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상_구룡연-만물상을 화폭에 담고
옥류동 계곡 중 가장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지고, 수려한 산세들이 골짜기 양쪽으로 깊숙이 맞은편 준봉들과
절묘한 조화를 연찰하고 있는데 멀리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곡선의 구름다리가 그림같이 놓여있다.
글 | 임무상 작가노트
[2009. 12. 2 - 12. 8 가가갤러리]
[가가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81-1(인사동사거리-홍치과 위층) T. 725-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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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사흘 기행을 작정하고 금강산 산행이 시작되는 첫날, 옥류동 계곡과 구룡연을 찾아, 온정리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외금강 초입에 들어서니 금강산 미인송이 많이 죽어 있어 마음이 아팠다. 자세히 살펴보니 재선충으로 인한 것은 아니고 토양이나 영양 고갈로 그냥 고사한 것 같아 더욱 안타까웠다.금강산이 자랑하는 4대 명찰 중 하나인 신계사는 복원이 한창이고, 그래도 대웅전은 예불을 올릴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 복구돼 있었다. 해인사에서 파견된 스님이 이 사찰의 주지라니 반갑기만 하다. 옥류동과 구룡연을 찾아가는 길은 엄청나게 깊고 수려하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으로 옥류봉 줄기가 길게 뻗어 내리고, 왼쪽으로는 새점봉의 웅대함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초입부터 금강의 위용에 압도되어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찼다. 봉우리마다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산세에 매료되어 찍고 도로잉하느라 혼자 뒤처져 외롭게 산행을 해야만 했다.
금강문을 지나 얼마쯤 올랐을까 옥류동 계곡 중 가장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지고, 수려한 산세들이 골짜기 양쪽으로 깊숙이 맞은편 준봉들과 절묘한 조화를 연찰하고 있는데 멀리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곡선의 구름다리가 그림같이 놓여있다. 금강산 이름만큼이나 계곡미가 단연 압권이다. 문득 이백의 ‘산중문답’이란 명시가 떠올랐다.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문여하사서벽산 소이부답심자한 도화유수묘연거 별유천지비인간:산속에서 왜 사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말 없이 빙긋이 웃는다. 복숭아 꽃잎이 계곡 따라 아득히 흘러가는데 이곳이야말로 무릉도원이 아니겠는가). 이곳은 분명 선경이었다.
다리를 건너니 연주담의 연두빛 물색이 시리도록 맑고 청량하다. 산길을 오르고 내리는 숱한 관광객들이 있어 외롭지는 않았으나 우리 일행과 함께하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2시간여 걸려서 목적지인 구룡폭에 도착하니 먼저 온 관광객들로 붐빈다. 구룡폭포의 위용은 내가 지금까지 본 어떠한 폭포에도 비견될 수 없을 만큼 위대함이다. 금강의 격조에 걸맞는 참으로 장엄한 비폭이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산세가 너무나 장엄 웅대하여 하늘이 빚어놓은 비경 그대로였다. 특히 폭포 옆 바위위에 미륵불(彌勒佛)이라고 새겨놓은 것은 자연과 인간이 만난 조화로움이랄까, 매우 인상적이다. 한동안 구룡폭에 매료되어 몇 점의 스케치도 하고 함께한 우리 일행과 기념촬영도 하며 그 자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기상과 산세의 악조건으로 구룡폭과 이어지는 상팔담을 구경하지 못하고 하산, 두고두고 여한으로 남는다.
금강산에 기행 3일째,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만물상을 찾는 날이다. 6시에 기상하여 호텔 아래 공용 레스토랑에서 조반을 마치고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산중턱 주차장까지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굽이진 길의 연속이었다. 대관령 옛 도로처럼 큰 굽이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완만하고 짧은 굽이길이 자그마치 77굽이(처음엔 108굽이라고 함)나 되는 어지러울 만큼 곡선의 장관이었다. 6 25동란 때 작전수행을 위해 북한군이 닦아놓은 도로라고 한다. 한하계를 따라 30여분 오르니 굽이길은 끝이 나고 작은 주차장이 보이는 그곳에서부터 만물상까지는 걸어서 올라가야만 했다. 만물상 가는 입구에 만상정이란 큰 봉우리가 위풍당당하게 버티고서 위용을 자랑했다. 초입에 들어서니 수없이 그림으로만 보아왔던 삼선암의 세봉우리가 그 기상이 하늘을 찌를 듯했고, 귀면암은 삼선암 옆 가파른 철 계단을 오르니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으나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기대에 못미처 아쉬웠다.
삼선암 꼭대기에 앉아 멀리 만물상을 굽어보며 찍고 스케치하며 스릴도 만끽했다. 얼마쯤 올랐을까 기기묘묘한 암벽들로 어우러진 깎아지를 듯한 절부암 풍광을 뒤로하고 가파른 철계단을 숨가쁘게 오르니 만물상 정상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아, 그 장엄함이여! 그 절묘함이여! 기암괴석들이 각양각색으로 어우러져 그윽한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는데 그 벅찬 감동과 흥분을 어찌 필설로 다 표현 하리요. 이는 필경하늘이 빚은 신의 조화일 것이다. 신비에 쌓인 만물상의 진면목 앞에서 한없이 밀려오는 감흥을 주체할 길 없어 정신없이 화폭에 담아내느라 푹 빠져들고 말았다.
겸제 정선의 금강전도 골격과 정철의 관동별곡 백미가 바로 이곳임을 알 것 같다. 불현듯 수백년 동안 우리 선대 화선들과 시인묵객들이 다녀간 발자취를 고스란히 체득하는 것 같아 여간 감개무량하지 않았다. 송나라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는 “고려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며 찬탄했고, 일본사람들은 “금강산을 보기 전에는 천하의 산수를 논하지 말라”고 하였다. 또한 1926년 내한한 스웨덴의 구스타브 국왕은 금강산을 보고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신 여섯 날 중 마지막 하루는 금강산을 만들었을 것이다”라고 극찬 하지 않았던가. 한동안 멍하니 만물상 절경에 넋을 잃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니 일행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쉽게도 못다한 감흥을 마음속에 가득 안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하산할 때는 전날의 구룡연 길보다 한결 수월했다. 어느 가파른 비탈길에서 의도적으로 미끄러지는척 하며 가까이에 있는 북한 안내원에게 손을 내밀며 부축을 청했는데 처음엔 무표정하더니 나의 웃음 띈 얼굴에 동화되었든지 힘있게 손을 잡아주며 “조심해서 내려가시라요”라며 보여준 친절함에 잠시나마 겨레의 뜨거운 온정을 느꼈다. 스케치한답시고 일행 중 늘 말미에 떨어져 있어 뒤를 쫓아다니는 데 여념이 없다보니 삼선암 근처에서 “차 한 잔 팔아 주시라요” 애원하던 북한 여인을 외면하고 돌아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어서 통일이 되어 남북이 하나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인다.
■ 금강석 일만 이천 개의 검은 선(線) ■
연필(鉛筆)의 심(心)처럼 뾰족하게,
레이저 광선으로 깎은 것처럼,
산맥의 단속적(斷續的)인 선(線)이,
무한의 지평(地平) 위로 펼쳐지네.
푸르스름한 둔덕들의 이상적 형태를 소묘(素描)하면서
화공의 붓은 그 강력한 힘의 털을 잃어버리고,
버려진 땅을 위무(慰撫)하기 위한 방편으로
검은 숲의 중첩된 이미지가 한 겹씩 벗겨진다.
민족의 반역자 손에 맡겨진 채,
눈 먼 권력에 의해 뿌리까지 뽑혀진,
이 광대한 성지(聖地)의 아름다움과 지복(至福)이,
결국 역사의 증언 앞에서 스스로 무너지도다.
하지만 굽히지 않는 재건(再建)의 의지와,
그 모습을 보려는 지칠 줄 모르는 갈망과 더불어,
화공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작업에 착수하였다,
목신(牧神)의 신성한 몸을 드러내 보이기 위하여.
먹은 화가의 손에서 튀어 오르고,
바위는 바다 속의 용처럼 꿈틀거리는구나.
안개와 운무(雲霧)도 춤을 추기 시작하도다,
대각선의 구도(構圖) 위에 펼쳐진 조망(眺望) 위에서 !
자연만큼이나 순수무구(純粹無垢)한 화폭 위에서,
어떻게 그와 같은 장관(壯觀)을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거대한 공허(空虛)의 파노라마에 의해 대비(對比)된,
이 놀라운 비대칭의 미(美)를 누가 감히 흉내 낼 것인가?
오, 어슴푸레한 산이여 ! 너의 그 짓밟힌 역사를 내게 말해다오.
온통 눈물에 젖은 바람 속에서 웅얼거리는 너,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회한(悔恨)에 찢겨진 너의 가슴에,
화공의 동정심(同情心) 어린 눈빛이 머무는구나.
능선(稜線)의 고뇌하는 빛깔이 평화 속에서 달래지고,
바위투성이의 등줄기가 명암의 점담(漸淡) 속에서 아롱지면,
화공의 눈은 마침내 일만 이천 개의 금강(金剛)에 깃든
신령(神靈)의 진정한 얼굴을 입증하기에 이르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