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염지은 기자 =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시대의 비극을 고발한 작품이다.
19세기 방탕한 유럽 사회의 희생양인 파리 사교계의 고급 매춘부 비올레타를 통해 어리석은 인습, 신분격차, 상류사회의 향락과 공허한 관계들을 표현하고 있다. 잃어가는 인간의 존엄성과 진실한 사랑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담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이 8년만에 무대에 올린 '라 트라비아'는 우리 시대로 이어지고 있는 위선과 돈에 의한 사회의 폭력성을 다시 이야기한다.
연출가 아흐노 베르나르는 라 트라비아타가 매춘부 이야기라는 것과 '우리시대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했던 베르디의 소망을 존중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1950년대로 옮겨진 무대는 검은색과 흰색, 붉은색 단 3가지 색으로 음악 선율과 함께 비올레타의 삶을 이야기하며 관객들을 흡인한다.
열창하는 알프레도 이반 마그리.(국립오페라단 제공)ⓒ News1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 정상급 제작진과 출연진의 캐스팅이다. 유럽 오페라 무대를 그대로 서울로 옮겨 놓은 듯 유럽오페라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다.
지휘는 독일 출신의 젊은 명장 파트릭 랑에, 연출은 세계 유수의 오페라극장에서 활동중인 프랑스 출신의 아흐노 베르나르가 참여했다. 무대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카메라, 의상 디자이너 카를라 리코티, 안무가 다닐로 루베카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정상급 제작진이다. 조명은 프랑스 출신 파트릭 메우스가 맡았다.
비올레타는 세계적인 디바인 러시아 출신 소프라노 리우바 테트로바와 캐나다 출신 조이스 엘 코리가 연기, 풍성한 음색을 들려준다. 알프레도는 파바로치를사사한 이탈리아 출신 테너 이반 마그리가 참여했다.
무대 전체를 움직이는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에너지와 파티 손님들의 정지된 움직임 등 어색하지 않은 낮선 오페라 연기는 시선을 잡는다.
비운의 커플 비올레타와 알프레토.(국립오페라단 제공)ⓒ News1
오케스트라의 선율은 절제됐다. 가사의 내용을 따라가며 중간중간 흐르는 침묵과 극적인 반전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비올레타는 힘찬 콜로라투라(여성 소프라노에서 가장 화려한 고음을 가장 고난도의 가창을 기술적으로 구사하는 창법)로 시작해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가면서 연약하면서 서정적인 소프라노로 변화해 간다.
살롱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비참한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삶과 내면은 절제된 오케스트라 선율과 함께 간결한 색채의 무대로도 표현됐다.
비올레타가 병든 매춘부라는 사실, 귀족 청년 알프레도와의 순수한 사랑, 비극적 죽음 등은 드러나지 않게 보여진다. 특히 2막의 장미 꽃잎을 무대 바닥 전체에 덮은 듯한 붉은 색채의 무대와 따뜻한 조명은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