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내놓은 고급차 ‘아슬란(Aslan)’을 놓고 말이 많다. 어떤 이는 준대형세단 그랜저의 최상급 모델로 보인다고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대형차 제네시스 이미지가 묻어나기도 하지만 고급차라고 부르기엔 약간 어색한 감각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들의 평가는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은 이해 된다. 고급차를 표방하고 있는 아슬란의 포지셔닝이 그랜저와 제네시스의 딱 중간쯤 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그랜저나 제네시스에 비교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슬란은 그러나 단지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의의 샌드위치 성격만을 지닌 건 아니다. 수입차 시장 규모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현대차가 수입차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 고육지책으로 개발된 모델이 바로 ‘아슬란’이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아슬란의 시장 경쟁 모델은 BMW 5시리즈나 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 렉서스 ES 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형제 차종인 그랜저나 제네시스도 포함된다. 시장에서는 어느정도 간섭(Cannibalization)이 예상되는 건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륜구동 방식이 적용된 고급차 아슬란의 스타일은 강렬함은 떨어진다. 맹수의 용맹함을 드러내는 동물의 제왕 사자를 뜻하는 모델명 처럼 뭔가 첫인상이 강하게 끌리는 그런 카리스마는 없다. 다만, 볼수록 중후한 느낌과 고급스러운 감각은 더해진다. 디자인 밸런스는 잘 갖춰졌다는 판단이다.
앞모습은 후드 상단에서 범퍼로 뚝 떨어지는 라인인데 제네시스를 연상시킨다. 두터움과 가는 크롬이 동시에 적용된 라디에이터 그릴은 세로형태인데 이는 과거 그랜저의 모습이기도 하다. 헤드램프와 주간주행등은 날카로운 직선이 강조됐다. 단순하면서도 맵시를 더한다.
측면은 전형적인 세단인데, 사이드 가니쉬는 앞쪽에서 뒷쪽으로 갈수록 더 두텁게 처리됐다. 윈도우 테두리는 크롬으로 에워쌓다. 고급감을 더하기 위한 배려다. 18인치 알로이 휠이 적용된 타이어는 앞과 뒤에 245mm의 대형사이즈다. 편평비는 45R로 연비효율성보다는 퍼포먼스에 비중을 둔 모양새다.
뒷면은 심플한 디자인이 적용됐는데, 리어램프는 제네시스에서도 봤던 모습이다. 리플렉터는 강렬한 색채다. 듀얼 머플러를 통해 아슬란의 파워풀한 엔진 감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트렁크는 446ℓ 대용량으로 골프백과 보스톤백 4개씩을 넣을 수 있다. 스마트키를 소지하고 트렁크 옆에 서있으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것도 눈에 띈다.
실내는 고급스런 감각인데, 레이아웃은 가로형태다. 센터페시아의 버튼류는 크게 적용해서 다루기 쉽다. 나파 가죽시트는 가죽 사이에 솜을 넣고 마름모꼴로 박음질 처리해 도톰한 모습이다. 가방이나 소파 등 명품 패션브랜드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퀼팅패턴이다. 실내는 휠베이스가 2845mm로 넓직한 공간을 제공한다.
시승차 아슬란은 배기량 3342cc의 람다Ⅱ V6 3.3 GDi 엔진이 탑재됐다. 최고출력은 295마력이며, 최대토크는 35.5kg.m의 파워를 지닌다.
아이들링 상태에서는 시동이 걸렸는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조용하다. 실내는 정숙한데, 엔진 소음은 50dB 이하다. 도서관에 앉아 있는 그런 기분이다. 정숙감은 렉서스 ES와 비슷한 정도다.
풀액셀에서는 가속감이 뛰어난 수준이다. 대형차임에도 차체 중량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페달 반응은 빠르다. 치고 달리는 스포티한 감각이 살아있다. 시속 100km 전후에서도 풍절음은 절제가 잘돼 실내는 조용하다. 승차감도 적절하게 세팅됐다.
고속주행에서도 엔진파워는 부족함이 없다. 시속 210km를 오르내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안정적인 주행감각이 돋보인다. 접지력도 맘에 든다. 엔진 사운드는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하게 절제된 느낌이다. 엔진회전수 3000rpm을 넘기면서부터 맛깔스러움이 더해진다.
주행중에는 BMW에도 적용된 것처럼 윈드스크린으로 보이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통해 차량속도나 길 안내 등 주행정보를 체크할 수 있다. 앞 차와의 거리를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은 만족스럽다. 주행은 노멀과 에코, 스포츠 등 운전자의 취향에 맞춰 3가지로 설정이 가능하다.
트랜스미션은 자동 6단 변속기가 적용됐는데, 시프트 업다운에서 빠른 반응이다. 변속충격은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감각적이다. 주행중 차선을 이탈하거나, 앞차와의 간격이 좁혀지거나, 뒷차와 충돌 위험이 커지면 경고음으로 안전성을 높인다. 급회전에서도 차체자세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퍼포먼스 측면에서는 독일차 5시리즈나 E클래스, A6 등보다는 일본차 렉서스 ES와 유사한 감각을 지닌다. 거칠면서도 강렬한 맛보다는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히 절제된 모습이다.
아슬란의 공인 연비는 9.5km/ℓ이지만, 이번 시승에서는 구간에 따라 4.5~8.8km/ℓ 수준이었다. 시내 또는 고속주행에서는 기대치보다는 낮았지만, 정속으로 주행한다면 비교적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아슬란은 지난 12월에는 992대가 판매됐다. 작년 11월의 1320대 판매보다는 감소됐다. 출시된 이후 총 2551대가 판매된 수치인데, 이는 당초 현대차의 기대치보다는 약간 밑도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간섭이 우려됐던 제네시스나 그랜저의 판매가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차 입장에서는 아슬란에 대해 ‘절반의 성공’으로 판단할 수는 있다.
사실, 고급차를 표방하고 있는 아슬란은 국산 모델보다는 수입차와의 경쟁에 관심이 더 많다. 특히 BMW나 벤츠, 아우디, 렉서스 등 쟁쟁한 브랜드가 자리잡고 있는 수입중형차 시장에서 아슬란이 어느정도 선전할른지를 속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카리스마 넘치는 디자인 감각은 아니지만, 달리기나 주행성능 등 퍼포먼스 측면에서는 경쟁력을 지녔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최첨단 고급사양이 대거 적용된데다, 3000만원대 후반에서 4000만원대에 이르기까지 가격 경쟁력이 두텁다는 건 장점이다. ‘아슬란’의 국내 판매 가격은 트림별 모델에 따라 ▲G300 모던이 3990만원 ▲G330 프리미엄 4190만원 ▲G330 익스클루시브 459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