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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잔치는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 2022년 6월 26일 주일 예배
본문 / 에스더 5:1-14
요즘은 먹는 게 부족한 것이 없는 시대이지만 제가 어렸을 때에만 해도 먹거리가 흔하지 않았습니다. 사탕, 과자, 약과, 곶감, 수정과 등 이런 것은 평상시 쉽게 먹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잔치가 열릴 때입니다. 동네에서 환갑이나 결혼을 하면 잔치를 하고 그러면 동네 아이들이 잔치 집으로 모여들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숫기가 없어서 잔치를 하면 찾아다니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가면 평소에 구경할 수 없었던 사탕, 과자 등을 먹는 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인다고 하셨습니다. 주검은 죽은 사체를 말합니다. 독수리는 죽은 시체를 먹고 사는데 주검은 독수리에게 잔치인 겁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다 보셨을 겁니다. 죽은 시체에 달려들어 무섭게 뜯어먹는 시꺼먼 독수리 떼들을 말입니다.
주검은 사망의 결과물입니다. 만약 인간이 죽었을 때 그 시체를 장사하지 않고 밖에 버린다면 독수리가 그 주검에 달려들어 잔치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로 타락한 인생들을 향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시체에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뜯어 먹는 그 시꺼먼 독수리가 마귀라고 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죄로 타락한 자들을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라고 하셨는데 그 죽은 자들에게 뭐가 달려들겠습니까? 죄와 사망으로 권세를 잡은 흉악한 마귀가 달려들어 그 영혼을 먹으며 잔치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권세를 잡은 마귀는 지금 잔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육체의 정욕과 탐심으로 즉 죄악으로 자신의 육체를 위해 사는 그 영혼이 죽은 자들에게 달라붙어서 말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섬기며 육체를 위해 사는 자들은 이미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마귀는 그 생명이 없는 자들의 그 영혼을 다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알면 기가 막힙니다. 내가 끔찍하게 여기고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마귀가 내 몸에 앉아 내 영혼을 파먹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 영혼을 마귀가 파먹어도 모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성도라고 하여도 자신의 영혼을 마귀에게 빼앗기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아파트 5층에 살 때에 5층인데도 작은 개미들이 있었습니다. 이 작은 개미들이 아파트 5층까지 올라온 겁니다. 약을 뿌리면 안 보이다가 며칠 지나면 더 많이 생깁니다. 해충을 퇴치하는 전문가가 집 안에 개미들이 좋아하는 것을 노출을 시키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하셨습니다.건강하게 팔딱팔딱 생명으로 충만하여 살아있는데 독수리들이 야! 저 놈 실하니 맛있겠다고 달려드는 법은 없다는 겁니다. 병들어 죽어 갈 때 독수리가 지켜보고 있다가 내려앉는 겁니다.
마귀는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한 정결한 신부에게 달려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 안에서 죄악을 버리지 못하여 썩어가는 냄새가 난다면 마귀는 천리 밖에서도 압니다. 죄의 냄새가 즉 사망의 냄새가 슬슬 피어오르면 마귀는 달려들어 죄의 노예로 만들어 그 영혼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타락한 죄인으로 세상에 오는 인생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위한 잔치를 원합니다. 이 세상의 재물과 돈과 영광과 힘과 가치와 즐거움과 재미와 쾌락으로 자신을 숭배하는 잔치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잔치는 곧 죄악으로 여는 잔치이기에 그 잔치의 보이지 않는 주인인 마귀에게 끌려가 결국 그 잔치는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저는 바사제국에서 최고의 권세를 잡은 하만을 통해 타락한 인간을 보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다 하만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의 영광과 힘과 명예와 존귀와 재미와 쾌락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하만처럼 되려고 인생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닙니까?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를 보며 자란 아이들은 나는 절대로 술을 안 먹겠다고 다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자신이 그렇게 미워했던 아버지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데 하만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만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보이는 모든 것으로 자신의 그 타락한 육체를 숭배하는 죄악을 십자가로 끊어내야 마귀가 달려들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탐심을 못을 박고 회개하고 거듭나기 전에는 모든 인간들은 다 하만인 것입니다.
하만은 왕후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초대를 받은 것이 나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을 받았다고 초대장을 단톡방에 올렸더니 목사님들이 축하한다! 경사가 났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통령은 왕으로 타락한 모든 자들의 대표가 아닙니까? 취임식은 타락한 인간들의 영광과 힘으로 잔치를 하는 곳입니다. 그 잔치에 가는 게 뭐 그리 좋아 할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도서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 마음에 둘지니라.” 말씀하고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증언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모든 인간들은 하만처럼 세상의 영광과 힘을 추구하는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타락한 죄인들의 인생의 목표는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꿈은 돈 많은 백수랍니다. 이제는 일도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부모님은 부자가 되기 위해 땀을 흘렸다면 그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편하게 돈만 쓰겠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 중에는 내 자식들을 편하게 먹고 사는 백수로 만들겠다는 소원도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하만은 지독한 이기주의자이며 자아숭배자입니다. 육신의 만족과 기쁨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보이는 그 힘과 영광으로 자신을 위한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내 밑으로 내려다보고 싶은 것입니다.
하만은 내가 하나님이라고 타락한 모든 죄인들의 자아입니다. 타락한 육체가 원하는 이 세상의 온갖 힘과 영광을 소유하여 나를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이 타락한 자들이 원하는 인생의 잔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소위 세상의 힘과 영광을 소유하여 잔치를 하게 되면 성공이라고 하는데 그 잔치가 정말 성공일까요?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는 데 자기는 조상을 섬긴다는 마음으로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영적인 눈을 열어주셔서 보니 흉악한 마귀들이 제사를 받고 있더라는 겁니다. 마귀들이 제사상에 앉아 게걸스럽게 먹고 마시고 절을 받으며 난장판이더라는 겁니다. 내가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가 실제로는 더러운 귀신들에게 하는 것이라면 누가 그 짓을 하겠습니까?
내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위해 이 세상의 영광과 힘으로 잔치하는 것이 마귀에 끌려 사망으로 가는 것이라면 누가 그렇게 살겠습니까? 예수님은 어둠에 속한 자들은 자신이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모르니까 귀신에게 제사하고 모르니까 자신을 위한 사망의 잔치를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기에 때문에 이제는 모른다는 변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믿음으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에스더를 읽을 때마다 하만이 얼마나 불쌍한지 말입니다. 불쌍한 하만을 좀 보십시오. 세상에서 왕 다음가는 최고의 권세와 존귀와 영광과 힘을 가진 사람이 뭐가 부족해서 한 없이 불쌍하겠습니까? 하만이 왜 불쌍한지나 아십니까? 하만이 자신이 손에 넣은 영광과 힘과 권세와 명예를 얼마나 자랑합니까? 그러나 하만은 왕후가 여는 잔치에 왕과 함께 초대를 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자랑하던 그 잔치에서 죽게 됩니다.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만든 그 장대에 자신이 매달려 죽고 맙니다.
하만이 기뻐하고 자랑하고 원하는 잔치는 사실은 자신을 죽이는 덫이었습니다. 사냥꾼들은 짐승들을 잡기위해 덫을 놓을 때 짐승들이 좋아하는 미끼를 놓습니다. 짐승들은 그 미끼에 미혹이 되어 결국은 덫에 걸려 죽고 마는 것입니다.
나훔 3장에서 이 세상을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과 영광과 힘과 쾌락과 즐거움이 거대한 자석이라면 타락한 인간의 욕망은 철입니다. 철과 자석은 그 사이가 가깝게 되면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으로 하나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들은 멸망할 세상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인생의 성공과 잔치로 삼으니 이게 얼마나 불쌍한 것입니까? 사람들은 거지 나사로를 인생이 실패한 불쌍한 자로 보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세상의 재물을 의지하고 영광을 자랑하며 매일 잔치하던 그 부자가 불쌍했던 것입니다. 부자는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지옥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며 자신의 육체를 위해 사는 것은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만나지 못해 회개하고 거듭나지 못한 성도들이 교회 안에는 많습니다.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그 마음과 삶에서 여전히 타락한 자아인 하만이 주인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는 것입니다.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천국에 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그 정욕과 탐심과 자아숭배를 십자가에 못을 박는 것은 원치 않는 것입니다.
에스더를 읽다 보면 하만은 미련하다 못해 정말 불쌍하기까지 합니다. 하만이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잔치와 그가 만든 장대는 다 스스로 판 무덤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육신을 위해 잔치를 하려는 자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는 잔치와 자신이 매달릴 장대인 줄도 모르고 좋아하니 이게 얼마나 불쌍합니까?
지금 교회에는 주여 주여 하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불쌍한 하만들이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심판을 받는 불지옥에 들어가는 줄모 모르고 그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세상의 재물과 돈과 명예와 권세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과 영광과 재미와 즐거움과 쾌락을 따라가며 사망의 잔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정말 사람처럼 미련하고 불상한 게 없습니다. 아마 짐승들은 영원히 고통을 받는 길이라는 것을 알면 절대로 그 길을 가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설마하며 그래도 갑니다. 조금 가는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옥으로 갑니다.
타락한 인간은 아주 교만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라고 타락한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그 교만한 자아를 미혹하는 마귀의 말을 듣고 세상의 것으로 자신을 위한 잔치를 하다가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잔치꾼들에게 엄청나게 부러운 사람입니다. 복이 터진 사람처럼 보일 겁니다. 사법시험을 아홉 번 떨어질 때에는 불쌍했지만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지 여덟 달만에 더 이상 잔치할게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이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요즘에 인물을 검색하다 이회창 국무총리를 보게 되었는데 이 분은 아주 아깝게 두 번의 큰 잔치에 실패하였습니다. 얼마나 그 잔치에 미련을 못 버렸으면 세 번째는 무소속으로 나왔을까? 잔치에 눈이 멀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 세상의 왕이 되기 원하는 그 간절한 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저도 타락한 인간인데 말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마귀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마음을 다 빼앗겼습니다. 저 것만 먹으면 내가 하나님이 된다고? 그 선악과에 더러운 벌레가 기어 다니고 고약한 냄새라도 나면 주저했을 텐데 너무 탐스러운 겁니다. 마귀가 선악과를 따 줄 필요도 없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그것을 따서 먹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실패하였는데 타락한 죄인으로 세상에 온 인생이 보이는 이 세상의 그 모든 영광과 힘과 즐거움과 쾌락으로 자신의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숭배하는 그 잔치를 안 할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안 하고는 못 견디는 것입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내가 하만이었다는 깨달았습니다. 세상에만 하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교회로 나온 그 하만이 십자가에 마음과 영을 즉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못을 박고 회개하고 거듭나지 못하면 그대로 하만으로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하만들은 하나님을 이용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 교회에서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교단의 신학교가 정원을 채우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내에게 주변에 아는 사람 있으면 신학교에 보내달라고 전화가 왔었습니다. 지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없는 대로 가면 되지 정원을 채우려고 신학교에 와 달라고 사정을 하는 참 어이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왜 신학교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급격하게 줄었을까요? 아마 이삼십년 후에는 문 닫는 교회도 많고 목회자가 없는 교회도 생길 겁니다. 제가 신학교에 갈 때만해도 목회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보다 십년 선배 되는 목사님들 때에는 더 엄청났습니다. 요즘 목사가 되겠다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경쟁할 일이 없으니 좋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전체적으로 학생들의 수가 감소한 이유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교회의 잔치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양적인 면에서 쇠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는 잔치가 한창일 때에는 전국에 있는 그 많은 무인가 군소 신학교도 정원을 다 채우고도 남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과거에는 종들을 많이 부르셨는데 지금은 종들을 조금만 부르시는 겁니까? 과거에는 하나님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잔치를 보고 달려온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잔치가 열리면 동네 아이들이 모이듯이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돈이 쌓이고 세상의 세력과 권세와 명예와 영광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신학교에 몰려든 것입니다.
심지어 공부 못하고 할 일이 없으면 신학교나 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왜냐 거기에 가면 잔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왜 목사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적을까요? 잔치가 끝나면 사람이 옵니까? 잔치가 끝난 집은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괜히 갔다가 붙들리면 뒤처리만 해야 되는 겁니다.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목회자의 길로 왔어도 교회에서 나를 위한 잔치를 하려고 했던 하만입니다. 저는 정말 잔치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처럼 노골적으로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유치한 잔치가 아니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그 잔치의 교묘한 주인공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그 영광을 보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잔치가 아니라 그 마음까지 존경하는 잔치 말입니다. 제가 꿈꾸던 목회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은퇴가 5년 쯤 남았을 때 제 스스로 모든 영광을 내려놓고 섬에 있는 가장 작은 교회로 가서 은퇴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하만 중에서도 아주 교묘한 하만이었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의 옷을 입고 있다면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구원한 자로 존경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절대로 속지 않으십니다. 교만을 겸손으로 겹겹이 포장을 해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여러분들이 종교적인 행위로 아무리 믿음 있는 자인 것처럼 포장을 잘 해도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입고 있던 옷을 벗겨내셨습니다. 간음하다가 붙잡히면 사람들은 간음한 여자를 사람취급을 안 합니다. 말할 수 없는 봉변과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사람들은 옷을 다 찢어버립니다. 간음하다 예수님께 잡혀온 여인도 그랬습니다. 머리는 쥐어뜯겨 다 헝클어졌을 것이고 옷은 다 찢어져 부끄러운 곳을 손으로 간신히 가렸을 것입니다. 침을 뱉고 저주를 퍼부었을 겁니다. 여기저기 맞아서 피도 났을 겁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하였을까요? 그 상황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 여자도 육체의 정욕과 탐심으로 자신을 위해 잔치하던 하만이었던 것입니다. 그 잔치가 파국으로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잔치가 어느 날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예수님 앞까지 끌려온 것은 그 여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몰래 숨어 육체를 위한 잔치를 계속해서 하였더라면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내 안에 있던 하만이 원하던 그 잔치를 고난으로 끝장이 나게 해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에 의해 옷이 벗겨질 때에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창피하였지만 그 고난이 저를 십자가의 주님 앞으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있던 하만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 진짜 잔치인 천국잔치를 향해 갈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세상을 사랑하고 육체를 위해 사는 불쌍한 하만은 아닌지 말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면 불쌍한 하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하만이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이 세상에서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탐심으로 잔치하려던 그 타락한 자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합니다. 아멘? 십자가를 만나 회개하고 죄를 끊어내야 합니다. 이제는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셔야 합니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만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회개하고 거듭났습니까? 십자가 앞에 하만을 내놓고 회개하는 자들은 다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자기 안에 있는 하만을 숨기고 감추는 자들은 심판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에게 한 말씀을 마음에 새깁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을 테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하만을 못을 박고 용서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죄와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다시는 하만에게 끌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날마다 하만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주님을 위해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잔치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 아직도 불쌍한 하만입니다. 잠시 왔다가는 이 세상에서 잔치를 하면 뭐합니까? 천국에서 잔치하지 못한다면 죽으면 영원한 고통인 것을 말입니다.
천국에서 우리 주님과 함께 잔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