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절은 창건 되었다. 거령산성 안에 자리하며, 절에는 오래된 토굴이 있다. 절에서 전하기로는 옛날 삼한시대부터 이름난 위인들이 이 토굴에서 수행정진 했으며, 신라시대의 원효 스님도 역시 이곳에서 수행하며 한 겨울을 보낸 바 있다고 한다.
한편 절은 부근의 여러 면이 다 내려다보일 정도로 성산의 높고 깊은 곳에 자리하는데, 달이 가장 먼저 뜨고 제일 늦게 지는 곳이라 그만큼 달을 오래 볼 수 있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영월암으로 지었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연혁을 잘 알 수 없고, 근대에 와서는 1950년의 한국 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이후 1952년에 신도인 강미타심이 불교부인회를 조직하여 인근의 여신도를 중심으로 시주를 모아 석주(石柱) ・ 석정(石鼎)스님 등과 함께 중창 불사를 이루었다.
이때의 불사를 기록한 <불사기(佛事記)>를 보면 불교중앙총무원교정 만암 종헌(曼庵宗憲, 1876~1957), 불교중앙총무원장 이종욱(李鍾郁), 불교혁신회장 백성욱(白性郁,1897~1981), 불교전북교육원장 정봉모(鄭奉謨) 스님 등 널리 알려진 불교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전쟁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을 때 이처럼 당시의 불교를 이끌던 주요 인사들이 참여했다는 점이 눈에 띤다.
최근에는 1987년에 예전의 인법당을 헐고 대웅전을 새로 지었으며, 이듬해 현재의 대지(大智)주지스님이 주석한 뒤 1992년에 요사를 지었다.
영월암 안내석
영월암 요사채
은행나무와 종각
영월암 요사채
영월암 극락전
극락전은 1987년에 세워졌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목조기와집이다. 이 전각은 인공 석축 위에 원형주초를 놓고 두리기둥 위에 주심포 형식을 하고 있다. 편액은 ‘극락전’이고 주련은 4기가 걸려 있다. 내외부에는 단청이 칠해져 있고 외벽화에는 해수관음 1쌍과 난초, 산수화 등이 그려져 있다. 내부의 천장은 우물반자이고 연꽃이 그려져 있으며, 바닥은 쪽마루이다. 수미단이 놓이고 그 위에 2001년에 새로 조성한 아미타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주존불은 아미타불좌상이고 좌우 협시보살은 좌우대칭이며 지물로 연꽃을 들고 있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의 뒤에는 후불탱 ・ 지장탱 ・ 독성탱 ・ 칠성탱 ・ 신중탱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중 후불탱과 독성탱은 1950년에 금어 석주(石珠)가 조성한 것이다. 지장탱과 칠성탱은 화기에 의하면 대정 원년(1912) 음력 12월 8일에 금어 동성정연(東星定淵)이 그려서 봉안한 것이다. 신중탱의 경우 불기 2534년 음력 9월 19일에 흑칠금니로 조성하여 모시고 있다. 내부에는 불기 2545년 9월 5일에 '삼존불조성기'(2001), 불기 2546년에 '극락전 현판불사'와 '칠성각이전불사' 및 '칠성각현판불사'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영월암 극락전 벽화
영월암 극락전 아미타불
영월암 극락전 지장 탱화
영월암 동종
영월암 범종각
영월암 칠성각
영월암 성은정사
영월암 칠성탱
영월암 산신탱
영월암 용왕탱
영월암 전경
영월암 찾아가는 길
대전· 통영간고속도로 장수 톨게이트로 나와서 장수IC 삼거리에서 19번국도 장수 ․ 남원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장수읍을 지나서 13km정도 주행하면 개정삼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개정삼거리에서 13번국도 산서 ․ 임실방면으로 우회전하여 팔성사, 비행기재를 넘어 16km정도 주행하면 산서삼거리에 도착하여 721번 지방도로로 보절 ․ 남원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1km정도 주행하면 이룡 삼거리에 도착한다. 삼거리에서 남원 방면으로 우회전 하여 2.6㎞주행하면 봉서마을 정류소 삼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영월암 이정표방향으로 우회전하여 1km정도 주행하면 좌측으로 영월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영월암 이정표 길을 따라 좌회전하여 1km정도 산길로 주행하면 영월암에 도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