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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행(四川行) 15
주여루(周濾樓)’
무정은 잠시 그 간판에 시선을 고정했다. 루라는 글자가 붙었기에 주루라도 운영하는 줄 알았던 그는 피식 웃었다. 과연 상귀와 하귀 다운 작명이었다.
그는 지금 아담한 장원 앞에 서 있었다. 전에 용현 천호소에 있었던 장원이 호수라면, 이곳은 연못정도 되는 규모였다. 그는 발걸음을 내딛으며 반쪽만 열린 대문문을 들어섰다.
“참 이름 웃기지 않나, 주여루라... 나도 이놈들이 저 이름을 들고 웃는데 처음에는 어이가 없더라니까”
고죽노인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무정에게 말했다. 무정은 고개를 끄떡였다. 주여루는 상귀와 하귀의 이름 한 글자씩 딴 이름이었다. 상귀 주서평, 하귀 여문탁의 성씨만을 골라 지은 이름이었다.
“하하핫... 그래도 뜻은 좋지 않습니까? 두루두루 맑게 씻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이곳과 어울리는 뜻이지요... 아미타불...”
명경이 웃으며 무정에 이어 대문을 넘어섰다.
이곳은 그냥 장원이 아니었다. 상귀와 하귀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제세원(?世垣)같은 성격을 띈 곳이었다. 참으로 용한 생각이었다. 평소 상귀와 하귀의 행동을 본다면 절대로 믿지 못할 일이었다.
“뜻이 이렇듯 후덕하거늘, 그 이름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아미타불 그저 상귀와 하귀, 두 분께 부처님의 성덕이 내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명각이 뒤를 이었다. 불자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관에서는 더욱 요원한 일이었다. 그는 정말 상귀와 하귀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무정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문득 본전뒤에서 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발길을 돌려 뒤뜰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하”
“할아버지. 딴 이야기요. 어서요”
“홋홋홋... 알았다. 알았어 욘석들아. 아 거기, 이 녀석들 뛰지마! 다친다. 다쳐..”
홍관주는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으며 채근하는 아이들을 달랬다. 근래에 이렇게 웃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아이들이라는 존재는.... 정말 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홍관주였다.
상귀와 하귀는 뜰의 이곳저곳에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손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웬일인지 투덜대는 소리가 나올법도 한데, 묵묵히 창대대신 연장을 잡고 이곳저곳 손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귓속으로 홍관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정이 왔구나.. 그래 일은 잘 되었나?”
나직한 목소리로 홍관주는 물었다. 무정의 일행이 온 것을 본 것이었다.
“음....대장왔수. 아니 왔습니까? 일단 안으로 드십.시.다.”
“글게...그렇군요. 대장님 오셨습니까? 안에서 차분히 이야기하십시다.”
“...?...”
한자 한자 뒷말을 매우 어색하고 정중하게 이야기 하는 두 사람을 보고 무정은 인상을 썼다. 그는 고죽노인을 돌아보았다. 고죽노인은 입가에 고소한 미소를 지으며 실실 웃어대고 있었다. 무정과 명각, 명경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언사에 아연해 할 뿐이었다.
“손님이 오셨나 보죠?”
맞은편 장원 뒷쪽의 후문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이십대 초반이나 십대 후반으로 보였다. 상당히 미인 축에 속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생글 생글 웃으며 무정의 앞에 섰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무대장님 이시라고요.. 소희라고 합니다.”
“......”
얼떨결에 무정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왠지 어색했다.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려 상귀와 하귀를 바라보았다. 슬그머니 하늘만 바라보는 상귀와 발로 땅을 긁고 있는 하귀가 눈에 들어왔다. 무정은 뭔가 알 듯, 말 듯한 생각이 들었다.
“일단 들어들 가시죠. 아 두 분 대사님도 계셨군요.. 소희라고 합니다.”
“핫하 소림의 명각입니다.”
“명경이라고 합니다. 아미타불”
상당히 인사성이 밝고 붙임성이 있는 아가씨였다. 무정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찌되었건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법을 아는 여인 이였다. 일행 모두 그녀의 행동과 언사에서 상큼한 향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모두 뒷문 쪽으로 향했다. 당장 시급한 일부터 해결해야 했다. 그때였다.
“평오빠!, 탁오빠! 어딜 들어가욧!. 정리는 마저 하고 가야 될 것 아닌가요?”
상큼하다기 보다는 암팡진 목소리가 일행의 귀를 때렸다. 무정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그렇지.... 무.대.장.님, 저는 잠시 볼일 좀 보고 가겠습.니.다...(쓰벌)
“그렇네요. 상.귀.형.님. 대장님 먼저 들어가 있으.세.요......(니기미)”
상귀와 하귀는 각기 마지막 단어를 들릴락, 말락하게 뱉고는 뒤로 돌아섰다. 무정은 이제야 확실하게 이해가 갔다. 누군지 몰라도 이곳의 안주인 역할을 상당히 잘 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더불어 상귀와 하귀의 단속도....... 그는 고개를 위로 젖혔다.
“하하하하하하”
저 푸른 하늘이 울리도록 널리 퍼지는 싱그러운 웃음이었다.
“음 야예 그렇게 시인을 하더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저희가 난처할 정도였습니다.”
명각은 홍관주에게 저간의 일을 설명했다. 당씨 식구들은 여기 없었다. 그들은 아예 본가에 보고하고 출정준비를 마치겠노라고 하면서 성도위를 나서자마자 본가로 달려간 것이었다.
“흠, 손도 안대고 코풀고 싶다 그거구만..... 허, 거참..”
홍관주는 머리를 흔들었다. 전형적인 관치행정이었다. 뭔가 해주면 좋겠는데..어떻게 안 되겠냐는 식의......... 무정의 말을 듣고 마대인이라는 사람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혹시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허나 그 아들에게는 오히려 실망하는 홍관주였다.
“아무래도 사천지방의 무림방파에 연통을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일은 저희만으로는 벅찰 것 같습니다.”
명각이 얼굴을 굳히며 말을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소뢰음사만 해도 청성. 아미, 당문, 점창이 뭉쳐도 힘든 상대였다. 그나마 지금 홍관주와 무정이 있으니 다행이었지, 까딱하면 두 손 놓고 당할 뻔한 상황인 것이었다. 게다가 마유타왕은 서장의 신성이다. 그의 군대는 오만에 육박하고 있었고, 특히나 오이랏트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명각의 귀에 홍관주의 전음이 들렸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내 이름으로 연통을 넣었으니 아마 잘 될 걸세. 실은 이미 개방의 제자를 통해 연통을 넣었네... 물론 내가 직접 한 것은 아니고 하귀를 시켰지.. 아마 우리가 도착 할 때쯤 다들 올 것이네...’
명각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떠올랐다. 청백지강호, 백염주선 홍관주의 이름이면 거의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그는 눈을 돌려 뻣뻣한 자세로 앉아 있는 상귀와 하귀를 바라보았다.
“ 그럼 두 분께서는 가셨던 일은 잘되셨나요?”
상귀와 하귀는 갑자기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뭔 사람이 대답도 안 듣고 질문만 하느냐는 얼굴로 뚱해져 있었다.
“에잉...... 띨띨한 표정 때려 치고 갔던 일이나 말해봐”
고죽노인이 곰방대를 빼며 말했다. 이미 전음이 오간 것은 눈치로 보면 다 알 수 있었다.
다들 그렇게 느끼고 무정도 아는 눈치인데 전음도 할 줄 아는 놈들이 영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 못마땅한 고죽 노인이었다.
“에.....저희들은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깍듯한 경어를 쓰면서 상귀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소희가 가까이 있는지를 살피는 듯 했다. 그 모습에 일행은 실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상귀와 하귀, 그리고 홍관주는 혹 서장의 승려들을 본적이 있는지, 하오문쪽을 돌아보며 소식을 알아보고 있었다. 개방분타를 들려 알아보면 간단할 텐데 왠지 꺼리는 그들을 보며 홍관주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었다. 어쨌든 소득이 있어서 무정일행이 말한 것과 비슷한 정보를 얻었다.
관부의 정보도 아닌 하오문의 정보도 같은 결과라면 두말 할 것 없었다. 더 이상 알아 볼 것도 없었다.
“으음. 그렇다면 우리도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되겠군요.”
나직한 신음과 함께 명경이 입을 열었다. 이젠 출발 일자만 잡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되도록 빨리...
“나는 무대장을 따라 갈 것이고..... 너희들은 어떡할 테냐?”
고죽노인이 자신의 의중을 밝히며 상귀와 하귀를 보았다. 헌데 그들은 그다지 탐탁치 않는 눈치였다. 흘끔 흘끔 무정을 옆으로 보며 쭈삣하는 모양이었다. 고죽노인은 눈가에 내천자를 그렸다.
“그놈들 때문인 거냐?”
“ ? ”
홍관주는 의아했다. 그놈들이라니?, 이 두 놈도 어려운 상대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어이 소국아! 손님 받아야지!”
“그러게, 하루아침에 창기가 요조숙녀라니 말이 안 되잖아”
“이름도 주여루이니 그냥 여기서 옷 한번 벗어 보지 그래?”
“카카카..... 그것도 좋지”
밖에서 왁자한 소리가 들렸다. 상귀와 하귀의 눈이 곤두섰다. 그들은 뒤에 세워둔 자신들의 장창을 잡았다.
“안 돼요! 오라버니들....제발 참아요. 네?”
소희였다. 어느 틈에 소희가 내전으로 들어와 상귀와 하귀를 말렸다. 상귀와 하귀는 바들바들 떨며 차마 소희를 떨치지는 못 하고 있었다.
“저 망할 놈들! 또 온 거냐,,, 허참, 여기 누가 계신줄도 모르고...”
고죽노인은 눈을 새파랗게 빛내며 단창을 움켜잡았다. 이번에야 말로 모두 작살낼 태세였다. 하지만 뛰쳐나갈 수는 없었다. 어느새 소희가 아예 문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고죽할아버지 안 돼요.. 그러다 개방제자들이 다 몰려오면 어쩌실려구 그러세요... 아저씨나 오라버니들이 안계시면 저와 저희 아이들은 어쩌라구요”
“ ! ”
홍관주의 눈이 커졌다. 개방이라고 했다. 분명 개방이라고 했다. 그럼 저 파락호 같은 소리를 내는 놈들이 개방도란 뜻이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개방은 의(義)와 예(禮)를 중시한다. 이런 파락호 같은 짓은 절대로 할 수가 없었다.
“다른 곳의 개방은 이렇지는 않습니다만, 유독 이곳 사천의 개방은 이상하게 .....어이없는 짓을 많이 하더군요. 일주일이 멀다하고 소희에게 시비를 걸며 돈을 요구합니다.......싸우고 싶지만 개방전체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는 일이라......”
멍하고 있는 홍관주에게 고죽노인이 설명했다. 대놓고 나쁜 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는지 돌려 말하는 그였다.
홍관주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의 눈에서 불이 일고 있었다.
물은 흘러야 한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일도 마찬 가지였다. 개방은 거대한 조직이었다. 전중원에 근 십만에 이르는 방도를 갖고 있는 단일 문파로써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만큼 통제도 힘들었다. 일찍이 홍관주도 그런 문제를 알기에 자신이 방주직에 있었을 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녀 스스로 감찰의 업무도 보았었다.
자신이 방주에 있을 땐 저런 짓거리는 절대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보니 벌써 오십년이 흘렀다. 그동안 거의 관여하지 않고 산 그였다. 그러나 이렇게 까지 변해 버렸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홍관주였다.
“비키시오...”
“ ! ”
가슴을 떨리는 묵직한 저음이 소희의 귓전에 들렸다. 엄청난 덩치의 사람이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무대장이라는 자였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았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무정의 살기에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습니다. 여시주님, 무시주에게 길을 열어주시지요..... 이후의 일은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아미타불....”
명각의 입이 열렸다. 그의 승복이 조금씩 떨고 있었다. 그만큼 그도 참기 힘든 것이었다.
이곳은 술집도 아닌 제세원이었다. 불자로서,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같은 정파의 무림인으로서도 용서 할 수 없었다.
소희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녀는 다 틀려 버렸다고 생각했다. 겨우 이곳에 정착하나 했는데...... 이젠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발걸음을 떼었다. 스치듯이 무정이 그 옆을 지나 나가고 있었다. 뒤를 이어서 일행들이 하나둘 나갔다. 홍관주만이 부들부들 떨며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부분타주(副分舵主) 호구자(糊口子) 모극일(暮克一)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대청을 노려보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탐나는 계집이었다.
소희는 원래 창기출신이다. 그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얼굴이었다. 거의 일급 기루에 가야 볼 수 있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아마 지금도 이 동네에서 최고로 예쁜 계집일 것이었다. 멋도 모르는 동네 총각들이 힐끔 처다볼 정도로...
허나 모극일의 눈에는 얼굴은 비록 어려 보여도 이미 닳고 닳은 계집일 뿐이었다. 자신도 몇 달 전만 해도 유곽에서 같이 뒹굴었던 기억이 났다. 헌데 언젠가 이곳에 웬 이상한 건달 둘과 노인 하나가 돈은 많은지 장원을 하나사서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을 거두어 먹이고 있었다. 뭐 그거야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허나 문제는 안주인 역할을 하고 있는 여자였다. 분명히 소국이었다.
순간적으로 모극일의 머리가 돌아갔다.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었던 계집이었다. 데리고 살기는 좀 뭣했지만 언제든 놀기엔 편했다. 그는 그래서 틈만 나면 수하들을 보냈다. 건달 둘과 노인네의 무공이 상당한 것으로 보였지만 함부로 자신들을 건드릴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중원 최고의 방도를 거느린 개방에 누가 칼을 빼들겠는가.
제정신이 아니면 힘들 것이었다.
“카악,,,큽. 제길 이년은 왜 이리 안 나와”
코 속을 입으로(?) 청소하면서 모극일은 뒤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두 명의 걸인이 있었다. 삼결과 사결의 매듭이 있는 것을 보니 상당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같았다.
“흠 아직 멀었소, 예분타주? 대체 뭘 보여 준다는 것이오?”
“헷헷, 이제 조금만 기다리시면 번쩍 뜨이는 구경을 하실 겁니다. 사호법님.”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한 사내가 열심히 등을 굽히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자는 사호법이라는 사람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더럽게 아니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여자 보는 눈이 생긴 것 답지 않게 머리 꼭대기에 달린 이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상수로 여겨졌다.
“어라?”
모극일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오라는 소국은 안 나오고 웬 곰같은 덩치의 험상궂게 생긴 인물이 나오고 있었다. 힘께나 쓸 것 같이 보였는데 이 동네에서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엇쭈, 이년봐라’
그의 눈이 길게 찢어졌다. 아무래도 뜨거운 맛을 좀 봐야 정신을 차릴 계집이었다.
모극일은 헛기침을 하며 뒤를 보았다. 거기에는 분타주(分舵主) 개벽장(開闢掌) 예금(叡昑)과 어제 이곳으로 감찰을 나온 집법당(執法堂) 호법(護法) 파사청죽(破邪靑竹) 사구진(伺久眞)이 서 있었다. 웬만한 강호의 무사들도 한 수 접어주는 사람들이었다. 꿀릴 것이 없었다. 그는 곰 같은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고 입을 놀렸다.
“웬 놈인데 이곳에서 나오느냐, 당장 소국을.....”
모극일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커다란 손이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정은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왠지 소희라는 여인의 눈에서 눈물을 보는 순간, 미려군의 우는 얼굴이 생각나는 그였다. 게다가 상귀와 하귀는 둘도 없는 자신의 동료다. 자신을 대신해 화살을 맞을 정도로.....언제나 가슴속에 남아 있는 빚이었다. 저 생쥐 같은 인상의 중년인에게 능멸당하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노기를 느끼며 걸어가는 탄력을 이용하여 무정의 손이 주욱 뻗었다. 그대로 놈의 목을 움켜쥐고는 하늘로 치켜 올렸다.
“캑캑....”
숨도 못 쉬는지 놈은 꺽꺽대고 있었다. 그는 팔을 뒤로 젖혔다가 그대로 휘둘러 땅바닥에 놈을 메다꽂았다.
“퍼어억”
모극일의 신형이 불에 구운 새우마냥 동그랗게 말렸다. 그의 눈에서 검은자가 사라지고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 나왔다. 그대로 기절해 버린 것이었다.
사구진은 눈을 빛냈다. 동네 파락호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왠지 한가락 할 것 같았다.
귀찮은 일이 생겨버린 느낌이었다.
그는 어제 이곳에 와서 예분타주의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말로만의 환대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강호에 나와 좀 더 즐기고 싶었다. 술도 술이지만 좀 이쁜 계집을 품고 싶었던 생각이 간절했던 것이었다. 그는 은근히 분타주를 채근했고 분타주는 거하게 한상차려 주었다. 허나 불러온 계집들이 눈에 안차는지 그는 묵묵히 술만 마실 뿐이었다.
분타주는 모극일과 상의 하더니 오늘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헌데 보이는 것은 웬 시커먼 놈과 그 뒤를 따라오는 살기등등한 사람들이니 난감한 것은 당연했다.
무정은 주위를 훑었다. 네 명의 인물들이 더 있었고 대문 밖에 두 명의 사람이 더 보였다.
그는 주먹을 휘둘렀다.
“커억,”
“아흑.,”
비명소리가 들리면서 개방의 일결제자들이 널부러졌다.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는 놈들이었다. 무정의 눈에 대문 밖의 두 놈이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두 놈 다 무공을 익힌 듯, 일정한 신법을 펼치며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눈이 곧추섰다. 그의 묵기가 서서히 피어오르려 할때였다.
“사아악”
옷깃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희뿌연 그림자를 잔상처럼 남기며 누군가 무정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얀 뒷머리가 들어왔다. 백염주선 홍관주였다.
사구진은 개방 제자들이 어이없이 당하자 자신도 모르게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문도들이야 많은 개방이지만 문도가 당하는데 뒷짐 지고 있다면 안 될 말이었다. 그는 저 파락호를 한방에 누일 듯이 그의 청죽을 쳐들었다.
그때 그의 눈에 이상한 묵기가 그자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듯 하더니 갑자기 한 노인이 나타났다.
“ ? ”
뭔가 생각이 날 듯 말 듯 했다. 감숙을 순찰중인 방주에게서 무슨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묵기와....흰 수염..... 분명히 뭐라고 한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그는 신형을 멈추었다.
예금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자신의 무공이 높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여긴 그였다.
그는 오른손에 전 공력을 짜내어 모았다. 파옥권(破玉拳)을 시전하는 것이었다. 그의 눈앞에 갑자기 노인의 신형이 나타났다. 그는 무시하고 그대로 무정에게 권을 날렸다.
“빠가가가강”
예금의 신형이 이장 가까이나 솟았다. 눈앞의 노인이 내지른 보이지도 않는 수많은 연격(連擊)때문이었다. 좌우로 신형을 흔들면서 물건을 들어 올리는 모양으로 쳐올린 주먹들은 와류를 형성하며 예금을 하늘로 띄운 것이었다.
“사사사... 퍼억~~~”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치 한 마리의 물고기가 신형을 비틀며 나아가듯, 순식간에 갈지자(之)를 연속으로 그리며 노인이 움직이더니 오른팔로 땅을 짚으며 다리를 하늘로 들고는, 가위질을 하듯이 다리를 교차시키자 땅으로 떨어지던 예금의 신형이 이번에는 땅과 일직선으로 평행하게 날아갔다.
“꽈아앙”
한쪽만 닫혀있던 대문에 예금의 신형이 부딛히면서 박살이 나버렸다. 여기저기 박살난 나무 조각과 예금의 몸 여기저기에서 나온 피가 서로 엉기기 시작했다. 거의 살아난다고 해도 불구에 가까운 몸이 될 것이 분명했다.
사구진은 몸을 떨었다. 너무나도 낮 익은 초식들이었다. 너무나 빠르고, 뭔가 확실히 운용이 달라서 아주 다른 무공처럼 보여졌지만 그래도 그 원류는 알만큼 확실한 초식이었다.
분명히 용호장(龍虎掌), 취팔선보(醉八仙步), 그리고 연쌍퇴(燕雙腿)였다. ....... 흰 머리에 흰 수염, 게다가 개방의 무공이라면......
“.이.. ..... 이....네, 이 노~옴~!”
벽력같은 호통이 터져 나왔다. 사구진은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말로만 듣던 태사조(太師祖) 백염주선 홍관주 어르신이었다.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홍관주는 두 주먹을 꼭 쥔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한 주먹에 다 죽이고만 싶은 그였다. 허나 그럴 수는 없었다. 오십년 동안 살인만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랬기에 예금도 목숨만은 부지 할 수 있었다.
“대답해라!. 언제부터냐.....”
“ ? ”
뜬금없는 이야기에 사구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비친 홍관주의 눈에는 불길이 일고 있었다. 그는 얼른 고개를 떨구었다.
“언제부터 개방이 이따위로 변했냐는 말이다!”
“!.......”
재차 터져나온 홍관주의 호통에 사구진은 ‘부르르’떨며 몸을 사렸다. 엄청난 호통이었다.
노기가 하늘을 찌른 홍관주의 마음이었다.
“.........”
“.........”
아무도 말이 없었다. 홍관주도, 사구진도, 무정일행도, 호통소리에 낮잠을 깬 애들도, 이제 정신이 들어 일어나 상항을 파악하고 엎드려 있는 개방도들도 아무 말도 없는 적막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하루의 시간을 주겠다.”
이윽고, 홍관주의 입이 열렸다. 사구진은 그 말에 얼른 고개를 들었다.
“개방의 육결제자 이상은 전부 이곳으로 모아라!”
“ ! ”
사구진의 눈이 커졌다. 단 하루 만에 어떻게...
“만일.....못 모은다면...”
“........”
사구진의 목울대가 크게 젖혀졌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무림에서 개방이라는 단체는 없어지는 줄 알앗!”
“허억!.....”
벽력같은 홍관주의 말에 사구진은 허옇게 안색을 비우며 헛바람을 내 뱉었다. 홍관주의 표정은 절대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능력도, 강호상의 배분도 가능한 사람이었다.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고 뭐하는 거냐!”
“에, 예....옛 태사조님.”
“태사조라고 부르지도 맛!”
“.........”
무릎에 힘을 주고 일어서려던 사구진은 찔금했다. 이 정도면 정말 노화가 골수에 까지 미친 것이었다. 그는 일어서서 꾸벅 인사를 하곤 남은 수하들을 부추겨 상황을 정리하라 하고는 부리나케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후우.....”
홍관주는 쓸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길게 내 뱉었다. 답답한 마음, 달랠길이 없었다.
“무정아, 아무래도 난 나중에 출발하던지 해야 될 것 같구나,,,”
무정은 고개를 끄떡였다. 일이 화급을 다투기는 하지만 이일도 반드시 해결해야 되는 일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몰려나온 스무 명 가량의 아이들과 놀란 표정의 상귀와 하귀, 소희소저가 서 있었다. 이들은 개방의 태사조가 저 사람 좋아 보이던 홍관주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무정은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은 지체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지만 그런 것을 가릴 상황은 아니었다...시커먼 묵장구름이 동쪽에서부터 흘러오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