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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도 바울의 제 3차 전도여행
사도 바울의 제 3차 전도 여행은 에베소를 중심으로 소아시아 서부지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서방향 카이스터 계곡의 입구에 위치하는 항구도시로서 교통과 무역의 관문 역할을 하는 소비도시였습니다 특히 이 지역은 이방 미신이 성행하여 이교도들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는데(사도행전19:19), 만사형통의 복을 준다는 "에베소 주문"을 몸에 지니고 다닐 정도로 극심한 지역이었습니다
이러한 토테미즘 사상과 이방종교가 성행하고 있는 가운데(사도행전19:24) 사회적인 부패와 타락까지 만연해 있는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은 3년간(주후53~56년경)이나 머물며 교회의 기초를 세우며 성장과 확장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음행을 경고하는 고린도전후서를 기록하였고, 이들이 보낸 답장의 회신도 이곳에서 기록하였습니다
에베소에는 아볼로의 영향을 받은 교인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었습니다(사도행전18:24~25) 아볼로는 세례요한의 세례를 강조하는 신앙을 전파하였고, 그가 고린도 지방으로 떠난 다음에도 아볼로의 영향을 받은 교인들은 에베소에 남아 살고 있었습니다(사도행전19:3)
"침략자"라는 뜻을 가진 아볼로는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이며 구약에 정통한 변증가였습니다 성경에 능통했던 아볼로는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아볼로는 특히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파하였으며(사도행전18:28), 말년에는 고린도교회의 주교로서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강조한 요한의 세례는 요한이 베푼 물세례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영향을 받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이 성령세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으로 에베소 사역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세례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구약시대 3대 사건은 노아 홍수(베드로전서3:20~22), 홍해사건(고린도전서10:2), 할례 의식(골로새서2:11~12)입니다 고대 동방 세계와 유대교의 일부 종단에서 세례의식을 통하여 신생(新生), 단체의 가입서약, 신(神)과의 신비적 합일을 상징하였으나 그 직접적 배경은 구약의 3대 사건이었습니다 세례의 의미는 이전의 죄를 깨끗이 회개하여 씻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증인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공중의 서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적이고 외형적인 물세례가 인간의 서원을 강조한 형식적이고 상징적인 의미의 행위라면,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내적 연합을 강조하는 실질적이고 항구적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요한의 세례를 넘어 성령세례를 강조하려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에는 유대인 회당을 이용하여 복음을 전파하였으나, 3개월이 지나는 동안 유대인 회당내 비판자들이 증가하면서 에베소지역의 두란노 서원으로 옮겨 2년여 동안 활동하게 되었습니다(사도행전19:8~20) 두란노라는 이름의 부호가 순회 강연자들에게 제공한 강연 장소였거나, 또는 두란노라는 철학자가 강론한 강의장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두란노서원에서 사도 바울은 오전 11시 부터 오후 4시까지 복음전파를 위해 활용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성경강해와 공부를 위한 공간으로 마련된 두란노 서원은, 오늘날 성경공부의 장을 펼치는 주요공간으로서의 대명사가 되고 있을 만큼 중요한 역사적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딜(S. Dill)에 의하면 당시 사람들은 가정보다는 크고 국가보다는 작은 사회기구를 많이 형성하고 있었을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4절 이하에 나오는 "데메드리오" 등이 사도 바울을 공격한 동기가 외적으로는 "아데미" 여신에 대한 종교적 열성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경제적 수익성 때문이었습니다 아데미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서 많은 유방을 가진 생식을 주관하는 여신으로 분류되며, 데메드리오 등은 이러한 아데미 모형의 은감실(아데미 신전 또는아데미 신상을 한 작은 모형, 기념품) 을 판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종교 상업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각종 미신들이 난무하는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은 생각보다 많은 고초와 고난과 방해공작에 부딪히며 복음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와 아시아를 재차 방문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점령군들의 유대인들에 대한 강력한 지배구조로 말미암아 로마시민권자였던 사도 바울의 복음사역은 매우 어려운 지경에 있었습니다(사도행전20:1~5)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 가운데 쉬운 곳은 한 지역도 없었습니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선교는 저항을 받았고 고난과 함께 시작되고 역경과 함께 종결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명과 소명의식을 끊임없이 일깨워 가며 복음증거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빌립보에서 배를 이용하여 드로아로 입성한 사도 바울은 그곳에서 7일여를 머물며 말씀을 강론하였습니다 때마침 "유두고"라는 청년이 낮에 일을 마치고 저녁이 되어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육체의 피로로 말미암아 다락에서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왔던 한 청년이 사망한 사건은 아주 중요한 이슈가 되어 복음 증거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한 위기의 순간에 사도 바울은 그를 다시 살려내는 기적을 보여줌으로서 교회는 더욱 힘을 얻게되었고 신앙이 담대하여 지기 시작하였습니다(사도행전20:6~12) 이것은 사도 바울의 선교와 사역뒤에는 항상 그분과 동행하는 하나님이 함께하고 있었다는 뚜렷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앗소와 미둘레네를 거쳐 기오와 사모에 이르고, 그 다음날 밀레도에 이르러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키고 싶어했던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의 살해음모로 지체가 되고 30~50km되는 거리를 도보로 여행하며 각처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사도행전20:13~16) 이것은 사도 바울의 복음사역이 힘에 부딪히고 몸에 힘겨운 상황속에서도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모습으로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초청하여 고별 설교를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3장(16~41)과 14장(15~17), 그리고 17장(22~31)과 22~26장에 이르는 설교와 기독교 변증에서 보여주는 모든 설교는 비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사도행전 20장17절에서 35절까지의 내용은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심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만 충심을 다하였습니다 다른 어떤 의도나 인기적영합에도 무관하였으며, 복음의 파숫군으로서 사명을 다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증거하는 동역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도의 삶과 어려움과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신실한 목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성령의 임재하심과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복음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복음 증거를 위하여 직접 생계수단을 활용하였으며, 복음을 가장 위대한 진리로 여겼고, 그것을 값없이 취한 은혜로 여겼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충성하여도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로 밀려오는 배교를 경계하고, 바른 진리에 대한 교훈을 선포함으로서 에베소 교회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나타내었습니다
주후 58년경, 사도 바울은 밀레도를 떠나 고스로 가서 로도와 바다라에 이르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 상륙하여 제자들을 찾아 7일을 함께하였습니다 돌레마이와 가이사랴에 이르고 예루살렘에 입성을 함으로서 바울의 제 3차 전도여행은 막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 보고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을때, 바울에 관한 괴소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이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에게 조상의 규례와 율법을 파기하도록 권했다는 헛소문이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성향은 민족주의 선민사상의 우월성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바울의 세계적 복음사역이 위기를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야고보를 비롯한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사도 바울이 나실인의 서원을 한 네사람의 결례에 동참하며 그들의 비용을 대신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으려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제안을 수락했지만, 구원을 위해서 의식법을 준행한다는 사상은 구원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과 정면충돌하므로 이견이 있음을 확고히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나긴 1,2,3차 전도여행은 이것으로 종결되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로마로 향하고자 하는 열정과 소망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인가? 그는 왜 이토록 험난하고 고통이 수반되는 지역으로 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을 수 밖에 없는가? 한순간도 편리함과 쉼을 허락하지 않는 그의 생애를 통하여, 그에게 주어진 삶의 목적이 되고 있는 복음의 열정과, 목숨보다 귀한 복음으로서의 가치를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의 흔적들을 통하여, 아주 짧은 순간에 읽어내려가는 사도행전속에서 한 사람의 피와 눈물과 고난과 공포를 넘어서는 사도 바울을 그냥 스쳐 지나가서는 결코 않될 것입니다 그와 우리가 다르지 않은 하나밖에 없는 생명인데, 그는 왜 그토록 목숨을 건 전도여행을 해야만 하고, 우리는 왜 이토록 세상과 근접해 지려고 하는가 하는 정반대의 삶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세상의 혼탁함으로 인하여 사명과 소명의식을 잃어가는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강한 교훈과 책망으로 훈육하는 경고의 메세지가 되고 있음을 우리 모두는 직시해야만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제 3차 전도여행 일정(사도행전18:23~21:17)
사도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2차 전도여행 종료후 바로 진행된 것으로 2차 전도여행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시기에 에베소를 중심으로 하는 사역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그의 정성은 죽은 유두고를 다시 살려내는 기적으로 이어져 갔습니다
안디옥-> 갈라디아, 브루기아(사도행전18:22~23)-> 에베소(사도행전19;1)-> 장기간에 걸친 에베소에서의 사역(사도행전19:1~20)-> 마게도냐, 헬라(사도행전20:1~2)-> 빌립보, 드로아(사도행전20:6)-> 드로아에서 죽은 유두고를 살림(사도행전20:7~12)-> 미둘리네, 사모, 밀레도(사도행전20:14)->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의 작별(사도행전20:17~38)-> 고스, 로도, 바다라, 두로(사도행전21:1~3)-> 가이사랴, 예루살렘(사도행전21:7, 15)-> 가이사랴에서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사도행전2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