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알렉산더 피터스(피득) 선교사 이야기(5)
-1911년판 구약 번역과 1938년판 구약개역 과정(상)-
피터스 선교사의 가장 큰 업적은 여러 가지 중에서도 구약성경 국역 사역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개역개정판 이전의 개역성경의 원형이 1938년판 성경전서인데, 피터스가 구약성경 전권의 개정작업을 마무리하고 완간을 책임진 것은 커더란 공헌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성경번역과 출판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제약과 선교사들이 시간을 쪼개서 번역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지지부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피터스는 번역 업무에 최적화된 선교사로서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자신의 사명을 다했다. 오늘 이야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구약 성경전서가 출판된 1911년판과 개역판인 1938년판의 번역 과정들을 2회에 걸쳐 살펴보면서 피터스의 활약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신약에 비해 늦은 감이 있었던 구약의 번역은 1889년에 이르러 선교사별로 번역 범위를 정하고 업무를 시작하였다. 아펜젤러(창세기, 출애굽기), 언더우드(시편), 트롤로프(잠언- 성공회 선교사였던 트롤로프는 곧 그만두었다), 레이놀즈(여호수아, 사사기), 게일(사무엘상․하), 스크랜톤(이사야)이 번역위원이었으나 각 교단 선교부에 소속된 선교사들이었기 때문에 번역 일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해 속도를 내지 못하였다. 게다가 아펜젤러와 조수 조한규가 1902년에 번역위원회 모임이 열렸던 목포로 향하던 중 선박사고로 순직하는 바람에 업무가 중단되었다. 1904년에 위원을 새로 정비하여, 언더우드, 게일, 레이놀즈(한국명: 이눌서) 등이 번역을 계속 해나갔다. 1906년에는 게일이 휴가를 갔고, 언더우드는 건강상의 이유로 휴양을 떠나면서 레이놀즈가 공번위를 이끌었다. 이때 피터스와 W. G. Cram이 충원되었다.
당시 공번위가 사용한 구약본문은 The Rivised Version(RV)이나 The American Standard Version(ASV)이었으며, 피터스 외에도 언더우드, 게일, 레이놀즈가 히브리어 원전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한다. 중국어역, 일어역, 라틴어역, 불어역, 독어역, 그리고 얼마동안 러시아역도 사용하였다. 주석은 델리취 주석(Keil)-Delitzsch)과 국제주석(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ICC)을 사용하였다. 신명사문자(YHWH)는 피터스가 시편촬요(1898)에서 사용한대로 “여호와”와, 엘로힘은 “하나님”으로 번역되었다. 우리나라 성경에 “하나님”이란 용어가 정착하게 된 것은 1882년 로스 역 누가복음에서 유래한다. 당시 순수 우리말에 있던 “하느님”(하늘님)과 “하나님”이란 용어를 가져온 것이다. 로스 역 누가복음은 처음에 “하느님”으로 했다가 곧 “하나님”으로 정정하였는데, 이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1911년판 성경전서의 구약 번역은 레이놀즈가 이끌던 “전주번역분과”의 활약이 컸다. 전주번역분과는 레이놀즈가 남장로교 선교부의 지시로 서울에서 전주로 지역을 옮기면서 생긴 분과이다. 한국인 위원은 김정삼, 이창직, 이승두(전주로 내려가면서 이창직 대신에 합류)가 함께 하였다. 한국인 위원들의 작업 방식은 한문성경이나 일본어성경과 대조하여 내용을 검토하고, 국역문체를 다듬는 일을 주로 하였다.
레이놀즈는 선교부의 허락을 얻어 번역작업에만 몰두한 결과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레위기, 신명기, 룻기의 초역과, 여호수아, 사사기 개선, 역대기상․하, 에스겔, 느헤미야, 에스라, 아가, 다니엘, 예레미야 애가, 스가랴를 제외한 12소선지서를 번역했고, 게일은 잠언, 사무엘상․하를 초역하였고, 욥기, 호세아의 번역본을 전주분과에 보내 검토를 받았다. 게일이 번역한 예레미야는 유일하게 레이놀즈의 손을 거치지 않고 언더우드의 검열을 받아 낱권으로 인쇄하였다. 언더우드는 스가랴를 번역하였고, 피터스는 전도서를, 감리회 선교사였던 E. F. Hall이 사역한 말라기는 그대로 공번역으로 채택되었다. 구약의 번역서들은 번역이 끝날 때마다 대부분 낱권으로 간행되어 나왔다. 1906년부터 1908년까지 간행된 낱권들은 창세기, 시편, 잠언, 사무엘상․하, 말라기, 출애굽기, 열왕기상․하, 이사야 등 총10권이었다. 레이놀즈는 5년여 만인 1910년 4월에 번역작업이 끝났음을 대영성서공회 서울지부에 알렸다. 그리하여 1911년 3월 9일자로 일본에서 신구약전서 3권(구약 2권, 신약 1권)이 인쇄되어 나왔다.
신구약전서는 출판하자마자 각계각층에서 비평이 이어졌고, 개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국한문체 역본과 관주성경이 필요하다는 요청도 많았다. 언더우드, 게일, 레이놀즈는 공번위에 이어 개역위원으로 계속 일하였다. 대영성서공회(BFBS)는 33항목의 번역규칙을 담은 소책자(RGTRE)를 위원들에게 배부하였다. 구약 번역은 최신판 히브리어 성경본을 저본으로 사용할 것과, 원어에 익숙하지 못한 번역자는 영역 AV, RV나 BFBS가 1901년에 허가한 역본을 사용해도 좋다고 하였다.
1911년판 성경전서는 이전에 낱권으로 출판되었던 한계 때문에 고유명사 음역표기가 제각각이었다. 보완을 위해 레이놀즈가 한국인 조수들과 함께 단일화작업을 하였고, 게일도 국한문체로 바꾸는 작업을 하였다. 대영성서공회의 총무 민휴(H. Miller)는 RV(Oxford판)을 본보기로 하여 국역 관주성경을 준비해온 결과, 1926년에 국한문체의 구약과 관주 구약성경을 출판하였다.
언문으로 된 구약본문의 개역은 1915년 황해도 구미포 송천(소래) 해변에 있는 언더우드 별장에 모여 시작하였다. 언더우드와 레이놀즈가 이사야를, 게일도 따로 개역을 진행시켰다. 1916년 10월에 언더우드가 별세하면서 기이부(E. M. Cable)와 도마련(M. B. Stokes) 선교사가 가세하였다. 개역위원회는 주5일간 하루 2시간씩 함께 모여 일했다. 이후로 Stokes가 빠지고, 왕길지(G. Engel)와 어도만(W. C. Erdman)선교사가 새로 들어왔다. 어도만은 원전어 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곧 사임하였다.
한편, 게일은 개역을 주도하면서 1921년에 창세기 개역본문을 시범으로 인쇄하여 먼저 선교사들에게 선을 보였다. 게일의 번역 원칙은 RGTRE 규칙서를 따르기보다는 “순수한 한국말”로 옮겨놓아야 한다는 소신으로 히브리어 원문의 특징이 사라진, “문자적인 직역보다는 자유스러운 의역”에 초점을 맞춘 결과, “단축된 풀이역”이라는 큰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의 경우 “엘로힘”이라는 주어가 히브리어 원문에는 32회 나오지만, 게일은 한국어 번역문체를 살리기 위해 18번을 생략해버렸다. 창 1장 26절의 경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를 “우리 형상대로”라고 번역하였다. 창 39장 1절에서는 “애굽사람 보디발”을 “보디발”로 번역하였다. 개역위원회가 “RGTRE”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방향을 재조정하자 게일은 1922년 사퇴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자신의 주도로 작업한 개역 원고(전체 원고의 90%)를 상임성서실행위원회의 요구로 내어놓았다. 게일은 1925년 12월 서울 창문사에서 사역 성경인 “새번역” 게일 역 성경을 출간하였다.
다음 회에 계속...
<참고문헌>
김중은, “구약성서국역사(舊約聖書國譯史)”, 『구약의 말씀과 현실』(서울: 도서출판 한국성서학, 1996).
첫댓글 레이놀즈의 이름을 이눌서로 음역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초대 선교사들의 이름이 성경번역의 역사에 등장하는 것도 반갑고요.
좋은 퀄리티의 글을 올리셔서 감사합니다.
본문에 나오듯이 하늘님,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호칭한 것은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incommunicable attributes) - 독립성 불변성 무한성 - 을 가장 잘 나타내주니까요.
장코뱅님의 댓글에 감사합니다. 이씨는 전주이씨라고 합니다. 레이놀즈는 남장로교 선교부 개척자로서 전주에 정착한 관계로 전주이씨라고 한 것 같습니다.
개신교라고는 하지만 천주교적 요소가 남아 있는 성공회의 선교사 트롤로프가 번역위원에서 중도하차 한 것은 나쁘지 않은 일 같습니다. 이 글 꼼꼼히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말 성경번역의 역사를 알려 주셔서 유익하고 감사합니다. 본문과 위의 분들 댓글들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성경번역에 있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네. 그렇지요. 성경번역은 너무나 귀한 사역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간섭과 인도하심이 각별한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기대가 됩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카툰으로 만들어 교회학교 청소년들에게도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 좋은 아이디어네요. 공감과 댓글에 감사합니다.
아파르님의 아이디어가 참 좋은 것 같네요^^ 카툰으로 만들면 복잡하고 숫자가 많은 인물들의 관계를 잘 정리할 수 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