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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徐 无 鬼 (잡편 02, 전체 24)
徐无鬼ㅣ因女商하야 見魏武侯한대 武侯勞之曰 先生이 病矣로다 苦於山林之勞 故로 乃肯見於寡人이로다 徐无鬼曰 我則勞於君이언정 君有何勞於我시리잇고 君將盈耆欲이며 長好惡 則性命之情이 病矣오 君將黜耆欲하며 掔好惡(에) 則耳目이 病矣나니라 我將勞君이언정 君有何勞於我시리잇고 武侯超然不對러니 少焉코 徐无鬼曰 嘗語君吾의 相狗也호리라 下之質은 執飽而止하나니 是는 狸德也니라 中之質은 若視日하고 上之質은 若亡其一하니이다 吾의 相狗는 又不若吾相馬也하니라 吾相馬는 直者中繩하며 曲者中鉤하며 方者中矩하며 圓者中規하면 是國馬也니 而未若天下馬也하니라 天下馬는 有成材하야 若卹若失하며 若喪其一하니 若是者는 超軼絶塵하야 不知其所하나니라 武侯大悅而笑하니라
서무귀가 여상을 통해 위 무후를 만나 뵈었는데 무후가 위로하여 말하기를 “선생께서 병이 들었군요. 산림생활의 노곤함에 괴롭겠습니다. 고로 이에 과인을 기꺼이 만나보려 했군요.”라고 하니, 서무귀가 말하기를 “나야말로 임금님을 위로할지언정 임금께서 어떻게 나를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께서 장차 즐기고 하고싶은 것을 채우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기른다면 性命의 실정이 병들 것입니다. 임금께서 장차 즐기고 하고싶은 것을 물리치시며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억누르신다면 귀나 눈의 감각기관이 병들 것입니다. 내가 장차 임금님을 위로할지언정 임금님께서 어떻게 나를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위 무후가 초연히 대꾸하지 않더니, 조금 있다가 서무귀가 말하기를 “시험삼아 임금님께 내가 개를 相을 보고 감정하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중에서) 하급 자질은 배부른 것에 집착하여 그치니 이것은 살쾡이 정도의 덕이고 중급 자질은 해를 바라보는 것 같고 상급 자질은 그 하나(개 자기자신)를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나의 개 상을 보고 감정하는 방법은 또 내가 말의 相을 보고 감정하는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내가 말을 감정하는 방법은 곧게 갈 때는 먹줄에 맞고 굽이돌 때는 갈구리에 맞고 꺾어갈 때는 곱자에 맞고 둥글게 돌 때는 그림쇠에 맞습니다. 이것은 國馬(온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名馬)이지만 천하에서 뛰어난 명마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천하제일의 말은 저절로 이루어진 자질이 있어서 공허한 듯 잃어버린 듯 마치 그 하나(자기 자신)를 잃어버린 듯 하니 이와 같은 말은 빨리 추월하여 먼지조차도 따돌려 어디로 갔는지 그 장소도 알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위 무후가 크게 기뻐하며 웃었다.
徐无鬼出이어늘 女商曰 先生은 獨何以說吾君乎오 吾所以說吾君者는 橫說之 則以詩書禮樂이오 從說之 則以金板六弢니 奉事而大有功者ㅣ 不可爲數로되 而吾君未嘗啓齒러시니 今先生이 何以說吾君이완대 使吾君으로 說이 若此乎오 徐无鬼曰 吾直告之吾의 相狗馬耳니라
女商曰 若是乎아
曰 子는 不聞夫越之流人乎아 去國數日에 見其所知而喜하고 去國旬月에 見所嘗見於國中者하야 喜하고 及期年也하야는 見似人者而喜矣니라 不亦去人滋久하야는 思人滋深乎아 夫逃虛空者ㅣ 藜藋柱乎鼪鼬之逕이어든 踉位其空하야는 聞人足音이 跫然而喜矣온 又況乎昆弟親戚之謦欬其側者乎따녀 久矣夫라 莫以眞人之言으로 謦欬吾君之側乎아
서무귀가 나오거늘 여상이 말하기를 “선생은 유독 무엇으로써 우리 임금께 말씀드렸습니까? 제가 우리 임금께 말씀드린 것은 횡적으로 설명드린 것은 시 서 예 악이고 종적으로 설명드린 것은 금판과 육도 같은 병법이니 일을 받들어 크게 공이 있었던 것이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되 우리 임금님은 일찍이 이를 드러내고 웃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이 무엇으로써 우리 임금님께 말씀드렸기에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기뻐함이 이같이 하십니까?”라고 말하니, 서무귀가 말하기를 “나는 다만 나의 개나 말을 감정하는 방법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여상이 말하기를 “이 같을 뿐입니까?”라고 하니,
(서무귀가) 말하기를 “그대는 월나라에 유배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본국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나 자기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기뻐하고, 본국을 떠난 지 열흘이나 한 달 만에 일찍이 본국 내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을 만나도 기뻐하고, 1년이 지남에 미쳐서는 본국 사람과 비슷한 사람만 보아도 기뻐합니다. 그 사람을 떠난 지 점점 오래될수록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점점 더 깊어진다는 것이 또한 아니겠소? 무릇 텅 빈 골짜기에 도망쳐서 사는 사람은 족재비나 다니는 좁은 길에 명아주 풀이 우거진 가운데 그 공허한 곳에 혼자서 지내다가 (어쩌다가) 사람 발자국 소리가 저벅저벅하는 것을 들어도 기뻐하게 되는데 또한 하물며 형제 친척들이 그의 곁에서 기침 소리를 내며 (이야기 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이 기쁜 것이다.) 오래되었도다. (개나 말의 감정하는 법과 같은 養生의 진리를 말하는) 眞人의 말로 우리 임금님 곁에서 기침 소리를 내며 이야기하지 않음이여.”라고 했다.
徐无鬼見武侯한대 武侯曰 先生이 居山林하야 食茅栗하며 厭蔥韭하야 以賓寡人이 久矣夫러니 今에 老邪아 其欲干酒肉之味邪아 其寡人이 亦有社稷之福邪아
徐无鬼曰 无鬼는 生於貧賤이라 未嘗敢飮食君之酒肉이어니와 將來勞君也니이라
君曰 何哉오 奚勞寡人고
曰 勞君之神與形하노이다
武侯曰 何謂邪오
徐无鬼曰 天地之養也ㅣ一이라 登高不可以爲長이며 居下不可以爲短이어늘 君獨爲萬乘之主하야 以苦一國之民하야 以養耳目鼻口하시니 夫神者는 不自許也리이다 夫神者는 好和而惡姦하나니 夫姦이면 病也니 故로 勞之니 唯君의 所病之ㅣ 何也잇고
武侯曰 欲見先生이 久矣리니 吾欲愛民而爲義偃兵하노니 其可乎아
徐无鬼曰 不可하니라 愛民이 害民之始也요 爲義偃兵이 造兵之本也니라 君이 自此로 爲之 則殆不成하리라 凡成美는 惡이 器也니 君雖爲仁義하나 幾且僞哉인저 形固造形하며 成固有伐하며 變固外戰이니 君亦必无盛鶴列於麗譙之間하며 无徒驥於錙壇之宮하며 无藏逆於得하며 无以巧勝人하며 无以謀勝人하며 无以戰勝人이어다 夫殺人之士民하고 兼人之土地하야 以養吾私與吾神者함은 其戰이 不知孰善고 勝之惡乎在오 君若勿已矣신댄 脩胸中之誠하야 以應天地之情而勿攖이면 夫民이 死已脫矣리니 君은 將惡乎에 用夫偃兵哉리오
서무귀가 무후를 뵈었더니 무후가 말하기를 “선생은 산림에 거처하면서 도토리와 밤을 먹고 파와 부추를 실컷 먹고 과인을 물리친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노인이 되어서인가? 혹은 술과 고기의 맛을 구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과인에게 또한 사직을 잘 다스릴 복이 있어서인가?”라고 물었다.
서무귀가 말하기를 “저 무귀는 가난하고 미천한 데서 태어나 일찍이 감히 임금님이 잡수시는 술과 고기는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장차 임금님을 위로해 드리고저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무슨 말이요? 어떻게 나를 위로한단 말이오?”라고 물으니,
(서무귀가) 말하기를 “임금님의 정신과 형체를 위로해 드리고자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무후가 말하기를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라고 물었다.
서무귀가 말하기를 “천지가 기르는 것은 한결같다. 높은 곳에 올랐다고 해서 우월하다 여기면 안 되고 낮은 곳에 거처한다고 해서 열등하다 여겨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임금님만 혼자 만승 대국의 주인이 되어 온 나라의 백성들을 괴롭혀서 당신의 귀 눈 코 입을 기르고 있으니 이것은 당신의 온전한 정신은 저절로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릇 정신이란 것은 조화로움은 좋아하고 간악함은 미워하나니 무릇 간악함은 病이니 그러므로 위로해 드립니다. 그러니 오직 임금님의 병드신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무후가 말하기를 “선생을 만나 뵙고자 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나는 백성을 사랑하고 의로움을 위해 병사들을 철수시키고자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라고 되물으니,
서무귀가 말하기를 “옳지 않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백성을 해치는 시발점이고 정의를 위해 전쟁을 그만두고자 하는 것은 전쟁을 일으키는 근본입니다. 임금님께서 이런 생각에서 하신다면 거의 이루지 못하실 것입니다. 무릇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은 惡을 담는 그릇이니 임금님께서 비록 仁과 義를 하신다고 하나 거의 또한 거짓일 것입니다. 마음의 형상은 반드시 형적이 만들어지고 일단 이루어지면 반드시 자랑이 있게 되고 사정상 변동이 있게 되면 반드시 외부적으로 싸움이 일어나니 임금님께서는 또한 반드시 鶴列의 陣을 높은 누대(麗譙) 사이에 정렬하지 마시고, 보병(徒)과 기병(驥)의 훈련을 제사를 지내는 錙壇의 궁전에서 하지 마시고, 이득을 위해 도에 어긋나는 마음을 간직하지 마시고, 기교로 남을 이기려 하지 마시고, 모략으로써 남을 이기려 하지 마시고, 전쟁으로써 남을 이기려 하지 마십시오. 무릇 남의 나라의 병사와 백성들을 죽이고 남의 나라의 토지를 병합하여 나 자신의 사욕과 나의 정신을 채운다고 하는 자들은 그 전쟁이 어느 나라가 올바르고 승리하는 것은 어느 나라가 될지 알지 못합니다. 임금님께서 만일 그만두시지 않는다면 가슴속의 성실함을 닦고 천지의 실정에 순응하여 어지럽히지 말 것입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死地에서 벗어났을 것이니 임금께서는 장차 무엇하러 전쟁을 그만둔다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黃帝將見大隗乎具茨之山하실새 方明이 爲御하고 昌寓驂乘하고 張若謵朋이 前馬하고 昆閽滑稽ㅣ後車러니 至於襄城之野하야 七聖皆迷하야 无所問塗라가 適遇牧馬童子하야 問塗焉하야 曰 若이 知具茨之山乎아 曰 然하이다 若이 知大隗之所存乎아 曰 然하이다
黃帝曰 異哉라 小童이여 非徒知具茨之山이라 又知大隗之所存이로소니 請問爲天下하노라
小童曰 夫爲天下者도 亦若此而已矣니 又奚事焉이리오 予少而自遊於六合之內호니 予適有瞀病이어늘 有長者敎予曰 若이 乘日之車하야 而遊於襄城之野하라하더니 今에 予病이 少痊할새 予又且復遊於六合之外호리라 夫爲天下는 亦若此而已니 予는 又奚事焉이리오
黃帝曰 夫爲天下者 則誠非吾子之事이어니와 雖然이나 請問爲天下하노라 小童이 辭어늘 黃帝又問한대 小童曰 夫爲天下者는 亦奚以異乎牧馬者哉리오 亦去其害馬者而已矣니라 黃帝再拜稽首하고 稱天師而退하시다
황제가 장차 구자산에서 대외를 만나보러 가실새 방명이 御가 되고 창우는 副乘이 되고 장약과 습붕은 前馬가 되고 곤혼과 골계는 後車가 되었다. 그래서 양성의 들판에 이르러 일곱 명의 성인들이 모두 길을 잃어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때 때맞게 말을 기르는 동자를 만나 길을 물어 말하기를 “너는 구자산이 (어디에 있는 줄을) 아느냐?”라고 하니 (동자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황제가 말하기를) “너는 대외가 있는 곳도 아느냐?”고 물어보니 (동자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했다.
황제가 말하기를 “기이하구나. 어린아이여! 다만 구자산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대외가 있는 곳까지 알고 있으니 청컨대 천하를 다스림에 대해서 묻고 싶구나.”라고 하였다.
어린아이가 말하기를 “무릇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역시 이와 같이 할 뿐이니 또 무엇을 일삼으리오? 저는 어려서부터 스스로 六合의 안에서 노닐었는데 제가 마침 눈이 흐려지는 병이 있거늘 어떤 연장자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너는 해 수레를 타고 양성의 들에서 놀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제 병이 조금 나으니까 저는 또 다시 六合의 밖에서 노닐고자 합니다. 무릇 천하를 다스림도 또한 이와 같이 할 따름이니 제가 또 무엇을 일삼겠습니까?”라고 했다.
황제가 말하기를 “무릇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진실로 우리 童子의 일은 아니다. 비록 그러하나 청컨대 천하를 다스림에 대해서 묻겠노라.”고 하니, 어린아이가 사양하거늘 황제가 또 물었는데 어린아이가 말하기를 “대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역시 어찌 말을 기르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또한 말을 해치는 것을 제거할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황제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고서 天師님이라고 일컬으며 물러갔다.
知士는 无思慮之變則不樂하고 辯士는 无談說之序則不樂하고 察士는 无凌誶之事則不樂하나니 皆囿於物者也일새니라 招世之士는 興朝하고 中民之士는 榮官하고 筋力之士는 矜難하고 勇敢之士는 奮患하고 兵革之士는 樂戰하고 枯槁之士는 宿名하고 法律之士는 廣治하고 禮敎之士는 敬容하고 仁義之士는 貴際하나니라 農夫无草萊之事則不比하고 商賈无市井之事則不比하고 庶人이 有旦暮之業則勸하고 百工이 有器械之巧則壯하나니라 錢財不積則貪者憂하고 權勢不尤則夸者悲하고 勢物之徒는 樂變하고(하나니라) 遭時有所用이면 不能无爲也니라 此皆順比於歲라 不物於易[而易於物]者也니라 馳其形性하야 潛之萬物하야 終身不反하나니 悲夫라
智謀가 있는 선비는 생각의 변화가 없으면 즐겁지 않고, 말 잘하는 선비는 열변을 할 실마리가 없으면 즐겁지 않고, 잘 살피는 선비는 능멸하고 욕하는 일이 없으면 즐겁지 않으니 모두 바깥에 구속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뛰어난 선비는 조정에서 일어나고, 백성들에게 알맞은 선비는 관료로 영달하고, 힘센 선비는 어려운 일을 자랑하고, 용감한 선비는 환란에 떨쳐 일어나고, 갑옷으로 무장한 선비는 전쟁을 즐기고, 야위고 까칠한 선비는 명예를 취하고, 법률에 밝은 선비는 정치를 넓게 펴 나가고, 예를 가르치는 선비는 용모를 경건히 하고, 仁義를 존중하는 선비는 사귐을 귀하게 여긴다. 농부는 잡초를 뽑는 밭일이 없으면 즐겁지 않고, 상인은 시장에서 장사하는 일이 없으면 즐겁지 않고, 서민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할 일이 있어야만 힘써 나아가고, 갖가지 기술자들은 기계를 만드는 기교가 있어야만 씩씩해진다. 돈과 재물이 쌓이지 않으면 탐욕스런 사람은 근심하고, 권세가 남보다 낫지 않으면 잘난 체하는 사람은 슬퍼하고, 권세와 재물에 사로잡힌 무리들은 어떤 일의 변이를 즐기는 것이니, 때를 만나 쓰이는 바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아무 것도 안 하고 조용히 지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세월의 推移에 따라서 外物로 인해 자기가 변화 당한 자기 상실자들이다. 자기의 육체와 본성을 몰아서 외계의 사물에 매몰시켜 죽을 때까지 본래의 자기로 돌아오지 않으니 슬프다.
莊子曰 射者非前期而中을 謂之善射인댄 天下皆羿也니 可乎아 惠子曰 可하다 莊子曰 天下非有公是也 而各是其所是인댄 天下皆堯也니 可乎아 惠子曰 可하다 莊子曰 然則儒墨楊秉의 四 與夫子로 爲五니 果孰是邪오 或者若魯遽者邪인저 其弟子曰 我得夫子之道矣라 吾能冬爨鼎而夏造冰矣로다 魯遽曰 是는 直以陽召陽하며 以陰召陰이라 非吾所謂道也니라 吾示子乎吾道호리라하고 於是에 爲之調瑟호되 廢一於堂하며 廢一於室하고 鼓宮宮動 鼓角角動하니 音律同矣夫니라 或改調一弦호되 於五音无當也하니 鼓之에 二十五弦이 皆動이니 未始異於聲 而音之君已니라 且若是者邪인저
惠子曰 今夫儒墨楊秉이 且方與我以辯하야 相拂以辭하며 相鎭以聲호되 而未始吾非也하나니 則奚若矣오 莊子曰 齊人이 蹢子於宋者 其命閽也에는 不以完이오 其求銒鍾也에는 以束縛하며 其求唐子也에는 而未始出域하나니 有遺類矣夫로다 楚人이 寄而蹢閽者 夜半에 於无人之時에 而與舟人으로 鬪하니 未始離於岑하야서 而足以造於怨也로다
장자가 말하기를 “활을 쏘는 자가 미리 기약하지 않았는데 명중한 것을 활 잘 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천하에 모두가 활쏘기 명수인 羿가 되는 것인데 이것이 가능한가?”라고 하니, 혜자가 말하기를 “가능하다.”라고 했다. 그러자 장자가 말하기를 “천하에 공적인 옳음이 있는 것은 아니고 각자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옳다고 하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요임금과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이니 가능한 이야기인가?”라고 물으니, 혜자가 말하기를 “가능하다.”라고 했다. 그러자 장자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유가 묵가 양주 공손룡의 네 학파와 선생과 더불어 다섯 학파가 되는 것인데 이 가운데에 과연 누가 옳은 것일까? 아마도 노거의 이야기와 같은 것이구나. (노거의) 제자가 말하기를 ‘저는 선생님의 도를 터득했습니다. 우리는 겨울에는 솥에 불을 때서 음식을 만들 수 있고 여름에는 얼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하니 노거가 말하기를 ‘이것은 다만 (겨울이 되면) 陽氣로 陽氣를 부르고 (여름이 되면) 陰氣로 陰氣를 부르는 것이라 내가 말하는 도는 아니다. 내가 자네에게 나의 도를 보여주겠다.’라고 하고선, 이에 그에게 거문고를 조율하게 해서 하나는 대청마루에 놓고 하나는 방안에 놓았는데 한쪽 것에서 궁소리를 팅기면 다른 방의 것에서 궁의 줄이 저절로 움직이며 한쪽 것에서 각소리를 팅기면 다른 방에 것에서 각의 줄이 저절로 움직이니 (이것은 양쪽의) 음률이 같기 때문이다. 혹 (노거가) 한쪽의 弦을 고쳐서 조율했는데 궁상각치우의 다섯 音에 해당하지 않으니 거문고를 두드리자 25개의 弦이 모두 움직이니 (이것은) 처음에는 다른 소리와 다를 것이 없지만 그래도 모든 音들의 임금(으뜸)일 뿐이다. (지금 그대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경우일 것이다.”라고 했다.
혜자가 말하기를 “지금 무릇 유가 묵가 양주 공손룡의 네 학파가 또한 바야흐로 지금 한창 나와 변론하고 있는데, 서로 말로써 배척하고 큰 소리로써 억누르지만 애초에는 나를 잘못되었다고 하지 못했으니 그래 어떠한가?”라고 하니, 장자가 말하기를 “제나라 사람이 자식을 송나라에 팔아넘긴 자가 있었는데 문지기라도 시키려고 했는데 몸이 온전하면 안되니까 (자식을 불구자로 만들었다. 이런 사람은) 목이 긴 종을 구하면 (혹시라도 그것이 훼손될까봐 소중하게) 싸서 묶으면서, 팔려가서 잃어버린 자식이 송나라에서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그 아들을 구하려고 애초부터 국경 밖으로 나가려고도 하지 않았으니 本末이 전도된 자라 할 것이다. 초나라 사람으로 절름발이로 몸이 팔려서 문지기가 된 자가 있었는데 한밤중에 아무도 없을 때에 (도망치려고 나루터까지 왔다가) 뱃사공과 싸웠다고 하니 아직 강기슭을 떠나기도 전에 뱃사공과 원수를 맺기에만 충분하다.”라고 하였다.
莊子送葬할새 過惠子之墓하다가 顧謂從者曰 郢人이 堊으로 漫其鼻端을 若蠅翼이어늘 使匠石으로 斲之한대 匠石이 運斤成風하야 聽而斲之호되 盡堊而鼻不傷하며 郢人은 立不失容하야늘 宋元君이 聞之하고 召匠石曰 嘗試爲寡人하야 爲之하라 匠石曰 臣則嘗能斲之호니 雖然이나 臣之質이 死久矣라하니 自夫子之死也로 吾无以爲質矣로니 吾无與言之矣로다
장자가 장례식에 가는 길에 혜자(혜시)의 무덤을 지나가다가 추종자(제자)들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영 땅 사람 중에 백토로 자기 코끝에다가 파리 날개처럼 얇게 바르고 匠石으로 하여금 그것을 깎아내게 한데 匠石이 바람이 일어나 소리가 들릴 정도로 도끼를 휘둘러 깎되 백토는 다 깎여졌지만 코는 상하지 않았으며 영 땅 사람도 똑바로 서서 용모를 잃지 않았다. 그러자 송나라 元君이 그 이야기를 듣고 匠石을 불러 말하기를 ‘일찍이 시험삼아 과인을 위해서도 한번 해보라.’고 하니 匠石이 말하기를 ‘신은 일찍이 잘 깎았는데 비록 그러하나 신의 기술의 근본되는 상대가 죽은 지 오래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으니 夫子(혜시)가 죽은 뒤로부터 나도 상대가 없어져서 나도 더불어 이야기 할 사람이 없어졌다.”라고 했다.
管仲이 有病이어늘 桓公이 問之하야 曰 仲父之病이 病矣로소니 可不諱云 至於大病하야는 則寡人은 惡乎에 屬國而可오 管仲曰 公은 誰欲與잇고 公曰 鮑叔牙니라 曰 不可하이다 其爲人이 絜廉善士也라 其於不己若者에 不比之하며 又一聞人之過코 終身不忘하나니 使之治國이면 上且鉤乎君하며 下且逆乎民이라 其得罪於君也 將弗久矣리이다 公曰 然則孰可오 對曰 勿已인댄 則隰朋이 可하니이다 其爲人也ㅣ 上忘而下不畔하야 愧不若黃帝하며 而哀不己若者하나니 以德으로 分人을 謂之聖이오 以財로 分人을 謂之賢이라하나니 以賢으로 臨人이면 未有得人者也오 以賢으로 下人이면 未有不得人者也하니 其於國에 有不聞也하며 其於家에 有不見也하나니 勿已인댄 則隰朋 可하나이다
관중이 병이 있거늘 환공이 문병하며 말하기를 “중부님의 병이 위독합니다. 그러니 말하기를 꺼리지 않겠습니다. 큰 病 걸림에 이르게 되면 과인은 누구에게 나라의 정치를 맡기는 것이 옳겠습니까?”하고 물으니, 관중이 말하기를 “환공께서는 누구에게 맡기려고 하십니까?”라고 되물었다. 환공이 말하기를 “포숙아입니다.”라고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불가합니다. 그 사람됨이 깨끗하고 청렴하고 착한 선비입니다. 자기만 같지 못한 사람과는 가까이하지 아니하며 또 남의 잘못을 한번 들으면 죽을 때까지 잊지 아니하며 그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하면 위로는 장차 임금을 구속할 것이며 아래로는 또한 백성들을 거스를 것인지라 군주로부터 죄를 얻을 것이 장차 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누가 가능할까요?”하고 물으니, (관중이) 대답하기를 “그만두지 말고 (꼭 누구를 추천하라 하시면) 습붕이 가능합니다. 그 사람됨이 위로 (군주를) 잊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배신하지 않으며 황제만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자기만 같지 못한 자들을 애처로워하나니 (자신의) 덕으로써 남에게 나눠주는 것을 聖人이라 말하고 재물로써 남에게 나눠주는 것을 賢人이라 말하며 현인으로 남의 위에 군림하면 사람들 신망을 얻은 사람이 있지 아니하고 현인으로 남보다 아래에 있게 되면 남들의 신망을 얻지 못한 사람은 있지 않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도 듣지 않은 것이 있어야 하며 집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도 보지 않는 것이 있어야 하나니 그만두지 말고 (추천하시라 하면) 습붕이 가능합니다.”라고 했다.
吳王이 浮於江하야 登乎狙之山한대 衆狙見之하고 恂然棄而走하야 逃於深蓁이어늘 有一狙焉이 委蛇攫抓하야 見巧乎王이러니 王射之(호되) 敏給搏捷矢하더니 王命相者하야 趨射之한대 狙執死어늘 王顧謂其友顔不疑曰 之狙也ㅣ 伐其巧하고 恃其便하야 以敖予라가 以至此殛也하니 戒之哉어다 嗟乎라 无以汝色驕人哉어다 顔不疑歸而師董梧하야 以鋤其色하고 去樂辭顯하니 三年에 而國人이 稱之하니라
오왕이 강에 배를 띄워 놀다가 원숭이 산에 올랐다. 뭇 원숭이들이 두려워서 거처를 버리고 달아나서 깊게 우거진 숲속으로 도망갔는데 한 마리 원숭이가 이리저리 뛰면서 나뭇가지를 움켜잡거나 긁거나 하면서 오왕에게 기교를 보였다. 그래서 오왕이 활을 쏘니 (그 원숭이가) 민첩하게 빠른 화살을 줍거나 잡았다. 이에 왕은 도와주는 주위의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추격하여 활을 쏘게한데 원숭이가 잡혀 죽었다. 오왕이 돌아보고 친구 안불의에게 이르기를 “이 원숭이는 자기의 기교를 자랑하고 빠른 것(날렵함)을 믿고서 나에게 오만하게 굴다가 이런 죽음에 이른 것이니 경계할지어다. 아아! 그대의 안색으로 남에게 교만하지 말지어다.”라고 하니, 안불의가 집에 돌아와서 동오를 스승으로 삼아서 (교만한) 안색을 없애고 안락함을 없애고 높은 지위를 사양하니 3년만에 나라 사람들이 그를 칭송했다.
南伯子綦 隱几而坐하야 仰天而噓어늘 顔成子入見曰 夫子는 物之尤也샤사이다 形固可使若槁骸며 心固可使若死灰乎아 曰 吾嘗居山穴之中矣라니 當是時也하야 田禾一覩我어늘 而齊國之衆이 三賀之하니 我必先之라 彼故知之하며 我必賣之라 彼故鬻之니 若我而不有之면 彼惡得而知之며 若我而不賣之면 彼惡得而鬻之리오 嗟乎라 我悲人之自喪者하며 吾又悲夫悲人者하며 吾又悲夫悲人之悲者하노니 其後로 而日遠矣니라
남백자기가 안석에 기대어 앉아서 하늘을 우러러 큰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안성자가 들어와서 뵙고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만물 중에서 뛰어난 사람입니다. 형체는 진실로 마른 해골과 같게 할 수 있으며 마음은 진실로 불 꺼진 재와 같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하니,
(남성자기가) 말하기를 “나는 일찍이 산속 동굴 안에서 거처했는데 이때에 전화(제나라 왕)가 한번 나를 보러왔거늘 제나라 대중들이 (그 소식을 듣고) 세 번이나 경하했는데 (이것은) 내가 반드시 (세상에 내가 잘났다고 자랑을) 먼저 했기에 저 사람(田禾)이 그 때문에 알게 되었으며 내가 (내 덕을) 팔았기에 저가 그 때문에 산 것이니 만약 내가 이름이 없었더라면 저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었을 것이며 만약 내가 (덕을) 팔지 않았다면 저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사서 다시 팔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인가. 아아! 나는 사람들의 자기 상실을 슬퍼하였는데 이제 다시 나는 사람들의 자기 상실을 슬퍼하는 자(나)를 슬퍼하였으며, 그리고는 나는 또 다시 사람들의 자기상실을 슬퍼하는 자를 슬퍼하는 자(또 다른 나)를 슬퍼하였다. 그랬더니 그 뒤로 날마다 (자기상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라고 했다.
仲尼之楚어늘 楚王이 觴之할새 孫叔敖는 執爵而立이어늘 市南宜僚受酒而祭하니라/하야 曰 古之人乎 於此에 言已러니이다 曰 丘也는 聞不言之言矣오 未之嘗言이라니 於此乎에 言之호리라 市南宜僚는 弄丸 而兩家之難이 解하고 孫叔敖는 甘寢秉羽而郢人이 投兵하니 丘는 願有喙三尺하노라
彼之謂不道之道오 此之謂不言之辯하나니 故德은 總乎道之所一이오 而言은 休乎知之所不知ㅣ 至矣니 道之所一者는 德이 不能同也오 知之所不能知者는 辯이 不能擧也라 名若儒墨而凶矣니라 故로 海不辭東流는 大之至也니 聖人은 幷包天地하며 澤及天下 而不知其誰氏라 是故로 生无爵하며 死无諡하며 實不聚하며 名不立하나니 此之謂大人이니라 狗를 不以善吠로 爲良하고 人을 不以善言으로 爲賢이온 而況爲大乎따녀 夫爲大는 不足以爲大온 而況爲德乎따녀 夫大備矣는 莫若天地나 然이나 奚求焉而大備矣리오 知大備者는 无求라 无失无棄하야 不以物로 易己也하며 反己而不窮하며 循古而不摩하나니 大人之誠이니라
중니가 초나라에 갔는데 초나라 왕이 잔치를 베풀었다. 손숙오는 술잔을 잡고 서있거늘 시남의료가 술을 받아서 (땅에 부어 신에게) 제사 지냈다. (이렇게 잔치가 시작되었는데) (초나라 왕이) 말하기를 “옛날 사람이여! 이런 경우에 좋은 말씀을 했을 것인저.”라고 하니, (중니가) 말하기를 “저는 말하지 않음이 최고의 말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여기서는 말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시남의료는 (일찍이 白公勝이 모반을 일으켜 令尹 子西를 죽일 것을 강요하였을 때) 구슬을 가지고 놀면서 (그들을 깨우쳐) 白公과 子西 두 집안의 災難을 해결하였고, 손숙오는 마음 편히 잠을 자거나 羽扇을 잡고 (여유작작하는 無爲를 실천하여) (초나라 수도) 영 땅의 사람들이 병기를 내던져 버리고 (평화를 즐기게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훌륭한 분들 앞이기는 하나) 저도 길이나 세 척이나 되는 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저것(시남의료의 행동)은 道가 아닌 것 같지만 진정한 道라고 말할 수 있고, 이것(손숙오의 행동)은 말하지 않는 것이지만 진정한 言辯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그러므로 덕은 도가 하나로 가지런히 하는 것에 통합되고 말은 지혜가 더 이상 알 수 없는 곳에 멈추는 것이 지극한 최상의 경지이니, 도가 하나로 가지런히 하는 것은 덕이 함께 할 수 없고 지혜가 능히 알 수 없는 것은 말 잘하는 것이 능히 다 들 수 없다. (말재주로) 명성이 나는 것이 儒家나 墨家처럼 되면 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다는 동쪽으로 흐르는 하천을 사양하지 않고 다 받아들임은 큼(大)의 극치이고, 聖人은 天地를 아울러 감싸 안고 혜택이 온 천하에 미치더라도 천하 백성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성인은) 살아서는 尊爵이 없고 죽어서도 시호도 없으며 實利도 모이지 않고 명성도 확립되지 않나니 이런 사람을 일러 大人이라 합니다. 개는 잘 짖는 것으로 좋은 개라고 여길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말 잘하는 것으로 현명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大人이야 되겠습니까? 무릇 대인이 되려고 인위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족히 대인이 될 수 없는데 하물며 有德者가 되려고 노력하는 경우이겠습니까? 무릇 크게 갖춘 것은 天地에 미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큼을 인위적으로 구해서 크게 갖추었겠습니까. 크게 갖추어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절대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림도 없고 내다 버림도 없어서, 외물로써 자기 자신과 바꾸지 아니하며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감에 다함이 없으며, 옛날 소박한 道를 좇아서 훼손하지 않으니, 이것이 大人의 성실함(진실됨)입니다.”라고 했다.
子綦 有八子러니 陳諸前하고 召九方歅曰 爲我하야 相吾子하라 孰爲祥고 九方歅曰 梱也爲祥이로다 子綦瞿然喜하야 曰 奚若고 曰 梱也將與國君으로 同食하야 以終其身하리로다 子綦索然出涕하야 曰 吾子는 何爲로 以至於是極也오 九方歅曰 夫與國君으로 同食하면 澤及三族이온 而況父母乎따녀 今에 夫子聞之而泣하니 是禦福也로다 子則祥矣어늘 父則不祥이로다
子綦曰 歅아 汝는 何足以識之리오 而梱祥邪인들 盡於酒肉이 入於鼻口矣로소니 而何足以知其所自來리오 吾未嘗爲牧 而牂生於奧하며 未嘗好田 而鶉生於宎어늘 若이 勿怪는 何邪오 吾所與吾子로 遊者는 遊於天地라 吾與之邀樂於天하며 吾與之邀食於地요 吾不與之爲事하며 不與之爲謀하며 不與之爲怪하야 吾與之乘天地之誠 而不以物로 與之相攖하며 吾與之一委蛇 而不與之爲事所宜호되 今也에 然有世俗之償焉이로다 凡有怪徵者는 必有怪行하나니 殆乎非我與吾子之罪라 幾天이 與之也로다 吾是以泣也하노라
无幾何오 而使梱으로 之於燕이어늘 盜得之於道하야 全而鬻之則難일새 不若刖之則易라하야 於是乎에 刖而鬻之於齊호되 適當渠公之街하니 然이나 身食肉而終하니라
남백자기에게는 여덟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모두를 앞에 나열해놓고 (관상술의 대가인) 구방인을 불러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내 자식들의 관상을 보아주세요. 어느 누가 상스럽습니까?”하고 물으니, 구방인이 말하기를 “곤이라는 자식이 가장 상스럽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남백자기가 놀라면서도 기뻐하여 말하기를 “(길상이라 하니) 어떻게 그러한지요?”하고 물으니, (구방인이) 말하기를 “곤은 장차 나라의 임금님과 똑같은 좋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일생을 마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기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하기를 “내 자식이 무엇 때문에 이런 지독한 불행에 이른다는 말이요?”하고 물으니, 구방인이 말하기를 “무릇 임금님과 똑같은 음식을 먹을 정도이면 (지위가 상당히 높아서) 은택이 三族에까지 미칠 것인데 하물며 부모님이야 (얼마나 호강하겠나?) 그런데도 지금 선생께서는 (이런 말을) 듣고도 우시니 이것은 (굴러 들어오는) 福을 막는 것입니다. 자식은 상스러운데 아버지는 상서럽지 않군요.”라고 했다.
남백자기가 말하기를 “인아 네가 어찌 충분히 알겠는가. 그리고 곤이 상스럽다고 한들 술과 고기가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데 다할 뿐이니 그것이 어디에서 부터 왔는지 어찌 알겠는가. 내가 일찍이 목동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암양이 우리집 서남쪽 모퉁이에서 태어나고, 일찍이 사냥을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메추리가 우리집 동남쪽 모퉁이에서 생겨났거늘 너가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니 어째서인가. 나는 내 자식들과 더불어 노는 노니는 곳은 天地에서 노닌다. 내가 자식들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하늘에서 맞이했고, 내가 자식들과 더불어 먹음은 땅에서 구했으며 나는 자식들과 더불어 같이 일하지도 않고, 더불어 일을 꾸미지도 않고, 더불어 괴이한 짓도 하지 않아서, 내가 자식들과 더불어서 天地의 진실함을 타고 外物로써 서로 구속하지 않고 내가 그들과 함께 느긋하게 자연을 따르며, 그들과 함께 일의 마땅한 바를 (골라서만) 하지 않았으되, 지금 그러나 세상의 보상이 있게 되었다. 무릇 괴상한 징후가 있다는 것은 반드시 괴이한 행동이 먼저 있기 때문이니 거의 아마도 나와 내 자식들의 죄는 아닐 것이고 거의 하늘이 준 것일 거다. 내가 이 때문에 눈물 흘리며 울었다.”라고 했다.
그뒤에 얼마 안있어 자기가 곤으로 하여금 연나라로 가게 하였는데 도둑이 길에서 곤을 붙잡았다. 그래서 몸이 온전하게 팔면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발뒷꿈치를 잘라 팔면 (도망칠 염려가 없어) 쉽게 팔리므로 이에 발뒷꿈치를 베어서 제나라에 팔아넘겼는데 때마침 제나라의 거공이란 부자에게 팔려가서 거리 문지기(街正)가 되었다. 그러나 곤 자신은 평생 고기를 먹으면서 일생을 마쳤다.
齧缺이 遇許由曰 子將奚之오 曰 將逃堯하노라 曰 奚謂邪오 曰 夫堯畜畜然仁하니 吾恐其爲天下笑하노라 後世에 其人與人이 相食與인저 夫民은 不難聚也라 愛之則親하고 利之則至하고 譽之則勸하고 致其所惡則散하나니라 愛利는 出乎仁義하나니 損仁義者寡하고 利仁義者衆하니라 夫仁義之行은 唯且无誠이며 且假乎禽貪者器니 是以一人之斷制利天下함은 譬之猶一覕也니라 夫堯知賢人之利天下也하고 而不知其賊天下也하니 夫唯外乎賢者아 知之矣리라
설결이 허유를 만나 말하기를 “자네는 장차 어디로 가는가?”라고 물으니, (허유가) 말하기를 “장차 요임금에게서 달아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설결이) 말하기를 “그게 무슨 말이냐?”라고 하니, (허유가) 말하기를 “무릇 요임금은 악착같이 仁을 행하려고 하니 나는 그 요임금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습니다. 뒷 세상에는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서로 잡아먹게 될 것입니다. 무릇 백성들은 모으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친해지고, 이익되게 하면 곧 달려오고, 칭찬하면 곧 서로 권장하고, 그들이 싫어하는 것에 이르러면 흩어집니다. 사랑과 이익은 仁과 義에서 나오니 仁義를 손해라고 여기는 사람은 적고, 仁義를 이익된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습니다. 무릇 仁義의 행동은 오직 또한 참됨은 없고 또한 거짓됨만 있어 짐승처럼 탐욕스러운 자의 도구일 것이니 이로써 (집권자) 한 사람의 재단으로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사물의 일면을 얼핏 보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무릇 요임금은 현인이 천하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만 알지만 천하 사람들을 해치는 것은 알지 못하니 오직 賢者를 벗어난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라고 했다.
有暖姝者하며 有濡需者하며 有卷婁者하니 所謂暖姝者는 學一先生之言 則暖暖姝姝而私自說也하야 自以爲足矣오 而未知未始有物也하나니 是以로 謂暖姝者也라하나니라
濡需者는 豕蝨이 是也니라 擇疏鬣하야 自以爲廣宮大囿하며 奎蹏曲隈와 乳間股脚을 自以爲安室利處라하야 不知屠者之一旦鼓臂하고 布草操煙火 而己與豕俱焦也하나니 此는 以域으로 進하며 此는 以域으로 退니 此其所謂濡需者也니라
卷婁者는 舜也니 羊肉이 不慕蟻라 蟻慕羊肉하나니 羊肉이 羶也일새니라 舜이 有羶行일새 百姓이 悅之하니 故로 三徙成都하야 至鄧之墟 而十有萬家러니 堯聞舜之賢하고 擧之童土之地하야 曰 冀得其來之澤하노라 舜이 擧乎童土之地할새 年齒長矣며 聰明衰矣로되 而不得休歸하니 所謂卷婁者也니라
是以로 神人은 惡衆至하나니 衆至則不比하고 不比則不利也니라 故로 无所甚親하며 无所甚疏오 拘德煬和하야 以順天下하나니 此謂眞人이니라 於蟻에 棄知하고 於魚에 得計하고 於羊에 棄意하야 以目으로 視目하며 以耳로 聽耳하며 以心으로 復心하니 若然者는 其平也繩이오 其變也循이니라 古之眞人은 以天으로 待之라 不以人으로 入天하며 古之眞人은 得之也生이오 失之也死며 得之也死요 失之也生이니라
暖姝者(다른 사람과 잘 지내면서 자기를 요상하게 꾸미는 유형의 인간)가 있으며 濡需者(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여 안일함을 탐하는 유형의 인간)가 있으며 卷婁者(몸을 움츠려서 뻗어 나가는 기상이 없는 유형의 인간)가 있으니 이른바 暖姝者는 어떤 한 사람의 학설을 배우게 되면 부드럽고 요상하게 스스로를 꾸며 스스로 자기만족에 빠진다. 그리고 처음부터 物이 있지 않음을 알지 못하니 이로써 暖姝者라고 말한다.
濡需者는 돼지 몸에 붙은 이가 이것이다. (돼지의) 거칠고 긴 털을 가려서 스스로 넓은 궁전 큰 마당이라고 여기며, 돼지의 굽이 갈라진 사이, 다리가 꼬부라진 모퉁이 사이와 젖통 사이, 다리 사이에 파고들어 스스로 (그곳을) 안전한 방, 편리한 거처로 여긴다. 그러다가 도살자가 하루아침에 팔뚝을 걷어붙이고 마른 풀을 깔고 불을 피워서 자기와 돼지가 모두 타버리게 될 줄 알지 못하니 이것은 한정된 구역 내에서 나아가고 이것은 한정된 구역 내에서 물러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濡需者이다.
卷婁者는 순임금과 같은 자이니 양고기는 개미를 사모하지 않는데 개미가 양고기를 사모하니 양고기가 누린내가 나기 때문이다. 순임금이 누린내나는 행동이 있기 때문에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고로 세 번 이사해도 (가는 곳마다 그곳이) 도시를 이루어서 등의 옛터에 이르러서는 십여만호나 되었다. 그래서 요임금이 순의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童土(황무지, 불모지)의 땅에 천거하면서 말하기를 “그가 와서 은택을 베풀기를 바라노라”고 하였다. 순임금이 황무지의 땅에 천거될 때 나이가 많았고 총명이 쇠퇴했는데에도 휴식하러 돌아가지를 못했으니 이른바 卷婁者이다.
이 때문에 神人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싫어하나니 많은 사람들이 이르면 서로 친하지 않고 친하지 못하면 서로 이롭지 않다. 그러므로 매우 가까이 하는 것도 없고 매우 멀리함도 없다. 그리고 덕을 품고 조화로움을 따뜻이 해서 천하에 순응하나니 이를 일러 眞人이라 한다. 개미가 된 경우에는 양고기를 사모하는 지식은 버리고, 물고기가 된 경우에는 江湖에서 서로 잊고 자유로이 헤엄치는 계책을 얻고, 양이 된 경우에는 누린내를 풍겨서 개미를 모으는 의도를 버리고서, 눈으로는 눈에 보이는 대로 보며 귀로는 귀에 들리는 대로 들으며 마음으로는 마음이 마음이 가는 곳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그와 같은 사람은 그 평탄한 심경은 먹줄처럼 반듯하고, 변화할 때는 자연법칙을 따른다. 옛날의 진인은 자연(天) 그대로 사물을 대하는지라 인위적으로 자연에 끼어들지 아니하며, 옛날의 진인은 얻은 것이 삶이라면 잃는 것은 죽음이요, 얻은 것이 죽음이라면 잃는 것은 삶이다(즉 生死에 得失이 없다는 뜻이다).
藥也 其實은 菫也와 桔梗也와 鷄雍也와 豕零也라 是는 時爲帝者也니 何可勝言하리오 句踐也 以甲楯三千으로 棲於會稽어늘 唯種也能知亡之所以存호되 唯種也不知其身之所以愁하니라 故로 曰 鴟目이 有所適하며 鶴脛이 有所節하니 解之也悲라하나니라 故로 曰 風之過河也에 有損焉하며 日之過河也에 有損焉하니 請只風與日로 相與守河하니 而河는 以爲未始其攖也하나니 恃源而往者也일새니라 故로 水之守土也審하며 影之守人也審하며 物之守物也審하니라
故로 目之於明也에 殆며 耳之於聰也에 殆며 心之於殉也에 殆하며 凡能이 其於府也에 殆하나니 殆之成也에는 不給改라 禍之長也玆萃하나니라 其反也는 緣功이오 其果也는 待久어늘 而人이 以爲己寶하나니 不亦悲乎아 故로 有亡國戮民이 无已는 不知問是也니라
故로 足之於地也踐하나니 雖踐이나 恃其所不蹍而後에야 善博也하나니라 人之於知也少하니 雖少나 恃其所不知而後에 知天之所謂也하나니라 知大一하며 知大陰하며 知大目하며 知大均하며 知大方하며 知大信하며 知大定이 至矣니 大一은 通之하고 大陰은 解之하고 大目은 視之하고 大均은 緣之하고 大方은 體之하고 大信은 稽之하고 大定은 持之하나니라
盡有天하며 循有照하며 冥有樞하며 始有彼하니 則其解之也도 似不解之者하며 其知之也도 似不知之也니 不知而後에야 知之니라 其問之也에 不可以有崖며 而不可以无崖로다 頡滑이 有實하며 古今에 不代라 而不可以虧니 則可不謂有大揚搉乎아 闔不亦問是已오 奚惑然爲리오 以不惑으로 解惑하야 復於不惑이면 是尙大不惑이니라
약은 그 실제는 씀바퀴 도라지 가시연 저령이다. 이것들은 때때마다 主藥이 되는 것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리오.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패해서) 군사 삼천명을 데리고 회계산을 깃들었거늘 오로지 문종만은 능히 오늘에 망하는 것이 미래에 생존하게 되는 까닭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올빼미의 눈이 적합한 곳이 있으며 학의 정강이 다리도 알맞은 곳이 있으니 해체시키면 슬퍼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바람이 하수를 지나가면 손실이 있고 해가 하수를 지나가면 손실이 있으니 손실이 있으니 단지 바람과 해로 하여금 서로 더불어 하수를 지켜달라 청하니 하수는 처음부터 자기 것을 빼앗는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근원을 믿고 흘러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로 물이 흙을 지키는 것이 엄밀하며 그림자가 사람을 밀착하는 것이 엄밀하며 사물이 다른 사물을 지키는 것이 엄밀하다.
고로 눈이 밝게 보는 것만 추구하면 위태롭고, 귀가 분명하게 듣는 것만 추구하면 위태롭고, 마음은 재빠른 지혜로움만 추구하면 위태로우며, 모든 능력이 그 기관의 역할에 국한되면 위태로우니 위태로움이 이루어지면 고치려 하여도 미치지 못한다. 禍가 커져서 이에 모이게 된다. 본래대로 되돌아가는 데에는 공덕을 쌓음과 연관이 깊고 그 성과는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사람들은 (耳目의 총명이나 마음의 英知를) 자기의 보물로 여기고 있으니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고로 (군주 가운데에서) 나라를 망하게 한 자와 백성들을 도륙한 자들이 그치지 않고 생기는 것은 이것을 물어볼 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로 발은 땅에 있어서 밟는다. 비록 밟지마는 그 밟지않은 부분을 믿은 후에야 넓게 잘 걸어다닐 수가 있다. 사람의 아는 것도 적으니, 비록 적지마는 그 알지 못하는 부분을 믿은 후라야 하늘이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큰 하나를 알고 큰 陰을 알고 큰 눈을 알고 큰 고름을 알고 큰 방편을 알고 큰 믿음을 알고 큰 결정을 아는 것이 지극함이니, 큰 하나는 통하게 하고 큰 陰은 풀어버리고 큰 눈은 보고 큰 고름은 있는 그대로를 따르고 큰 방편은 체득하게 하고 큰 믿음은 쌓이게 하고 큰 결정은 유지하게 한다.
(이 일곱 가지를) 극진히 하면 天道가 있게 되고 이 천도를 따르면 밝게 비침이 있고 지혜가 없는 데에서 冥合하면 樞要가 있게 되고 태초에 저 道(主宰者)가 있게 된다. 그러니 그것을 이해하는 자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으며 아는 자도 알지 못하는 자와 비슷하니 알지 못하는 것 같은 뒤에라야 진정 아는 자이다. 누군가가 물으면 그것을 무엇이라고 한정 지어 대답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정 짓지 않을 수도 없다. (道는) 위에 있다가 아래에 있다가 또 이리 변하고 저리 돌아서 붙잡을 수 없지만 實在하는 것이며 고금에 걸쳐 바뀌지 않으며 이지러짐도 없으니 세계를 크게 싸안은 커다란 테두리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어찌하여 또한 이것(道)을 물어보지 않는고?(闔은 盍의 假借字로 본다.) 어찌 미혹되어 그렇게 되었는가. 미혹되지 않은 (밝은 지혜로) 미혹을 해소하여 미혹되지 않는 상태로 회복하면 이것이 오히려 크게 미혹되지 않는 것이다.
[본 편의 뜻을 총체적으로 해설해보면]
1) 전통문화연구회에서는
陸德明은 “사람 이름을 따 편 이름을 지었다[以人名篇].”고 풀이했는데 <庚桑楚>편의 경우처럼 글의 첫머리가 徐無鬼로 시작되기 때문에 그것을 편 이름으로 삼은 것이기도 하다. 일찍이 王夫之는 “이 편은 노자에 나오는 ‘최상의 덕은 덕스럽지 않다’고 한 뜻을 부연한 것이다[此衍老氏上德不德之旨].”라고 풀이했는데 이런 의미는 제1장과 제2장에 나오는 徐無鬼와 魏 武侯와의 문답 중에서 천하제일의 명마는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멍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한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제1장에서 魏 武侯가 徐無鬼를 보고 ‘병들고 지친 모습’이라고 위로했다가, 서무귀의 강한 반박에 부끄러워하는 식의 서사구조는 《史記》<仲尼弟子列傳>에서 공자의 제자 子貢이 또 다른 공자의 제자 原憲을 만나러 갔을 때 주고받은 문답과 유사하다.
제5장과 제6장에서는 《莊子》전편에 걸쳐 장자의 논쟁 상대로 등장하는 惠施가 나오는데, 제5장에서는 儒家와 墨家와 楊朱와 公孫龍의 네 학파에 대한 두 사람의 비판적 진술이 보인다. 제6장에서는 혜시의 무덤을 지나면서 郢人蠅翼의 비유를 들어 더는 맞수가 없어 논쟁적 대화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애석히 여기는 莊子의 술회가 실려 있는데 人口에 자주 膾炙되는 명구라 할 것이다.
제13장은 이 편의 결론에 해당하는 글로 복영광사의 견해에 따르면 자연이 가르치는 진리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미혹됨과 깨달음의 문제를 고찰하고, 내편 장자의 道와 진인의 사상을 분명히 하고 있다.
2) 고려원에서는
春有百花秋有月 봄에는 온갖 꽃, 가을에는 달이 있고
夏有凉風冬有雪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겨울에는 눈이 있네.
若無閑事掛心頭 마음에 조그만 일 걸지 않으면
便是人間好時節 이는 곧 인간의 좋은 시절일러라.
■ 徐無鬼에 대하여
--- 天人을 포괄하여 天眞을 안다.
이 편은 내편 <逍遙遊>의 본지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과 사람을 포괄하여 天眞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알려고 하지 않고, 알지 않아도 좋을 것을 알려고 한다. 천지의 대도를 알려고 하지 않고, 인간의 巧智를 알려고 한다. 그리하여 大를 버리고 小를 따르며, 正을 버리고 邪를 따르게 된다. 그러기에 개나 말의 관상을 보는 것을 빙그레 웃는 위나라의 武侯 같은 이도 있다.
하늘을 아는 것은 眞이요, 사람을 아는 것은 僞다. 안으로는 자기를 다스리려 애쓰고, 밖으로는 세상을 다스리려 하여 道를 거역하는 전쟁을 일으키고, 기교와 지모와 쟁탈로 사람을 이기려 하며, 제각기 주장을 세워 形神을 괴롭히는 것은 천진을 모르는 사람의 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말을 먹이는 童子는 황제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법을 이렇게 가르쳐 주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법도 말을 기르는 법과 다름이 없다. 말의 천성에 맡겨 해치지 않도록 하되, 자갈과 채찍을 쓰지 않도록 하면 된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은 人爲를 버리고 천진을 따랐던 것이다.
대개 형체가 있는 것은 자연히 서로 累가 되고, 형체가 없는 것은 아무리 갈아도 엷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損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은 하늘을 떠나기 더욱 멀리하고, 한갓 형세에로만 달리니, 반드시 만물에 자취를 남기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을 버리고 사람을 따르면, 재앙은 길어지고 위태로움만 계속되어 내 몸을 닦고 세상을 다스리는 도를 손상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市南宜僚와 孫叔敖는 不道의 도로써 사람을 하늘로 인도하였고, 공자는 不言의 辯으로써 사람을 하늘로 인도하여 사람과 하늘을 포괄했다 할 수 있다. 하늘과 사람을 두루 싸서야 비로소 천진에 가까워진다 할 것이다. 천진이란 知로써 아는 것이 아니요, 不知로써 아는 것이다. 이른바 大一·大陰·大目·大均·大方·大信·大定은 다 마땅히 알아야 할 數이다. 그러나 이것도 또한 不知로써 아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공연히 迷惑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