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ww.everyday01.com 십자가(0,1)복음방송
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하나님만 반짝반짝 빛나는 완벽함>의 줄거리:
의식 작용과 욕구 작용이 24시간 작동하는 내 마음에 유독 하나님만이 반짝반짝 빛나는 상태가 이루어지면 나 같은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서 감히 '완벽함'이라는 단어를 적용해도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만 반짝거림이 유지되는 동안은 안 되는 일도 없고 잘못되는 일도 없고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게 되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항상 유익만을 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만 반짝반짝 빛나는 완벽함
(고린도전서 10:14~33)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만 반짝반짝 빛나는 완벽함>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하나님만 반짝반짝 빛나는 완벽함”
오늘 본문에서는 8장부터 시작된 우상의 제물을 먹느냐 마느냐에 대한 내용이 끝이 납니다. 14~22절까지는 마지막으로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결국 우상에게 바친 제물의 고기를 먹는 문제는 우상숭배와 직결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3~30절에서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1~33절에서는 8~9장을 지나오는 동안에 사도 바울이 마음속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본문에서 중심이 되는 말씀은 31절의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구원을 받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목에서 “하나님만 반짝반짝 빛나는 완벽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좀 더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영광이란 곧 1등을 하는 것이고 영화로운 광채가 비추어지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1등을 하셔야 한다는 내용을 그동안 반복하여 다루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좀 더 직관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만이 내 마음에서 반짝반짝 빛나셔야 한다.”라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마음의 의식 작용과 욕구 작용과 주체성에 있어서 하나님만이 반짝반짝 빛나는 대상이 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식 작용에서 하나님의 있음만이 반짝반짝 빛나야 하고, 욕구 작용에서 하나님의 좋음만이 반짝반짝 빛나야 하며,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주체성만이 반짝반짝 빛나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31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계기로 나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제일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가 그러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하나님이 반짝반짝 빛나는 상태일 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영광은 곧 사람들의 관심에서 하나님이 1등을 하신 상태입니다. 관심을 세분화하면 마음의 의식 작용과 욕구 작용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의식 작용과 욕구 작용은 24시간 작동합니다. 이렇게 24시간 작동하는 의식과 욕구 작용에서 하나님이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하는 바람과 욕구에 대해 하나님만이 1등을 하시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상태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상태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의 의식과 욕구와 주체성과 관계되어서 하나님만 반짝반짝 빛나는 상태를 경험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마음에서 하나님만 반짝반짝 빛나는 상태가 유지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마음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내부와 외부의 환경을 비롯한 어떤 면에서도 부족함 없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물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인 좋으심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마음에서 유일하게 반짝거리는 존재가 되시며 그 상태가 유지될 때에는 감히 완벽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죄인이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와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해서 완벽이라는 단어를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반짝거림이 가려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반짝거리는 분이십니다. 요한계시록 4장을 보면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계시를 받을 때의 광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알고 있던 보석빛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표현합니다. 3절을 보면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이처럼 갖가지 보석빛으로 표현되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본래 가장 완벽한 빛이시고 가장 온전한 반짝거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로부터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반짝거림이 우리의 마음에서 가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평생 직업이고 사명이자 의무는 갖가지 보석빛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반짝거림을 마음에서 가려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하나님의 빛만 가려지지 않을 수 있으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반짝거림이 마음을 둘러싸고 하나님의 반짝거림만을 보고 있는 동안에는 시편 23편 1절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다윗의 고백이 실제로 일상이 됩니다. 2022년을 살고 있는 일상 속에서 다윗의 고백이 저절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돈이 문제일 수 있고, 건강이 문제일 수 있고, 자녀가 문제일 수 있고, 배우자가 문제일 수 있고, 직장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과제이자 직업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로 인해서 하나님의 반짝거림이 가려지게 된 상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반짝거림이 방해받지 않고 마음에서 보이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직업이고 사업이고 의무이고 사명입니다. 이것 하나만 하면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24시간 작동하는 의식 작용과 욕구 작용이 있습니다. 이는 곧 언제나 마음에서 무엇인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서 무엇이 보이고 있는지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반짝거리고 있는 대상입니다. 이 반짝거리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반짝거림은 가려진 상태입니다. 마치 하늘에 별이 있어도 강력한 불빛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빛에 의해서 밤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듯이 마음에서 이 세상의 대상을 보는 동안에는 유일하게 반짝거리는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지게 됩니다. 그럴 때 삶에서는 지옥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될 일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뿐입니다. 다른 모든 일은 해야 될 일이 아닙니다. 갖가지 보석빛으로 비유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반짝반짝 빛남이 가려지지 않는 일만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십자가를 생활화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십자가 생활화는 마음에서 하나님 이외의 모든 반짝거림을 막는 방법입니다. 인위적인 불빛을 끄고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듯이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마음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상태를 막으려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두 가지 절대불변의 원초적 상황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유일한 있음과 유일한 좋음과 모든 만물과 지금의 상황을 있게 하시는 주권입니다. 이것은 지구의 77억 각자가 매일 매 순간 모든 장소에서 피할 수 없이 접하게 되는 절대불변의 원초적 상황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대부분 사람들의 의식 작용과 욕구 작용에서 엄연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은 가려져 계십니다. 대신에 보이고 들리고 만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빛을 느끼고 반짝거림을 보고자 합니다. 이것이 의식 작용과 욕구 작용이 하나님으로부터 빗나가는 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 유독 하나님이 내 안에서만 반짝반짝 빛나는 영광을 받으시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상태입니다.
33절을 보면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구원을 받게 하라”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구원은 마음의 있음을 느끼는 의식 작용과 좋음을 바라는 욕구 작용에 대해서 하나님만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고, 예배당에 가서 성만찬 예식에 참여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어떤 식으로도 구원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지금 마음에서 하나님만이 반짝반짝 빛나는 대상일 때에 구원을 받은 상태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도 바울은 결코 자신이 손해 볼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마음 하나 움직이고 생각 하나 움직이는 것도 이익이 되는 일을 향하기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유익이란 철저하게 복음적 이익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 연쇄 과정이 복음인 이유는 그 자체로 이익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말씀에서 복음의 성분을 따져보면 이 세상에서 빠져나감이 50%이고 빠져나간 마음이 천국으로 진입함이 50%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복음이 유익인 이유는 보석빛으로만 비유될 수 있는 유일한 반짝거림이신 하나님을 마음에서 가려짐이 없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들어가면 세상에서 빠져나가게 됩니다. 이는 곧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마음에서 반짝거릴 수 없도록 차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끌고 하늘로 올라가셔서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럴 때 마음은 하나님의 반짝거림만을 마주 대하게 해주십니다. 이 유익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받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구원이란 마음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반짝반짝 빛나는 상태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이 상태를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구원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십자가를 놓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있는 동안에만 죄적 체질로 인해 빗나감을 멈출 수 있고 이 세상 것들을 반짝거리는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14절에서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상의 제물과 구약시대에 성전에서 드리던 화목 제물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제물이라는 관점에서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합니다. 제물의 특징은 먹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도 먹는 것이고, 구약의 화목 제물도 먹는 것이듯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도 먹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우상숭배를 피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십계명의 제2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제1계명과 연관이 있습니다. 제1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상기시켜 드렸듯이 십계명은 사실 단 하나의 계명입니다. 나머지 아홉 계명을 어김은 제1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를 어김으로써 나타나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제2계명인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면 반드시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이것은 제3계명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와도 연관됩니다. 다른 신을 섬기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반드시 망령되게 일컫습니다. 제4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면 하나님과의 데이트인 안식일을 반드시 범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신을 섬기면 부모를 거역하게 되고, 살인하게 되고, 간음하게 되고, 도둑질하게 되고, 거짓말하게 되고, 이웃의 소유를 탐하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다른 신을 섬기지 않으면 나머지 아홉 계명도 다 지킬 수 있습니다.
다른 신이란 쉽게 말해 가지면 마음을 채울 수 있다고 믿어지는 좋은 것입니다. 신에 대한 태도는 반드시 열망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다른 신의 예로 재물을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신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재물을 가지면 마음이 만족할 수 있다고 믿어서 열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재물이 다른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재물뿐만이 아닙니다. 자식의 형통을 열망한다면 자식이 다른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직장인이 승진하면 마음이 만족하고 채워지리라 믿어서 열망한다면 승진이 다른 신이 된 것입니다.
이로부터 우상숭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열망하는 그것을 가지기 위하여 방법을 동원하고 추진하는 두 번째 단계입니다. 꼭 우상에게 절하지 않더라도 우상숭배는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돈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돈이 다른 신이 된 것입니다. 이제 그 돈을 가지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게 됩니다. 그 행동들이 다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하나님이 반짝반짝 빛나는 마음 상태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됩니다. 반대로 돈이 좋아서 돈을 벌려고 직장생활을 한다면 우상숭배의 과정일 뿐입니다. 자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의 형통이 신이 되어버리면 학원을 찾아가는 일이 우상숭배가 됩니다. 족집게 과외선생을 찾아다니는 일이 우상숭배가 됩니다. 이처럼 불상에 절하고 아세라나 바알 신상에 절하는 것이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다른 신을 선택하고 그 신을 가지고 싶어서 취하는 모든 행동과 과정이 우상숭배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신의 정의는 가지면 마음이 채워지리라고 믿어지는 대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에 대한 태도는 열망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을 오늘 제목과 연관해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마음의 있음을 느끼는 의식 작용과 좋음을 추구하는 욕구 작용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대상이 신입니다. 심지어 원수조차 신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원수만 보고 있다면 반짝반짝 빛나는 신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차원에서 원수를 신으로 좋아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시간에 사도 바울이 세상을 좋게 여긴 이유는 세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원수가 다른 신이 되는 이유는 원수가 없어짐으로써 만족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미워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그 대상이 없어지는 상황이 반짝거리기 때문입니다. 없어짐으로써 만족을 줄 수 있는 신으로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이 마음에서 반짝반짝 빛나게 되었다는 그것이 바로 다른 신입니다. 우상숭배는 그 신을 열망하는 가운데 실제로 가지기 위해서 취하는 모든 행동입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하나님만이 반짝반짝 빛나는 상태가 되면 하나님을 가지고 싶어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가지고 싶어서 취하는 행동은 바로 십자가를 붙잡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상의 제물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똑같이 먹는 것으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가 다른 신을 섬김에 뒤따르는 과정이라고 볼 때 이것은 완전히 귀신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지라도 마음에서 좋아하고 원하는 일이 돈을 버는 것이라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이 우상숭배입니다. 또한 다른 신을 섬기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십계명을 다 범하게 됩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돈과 연관되면 부모를 공경할 수 없습니다. 돈을 좋아하기에 돈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만을 열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열망하는 하나님을 갖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온전히 이루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다른 신을 섬길 때 나타나는 우상숭배를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유일한 신으로 믿어서 하나님을 가지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지려고 예수님의 죽음을 먹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믿기는 하나님이라는 유일한 신을 갖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이 취하는 행동을 받아들일 수는 없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직장에 나갈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식을 세상에서 우뚝 세우겠다는 마음으로 양육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다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14절에서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우상숭배로부터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반짝반짝 빛나셔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의식 작용과 욕구 작용이 일어나는 마음에서 하나님만이 반짝거리는 대상으로 보일 때에는 당연히 하나님을 가지고 싶어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지고 싶어 할 때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온전히 이루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다른 신이 마음에 개입될 수 없으며 우상숭배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마음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반짝거림이 되시고 하나님을 갖고자 십자가를 붙잡는 사람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남의 유익을 구하게 됩니다. 그 사람에게서도 하나님만이 반짝거리시기를 바라며 십자가 복음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사람을 만나고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대상은 누구이며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닌 상태에서는 어떤 행동을 취하더라도 다 우상숭배가 됩니다. 우상숭배는 불상에 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다른 신을 반짝반짝 빛나는 상태로 보며 그것을 갖기 위하여 취하는 모든 행동이 우상숭배입니다. 이 우상숭배를 불상이나 우상에 절하는 식으로만 생각하기에 문제가 됩니다. 기독교 종교인들이 실제로는 우상숭배와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우상숭배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생각합니다. 절간에 발을 들여놓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우상숭배는 가능합니다. 우상숭배는 다른 신을 정해놓고 그 신을 섬기는 방법론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서 하나님이 반짝반짝 빛나는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하나님 이외의 대상이 보이고 있다면 그 상태에서 행하는 모든 행동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는 말씀을 아무쪼록 폐부에 새기시고 우상숭배를 피해 십자가로 가서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의 자아의식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이 여러분 마음에서 반짝반짝 빛남이 되어주실 것이고, 감히 우리 같은 삶에도 완벽함이라는 단어를 적용할 수는 상태가 축복으로 은혜로 주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우리 주님의 십자가로 도망가듯 달려가서 주님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마음에서 하나님 아버지만이 반짝반짝 빛남이 되시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누구를 만나든 하나님의 영광이 옮겨가는 유익을 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