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을 향한 첫 걸음 - 악보와 음악용어에 대한 개괄적 이해 - The First Step to Music 전 상 직 (Sang-Jick Jun) | 약 력 | 음악을 포함한 모든 공연예술은‘창작(Creation)-공연(Performance)-감상(Appreciation)’이라는 세 단계를 거침으로서 완성된다. 즉 모든 공연예술은 ‘공연’이라는 ‘창작과 감상 사이에 놓인 매개 행위’ 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작과 공연 사이에는 문서, 또는 기호화된 매개체가 존재하는데, 음악의 경우 이 ‘기호화된 매개체’, 즉 작곡가의 음악적 의도가 약속된 기호들을 통해 기록된 것을 악보(Score, 樂譜)라고 한다.
따라서 음악가뿐만 아니라 음악애호가에게 있어서도 이 악전에 대한 이해, 즉 악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우리가 글을 읽고 쓰는 것 못지 않은 기본적 소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악보의 구성요소
따라서 5선, 음자리표, 조표, 박자표와 마딧줄, 이상 다섯 가지의 기본적 구성요소들은 마치 원고지나 모눈종이처럼 음악을 기록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틀로서, 작곡가는 그 위에 음표를 기입함으로써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을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의 음악이 악보화되기 위해서는 이 외의 다양한 기호와 연주 지시어를 필요로 한다. 대개의 경우, 오선 위에 놓인 음표를 통해 연주로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음높이와 리듬 뿐이다. 따라서 작곡가들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을 좀 더 세밀하게 기록하기 위해 악보 위에 음표 이외의 여러가지 연주 기호와 다양한 나타냄 말들을 써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용되기 시작한 음악용어들은 후기 낭만 시기의 독일 음악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태리어로 되어있는데, 이는 17세기의 이태리 오페라가 전유럽에 크게 유행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템포지시어
음악의 빠르기를 의미하는 템포(Tempo)의 사전적 의미는‘빠르기’가 아닌 ‘분위기 ’이다. 물론 특정 음악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 중의 하나가 빠르기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으므로 이를 단순히 악곡의 빠르기로 규정하는 것이 그다지 억지스럽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똑같은 빠르기를 지닌 음악, 다시 말해 한 박의 물리적 길이가 0.5초로 똑같은 두 곡의 음악이라 할지라도 각 곡의 선율적, 리듬적 특성에 따라 이 두 곡이 각기 전혀 다른 빠르기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음악에 있어서의 빠르기는 음악이 진행됨에 있어서의 절대적 속도가 아니라 제반 음악적 요소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변화되는 상대적 속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 박의 구체적인 길이(박의 수/1분)를 정확히 지시하는 멜첼 (J. Malzel, 1772~1838)의 메트로놈(Metronome) 숫자는 현대음악이 아닌 한 결코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베토벤(L,van Beethoven)의 교향곡 5번 ‘운명’ 1악장을 예로 들어 보자. ‘빠르고 활기있게(Allegro Con Brio)’라는 지시어와 M.M. ♩= 108( = 108/1분, ♩= 약 0.56초)로 지시된‘운명’의 1악장을 오자와(S. Ozawa), 아바도(C. Abbado), 그리고 카라얀(H. von Karajan) 등이 베토벤이 지시한대로 7분 15초 내외로 연주하였음에 반하여 번스타인(L. Bernstein)은 8분 45초로 연주하였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템포는 그 악곡의 절대적인 진행속도가 아닌 감각적인 진행속도, 다시 말해 제반 음악적 요소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유발되는 음악적 분위기, 즉 감상자가 느끼는 상대적 빠르기를 의미한다. 음악의 빠르기라는 것이 악곡의 맥락에 따라 좌우되는 감각적인 경험이고 보면, 악곡의 템포를 메트로놈 숫자를 통해 절대적 빠르기로 표시하는 것보다 빠르기말을 통해 그 음악의 분위기를 지시하는 것이 보다 음악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놓여 있다. 몇 몇 템포 지시어들의 본래의 의미, 즉 이들이 지닌 고유의 빠르기 이외에 이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살펴보자. 우선 똑같이 느린 템포를 지시하는 라르고(Largo)와 그라베(Grave)는 각기 ‘폭넓고 느리게’ 와 ‘느리고 장중 따라서 장송곡 등의 비감 어린 곡의 경우 그라베(Grave)라는 템포 지시어가 사용된다. 그 외에 느린 빠르기를 지시하는 안단테(Andante)는‘느린 걸음걸이’, 보통 빠르기를 지시하는 모데라토(Moderato)는 ‘절제하는, 중간의’, 빠른 빠르기를 지시하는 알레그로(Allegro)는 ‘즐거운, 행복한’, 매우 빠르게를 지시하는 비바체(Vivace)와 프레스토(Presto)는 각기 ‘밝고 생동감 있게’ 와 ‘서두르는’ 등의 고유의 음악적 분위기를 지시한다. 여기에 덧붙여 몰토(Molto : 매우),아싸이(Assai : 매우), 포코(Poco : 조금씩), 논 트로포(Non Troppo : 지나치지 않게), 메노(Meno : ~보다 적게) 등의 접두어, ~시모(~issimo : 더욱 ~하게), ~에토(~etto : ~보다 약하게) 등의 접미사, 그리고 비보(Vivo : 생동감 있고 활기 있게) 등의 형용사 등을 통해 보다 세밀한 음악적 분위기를 지시할 수 있다. 셈여림 기호
셈여림 기호 역시 악곡의 빠르기와 마찬가지로 음의 상대적인 셈여림을 지시한다. 앞서 언급한 메트로놈 숫자와 마찬가지로 음의 셈여림 역시 데시벨(Db)이라는 절대적 단위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러한 절대적 단위는 상대적 관계가 중요시되는 음악에 있어서는 무의미하므로 피아노(Piano)와 포르테(Forte) 등의 상대적 셈여림기호가 사용된다. 여기에 각각 ‘조금’ 을 뜻하는 접두사 메조(Mezzo)와 최상급을 뜻하는 접미사 ~시모(~issimo)를 붙임으로써 ff, f, mf, mp, p, pp 이상 여섯 단계의 셈여림 기호가 사용된다. 후기 낭만음악 이후 20세기에 이르러 포르테나 피아노를 5개씩 중첩한 예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사실상 바로크(Baroque)시기까지는 셈여림 기호가 거의 쓰이지 않았으나, 악기의 개량에 따라 음의 세기의 표현의 폭이 넓어지고, 이에 따라 음의 세기가 음악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취급되기 시작함으로써 셈여림기호가 점차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우리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소리의 크기’와‘소리의 셈여림’이라는 개념이 각기 ‘소리의 부피와 강도’ 라는 두 개의 상반된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소리의 크고 작음은 소리를 부피와 연관지어 규정한 것이고 소리의 셈여림은 소리를 강도와 연관지어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피아노(p)가 지닌 ‘작게, 부드럽고 평평하게’, 그리고 포르테(f)가 지닌 ‘크게, 강하고 단단하게’, 그리고 크레센도(Crescendo)가 지닌‘점점 크게, 발전하는, 성장하는’, 디미누엔도(Diminuendo)가 지닌 ‘점점 작게, 떨어지는, 감소하는, 점점 여리게’, 등 이들 용어가 소리의 양과 강도를 동시에 의미하는데 따른 현상이다. 그림 2. 성 요한 축일을 위한 찬미가 음이름과 계이름
그 여섯 음에 부여된 가사의 음절은 아래서부터 차례로 Ut, Re, Mi, Fa, Sol, La였다. 이후 17세기에 이르러 Ut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라틴어 Dominus로부터 유래한 Do로, 그리고 그 여섯 음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음은 성 요한 Sancte Ioannes의 약자 Si로 불려지게 되었다. 오역(誤譯)에 의해 곡해(曲解)되고 있는 음악용어들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우리의 사고가 언어, 즉 개념(Terms)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원뜻을 곡해한 용어의 사용(그것이 대부분 서양음악이 전래되는 과정에서의 오역(誤譯)에 의한 것들이지만) 이 음악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하여야 한다.
곡(曲)의 사전적 의미는‘구부러지다, 간절하다’, 그리고‘가락’이다. 가락은 물론 선율을 의미한다. 따라서 작곡이라는 단어는 고도의 지적, 기술적 작업을 통해 소리의 입체적 질서를 구축하는 소위 ‘음악 만들기’ 를 단순한 ‘선율 짓기’라는 초보적 단계에 머물게 하는 폐해를 끼칠 수 있다. 작곡을 의미하는 영단어는 구체적으로 Musical Composition, 즉‘음악적 구성’이다. 그러나 대중음악이건 순수음악이건 가리지 않고 수많은 한국 작곡가들이 선율작가에 머물고 있다는 현실은 어찌할 것인가? 원래 성악음악(Vocal Music)과 구분하기 위하여 기악음악(Instrumental Music)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 소나타(Sonata)는 하이든(J. Haydn)에 이르러 소나타형식이라는 견고한 구조를 지닌 음악으로 발전하였다. 제시부(Exposition : 주제의 제시), 발전부(Development : 주제의 발전?), 그리고 재현부(Recapitulation : 주제의 재현) 등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견고한 형식에 있어 ‘발전부’ 라는 용어 역시 전문가들에게 조차 곡해될 여지가 많은 용어이다. 영단어 발전(Development)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소나타형식의 중간부분에서 주제가 발전되어야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주제의 발전이란 과연 무엇인가? 발전이란 미흡한 상태로부터 보다 낳은 상태로 변화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미 제시된 주제가 불완전한 형태란 말인가? 소위 발전부에 나타난 주제의 형태가 보다 완결된 형태란 말인가? 아이러니칼하게도 제시부의 주제는 결코 불완전하지 않으며 오히려 발전부에 단편적으로 나타나는주제가 불완전한 형태이다. 따라서 이 중간 부분은 주제의 ‘발전부’ 가 아니라 ‘전개부’ 라고 해야 마땅하다. 영단어 Development와는 달리 독일어 용어는 이를 정확하게 ‘전개부(Durchfuhrung)’ 라고 부른다.
‘ 딸림’은 ‘부수적인, 종속된’ 등의 의미를 지니므로 결과적으로 딸림음은 으뜸음에 종속된 부수적인 음이란 뜻이 된다. 그리고 많은 음악인들조차 이를 당연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딸림음을 의미하는 도미난트(Dominant)는 이와 정반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지배적인, 우위를 점하는’ 마찬가지로 버금딸림음(Sub Dominant, 파) 역시 ‘버금가는 딸림음’ 이 아닌 ‘으뜸음의 5도 아래 (Sub-)에 놓인 지배적인 음’으로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음악용어들
요즘 출시된 커피음료 칸타타(Cantata)는 루터(M. Luther)의 종교개혁 이후 카톨릭의 예배음악인 미사(Mass)를 대신하는 루터교의 예배음악을 의미한다. 이는 이후 특정 역사적 사건이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대규모의 성악음악,즉 교성곡(交聲曲)으로 확대되었다. 20세기 중엽 명동의 명소였던 다방 돌체(Dolce) 역시 ‘부드럽게’ 연주할 것을 지시하는 음악용어인데, 그 외에도 아마빌레(Amabile : 우아하게) 또는 칸타빌레(Cantabile :노래하듯이) 등의 커피숍 상호는 못해도 전국에 수 십개는 있지 않겠나 싶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음악용어는 모 완성차 업체의 차명(車名)들이다. 승용차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라 할 수 있는 ‘달리기’ 및 ‘속도’ 와 템포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활용한 1980년대의 소형승용차 프레스토(Presto :‘ 서두르는’,‘ 기민한’등을의미하는 템포지시어), 화려한 색채와 깜찍한 디자인으로 강인한 인상을 심고자 했던 1990년대의 소형승용차 액센트(Accent : 특정음을 강조하는 기호), 행진곡을 의미하는 1990년대의 대형승용차 마르시아(Marcia), 합창을 의미하는 중형 버스 코러스(Chorus), 그리고 베스트 셀링카라 할만한 소나타(Sonata, 음악역사상 가장 완성도가 높은 기악 음악 장르) 등이 그 예인데, 그 차를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그 이름을 통해 추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 외에, 주거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라는 의미의 주택 브랜드 더 샵(The Sharp, # : 반음 올리는 기호), 입는 이의 품격을 높인다는 의미의 의류 브랜드 마에스트로(Maestro : 위대한 지휘자, 대 음악가),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는 의미의 화장품 브랜드 에튀드(Etude :연습곡) 등 그 예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만큼 많은 음악용어들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파고들어 있다.
음악을 감상한다, 음악을 이해한다…….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예술이 바로 음악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깊게 접근하기 어려운 예술 역시 음악이다.
그래서 이 사회의 교양인들 조차도 음악에 관하여는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아니 당당하게 말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하지만 풍요로운 의식주와 해박한 지식이 있으니 이미 이 시대의 평균 이상의 교양인으로서 이미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생각은 큰 오해이다. 아직 내가 모르고 있는 아름다운 세계가 남아있으니까. 경험해 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도,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무의미한, 그래서 순수함으로 가득한 세계가…… 기획 : 남경필 편집간사 대한토목학회 THE MAGAZINE OF THE KOREAN SOCIETY OF CIVIL ENGINEERS |
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