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그리고 로마의 왕들은 전쟁, 결혼과 같은 중대한 문제에 관한 조언을 얻고 싶을 때 그리스의 델포이로 찾아갔다. 아폴론 신의 뜻을 전한다는 여사제, 피티아의 신탁神託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여사제의 횡설수설(?)하는 신탁과 에틸렌 가스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델포이의 신탁 신전은 기원전 약 1600년경부터 서기 392년까지 운영되었다. 신탁이 이루어지던 델포이의 신전은 파르나소스 산 비탈면에 세워진 웅장한 건축물로, 여러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었는데 지금은 여섯 개만 남아 있다. 이 신전의 바닥 지하에는 숨겨진 공간인 아디툼 adytum이라 불리는 작은 방이 있었다. 피티아는 이 방으로 들어가 아폴론과 교감했다고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삼발의자에 앉아 지하의 틈새에서 피어오르는 ‘프네우마' pneuma (숨결 또는 기운)라는 연기를 들이마셨다고 한다. 이 연기를 흡입하면 피티아는 일종의 황홀경 상태에 빠졌고, 그 상태에서 신의 뜻을 전하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
이 전설에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한다. 파르나소스 산 일대의 지반에는 '역청'이 풍부하게 분포되어 있는데, 지각이 움직이며 생긴 마찰열로 역청이 가열되면 여러 종류의 탄화수소 가스가 방출된다. 그중에는 ‘에틸렌’도 들어 있다. 에틸렌은 사람에게 어지러움과 황홀감을 유발하는 기체로, 한때 수술용 마취제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 이 가스를 다량 흡입하면 극심한 흥분과 환각을 일으킬 수 있다.
피티아가 오이디푸스 왕에게 “신전에서 나가거라, 이 불경한 자야! 너는 네 아비를 죽이고 네 어미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라고 외쳤을때 어쩌면 에틸렌에 잔뜩 취한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에틸렌은 식물의 호르몬으로, 숙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보통 덜 익은 상태로 수확한 뒤, 에틸렌 가스를 주입해 원하는 색이 나타날 때까지 익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