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도 전쟁 중
내 나이 올해 69세인데 첫돌이 지나고 1개월 만에 6.25를 겪었다. 엄마는 나를 등에 업고 피난길에 나섰다. 여름이라 밤이면 모기떼가 극성을 부려 내가 울기라도 하면 인민군들이 아기울음 소리 듣고 총을 쏘면 자기들까지 다 죽는다고 나를 버리고 가라 했단다. 나중에 커서 엄마께 들은 얘기로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도 실제로 많다고 하셨다. 엄마는 내가 첫 아이라 차마 버릴 수는 없었고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자고 끝까지 나를 버리지 못하셔서 휴전 후 지금까지 살아있다. 돌이켜 보니 온갖 고생만 하시다가 세상 떠나신 엄마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군복무 중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통신하사로 근무하였다. 그날도 동료 병사들과 야외로 전화선로 보수를 하고 있었다. 점심때 쯤 본부에서 긴급하게 부대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있어 부대로 돌아왔다. 인원미상의 부대가 시내버스를 탈취하여 영등포방면으로 진입하여 교전중이라는 정보였다. 전군에 비상이 발령되고 개인에게는 실탄이 지급 되었다. 금방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로 신병들은 거의 죽을상이 되었다. 하사인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 전쟁이라도 나서 출동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우리는 북한군이 아닌 후일 “실미도 사건”으로 불리는 일이 일어났었음을 알았다. 전쟁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했었던 기억이 난다. 또 내가 군에 복무할 때(70년-73년)가 월남전이 한창일 때였다. 월남 파병을 위한 지원병 차출이 상급 부대로부터 계속 내려온다. 좋은 보직은 다 빠지고 제일 어렵고 가장 힘든 병과와 보직만 배당된다. 실제 나의 하사관학교 후배는 태권도 교관으로 차출되어 파병이 되었다. 생사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상급부대에서 명령이 나면 파병을 가야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어림없겠지만(부모허락?)
지금 마흔인 큰딸이 여섯 살 때 이니까 약 34년 전일이다. 수원 파도풀장에서 딸들과 즐거운 여름 휴일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 텐트가 술렁거리기에 가보니 마침 라디오를 켜놓고 있다가 북한 비행기 1대가 수도권 상공으로 진입했다는 긴급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가능하면 야외활동은 삼가라는 말까지 했다. 아직은 북한 공군기라는 것만 알고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른단다. 모처럼 큰맘 먹고 어린 딸 셋을 모두 데리고 수원에 있는 파도풀장 까지 왔는데 점심도 못 먹은 시간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주변 사람들이 알면 서로 먼저 나가려고 큰 혼란이 일어날 것 같아 나만 살겠다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식구들만 데리고 몰래 빠져 나온 기억이 난다. 가슴이 콩닥콩닥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모처럼 풀장에서 놀다가 갑자기 집에 데려왔으니 기분이 완전 상했다. 집에 도착해서 뉴스를 들으니 북한 조종사가 귀순 했단다. “약빠른 고양이 밤눈 어둡다”는 속담처럼 차라리 몰랐다면 하루 종일 잘 놀다 올 것을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누굴 탓 하겠는가? 다 내 탓인 것을 ...
이일이 있은 후 몇 년이 지난 초여름 어느 날로 기억한다. 과천 관악산계곡에서 가족들과 텐트를 치고 휴식을 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바깥활동 중인 국민들은 모두 건물 안이나 대피소로 대피명령이 내려졌다. 훈련 상황이 아니고 실제상황이라고 방송을 했다. 우리도 부랴부랴 짐을 싸서 집으로 왔다. 막상 집에 오기는 했지만 전쟁이 나면 뭣부터 준비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막막했다. 시골로 피난을 가야하나? 애들은 어떻게 하나? 돈은 얼마나 준비해야하나?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전쟁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 이사건 역시 북한군 조종사가 귀순한 사건이었다.
또 얼마간 세월이 흘렀다. 나는 약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근무하는 본사에서 근무하던 때다. 나는 직장예비군에 편성되어 있었고 사내에는 비상계획실 이라는 부서도 따로 있었다. 어느 날 오후 근무시간 중에 사무실 스피커에서 갑자기 민방위훈련 때나 듣던 방송이 나왔다. 실제상황 이라면서 북한에서 숫자미상의 공군기가 수도권 상공으로 침공하여 비행중이라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사내 은행창구는 현금을 찾으려는 직원들로 만원이 되고 구판장에는 생필품이 동나고 공중전화는 불통이 되고 여직원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심지어는 조퇴하는 직원까지 있었다. 나는 현역으로 군 생활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겁이 났다. 전쟁이 나면 우선 가족들이 제일 걱정이다. 먹고사는 문제도 그렇고 생명도 보장 이 안 되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로 막막했다. 이번에는 북한공군 조종사가 저 멀리 남쪽 군산비행장 까지 가서 귀순하는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당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잠시나마 심각하게 혼란스러웠다. 더욱 심각한 것은 퇴근 후 집에 오니 아내와 애들은 낮에 있었던 일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방송만 안 들었다면 알지도 못하고 지나갈 일인데 직장에서는 그런 소란을 피웠다니? 비상물품이라도 집에 준비해 둬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실제로 비상시에 필요 한 라면. 밀가루, 양초, 식수, 가스, 가스레인지, 성냥, 랜턴 등은 이런 일 이 한번 씩 있을 때마다 상점에서 매진된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천안함 폭침 사건, 백령도포격 사건 등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 지금은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와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뉴스는 더 가관이다. 북에서 수도권을 타격하는 시나리오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고 매시간 뉴스마다 입에도 담기 어려운 전쟁용어들이 남북한 사이에 오가고 있는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내 자식들이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처럼 돈이라도 많다면 외국으로 유학도 보내고 외국에 집도 사놓고 할 텐데. 마침 시골에 집이 있다. 그런데 시골집이 있는 고향 근처 성주에 사드포대가 주둔했다. 그야말로 지금의 전쟁은 전방과 후방의 구분이 없다. 오로지 죽느냐? 사느냐? 그것만이 문제인 것 같다.
이 같은 현실에도 익숙해진 우리는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내일의 희망을 보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인가보다. 우리보다 좀 못산다고 동남 아시아인들을 다소 얕잡아보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동남아 여행을 가보면 모두가 표정이 너무 밝은데 놀란다. 우리보다 훨씬 행복해 보인다. 내가 가 본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괌도 그렇고 너무너무 여유가 있어보였다. 나는 요즘 매일매일 기도한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제발 전쟁 없는 나라를 만들어 물려 줄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고 기원한다. 부처님 전 발원합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전쟁 중인 나라 대한민국을 전쟁에서 구원해주시고 전쟁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도와 주시 옵 소 서. 나무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