, 그로부터 10년 뒤 반크롭트 (Joseph Bancroft)라는 학자가 환자의 림프절에서 성충을 발견하고는 거기다 자기 이름을 붙인 거다. 둘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고, 그들은 결국 두 사람의 이름을 모두 넣는다는 데 합의하고 굳은 악수를 나눴다.

반크롭트사상충의 생활사

이제 반크롭트사상충이 어떻게 전파되는지가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됐다. 전파경로를 알아야 박멸 및 예방대책을 세울 수 있으니까. 이 일을 해낸 사람은 만손 (Patrick Manson)이라는 학자로, 그는 모기가 범인임을 최초로 밝혔다. 여기까지만 했다면 그의 이름이 지금보다 널리 알려졌겠지만, 만손은 그러는 대신 “모기가 물속에다 유충을 퍼뜨리고, 사람이 그 물을 마셔서 감염된다”고 주장한다. 아쉽게도 이건 틀린 주장이었고, 이후 다른 학자가 모기 주둥이에서 그 유충을 발견함으로써 사람들은 “아, 모기가 사람 피를 빨 때 주둥이에 있던 유충이 들어가서 감염이 되는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토대로 반크롭트사상충의 생활사가 완전히 그려진다. 일단 모기가 물 때 모기 주둥이에 있던 3기 유충이 사람 몸에 들어가면서 감염이 이루어진다. 이 3기 유충은 림프절이나 림프관에 자리를 잡고 열 달 후에 어엿한 성충으로 자라며, 암. 수간의 교접도 일어난다. 암컷은 임신을 하고, 알을 낳는 다른 기생충들과 달리 림프사상충의 암컷은 실처럼 가느다란 새끼 사상충을 낳는데, 이게 바로 부케러가 발견한 마이크로필라리아 (1기 유충에 해당)다. 모기가 흡혈할 때 이 마이크로필라리아가 잽싸게 모기에게 옮겨가 모기 안에서 3기 유충으로 자라며 또 다른 희생자를 기다리는 게 반크롭트사상충의 생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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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크롭트사상충의 생활사

야간주기성 (nocturnal periodicity)

신기한 건 이 마이크로필라리아의 행동이다. 마이크로필라리아는 낮 동안에는 몸 깊숙한 정맥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나와서 피부 말초혈관을 돌아다닌다. 이런 행동패턴을 ‘야간 주기성’이라고 부르는데, 놀랍게도 이 야간주기성은 반크롭트사상충의 전파에 도움을 준다. 마이크로필라리아가 성충이 되어 자손을 번식시키려면 일단 모기에게 건너가야 하는데, 모기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간이 바로 밤이지 않은가? 혹시나 싶어 말초혈액에서 시간별로 마이크로필라리아의 숫자를 헤아려 봤더니 밤이 깊을수록 점점 수가 많아졌고, 밤 12시부터 새벽 세시 사이에 정점에 달했다가 점점 떨어졌다. 애들은 밤에 자야 하는데 마이크로필라리아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마이크로필라리아의 성숙한 행동에 놀란 학자들은 그 이유를 알아내려 애썼지만, “마이크로필라리아가 갖고 있는 물질이 햇볕에 약해서 낮에 숨어 있는 거다” 같은 추론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마이크로필라리아의 야간주기성은 림프사상충 감염 여부를 진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밤 12시쯤 혈액을 채취해 마이크로필라리아가 있는지를 확인하면 되니까 말이다. 이 야간주기성은 말레이사상충에서도 나타나며, 우리나라 학자들이 제주도에서 상주하면서 주민들의 밤잠을 깨운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진단, 치료는 어떻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림프사상충증은 충체가 죽은 뒤에야 병변이 시작된다. 마이크로필라리아도 수명이 있는지라 엄마가 죽고 나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아, 병변이 시작됐을 때는 오밤중에 혈액을 채취해 봤자 진단을 하기가 어렵다. 그 경우에도 의심가는 림프절의 조직검사를 시행해 죽은 벌레를 발견하면 진단할 수 있다. 다행히 다리가 붓기 전에 진단이 된다면 디에틸카바마진 (DEC, Diethylcarbamazine)이란 약으로 치료가 된다. 그러니 유행지역에 살거나 관광을 그곳으로 다녀왔다면 한번쯤 혈액에 마이크로필라리아가 있는지 검사할 필요가 있다. 이미 다리가 코끼리처럼 변한 경우라면 이미 충체는 죽었으니 약을 써봤자 별반 도움이 안되며, 망가진 다리는 성형외과적 수술로 고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대부분의 기생충이 온순하지만 몇몇 기생충은 나쁘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영구적인 장애를 일으키는 림프사상충은 정말 나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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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과 다리에 림프사상충증을 앓는 환자의 모습

우리나라의 림프사상충

우리나라에서 림프사상충에 관한 기록은 고려 이전에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고려시대부터 중국, 인도네시아, 중동 등의 국가와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림프사상충이 유행하게 된다. 즉 우리나라의 림프사상충은 수입성 질환인 셈인데, 다행히도 비교적 증세가 덜한 말레이사상충이었다. 충청도에서도 환자가 있었고 경북 내륙지역과 전라남도 해안가 등에서도 이따금씩 환자가 발생했지만, 가장 유행도가 높은 곳은 바로 제주도였다. 실제로 제주도 분들 중에는 사상충으로 인해 팔이나 다리가 굵어진 분들이 꽤 있었다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기생충학교실을 만드신 서울의대 서병설 교수는 림프사상충 환자들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림프사상충을 완전히 박멸시키겠다”는 결심을 한다.1968년 서병설 교수는 지인의 도움으로 제주도에 캠프를 차렸고, 거기 몇 달씩 상주하면서 주민들의 피를 뽑았다. 그것도 밤 12시라는 야심한 시각에. 낮 시간에 찾아와 피를 달라고 해도 시선이 곱지 않았을 텐데, 한창 잠이 들었을 시각에 방문을 두드리고 피를 뽑아댔으니 얼마나 불평불만이 많았겠는가? 그 당시 발표된 논문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주민들의 협조는 갈수록 떨어져 세 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불과 40%만 채혈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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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빠는 모기의 모습. 림프사상충은 모기를 통해 전파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서 교수는 유행지역의 주민들 3천명을 조사, 17%가 말레이사상충에 걸려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양성자에게 약을 투여함으로써 그들을 육체적 장애로부터 구해줬다. 서 교수는 이런 일을 무려 5년간이나 계속하면서 제주도의 림프사상충을 몰아냈다. 1980년대 후반에 제주도 주민들을 조사했을 때 감염률은 0.3%에 불과했고, 그 후 조사에서는 드디어 0%에 이른다. 경북 내륙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집단치료가 이루어지면서, 우리나라에서 림프사상충은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림프사상충이 완전히 박멸된 것은 아니었다. 2003년 흑산도를 조사한 연구팀은 주민들 중 6명 (1.6%)에서 마이크로필라리아를 찾아냈으며, 2009년 조사에서도 신안군의 섬에서 2명의 양성자가 발견된 바 있다. 림프사상충이 유행하는 나라에 가는 사람들도 조심을 해야겠지만, 서해안 섬에 갈 때도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하고, 어쩔 수 없이 물렸을 경우엔 열 달 후 혈액검사를 해보는 식으로 나름의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겠다. 림프사상충은 가지고 살기엔 너무 나쁜 기생충이니까. 반크롭트사상충의 유행지는 적도 근처, 즉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필리핀, 대서양 군도, 남아메리카고, 말레이사상충의 유행지는 남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이다. 물론 한국도 말레이사상충의 유행지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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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다. 저서로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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