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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 뒷자리는 0419" 국민 역사샘 설민석 8문 8답
2015.08.28 16:57 | 박민정 | @nanamjmj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귀에 박힌다. 최근 SNS에서 '국민 역사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설민석(45) 강사가 그 주인공이다.
설민석 강사의 역사 강의 동영상이 유독 인기를 끄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특수효과, 과장된 몸짓, 성대모사 등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가미해 영상을 시청하는 수험생의 눈을 사로잡는다. 또 직접 역사 속에 등장하는 지역에 가서 보충영상을 찍기도 한다.
공부를 막 시작하거나 흥미가 없는 학생들에게도 재미있는 암기법으로 인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는 '미미광어'(신미양요, 미국, 광성진, 어재연)가 있다.
'미미광어' 설명에 등장한 특수효과 / 이하 유튜브 영상 캡처
설민석 강사는 영화 해설강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화 '명량', '암살' 등의 해설 강의를 제작해 SNS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영화 '암살' 해설 강의
그도 처음부터 역사에 관심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사와의 만남은 '운명' 같았다고 강조했다.
설민석 강사는 "아버지께서는 4.19 혁명 때 이승만 대통령 하야를 요구한 대표 세 명 중 학생 대표로, 대통령의 하야를 설득했다"며 "아버지에게 4.19 혁명은 큰 자부심이다. 집 전화와 아버지 휴대폰 뒷자리가 아직도 0419다. 컬러링은 애국가"라고 밝혔다.
이어 "나 역시 이러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나도 모르게 올바른 역사의식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강의 중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설민석 강사는 "우리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며 "반 만 년 역사를 살펴보면 매순간이 위기의 순간이었고,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는 고난의 역사였다. 이러한 고난의 역사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위인들의 희생과 노력을 살펴보면 눈가가 촉촉해진다"라고 설명했다.
'설민석 선생님의 안중근의사와 윤봉길의사 이야기' 강의 중 울먹이는 설민석 강사
20년 전 보습학원 강사에서 출발해 대형 수험학원의 대표 역사 강사이자 한국사 전문 교육기업까지 차린 설민석 강사, 그가 위키트리에 전한 이야기다.
1. 한국사 강의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학비마련을 위해 한국사 강의를 시작했다. 제대 후 대학에 갔는데, 학비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막노동부터 산타클로스까지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그러다 한 학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학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학생들에게 좋은 강의를 제공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강의 준비에 투자하였고, 역사책을 보며 공부하다 보니 역사에 심취하게 되었다.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인생의 여러 고비를 넘길수록 한국사에 대한 애착은 더 커졌고, 이 일이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하여 이 땅에서 20년째 한국사 강의를 하고 있다.
2. 한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아이러니하게도 어렸을 적엔 한국사를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학창시절 동안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를 지겨워하는 학생 중 하나였고, 장난을 좋아하는 개구쟁이에 가까웠었다. 지금의 ‘선생’일을 할 줄, 어렸을 적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생각해보면 한국사와 운명같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아버지께서는 4.19 혁명 때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 대표 세 명 중 학생 대표로서 대통령의 하야를 설득하셨다. 아버지에게 4.19 혁명은 큰 자부심이다. 집 전화와 아버지 핸드폰 뒷자리가 아직도 0419다. 컬러링은 애국가다. 나 역시 이러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나도 모르게 올바른 역사의식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가정교육의 효과일까? 대학 시절 막연하게나마 ‘사극 연출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극은 ‘용의 눈물’이다. 이런 사극을 만드는 연출가가 되고 싶었다. 뮤지컬 명성황후처럼 우리 역사를 작품으로 만들어 대중은 물론, 외국인과 해외 동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어렸을 적 꿈꿨던 내 미래를 대중적 역사 강의를 통해 조그마하게나마 이룰 수 있어 요즘 행복하다.
3. 강의 중 눈물 흘리는 선생님 모습이 SNS에서 확산되며 화제가 됐었다. 당시 왜 울었는지.
가끔 강의를 하다가 감정에 복받칠 때가 있다. 우리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반 만 년 역사를 살펴보면 매순간이 위기의 순간이었고,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는 고난의 역사였다. 이러한 고난의 역사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위인들의 희생과 노력을 살펴보면 눈가가 촉촉해진다. 충무공 이순신, 도마 안중근, 매헌 윤봉길 이들도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대중들에게 역사 속 위인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있게 전달하기 위해 공부하다 보면 점점 위인이 아닌 인간을 만나게 된다.
아들의 수의를 직접 만들어 보냈던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남은 두 아들과 부인에게 편지를 전하고 훙커우 공원에 폭탄을 던졌던 윤봉길, 역사 속 위인 이전에 인간으로서 느꼈던 고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렸던 결단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것 같다.
4. 강의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 있다면?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내용을 말해주는 강의, 듣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는 강의가 좋은 강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보는 강의와 일반 대중들이 보는 강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다르다. 학생들이 보는 강의는 입시에 최적화된 내용을 전달하는 강의가 좋은 강의라고 생각한다. 학생성적을 올리는 강의가 본질이다. 하지만 재미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강의의 지론이다. 그래서 칠판에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고, 심지어 성대모사도 한다.
TV예능에서 많이 사용하는 CG까지 강의에 활용하기도한다. 학생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칠판 벽을 타기도 한다. 수험생은 웃을 일이 거의 없다. 시험에 지친 학생들에게 지식 전달뿐만 아니라 웃음까지 줄 수 있는 선생이 되고 싶다. 좋아하는 학생들의 수강후기를 보며 내가 하는 강의에 큰 보람을 느낀다.
반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는 최대한 진지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대중들이 보는 강의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대중이 한국사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은 내 강의가 아니라도 웃을 수 있는 곳이 많다. 재미보다 전문성에 집중하여 강의를 만든다. 또 듣는 대상에 따라 맞춤 강의를 준비한다.
주부님들 앞에서는 역사를 통해 알아보는 자녀교육법,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 앞에서는 전쟁사 강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는 리더십 강의를 진행한다. 자신이 필요한, 듣고 싶은 내용을 전달해야 좋은 강의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일생생활에 접목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이런 맞춤 강의를 위해 우리 연구진과 몇 주 동안 끊임없이 토론하고 연구한다. 듣는 이의 NEEDS를 충족시키는 강의, 그러면서도 올바른 한국사를 알려야 하는 것이 나의 책무라 생각하고, 재미와 함께 사실성, 객관성에 근거한 유익한 강의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5. 우리가 한국사를 공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선택의 연속인 인생에서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지표로써 역사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교훈을 얻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올바른 역사학습을 통해 개인의 발전을 넘어 민족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보통 역사라고 하면 과거에 일어난 단편적인 사실을 학습하는 지루한 학문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역사는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학문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동떨어진 학문이 아닌 밀접한 관계를 가진 학문이다. 최근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최악으로 다다르고 있는 이때 독도를 둘러싼 일본의 망언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상대방 논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또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북한의 정치상황 급변 시 중국이 한반도로 개입할 수 있는 역사적 명분을 쌓기 위한 프로젝트이므로 올바른 역사 학습을 통해 그들의 잘못된 논리에 올바른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 이렇듯 역사는 현재의 이슈와 뗄 수 없는 현실적인 학문이며 우리가 한국사를 공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6. 영화 '명량', ‘국제시장’, '암살', '관상', ‘광해’ 등의 역사 인터넷 강의를 제작했다. 계기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페셜 인강을 시작으로 영화와 접목된 역사 강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관상, 역린, 명량, 국제시장 최근 암살까지 여러 영화의 역사 해설 영상을 만들게 되었다. 이러한 영상을 만드는 이유는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그 시대 배경, 인물, 사건들을 배우고 영화를 보면 10배의 재미와 100배의 감동을 느끼게 된다.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보시는 것을 넘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국사가 이렇게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통한 역사 해설 강의 영상을 보며 많은 분들이 영화사에서 준비한 대본을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닌지 물어보신다. 철저히 우리 연구실에서 제작한다. 시나리오, 컨셉, 대화, 심지어 촬영, 편집, CG까지 전담하여 진행한다. 영상 한 편을 제작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진, 촬영스텝과 소통하며 만든 작품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영화 해설 강의를 하기 전 내가 기획하여 한국사 대중화를 위한 제작했던 스페셜 영상들이 있었다. 독도, 한라산, 백두산, 상해임시정부, 서대문형무소 등 역사적 의미가 있는 현장을 발로 뛰며 촬영했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고생했던 경험이 지금 더 재미있고 유익한 영화 해설 강의를 만들 수 있는 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한 한국사 알리기 영상을 제작할 뿐 아니라, KBS와 함께 제작한 ‘설민석의 십장생 한국사’도 팟캐스트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제공되고 있다. 모두 한국사 대중화를 위한 프로젝트로 이러한 영상을 통해 국민들이 한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7. 선생님이 좋아하는 역사 속 인물을 꼽아 달라.
존경하는 하는 인물을 꼽자면 항상 세 인물을 꼽는다. 바로 세종대왕과 정조,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다. 굳이 한 분을 꼽자면 바로 세종대왕이다. 우리 역사에서 ‘대왕’이라고 불리는 왕은 딱 두 명인데, 광개토대왕과 세종대왕이다. 이 중 세종대왕은 셀 수 없이 많은 업적을 남기신 분이고, 그 업적도 한쪽으로 편중된 업적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큰 획을 그은 위인이다. 하지만 내가 세종대왕을 가장 존경하는 위인으로 꼽는 이유는 단지 많은 업적을 남겨서가 아닌 업적 모두가 바로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말년에 거의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그 어려움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한글이다.
조선에서 글자는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글자를 알아야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책을 통해 이치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권층은 일반 백성들이 글자를 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생각은 달랐다. 옳고, 그름을 몰라 백성들이 죄를 짓는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죄가 없어도 글을 몰라 억울함을 호소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눈을 버려가면서 만든 것이 바로 훈민정음이다. 바로 애민에서 비롯된 최고의 업적이 아닌가 생각한다.
8. 한국사 공부, 어떻게 하면 되나.(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면)
학창시절부터 우리가 한국사를 어려워하고 재미없어한 가장 큰 이유는 딱딱하고 지루한 암기 위주의 강의였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이도 지루하고 듣는 이도 지루한 강의는 한국사 학습 자체를 포기하는 수많은 한포자(한국사 학습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양산했다. 한국사 학습 특성상 암기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암기량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역사 이야기를 듣는 듯한 스토리텔링식의 강의를 통해 즐겁게 학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여 줄기를 학습하고 세부적인 내용은 암기를 통해 줄기 위에 살을 붙인다면 효율적으로 한국사를 학습할 수 있다.
단기적 목표를 설정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수험생이 아닌 경우 교양 차원에서 스스로 한국사를 학습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응시하고 있는 시험으로 자신이 가진 역사적 소양을 확인할 기회이자, 앞으로의 수능준비, 취업준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이다. 수업이 아닌 교양의 목적으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한국사를 학습한다면 전반적인 한국사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키워드 | 설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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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저 사람 만큼 역사를 잘 가르키고 아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광고가 너무 심하다. 광고가 아니라면 광고성 밀어주기 기사가 도를 넘는다.
이것이 기사인지 광고인지 광고성 기사인지 현명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설민석이 역사를 배웠다는 그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에 있었을줄이랴?
윗글 2.에서 설민석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것은 자충수이다.
"아버지께서는 4.19 혁명 때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 대표 세 명 중 학생 대표로서 대통령의 하야를 설득하셨다. 아버지에게 4.19 혁명은 큰 자부심이다. 집 전화와 아버지 핸드폰 뒷자리가 아직도 0419다. 컬러링은 애국가다. 나 역시 이러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나도 모르게 올바른 역사의식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
설민석의 아버지는 설송웅씨다. 정체성이 있는 분인지 의심스럽다.
위키백과에 보면 나온다.
설송웅(偰松雄, 1942년 8월 10일 ~ )은 16대(2000~2004) 국회의원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본관은 경주이며, 이투스교육 역사과 강사인 설민석은 그의 아들이다.
만주에서 태어나 서울 중동고등학교를 졸업(54회)한 뒤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중퇴했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카자흐스탄 국립대학교 명예 정치학 박사 및 명예교수이다.
4·19혁명 위령탑 건립추진위원회 학생위원장(그는 4.19혁명 당시 시민대표 중 학생대표로서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한민족 사상연구회 회장, 사단법인 4ㆍ19 회장, 신민주공화당 용산지구당 위원장, 초대 민선 용산구청장, 새천년민주당 용산지구당 위원장,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간사, 새천년민주당 총재특보를 역임하였다.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해 반(反)노무현 세력으로서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약칭 후단협)에 몸을 담았었으나, 친(親)노무현 인사들과 한나라당 탈당파가 추진하는 개혁신당에 가담해 열린우리당 소속이 되었다. 그러나 17대 총선에서는 불출마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나, 현재는 지역간 대통합 정신에 입각하여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100% 대한민국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 총괄본부장을 맡고있다.
4.19 혁명때 이승만에게 하야를 요구한 사람이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용산지구당 위원장→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새누리당으로 옮겨 다니면서 4.19와 역사 운운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세기 현 한·중친선협회장(79)도 마차가지이다. 4.19 혁명 당시 고려대학교 정경대 학생회장출신으로 전두환독재정권에 들어가 4선 의원과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이 사람도 4.19를 말할 자격 없다.
현재 국민대통합위원회는 김대중에서 떨어져 나간 한광옥이 위원장을 하고 있고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13년간 복역하고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종현을 간첩이라고 주장한 김현장과 전두환정권에서 중앙위원과 국회의원을 지낸 연기자 이순재도 위촉위원이다.
위촉위원
김현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국제협력위원장
광주5·18민중항쟁동지회 회장
광주·전남국민통합 2012 의장(현)
이순재
현) 가천대학교 연기예술과 석좌교수
현) SG연기아카데미 원장
제14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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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그림이 갑자기 사라졌는데 아무래도 누군가의 부탁으로 카페에서 무단 삭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