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탈하고 유머러스한 김인세 총장님을 기억하다
김덕남
간밤에 꿈을 꾸었다.
정년퇴직한 지 10년이 되어 가는데도 엊그제인 듯 정든 부산대학교의 꿈을 꾸었다. 숲이 우거진 미리내 계곡, 금정산 자락의 대운동장까지 눈 감고도 하나하나 짚을 수 있다. 40년을 하루같이 그 곳에서 보냈으니 캠퍼스의 건물과 가로수, 울창한 숲이 어찌 눈에 선하지 않겠는가. 긴 세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일한 시절이 참으로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더욱이 김인세 총장님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총장님 취임 후 얼마 안 되어 입학관리과장으로 발령받았다. 입학업무는 대부분이 바늘방석에 앉음과 다를 바 없다. 다른 업무는 실수가 있어도 자체적으로 바로 잡으면 되지만 입학업무만은 달랐다. 입학정책은 자녀의 진로와 관계되기 때문에 고교 교육현장이나 수험생뿐 아니라 일반 국민 다수에게도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수능과 학생부, 논술에 각각 비중을 얼마나 두느냐에 따라 고교 교육현장의 수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부산대학교는 Premier PNU전형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입학사정관전형을 공식 도입하기 전 선도적으로 그와 유사한 전형을 2006년도에 시행하는 등 입학전형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기본계획이 발표되면 고교 교장이나 진학부장에게서 항의 전화가 오기도 하고 계획 변경을 요청하기도 한다.
합격자 발표일 전에는 철야를 할 정도로 업무가 긴박하게 돌아간다. 순간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데 2006년 1단계 합격자 발표를 하고 난 뒤, 모 고등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3학년 담임 선생님인데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자기 반 아이 둘을 거명하면서 한 아이가 합격했으면 다른 한 아이도 분명 합격해야 하는데 왜 떨어졌느냐고 항의한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철렁했다. 확인해서 곧 답을 드리겠다고 정중히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담당팀장을 찾으니 없었다. 전산실로 달려가니 담당 전산팀장과 입학팀장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 해 수능성적이나 학생부성적 중 우수한 성적을 선택하여 변환 점수화하도록 특목고 전형을 개발 시행했었는데, 합격자 사정자료의 전산처리 과정에서 두 가지 성적 중 우수한 성적을 선택하지 않고 한 가지만으로 성적 처리가 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하늘이 샛노래졌다. 입시요강에 발표된 사항이라 일선 고등학교에서도 성적을 환산할 수 있었다. 곧바로 윗선에 보고하고 늦은 밤 대책회의 결정에 따라 밤샘 작업을 했다. 이튿날 아침 8시 교무회의에서 다시 입학사정을 하여 추가 합격자를 발표하고, 언론사를 청하여 기자회견을 하였다. 저녁 9시 정규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여러 신문에도 대서특필되었지만, 다행히 1단계 합격자 발표라 희생자는 없었다.
사고 수습 후, 과의 총괄을 맡고 있는 내가 책임을 지는 것이 업무의 안정을 위한 길이라 생각했다. 입학업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사표를 내리라 각오하고 있는데, 여느 때처럼 인자한 총장님의 한 마디가 입학관리과 직원 전체의 기를 북돋워 주었다.
“일을 하다보면 실수할 때도 있지. 그동안 잘 했으니 너무 염려 말아요!”
이날 이후, 직원들은 더욱 사명감을 갖고 일하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모든 책임은 총장에게 있다'던 말씀 잊지 못해
총장님 재임 시에 지은 다수의 캠퍼스 건물뿐만 아니라 발전기금 조성 등 큰 업적을 이루었다. 일은 담당자가 하지만 모든 책임은 총장에게 있다고 평소에 말씀하신대로 큰 책임질 일이 발생했을 땐 몸소 모든 책임을 혼자서 지는 기관장으로서의 의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모든 책임은 총장에게 있다'던 말씀 잊을 수가 없다. 이 대목에서 직원을 사랑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총장님의 대의를 읽을 수 있었다. 상대방을 사로잡는 달변과 특유의 소탈한 친화력은 총장님만의 매력이다. 총장님 앞에 앉으면 어느새 그 매력에 빨려 들고 있음을 종종 느낀다. 너그럽고 훈훈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고매한 인격에 존경심이 저절로 일어난다. 업무에 있어서는 큰 틀을 그려주시고 세밀한 것은 믿고 맡겨주셨다. 잘잘못을 가릴 때는 그 의도성에 따라 상벌이 분명했다. 특히 열심히 하려다 실수한 것에 대하여는 좋은 얼굴로 손잡고 충고하니 감동과 긴장, 부끄러움과 죄송함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총장님은 재임 중 끊임없는 열정과 학교사랑으로 학교 발전에 크게 공헌하여 많은 구성원에게 존경 받는 총장이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직원들 모임에선 총장님의 일화가 회자된다. 그 일화들은 주로 총장님이 이룬 업적보다는 직원들에게 보여줬던 소탈하고 따뜻했던 '사람됨'에 대한 것들이다.
총장님과 함께 일한 시간이 그립습니다.
김덕남 : 전)부산대학교 서기관, 전) 부산대학교 입학관리과장
- 부산대학교 17대, 18대 김인세 총장 그가 걸어온 삶의 기록 『꽃은 져도 잎은 더욱 푸르르네』 2020. 디자인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