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산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식탁 교제(Table Fellowship)’는 단순히 착한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시 로마 제국과 유대 엘리트들이 구축한 차별적 경제 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크로산이 분석하는 예수의 식탁이 가진 ‘제국 저항적’ 의미를 세 가지 핵심 포인트로 정리해보겠습니다.
1. ‘열린 식탁(Open Table)’: 위계질서의 파괴
로마 제국의 사회 구조는 철저한 후원-고객 관계(Patronage System)와 수직적 위계에 기초했습니다. 밥을 누구와 먹느냐는 곧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는 수단이었죠.
제국의 식탁: 끼리끼리 먹는 ‘닫힌 식탁’입니다. 높은 사람은 상석에 앉고, 낮은 사람은 말석에 앉거나 초대받지 못합니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의례였습니다.
예수의 식탁: 성별, 계급, 정결 여부를 따지지 않는 ‘급진적 평등주의(Radical Egalitarianism)’의 현장입니다. 당시 ‘죄인’으로 낙인찍힌 가난한 자들과 ‘세리’ 같은 부류가 한자리에 앉는 것은 제국의 신분 질서를 뿌리부터 부정하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2. ‘분배적 정의’의 실천: 제국 경제에 대한 저항
당시 로마와 헤롯 안티파스의 경제 정책은 농민들로부터 곡물을 수탈하여 도시와 엘리트들에게 집중시키는 ‘추출적 경제(Extractive Economy)’였습니다. 많은 농민이 땅을 잃고 빚에 허덕이며 굶주렸죠.
식탁의 경제학: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가르치셨고, 실제로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저항의 의미: 예수님의 식탁 교제는 하나님이 주신 자원을 소수가 독점하는 제국 경제에 맞서, 모두가 골고루 나누어 먹는 ‘하나님의 근원적 정의’를 미리 맛보게 하는 시위(Demonstration)와 같았습니다.
3. 세리와 죄인: 체제 밖의 사람들을 품다
예수님이 굳이 ‘세리’와 ‘죄인’을 선택하신 이유에는 날카로운 정치·경제적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세리: 제국의 수탈 시스템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식탁으로 부르신 것은 그들을 제국의 도구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재편입시키는 사회적 복권이었습니다.
죄인: 단순히 도덕적 죄인이 아니라, 제국과 종교 엘리트가 만든 ‘정결 규례’나 ‘조세 제도’를 감당하지 못해 사회적으로 매장된 이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식탁의 주인공으로 세워 제국이 만든 ‘가치 기준’이 가짜임을 선언하셨습니다.
결론: 식탁은 ‘하나님 나라’의 미니어처
크로산에게 예수님의 식탁은 “제국이라는 커다란 거짓말 속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진실을 미리 살아내는 공간”이었습니다. 제국은 폭력과 결핍으로 다스리지만, 예수님의 식탁은 환대와 풍요로 운영되었습니다.
결국 이 식탁 교제 때문에 기득권층은 위협을 느꼈고, 그것이 결국 제4장에서 다룬 십자가 처형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이러한 예수님의 ‘비폭력적 저항’이 오늘날 우리 삶의 방식(소비나 나눔)에는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