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을 보라 (창 13;14-18)
길을 잃었다고 말한다.
조선의 문장가 연암 박지원이 쓴 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하루는 화담(花潭) 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자네는 왜 우는가?”
울고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저는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이제 스무 해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는지라 기뻐 돌아가려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웁니다.”
화담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네게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
눈을 떴다고 다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눈을 떴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닙니다.
눈을 떴다고 다 옳은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눈을 감고 있을 때가 더 나은 것도 있습니다.
차라리 몰랐던 것이 더 나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것에는
애써 눈을 뜨려고 하지 말고
모르면 모르는 것으로 살아가십시오.
무엇을 구할 것인가?
회교의 영적 지도자이며 현자(賢者)인 파리드가
기도의 왕이라 칭송이 자자한 아크바르 왕을 만나러 왔다.
시종은 말했습니다.
"왕은 기도 중입니다."
파리드는 기다렸다가 기도를 끝내고 나오는 왕에게 물었다.
"왕께서는 무슨 기도를 하셨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나는 세 가지를 기도 하였소.
첫째는 성공(成功)을, 두 번째는 부(富)를,
세 번째는 장수(長壽)를 달라고 기도하였소."
왕의 대답에 안색이 굳어진 파리드가 서둘러 궁을 빠져 나왔다.
당황하는 수행원에게 파리드가 속삭였다.
"내가 왕을 만나러 온 줄 알았는데 거지를 만나고 가는구먼!
저런 기도는 거지가 하는 기도지 왕이 하는 기도가 아닐세.
왕이 되었으면 가장 성공한 사람인데 성공을 구하다니?
게다가 이 나라에 왕보다 더 부자가 없을 텐데 부를 구해?
또 오래 살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을 드시는 분이 장수를 구해?
도대체가 왕의 신분에 맞는 기도가 아닐세,
거지들이나 구할 기도지"
+
구하는 것에도 신분에 맞는 격(格)이 있습니다.
거지들의 기도는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구하고
나아가 정욕대로 쓸 것을 구합니다.
왕이요 아들의 신분을 가진 자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합니다.
거지의 기도를 하지 말고 왕의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멀리 보라고 한다.
내가 보는 것은 능력이다.
내가 보는 것은 믿음이다.
예) 축구선수 농구 선수 - 내가 보낼 수 있는 것을 본다.
오늘 본문의 차이
롯은
[창13:9-10]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의 복은 거기까지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능력의 분량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믿음의 분량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그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먼저 하나님의 계획에
주목하였습니다.
무엇을 구할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같은 환경이다.
무엇이 다른가?
내가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것을 내가 보는 것의 차이다.
열매가 다르다.
패배자가 되고 포로가 되지만
준비된 자가 되고 승리자가 되며 구원하는 자가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옛 것 - 좋은 역사가입니다.
새로운 것 - 비전의 사람입니다.
내일 - 하나님의 길을 열어가는 사람입니다.
길은 없습니다.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만들어져 가는가?
믿음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열리는 것이다.
화평한 사람들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가는 사람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사막의 길을 내게 하겠다고 하신다.
무너진 곳을 다시 수보할 것이라고 하신다.
- 생명의 샘이 넘칠 것이라고 하신다.
예레미야 선지자
잃었던 나라를 다시 회복할 것이다.
렘 1;10 다시 세울 것이다.
아브라함
네가 이제 네 나라를 만들어갈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능력을 가지셨고 우리에게 위임하셨습니다.
한 수도자가 길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 때 한 남자가 아주 바쁘게 달려오고 있었다.
수도자가 그 남자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어디를 그렇게 빨리 가시오?”
남자는 뒤도 안 돌아본 채 지나가며 말했다.
“행운을 잡으러 갑니다”.
이 말을 들은 수도자가 말했다.
“왜 그리 바삐 사시오. 지금 행운이 당신을 잡으려고 좇아가고
있는데 당신은 행운보다 너무 빨리 달리고 있지 않소?”
+
에크하르트 툴레는 사람이 불행해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모두 갖는 것입니다.
인디언들은 황야를 전속력으로 질주하다가 갑자기 멈추어
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는지를 살피기 위해섭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곁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내가 꿈꾸어온 가치에서 멀어지지 않을 때에만
진정한 행복도, 가치 있는 삶도 이룰 수 있습니다.
일본에 우찌무라 간죠는 저주에 대해 말했다.
“하나님에게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질병도 실패도 배신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에 저주가 있다면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어보려
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버림받은 심령입니다.
두 번째는 성경을 읽어도, 요절을 외워도 성경은 많이 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성경을 읽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야 됩니다. 설교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내 귀에 들려와야 합니다. 이것이 안 들리면
그 사람은 저주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원망과 불평
뿐입니다.”
+
교회에도, 목사 중에도 저주 받은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으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심령,
들으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귀,
감사거리가 보이지 낳고 불평과 원망으로 삐쭉대는 입술,
이것은 저주 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신명기11: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