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급: 안경로(安景老)
수취: 예조(禮曹)
· 작성지역 한성부 / 서울특별시
· 작성시기 1561년
· 형태사항 크기: 86x86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갈전 순흥안씨 안계종 종가 / 현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1561년(명종16) 에 안경로 (安景老: 1527~92)가 과거에 응시하여 제출한 시험 답안지이다.
그의 후손가에 생원시 합격증이 함께 전하므로 본 답안지 또한 그 해에 제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앞부분에는 응시자가 인적사항을 기록하였고, 이어 시험 문제를 옮겨 적었고, 다음으로 실제 답안을 썼다. 오랜 세월 전해지다 보니 후반부는 떨어져 나가고 없다.
인적사항으로 응시자 본인과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외할아버지의 관직과 성명, 본관을 밝혔다. 이 부분을 접어 말아 봉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채점자가 답안 제출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도록 하여 부정을 방지한 것이다. 답안 중간에 먹으로 크게 “二之十二”라고 써두었다. 이는 채점 후 순위를 매긴 기록이다. 이를 근거로 시험문제가 시작되는 부분에 ‘생원 2등 제12인으로 추천한다’는 별지를 붙여두었다. 실제로 그는 이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선발자 100명 가운데 17번째에 해당하는 우수한 성적이었다.
幼學 安景老 (1527~92)가 生員試에 응시하여 2等이 12人에 擬望된 試券이다. 후반부는 결락되었다. 시권에 흔히 쓰는 두터운 종이이다 보니 풀로 붙여 연결하였던 뒷부분이 후에 떨어져 나간 것이다.
安東 葛田에 있는 그의 후손가에 白牌가 함께 전해지므로, 1561년(명종16) 에 2등 12인(100명 중 17등)으로 入格한 생원시 시권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문서 첫 머리에 작은 글씨로 쓰인 것은 응시자의 인적사항이다.
자신의 관직, 성명, 본관, 거주지를 밝히고, 이하로는 四祖의 관직과 성명, 본관을 적기하였다. 채점자가 답안작성자를 알 수 없도록 이 부분을 접어 말아 봉한 흔적이 남아있다.
다음은 ‘問’으로 시작되는 試題이다. 마지막은 그에 답변으로 이 문서의 본문에 해당한다.
답변 중간에 먹으로 크게 쓴 “二之十二”는 채점 순위 기록이다. 이를 근거로 2등 12인으로 의망하여 이를 別紙 처리해 두었다.
幼學安景老 本順興 居安東
父天文習讀官宣務郞 洵
祖天文習讀官宣務郞 繼宗
曾祖禦侮將軍忠武衛副司直 建
外祖忠順衛秉節校尉 權欚 本安東
生員二等第十二人望
二之十二
問子曰不知命無以爲君子又曰五十而知天命然則
未五十不得爲君子歟子曰不病人之不己知又曰莫
我知也夫然則未聖人亦病人之不己知歟願聞其說
對命雖可以〔不可不〕知而又有不可易知之理學〔道〕雖〔及〕求諸已而又
有不及知之妙知此說則其於聖人前後之言何疑
之有何者盖死生禍福之際富貴貧賤之間固有素
定之分而不可易者命也苟或不知其命則願外之心
由是而滋也安分之意何自而生乎見利而必趨遇害
而必避矣果可謂君子者乎是以知命者隨遇而安
不激其倖素位而行不願其外君子之道何以加此此
夫子之所以以知命勉進後學之者也至於天命者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