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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레 16코스 진짜 제주 사람 속내 알기 -
오늘은 제주 올레 16코스를 가는 일정이다. 깨어 보니 새벽 3시반이다. 추자도 코스를 제외하곤 닷새 동안 20㎞씩 100㎞를 걸어서인지 발바닥도 아프고, 엉치뼈도 뻐근하고 아프다. ‘할 수 없지, 사서 하는 고생인데.’
오늘 올레 16코스는 고내포구-남두연대-구엄마을-수산봉-수산저수지-희망의 다리-예원동 복지회관-장수봉-고성숲길-별장길-광령초등학교-광령1리사무소에 이르는 약 19㎞의 거리다.
7시에 숙소에서 출발하여 오라 정식 식당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에도 공사장 인부나 전지훈련 온 학생을 대상으로 식사를 하기에 식당은 늘 준비가 잘 되어 있다. 우리처럼 여행을 이렇게 훈련하듯 치열하게 하는 사람도 드물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터미널로 가서 화장실에서 양치를 한다. 7시30분. 오늘은 한림 위쪽인 서쪽 해안가 고내 포구에서 출발하기에 서일주 노선인 702번 버스를 탄다. 8시30분 고내리 포구에 도착해서 올레를 시작한다. 시작점은 저번에 왔던 15코스 종점인 우주물 용천수이기에 낯이 익다. 그래도 林山은 굳이 확실하게 인증샷을 한다.
올레를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내려서 林山과 宋山 두 분은 우산을 쓰고 나는 우비를 입는다. 비는 오지만 바람이 그리 심하지 않아 날씨는 그럭저럭이다. 오늘 코스인 고내포구에서 남두연대를 거쳐 구엄마을까지는 풍광이 좋은 서쪽 해변이기에 바다를 끼고 간다. 올레 7코스처럼 해안가는 주상절리가 잘 발달해 멋있다. 여기저기 해안 절벽이 다양한 모습으로 정말 좋은 조망처들이 많다. 오늘은 비를 맞으면서도 몇 사람 올레꾼들을 만난다. 반갑다. 서쪽 코스에는 올레꾼들이 드물다. ‘겨울이라 그런가?’
곳곳에 해안가 용천샘을 알리는 표지판과 조망 공원이 있고, 길가 건너 곳곳에 호텔과 팬션을 엄첨 많이 짓고 있다. 중국자본이 들어와 그런지 몰라도 목하 제주도는 현재 공사 중이다. 그렇지만 14코스에서도 느낀 것처럼 이곳도 해안가 청소를 체계적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보이는 해변마다 쓰레기가 잔뜩 널려 있어 가슴이 아프다. 저렇게 아름다운 자연에, 저렇게 흉물스런 쓰레기, 아, 이건 아닌 것 같다.
< 남두연대 인근 해안 용암바위 절경 >
이곳 사람들에게 쓰레기 이야기를 하면 대뜸 열을 올려 관광객들이나 올레꾼들이 버리고 간 것이라고 탓을 한다. 거의 대부분이 그런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해안가 쓰레기를 보면 멀리 중국에서 밀려온 쓰레기도 있지만 70%가 수산 해양 관련 선구나 어구 스치로폼 등이고 30%가 이곳 사람들의 생활 쓰레기들이다. 제주도 차원의 행정처리가 절실하다. 그리고 제주 사람들은 외지인 탓만 하지 말고 정말 반성해야 한다.
각설하고 9시30분 주상절리 근처에 젊은 사람들이 몇이 서 있어서 올레꾼이냐고 묻자 웃기만 한다. 林山이 근처 숙박시설에서 나온 사람들이라 한다. 한참 오니 제주도 전래의 돌소금 생산지인 구엄마을을 알리는 안내 표지판 앞에 관광객들이 웅성거리며 많이 모여 있다. 비가 제법 내려 사진을 찍기가 불편하다.
이제부터 올레 코스는 방향을 확 틀어 동쪽 수산봉쪽으로 향한다. 내륙(?)이다. 큰 도로를 건너가다 평화로를 만난다. 林山이 “이렇게 비를 맞고 가느니 버스를 타고 그냥 제주로 가지”하며 슬쩍 말을 건낸다. 주변에 버스 정류장이 있으면 정말로 타고 갈 기세다. 사실 나도 그냥 가서 쉬고 싶다. 그러나 참는다. 이때는 말없이 앞장서서 코스를 진행한다.
수산봉을 올라간다. 위에는 통신기기 중계소가 있고, 정자 주변에 운동 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정자에 앉아 잠시 비를 피하며 쉰다. 야, 제주도 사람들은 좋겠다. 이렇게 좋은 자연 환경에 이런 훌륭한 야외 공원 운동 시설도 있고 하면서 부러워 한다.
< 수산봉 정자에서 비를 피해 쉬면서 >
수산봉을 내려가니 왼쪽에는 절이 있고 오른쪽에는 큰 음식점이 있다. 그리고 길가에는 엄청나게 오래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400년이나 된 오래된 굵은 고송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빗속이지만 기념촬영은 필수다. 고송을 지나 수산저수지 둑방 위로 접어든다. 저수지는 엄청나게 넓다. 둑방길도 300미터는 될 듯하다. 저수지 위에는 철새 종류의 오리류들이 수십 마리 몰려 있다. 제주시에서 일변 구제역이다, 일변 조류독감이다 해서 올레코스 통제를 하고 있으니 큰 고민거리다. 다 막을 수도 없고.
빗속이라 쉬기가 마땅치 않고 어렵다. 같이 가는 일행인 저분들은 몸이 쇳덩어리로 됐나 별 어려움이 없는 것 같이 잘 간다. 쉬고 싶다. 이제 길은 시멘트 포장길에 접어든다. 길가에 서 있는 어마어마한 저택이 감탄을 절로 자아낸다. 앞에는 저수지에, 바다에 풍광이 이리 좋은 곳에 저런 고대광실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누구인지 잠시 궁금해진다.
그런데 냉동창고 같은 건물이 여러 채가 눈에 띈다. ‘저게 뭐지, 창고인가?’ 서로 궁금해 여러 추측을 한다. 마침 까페(제주무이)가 보인다. 쉬어가자 우긴다. 제주 와서 일주일만에 처음 들어가는 까페다. 여종업원이 잠시 망설인다. “개장시간이 11시부터인데…”, “지금 10시55분이니까 상관없잖아요” 하고 좀 융통성 없어 보이는 여종업원을 밀고 들어간다. 비를 맞지 않고 따뜻한 커피를 한 잔 하니 정말 좋다,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김이 오르는 카푸치노를 ….
< 카페에서 차 한 잔의 즐거운 한 때 >
자, 엉덩이를 털고 까페를 나오며 이제는 다음 중간지 ‘희망의 다리’를 향한다. ‘희망’이라는 말은 참 좋다. 이렇게 힘든 여정에는 그 말이라도 여행객을 즐겁게 한다. 엄청 큰 규모일 줄 알았는데 막상 다다르고 보니 ‘희망의 다리’는 작은 청동판의 이름표로 가진, 그리 크지 않은 다리다. 다리는 빗물이 고여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아 조심조심 걷는다.
다리를 건너, 비안개에 감겨 참 고즈넉한 밀감밭을 지나고 宋山의 재미있는 추억담에 서로 맞장구치며 한 이십분 길을 걷다 보니, 아뿔싸! 올레 표시가 안 보인다. ‘어떡하지?’, 올레를 하다 보면 종종 있는 일이지만 당황하며 서두른다. 앞으로 더 가 보자며 내달린다. 林山이 외친다. “올레 표시가 안 보이면 그 자리에서 뒤로 돌아가 보이는 곳까지 찾아가야 해” 맞는 말이다. 백두대간 종주에서 늘 경험했던 것이다. 하지만 몇십 분의 알바(?)가 아쉬워 머뭇거리다 동네 주민에게 묻고 나서야 겨우 뒤로 백(Back)한다.
문제는 그 놈의 ‘희망의 다리’다. 다리를 건너지 말고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다리만 보고 으레 건너는 줄 알고 직진을 한 것이다. 알바를 아쉬워하며 걷다 보니, 저 멀리서 큰 방죽 같은 것이 보인다. ‘저건 뭐지?’, 나무 데크 계단을 깔아 놓은 곳이 보인다. 가까이 가 보니 항몽 유적지 축성이다. 학생들 수학여행에서 주로 방문하는 항몽 유적지 시설물 휴게소에 들러 길을 묻고 사진을 찍는다. 이제 남은 별장길을 지나면 종착점인 광령1리까지는 3㎞ 정도가 남았다.
< 항몽 유적지 안내판 >
항몽 유적지 진입로 아스팔트 길을 지나 고성숲길을 지나니 별장들이 많이 보인다. 요즘 중국인들이 제주도의 부동산을 많이 구입한다고 해서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제주도에 오는 중국인들을 오래 상대한 사람들은 중국인들을 2그룹으로 분류하는데 하나는 '푸이다이(富一代), 즉 스스로의 힘으로 부를 일군 부자‘와 다른 하나는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제주도의 부동산이나 고급 리조트를 사들인 이들 푸이다이는 관광지에서 떠들썩하게 몰려다니며 쇼핑을 즐기는 요우커와 확연히 구분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중국 대도시 출신의 40·50대 금융 자산가·사업가로 평당 천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제주도 리조트를 거리낌 없이 사들이는 큰 손으로 한림읍과 서귀포시의 리조트는 절반이 이들 소유라 한다.
숲속의 별장을 보면서 농담을 한다. 나 제주에 작은 별장 하나 있고, 골프 회원권 있고…. 저런 별장 하나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좋다. 이렇게 빗속을 돌아다니며 걸어다닐 수 있는 건강한 다리가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이랴!
< 광령초등학교 전경 >
별장과 절을 지나 시멘트로 된 2층짜리 작은 건물이 하나 보인다. ‘저건 뭘까?’, 광령초등학교다.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계속 전진하니 시가지(?)가 나온다. 올레길을 다 걸으니 비가 그친다. 쩝, 할 수 없지. 이제라도 비가 그쳤으니 다행이다. 14시 정각, 우산과 비옷을 정리하여 광명1리 사무소, 농협, 기타 등등 관공서 같은 건물들이 모인, 16코스 종점이자 17코스 시작점인 버스 정류장에 앉아 인증샷을 한다.
오늘 올레 끄읕-! 마땅한 밥집을 찾다가 늦은 점심은 맞은편 광령식당에서 하기로 한다. 비에 젖은 가방들을 정리하며 국밥을 시키는 동안 마눌 프로그램을 출력할 곳을 찾아보기로 한다. 회원들의 의견을 물어서 계획을 정리한 것이긴 하지만, 출력물을 보면서 검토를 하고 싶은데, 숙소에도 프린터가 없고 아침 일찍 나와서 시골길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프린트를 못해 시간이 나서 이곳에서 프린트할 곳을 찾아보기로 한다.
광령식당 주인 아주망의 추천대로 일단 광령1리 마을회관으로 간다. 사무실엔 점심 시간인지 여자분과 내방객인 듯한 하르방이 한 분 있다. 비교적 공손하게 여직원에게 말을 건넨다. “저어, 올레꾼인데 죄송하지만 컴퓨터 좀 쓸 수 없을까요오-?” 순간 그 사무원인 듯한 여자분이 폭발한다. “안 되욧! 이 컴퓨터가 당신들 쓰라고 있는 건 줄 알아?, 그리고 올레꾼 당신들이 얼마나 쓰레기를 버리고 다니는 줄 알아?, 시끄럽고 온갖 일 다 벌이고, £¥♂♀∮ 당신들 때문에 피곤햇!!, 당신 같은 올레꾼 필요없어-!!” 갑자기 쏟아지는 폭풍 같은 고함과 야단에 멍해진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런 횡액을 당해야 하나. 나도 소리를 질러 맞상대를 해 볼까? 아니다. 내 목적은 프린트를 하는 것인데 그게 틀린 것이면 쓸데없이 싸울 필요가 없지’ “알았습니다.” 공손히 인사를 하고 철수를 한다.
꼭 그런 경우를 당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문헌을 읽거나 역사적 사건의 추이를 더듬어 보아도, 제주 사람들이 뭍사람들에게 당한 압제나 수탈의 역사도 길고 그 정도도 보통이 아니다. 근자에는 현기영이나 현길언 등의 작가들이나 사회운동가들에 의해 4•3의 고통스러운 실체가 편린이나마 밝혀지기는 했지만 이재수의 난 등 여러 형태의 뭍사람에 대해 일어난 제주인들의 반항과 반발감의 역사적 사실도 적지 않다. 또 그것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뭍과 섬 사이의 길항관계이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나 제주 사람들을 옥조인 것은, 제주섬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도록 강제를 한 것이다. 마치 노예나 천민들이 이주의 자유가 없었던 것처럼 섬 주민들 역시 거주 이전의 자유마저 빼앗기고 살기도 했다. 제주도에는 17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출륙 금지령이 내려졌다. 제주 사람들이 공납의 괴로움과 관리들의 수탈을 피해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도록 한 출륙 금지령은 제주 섬사람들 전체를 죄인으로 감옥에 가둔 악법 중의 악법이었던 것이다.
억지로 맞추어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인지 관광이나 영업에 종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로 많이 접해 보지는 않았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비교적 뭍의 사람들에 대해 친절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각설하고, ‘쩝, 어떡한다?’ 문을 열고 나오니 바로 농협사무소가 눈에 띈다. 농협에 들어가 상황을 살핀다. 창구에 앉은 직원들은 바쁘다. 저 안쪽에 앉은 조금 높은 사람인 듯한 양복 입은 사람에게 공손히 부탁한다. “저어 컴퓨터 좀 쓸 수 있을까요?” 금방 날이 선 답변이 날아온다. “아, 보안관계로 외부인은 안 됩니다.” 거의 40년 동안이나 해 온 농협과의 거래를 이 순간 당장 끊고 싶다. 빌어먹을!
밖으로 나와 망연자실, 사방을 둘러보니 PC방이 있다. 옳거니 달려간다. 문이 잠겨 있다. 살펴보니 장사를 안한 지 오래되어 출입문에 먼지가 두껍게 덮여 있다. 패잔병처럼 식당으로 돌아가 일행들과 식탁에 앉는다. 여기서도 서빙 아주망이 소리나게 반찬그릇을 거칠게 내려놓는다..
하나 또는 몇 가지만 가지고 제주 사람을 평한다면 기분 나쁘겠지만 제주 관광이 잘 되려면 우선 육지 관광객에 대한 제주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저번의 택시 기사에게 올레 주변의 쓰레기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금방 답변이 나온다. “아 그거, 올레꾼이나 관광객들이 다 버린거에요. 한라산에 가 보세요, 그 쓰레기 말도 못해요.” 하지만 나는 제주도 사람들 평균보다 많이 한라산을 올랐고, 올레를 절반 이상 걸었지만, 별로 아니 거의 쓰레기를 무단투기한 적이 없다. 억울하다.
그리고 식당에 가도 종종 불친절한 경우를 많이 겪는다.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고 거칠다. 심지어 반찬 그릇을 집어던지 듯 식탁에 내려놓는 것도, 서빙하는 것도 여러 차례 경험했다. 대체로 음식값이 비싸기만 하고. 외지인에 대한 반감 같은 것이 사알짝 느껴진다. ‘왜 그럴까?’ 숙제다.
식사를 마치고 제주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여기 정류장 시내버스는 시간이 영 맞지 않는다. 시외버스를 타려고 무수천 사거리까지 2㎞쯤 걷는다. 맥이 빠지고 다리가 아프다. 무수천 사거리정류장에는 제주행 버스가 많다. 750번, 780번, 960번, 970번 아무거나 제주로 간다는데 정류장에 먼저 와 서는 것을 타고 제주시로 들어온다.
< 광령리에서 본 애월읍 안내판, 과연 환영하는 걸까? >
15시30분 숙소로 돌아와 비에 젖은 옷가지 빨래를 한다. 방안에 늘어놓으니 습기가 자욱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TV를 보다 잠을 청하는데 몸은 피곤한데 오늘따라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냉장고 소리(전원을 빼면 큰일난다. 얼음이 녹아 물난리가 남), 웅웅거리는 건물난방소리, 환기구 소리, 전기 담요 소리, 소리 복합체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