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본 문 / 로마서 12장 9∼13절 (로마서 57)
주 제 /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는 진실한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긴다.
작성일 / 2026년 6월 28일. (№ 26-26)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롬 12:9∼13)
Ⅰ 천국백성의 영적행활 (롬 12:1∼21)
2026년 신앙생활의 목표를 외치자. “구원의 복음을 배우자!”(롬 1:16)
지금 우리는 로마서를 통해 바울이 가르치는 구원의 복음을 배우는 중이다. 로마서 1∼11장은 ‘구원의 복음 이론편’이라 했다. 우리가 왜 구원받아야 하는지,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는지, 구원하신 우리를 어떻게 가꾸시는지를 가르친다. 로마서 12∼16장은 ‘구원의 복음 실천편’이라 했다. 은혜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천국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로마서 12장은 ‘천국백성의 영적생활’에 대한 가르침인데, 오늘은 ‘거짓 없는 사랑’으로 이웃과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이 ‘천국백성의 영적생활’이라는 가르침이다.
Ⅱ 거짓 없는 사랑 (롬 12:9∼10)
로마서 12장 9절을 보라.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 12:9).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이다. 사람과 사람이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사랑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단어이다. 사람이 존경과 경외를 바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우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바탕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경우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사랑, 존경과 경외를 바탕으로 하는 사랑, 자비를 바탕으로 하는 사랑이 아가페이다. 그러니 ‘아가페’에는 거짓이 있을 수 없다. 거짓이 있다면 그것은 아가페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가룟 유다’가 “주님 나는 아니지요?”라고 말했다(마 26:26). 그리고 병사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입을 맞추며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고 인사 했다. 병사들은 누가 예수님인지 알지 못하니 자기가 입 맞추어 인사하는 사람을 체포하면 된다고 미리 약속했던 것이다(마 26:47∼50). ‘가룟 유다’의 말은 즉 “주님 나는 아니지요?”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는 거짓이다. 심지어 ‘입 맞춤’도 거짓이다. 악한 마음과 악한 계획을 숨기기 위한 기만술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신뢰도 없고, 존경도 없고, 자비도 없는 사랑은 아가페가 아니다. 아가페로 위장한 폐륜이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란 가르침은 바로 그 뜻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아가페를 실천할 수 있을까? 바울은 “…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가르친다. 악한 마음을 품은 사람의 사랑은 ‘거짓사랑’, ‘위선적인 사랑’이다. 선한 마음을 품은 사람의 사랑이 진실한 사랑 ‘아가페’이다. 선한 마음을 품은 사람은 아가페가 저절로 실천된다는 가르침이다. 이렇게 ‘아가페’로써 이웃과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이 ‘천국백성의 영적생활’이다.
로마서 12장 10절을 보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 12:10). 로마서 12장 9절에서 말한 ‘사랑’은 ‘아가페’였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필라델피아’이다. ‘형제애’를 뜻하는 말이다. 형제간에 혹은 성도간에 다툼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천국백성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서로 우애하고, 서로 존경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여기서 ‘우애’(필로스토로고스)란 말은 ‘친절’이란 뜻이고, ‘존경’(티메)란 말은 ‘가치’란 뜻이다. 형제와 교우를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친절하게 대하면 그것이 바로 ‘천국백성의 영적생활’이다.
로마서 12장 13절을 보라.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 여기서는 ‘아가페’와 ‘필라델피아’의 실례를 제시한다. 성도들을 돌보고, 손님 대접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이 ‘천국백성의 영적생활’이다.
사도행전 4장 32∼35절에 보면, 초대교회는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니 자기 재물을 사도들 앞에 가져왔고, 사도들은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굶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사도행전 9장 36∼41절에 보니, ‘다비다’라 하는 성도는 옷을 만드는 재능이 있어서 옷을 만들어 성도들을 섬기다가 죽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가 현장에 가 보니, 성도들이 다비다가 만들어준 옷을 보이며 울면서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러자 베드로가 죽은 다비다를 향해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고 외쳤더니 죽었던 다비다가 살아났다고 한다. ‘다비다’는 자신의 능력으로 성도들을 살렸다. 그랬더니 하나님도 당신의 능력으로 다비다를 살리셨다. 교회는 이렇게 살리는 자리이다. 섬김과 능력으로 살리는 자리가 바로 교회이다.
로마서 16장 1∼2절을 보라.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롬 16:1∼2)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게 ‘뵈뵈’를 추천하면서 예를 다하여 영접하고, 소용되는 경비를 지원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면서 ‘뵈뵈’도 여러 성도들과 ‘바울’에게 그리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문화였다. 살리는 문화였다. 바울은 마음에 ‘아가페’와 ‘필라델피아’가 있어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는 생활이 ‘천국백성의 영적생활’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Ⅲ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11∼12)
로마서 12장 11절을 보라.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바울 ‘하나님을 향한 아가페’를 설명한다. 부지런하여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생활이 ‘천국백성의 영적생활’이다.
처음 은혜 받고 구원의 확신을 얻었을 때에는 대부분 부지런히 주를 섬긴다. 그런데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타성에 젖어 열정이 사라지고 ‘미지근한 신앙’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미지근한 신앙’을 매우 싫어하신다.
‘에베소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인내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악한 자들과 가짜 사도를 용납하지 않았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다. 그래서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과거형이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으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처음 믿을 때에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뜨거웠다. 그래서 부지런함으로 섬겼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연륜이 싸이니 열정은 사라지고, 미지근함만 남았다. 그래서 책망하신다.
‘라오디게아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요한계시록 3장 16절을 보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6) 라오디게아 교회도 처음에는 뜨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연륜이 쌓이니 에베소교회처럼 미지근해졌다. 하나님은 아주 혹독하게 책망하신다. “…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상태라고 책망하신다.
‘게으름’(오크네로스)이란 말은 ‘주저하다’, ‘망설이다’란 뜻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서는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저하거나 망설이다가 사명을 완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저하고 망설이다 보면 때를 놓쳐 포기하게 된다. 만약 ‘어린 자녀’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음을 알았다면 부모가 주저하거나 망설이겠는가? 물불 안 가리고 일단 뛰어들어서 아이를 건져낸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뜨겁기 때문이다. 은혜로써 구원받은 천국백성은 예수님을 섬기는 자리에서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기 때문이다.
‘열심을 품고’(프뉴마티 제온테스)란 말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성령께서 분출하심’이다. ‘성령의 추진력으로’란 뜻이다. 예수님을 섬기는 자리는 ‘인간의 열심’으로 나아가는 자리가 아니라, ‘성령의 열심’으로 나아가는 자리이다. 성령께서 감동하시면 즉시 실행해야 한다. 그것이 ‘천국백성의 영적생활’이다.
로마서 12장 12절을 보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 12:12) 바울은 ‘기도에 힘쓰는 생활’이 ‘천국백성의 영적생활’이라고 가르친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환난을 만난다. 평탄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환난이 있다. 티를 내지 않을 뿐이다.
환난을 피할 수 없다면 이겨내야 한다. 바울은 환난을 이기는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소망의 즐거움으로 이겨내라고 한다. 환난을 만나면 절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지 말하는 것이다. 이 환난을 극복한 뒤에 펼쳐진 영광을 바라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환난을 이겨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둘째, 기도로 이겨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기도는 하나님을 나의 삶으로 초대하는 자리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환난은 반드시 극복된다.
거짓 없는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생활, 거짓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이 천국백성의 영적생활이라는 가르침이다. 우리 영광교회 성도들은 거짓 없는 사랑, 뜨거운 사랑으로 이웃과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기도>
우리 영광교회 성도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천국백성들이니, 초대교회의 전통을 따라 거짓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