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보리달마와 염불선
1. 보리달마의 불교사적 위상
인류 역사상 인도문화권과 동아시아 문화권의 장대한 교류사는 바로 불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현재까지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보리달마와 현장이다.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중요성은 바로 동아시아 선불교의 역사를 그로부터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존기간은 대략 5∼6세기로 보면 정확하다.17) 그는 남인도에서 뱃길을 이용하여 중국 남쪽의 광주(廣州)에 도착했다고 전한다. 이후 양무제(梁武帝)와 재시 공덕에 관한 대담을 하였다한다. 다시 숭산(嵩山) 소림사에서 찾아온 혜가에 심법(心法)을 전해주어 장구한 동아시아 선불교의 장을 열었다. 그와 관련한 모든 것은 이후 불교사상과 문화 그리고 실천의 문제에 있어 끊임없는 창조력의 원천이었고 동력이었다. 그의 위상과 영향력은 선불교와 관련하여 회자되는 수많은 말들, 예를 들면, 달마서래(達磨西來), 달마안심(達磨安心), 달마일종(達磨一宗), 달마종(達磨宗)이나 달마선(達摩禪) 그리고 달마종지(達摩宗旨), 달마장벽(達磨牆壁)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7) 청화는 圓通佛法의 要諦, pp.256-258에서 보리달마의 대략적인 생애를 서술하고 있다; 그의 출신지에 있어서는 종래에 남인도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페르시아 출신일 것이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고 중국에 도착한 것은 대략 520년경으로 주장된다.(참고, K. S Kenneth Chen, 박해당 옮김, 중국불교下 (서울: 민족사, 1991), pp.384-386.)
때문에 달마는 동아시아에 있어 선종의 시조나 개조 또는 초조로 추앙받으며 그가 전한 선을 조사선(祖師禪)이라한다. 혜능 또한 육조단경 에서 제1조로 달마를 여러 차례 언급하며 자신의 정통성을 구하고 있을 정도이다.18) 하지만 “달마는 이국의 승려로서 많은 오해와 질투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대치가 아닌 포용과 순응으로 극복하였다”라고 평가된다.19) 나아가 “달마가 전한 심법은 기존 불교풍토에 환영받지 못하고 오히려 박해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라고 한다.20)
18) 육조단경에 나타나는 달마의 일화개오엽(一花開五葉)은 초조인 달마 이후 6조 혜능까지의 다섯 조사가 예측한 것, 또는 임제종 등의 오가(五家)로 분파로 꽃피게 될 것임을 내다본 것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19) 김호귀 편역, 달마어록 (서울: 정우서적, 2012), p.30.
20) 김호귀, 앞의 책
이는 그의 위대한 후계자인 혜능도 시작은 마찬가지이다. 달마와 혜능은 모두 당시의 주류불교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가 후대로 갈수록 시대를 풍미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달마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인도불교사에서 과연 후대 중국선종 전통에서 보여주는 보리달마처럼 단계를 뛰어넘는 단도직입적이고 과묵하며 과격한 모습의 인물을 찾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 같은 모습은 후대 중국선불교가 그려낸 가공의 인물상이 아닐까한다. 그의 진작으로 인정되는 이입사행론 을 통해 보아도 역사적인 달마는 매우 자비스럽고 친절하고 인내심 깊은 성품의 소유자였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2. 달마어록과 달마선
동아시아 불교사에 있어 보리달마의 저술로 알려져 왔던 것은 이종입(二種入) 이외에 심경송(心經頌), 안심법문(安心法門), 혈맥론(血脈論), 오성론(悟性論), 파상론(破相論) 등이다. 뒤의 혈맥론 등은 달마삼론(達磨三論)이라 불려지기도 했다. 조선 때의 선문촬요(禪門撮要) 에는 혈맥론ㆍ오성론ㆍ사행론(四行論) 등이 들어있다. 이로 보아도 달마의 저술이 한국불교에 오랫동안 미친 영향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현대문헌학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파상론 은 관심론(觀心論) 과 중복되고 있고 북종의 신수(神秀)의 저술로 주장된다.21) 이외에도 달마의 저작으로 내려오는 것이 많은데 현대문헌학은 그 가운데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은 분명 달마의 가르침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는 돈황에서도 출토되어 더욱 달마의 친설로 간주되고 있다. 이입사행론은 이종입 또는 사행론 으로도 불린다. 이입사행론은 대단히 짧은 기록이지만 학자들은 달마가 초조로 인정받을 만큼의 중국선상의 단초가 이미 여기에 모두 내포되어있다고한다.22)
21) 대표적으로 달마어록에 대한 문헌학적인 연구결과는 柳田聖山 주해(楊氣峰 옮김), 달마 어록 (서울: 김영사, 1993);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 김성환 옮김), 달마 (서울: 민족사, 1991)에 잘 나타나 있다.
22) 사실 신앙과 실천의 장에 있어서는 가탁이나 위작은 크게 문제가 안 된다. 그렇게 알려져서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가가 더 중요한 점에 있다.
염불선과 관련하여 박건주는 금타와 청화의 염불선의 교리적 바탕이 바로 달마의 이입사행론 가운데 이입(理入)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염불선이라 할 수 있는 행이 되려면 달마대사의 가르침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이입(理入)이 되어야 한다. 불심(佛心)이 곧 이심(理心: 理가 그대로 心임)인 까닭이다. 금강심론 에 먼저 相似覺을 얻어야 한다 고 함도 같은 뜻이다.23)
23) 박건주, 달마선 (서울 : 운주사, 2006), p.116.; 박건주,(중국 초기 선종)능가선법 연구 (서울 : 운주사, 2008), p.395.; 박건주, 念佛과 念佛禪의 구분 문제 , 宗敎學報 (광주: 한국종교간대화학회, 2006.5), p.161.
이입사행(二入四行)의 이(理)와 행(行)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8세기경의 전법보기(傳法寶紀)이다. 여기서 달마의 이입사행은 혜가(慧可)․승찬(僧粲)에 계승됨을 “理로는 眞如를 얻고, 行에는 자취가 없었으며”라는 서술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어 전법보기 는 도신(道信)과 홍인(弘忍)과 신수(神秀)등이 계속해서 언급된다.24) 하지만 이때는 ‘眞如法身의 心地법문’인 달마의 이입 행법이 대중에게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고 단지 칭명염불(稱名念佛)로 정심(淨心)하는 방편법문으로 본래 달마선법이 방편문과 뒤섞이게 된 현실을 탄식하는 구절을 접할 수 있다.25) 이에 관해 Alan Cole의 전법보기 의 연구를 바탕으로 안준영은 “정통선(正統禪)의 정의를 염불과 정심(淨心)에서 찾는다”고 놀라워하며, 계속해서 “柳田聖山씨가 벌써 38년 전에 그리고 로바트 샤프(Robert Sharf)가 또 최근에 다시 지적했듯이 初期禪宗하고 관계가 있는 여러 저서에서 念佛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증거는 없다. 오히려 이 시기에 念佛이 크게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여 염불선을 ‘정통선’이라고 한다.26) 안준영은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의 종교학과 교수로서 외국의 여러 연구를 바탕으로 ‘정통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리고 달마 이래 초기선종은 정통선으로서 오히려 염불과 정심이 결합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이는 국내의 청화 또한 염불과 관련한 초기선종의 시대를 ‘순선(純禪)시대’로서 ‘정통선’이라는 말을 빈번하게 강조적으로 사용하고 있음과 일치한다.
24) 하지만 전법보기 는 북종의 전등사서로서 초조 구나발타라, 제2조 보리달마, 제3조 혜가, 제4조 승찬, 제5조 도신, 제6조 홍인 등으로 기록한다.
25) 박건주, 앞의 책, 2006, p.118. 그에 따르면 같은 상황은 근세기 들어 한국불교도 이입(理入)을 도외시 하고, 오로지 전념(專念) 위주의 간화선이나 염불, 진언행등의 수행 위주의 사정으로 비교하고 있다.
26) 안준영, 念佛禪에서의 깨달음의 문제, 정토학연구 (2009), p.203.
염불수행을 초기선종맥락에 입각하여 해석할 때, 선정 속에서 수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달마로부터 시작하는 초기선종의 시대에는 타방정토에 왕생을 위해 입으로 염불하는 칭명의 범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초기선종의 염불수행은 당연히 불교와 선불교의 보편적 수행전통인 선정에 바탕하고 있다. 그러던 것이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정토종(淨土宗)과 차별성을 갖기 위한 종파성에서 염불자체를 선종은 스스로 멀리했는지 모른다. 즉 염불에 대한 초기선불교의 태도는 후대선종과 사뭇 달랐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선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그렇다면 그 중심에는 이미 ‘부처’라는 기본개념이 전제되어 있다고 보아야한다. 그런데 선불교 역사에서 이같은 기본전제는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했을까? 이는 달마의 가르침으로 시작하는 초기선종 시대부터 이미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달마의 이입사행론의 시작에서 “심신함생(深信含生)이 동일진성(同一眞性)”과 6조 혜능에 있어 “여금당신(汝今當信)하라, 불지견자(佛知見者)는 지여자심(只汝自心)이요 갱무별불(更無別佛)이다라는 문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평상심(平常心)으로 유명한 마조 또한 “각신자신시불(各信自心是佛)이라는 말로 반복한다.28) 즉 ‘자심(自心)이 곧 불심(佛心)’이라는 선종과 염불선 사상이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선종은 예외 없이 염불과 염불선의 기본전제인 ‘시심시불(是心是佛)’을 관통하고 있다.29) 때문에 스스로의 마음이 곧 불심 또는 불성임을 심신(深信)하고, 당신(當信)해야 하는 것은 청화에 이르러 ‘신해(信解)’라는 말로 나타난다. 즉 ‘시심시불’이라는 ‘심지법문’이 서로간의 먼 시차에도 불구하고 달마와 혜능 그리고 청화에 이르기까지 같은 의미의 다른 말로 사용되고 있다
27) 宗寶本, 六祖壇經(大正藏48, 355,중)
28) 마조는 이를 달마가 인도로부터 중국에 이르러 상승(上乘)의 일심법(一心法)을 전하여 그대들을 깨닫게 한 가르침으로 설명한다.
29) 예를 들어 간화선에서 많이 들고 있는 무자(無字)화두의 유래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는 불성과 관련한 질문에서 화두가 유래할 정도이다. 흥미로운 것은 조주의 답변은 “없다(無)”고 했고 그 이유에 대한 재차 질문에 “업식성(業識性)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교리적 답변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