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청임(王淸任)은 청나라 때 유명한 의사이며 해부학자이다. 그는 하북 옥전사람으로 자는 훈신(勛臣)이었다. 1979년 당시에는 전 세계적으로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기였다. 이때 하북성에는 홍역이 매우 유행하여 많은 집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어느날 왕청임은 난현(마을이름)을 지나다가 들판에 아이들의 시체가 널려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시체는 들짐승한테 뜯기어 참혹하였다. 왕청임은 의사로서 직책을 다하지 못했다는 양심의 가책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시체의 내장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보고 이 기회에 인체내부 기관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체의 내장을 연구하려면 배를 가르고 해부를 하여야 하였는데 그것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로는 인륜에 어긋나는 일로 여겨졌다. 남북조 때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일을 하였다가 능지 처함을 당하였다. 그러나 왕청임은 큰 뜻을 품고 봉건사상의 속박을 과감히 타파하려는 굳은 마음을 먹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그는 황야에 나가 100여 명 어린이의 시체를 해부하였으며 대젓가락으로 각 기관, 혈관을 찔러보면서 세심히 관찰하고 연구하였다. 그는 열흘 동안 인체 내장의 각 부분을 상세히 그렸다. 그 후 많은 소, 양, 돼지, 고양이. 개를 해부하여 인체와 비교해 보았다. 이와 같이 그는 30여 년의 세월 동안 끝내 인체해부생리라는 이 학문을 똑똑히 연구하였으며 황제내경:중국의 가장 오래된 의서에서는 적지 않은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자기의 경험을 후세들에게 남겨 주기 위하여 63살이 된 왕청임은 오랬동안 쌓은 경험에 근거하여 의림개착이란 거작을 써서 해부학 분야에서의 옛사람들의 오류와 편견을 지적하였다. 의림개착에는 25폭의 인체내부 구조도가 덧붙여져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전통적인 논법을 과감히 반박하고, 인간의 사상과 기억력이 심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대뇌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제기하였다. 이런 독창적인 견해는 그 당시 의사와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후세 사람들에게도 매우 과학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의사로서의 신분을 망각하지 않고, 우연하면서도 절묘한 기회를 이용하여 인체내부 기관의 구조와 기능을 연마하는 연구에 몰두함으로써 인체해부생리라는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하여 기존의 잘못된 오류를 지적하였다. 이는 많은 아이들이 홍역이라는 질병에 걸려 죽음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의사로서 목도하고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인체 해부 실험을 통하여 인간의 사상과 기억력이 심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대뇌에 의해 좌우된다는 독창적인 견해를 밝혔던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 일을 하건 사명감이 투철해야 큰 일을 이룰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사안일로 흐르지 않도록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문제점은 없는지 늘 되돌아보는 연습을 해야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