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지게
이영백
어린 날 나의 양 어깨에 굴레가 따라 다녔다. 바로 지게이다. 조그만 물건이라도 지게에 지고 다녀야 하였다. 그 시절 그 때는 물건 이동수단에 지게만한 게 없었다. 한 동네 부잣집에 겨우 수레가 한 대가 있을 뿐이다. 일반 서민들 집에는 남자꼭지 수만큼이나 집집마다 지게가 있다. 짐을 많이 얹을 수 있게 곁들여 바지게도 있다. 인생지게의 무게를 주었다.
우리 속담에 “낫 놓고 기역자(ㄱ)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지게 놓고 A자도 모른다.”라고 한다. 이는 대영박물관에 한국지게가 있다. 특히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국군이 지게를 보고 “A자 모양의 틀(A frame)”이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지게라고 하면 지게에 지고 가버린 아버지 이야기가 생각난다. 고려시대 할머니 연세가 일흔 되자 아들이 지게에다 자기 어머니를 지고 산에다 갖다버리려고 하였다. 그때 손자가 저네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너 왜 따라 오느냐?” “예. 아버지도 일흔 되시면 그 지게에 져다가 버리려면 지게 갖고 오려고요.” 손자가 지게 챙기니 그 할머니의 아들은 다시 지게에 태워 할머니를 모셔왔다. 그 후로 “고려장(高麗葬)”이 사라졌다.
지게는 나에게 평생 따라 다닐 기구이었다. 젊은 날 평생지기 지게는 짐(나무, 풀 등)을 무겁도록 얹고 지고가면 양어깨가 무너져 내리듯 아파왔다. 그 지게에다 짐 안 지려고 더 부지런히 몰래 공부하였다. 바람 많이 부는 날은 지게 진 걸음이 오십보백보가 되었다. 한 걸음 나아가면, 반걸음 물러나야 하였다. 집에까지 닿기가 그렇게 먼 거리일 줄 차마 몰랐다.
“지게”라는 이름은 1766년 「증보산림경제」에 “부지기(負持機)”에서 왔다. “부”자가 떨어져 나간 “지기”, “지개”, “지게”로 변하였다. 지게에 짐을 지고 목발로 일어서며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작대기로 장단 맞추듯 걸어간다. 지게를 지는 순간부터 어깨, 허리가 아파오니 여북하면 “지게 목발가”, “지게 목발 아리랑”이라고 하는 노래까지 있겠는가?
지금도 생각하면 그 어깨 아파오는 것은 평생토록 나의 어깨를 짓누르던 공포가 아니던가? 지게는 남자 되고부터 따라 다닌 고행을 준 것이다.
도시에서는 짐꾼이 쪽지게 진다. 인생지게의 무게는 언제 사라지나?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