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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주 Date 2023. 5. 21
Text 히브리서 10,11-25
(11)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5)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 1년 중 가장 좋은 달은 언제일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이나 늦봄이라 할 수 있는 5월이 좋습니다. 많은 분이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걸 보면 5월을 싫어하는 분은 아무도 없는 것이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좋은 날은 5월에 다 든 것 같습니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16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까지 가정에 관련된 날은 5월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인가요? 5월을 통째로 가정의 달이라고도 합니다.
감리교회에서도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에 이어 오늘 셋째 주일을 청년주일로 지킵니다. 또한 오늘 셋째 주일은 우리나라가 속해 있는 아시아 지역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아시아주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전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함께 예수님의 승천을 기리는 승천주일입니다.
많은 분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대하여서는 관심이 많은데 비해 승천에 관하여는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승천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역이라는 것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사랑으로 성육신하신 성탄, 십자가에서의 희생 제물 되심, 부활의 승리, 승천하여 대제사장이 되심, 심판자로서의 재림 등 다섯 단계로 완성됩니다. 이를 5중 복음이라고도 하고 기독교의 5대 신비라고도 합니다. 이 중 어느 하나도 없다면 완전한 구속 사역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다섯 가지의 의미를 모두 깨달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세 가지 이름이 붙은 오늘 주일에 예수님의 승천이 갖는 신앙적 의미를 보여주는 히10,11-25절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 아시아 모든 사람과 우리 청년들, 각 가정의 부부가 함께 은혜를 받기를 기도하며 전할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은혜받기를 기도합니다.
2. 먼저 11-18절 말씀을 봅니다. 본문의 이 부분은 예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완벽한 제사장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희생이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한 완벽한 제물이 되신 것을 의미한다면, 부활하시어서 죄를 이기신 예수님은 죄와 상관 없으신 제사장이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죄와 상관 없으신 완벽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승천하시어서 하늘 보좌 우편에서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하고 계시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또한 이 일은 어느날 갑자기 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오래전에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렘31,33-34에서 말씀하신 것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본문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생각하면서도 본문을 같이 읽어봅니다. “(11)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5)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주님은 부활하심으로서 죄를 이기신, 죄와 상관이 없으신 분인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때문에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레위 지파 제사장과는 달리 자신을 위해 제물을 드리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대제사장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를 히7,17에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대제사장이라 표현하였습니다. 완벽한 제의는 제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제사장도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부활하셔서 완전한 성전인 하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 대제사장인 것입니다. 히7,24-25절입니다. “(24)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청년 여러분, 부부 성도 여러분, 모든 성도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은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는 희생제물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시어서 죄와 상관 없는 완벽한 제사장으로서 하늘 성전인 하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믿음의 확신과 승리의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늘 제가 사용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더니 보따리까지 찾아내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서 건져낸 건 목숨이고 보따리는 생계 대책입니다. 구원이란 목숨만 건져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옥 같은 삶에서 구해내는 것만으로 그친다면 살기 힘들어지면 그때 괜히 날 살려서 이 고생을 하게 한다고 원망까지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 짐을 지고 고생하며 살던 인생에게 영생을 얻게 하신 주님은 영생을 가진 사람이 죄와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있어야 완전한 구원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청년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오늘의 청년들은 위기에 내몰려 있다고 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 위기란 신앙의 위기입니다. 도와주시는 주님을 알고 그 주님의 도우심만 받는다면 모든 세상의 위기를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위기를 겪고 있는 부부 성도들에게도 대제사장이신 주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기 때문에 그 위기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편이 되셔서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여러분이 잘못되지 않기를 간구하고 계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늘 보좌 우편에서 나를 위한 대제상 역할을 하시는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셔서 또한 도우십니다.
여러분, 이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 믿음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리고 이 믿음을 사용하십시오. 이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이 믿음에 견고히 서십시오. 그리하여 이 믿음을 통하여 승리하시는 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3. 다음, 19-22절입니다. 본문의 이 부분은 22절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가 핵심 요절입니다. 날 위해 어린 양 제물로서 피를 흘려주신 예수님 덕분에 이를 믿는 모든 사람은 감히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이제까지는 없던 새로운 길인데 그것은 예수님의 육체입니다. 거기에다 그곳 지성소를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우리를 위해 길이 되신 예수님이시니 더욱 안심이 되지 않느냐는 말씀이 본문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493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우리가 잘 아는 요14,6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찬송 252장에는 이런 내용이 있지요. “나의 죄를 씻기는, 나를 정케 하기는, 나의 족 속하기는, 평안함과 소망은, 영원토록 내 할 말,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사죄하는 증거도, 나는 공로 없으니, 나의 의는 이것뿐, 나의 찬미 제목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우리나라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출산율이 떨어져서 국가의 존폐위기까지 언급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도 아주 종종 엄마가 어린 자녀와 함께 생활고를 못이겨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이제 아이는 어느 한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결정짓는 존재가 되고 있는 마당에 이런 안타까운 뉴스는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게든 해결하여서 그런 소중한 생명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의 문제는 대부분 교육 문제입니다. 그중에서도 엄청난 사교육비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교육 선진국처럼 최소한 자녀 교육비 때문에 출산을 꺼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능력이 되는 사람은 대학까지, 그 이상까지도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해야 할 겁니다. 물론 입학과 졸업 등 학사관리는 철저해야 하겠지요.
새 정부가 들어서서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하던 가치와는 정 반대로 가는 정책들을 추구하면서 지금 나라는 혼란 상태에 있습니다. 국민들도 양 극단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통합보다는 상대방을 쳐내기만 바라는 극단적 분열입니다. 같은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대립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 서민의 몫이 되어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국민은 암울한 미래를 내다보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 5명에 1명꼴로 심한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여러분,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못합니다. 서구에 계몽주의가 등장하고 인본주의가 등장하면서 그들은 인간의 힘으로 얼마든지 파라다이스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세계 1, 2차 대전이 터졌습니다. 인류에게 파라다이스를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던 인간의 능력과 과학의 능력은 그것과는 반대로 인간을 말살하고 문명을 파괴하는 도구가 되는 것을 세계 1, 2차 대전은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사람들이 인간의 능력을 믿다가 큰코다쳤다면 현대인들은 ‘돈’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어떤 위기에도 ‘돈’이야말로 우리 삶을 지탱하게 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재테크에 관한 책들이 베스트 셀러 코너를 휩쓸고 있습니다.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기 때문인데, 행복한 부자가 되려면 먼저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행복한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워드 휴즈는 65세 무렵에 약 25억 불의 재산을 모은 엄청난 재력의 소유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돈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햇빛이 완전히 차단된 깜깜한 방에서 살았습니다. 그가 한 일이라곤 병균이 두려워 벌거벗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것뿐이었지요 결국 화학 약품에 중독되어 일흔두 살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부자도 있습니다. ‘강철왕’으로 알려진 Andrew Carnegie는 고생 끝에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를 운영했던 사람입니다. 아마 그가 벌어들인 재산만 생각하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에서 최고의 호사를 누리면서 살아도 남고 또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시점에서 회사를 매각하고, 2,509개의 공공도서관, 카네기공과대학, 카네기교육진흥재단, 각종 평화재단 건립 등에 전 재산의 90%를 기부했습니다. 그가 아주 신실한 크리스쳔으로서 ‘부의 복음’이라는 책도 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이 딱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희망을 둘 곳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희망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책임져주시는 주님께로 돌아갑시다.
4. 본문은 마지막으로 23-25절을 통해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고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하며 신앙생활의 기본인 모이기를 잘하라는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함께 읽습니다. “(23)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청년들의 삶에 엄청난 위기가 닥쳐와 있습니다. 미래를 꿈꿀 수 없는 형편에서 ‘3포세대’, ‘5포세대’라는 말들이 회자 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부부들 상태도 심각한 위기 상황입니다. 부부 사이에 그동안 숨겨졌거나 일방이 양보만 하고 있던 많은 문제점이 속속들이 밝혀지긴 했는데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 안의 성도들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교회에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인 믿음, 사랑과 선행, 모이기 등 세 가지가 지켜지고 있지 못합니다. 도리어 세태에 영합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당장은 세태에 영합하는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몰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교회의 생명은 ‘은혜’입니다.
인생을 위하여, 행복한 부부를 위하여, 아시아가 행복한 지역이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이 은혜는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는 곳에 임합니다. 세상이 뭐라 하든 사랑과 선행이 격려되는 곳에 은혜가 풍성하여집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모이는 곳에 은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은혜 운동에 앞장서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셔서 청년들이 꿈을 꾸고 부부가 행복을 밭을 일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