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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일시: 2016년 12월 3일 (토)
o 날씨: 맑음
o 산행경로: 삼수령 - 건의령 - 푯대봉 - 구부시령 - 덕항산 - 큰재 - 황장산 - 댓재
o 산행거리: 26km
o 소요시간: 9시간
o 지역: 강원도 삼척
o 산행정보: 덕항산
o 일행: 좋은사람들 산악회 백두21기
▼ 등산지도
겨울로 접어들면서 대간산행길에 염려가 커진다. 날씨가 추워지면 산행자체도 힘들고, 게다가 챙길것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번구간은 다행히도 날씨가 괜찮다고 하고, 업다운도 크지 않은 편이라 한시름 덜었다. 새벽 4시를 앞두고 도착한 삼수령, 지난번 코스의 날머리가 오늘은 들머리가 되었다. 낮시간의 모습과 밤 시간에 보는 모습도 느낌도 사뭇 다르다.
▼ 삼수령 (920m, 들머리)
[삼수령] 이 고개의 이름은 큰피재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길은 태백시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낙동강, 한강, 오십천의 3대강이 발원하고 민족의 시원인 태백산을 상징하는 三水嶺이기도 하다. 태백에서 분출되는 낙동강은 남으로 흘러 영남 곡창의 질펀한 풍요를 점지하고 공업입국의 工都들을 자리잡게 했다. 한강 역시 동북서로 물길을 만들면서 한민족의 首府를 일깨우고 부국의 기틀인 경인지역을 일으켜 세웠다. 오십천도 동으로 흘러 동해안 시대를 창출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 의미는 3강의 발원인 태백을 찾는 이에게 삼수령의 상쾌한 휴식을 삼가 권하며 이 비를 세운다. 1992년 태백시장 (안내석)
삼척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으로 알려진 황지(지금의 태백)로 넘어온 고개란 뜻에서 피재라고 알려진 이 고개는 지금은 삼척을 거쳐 동해로 빠지는 오십천과 낙동강과 한강의 분기점이 있어 삼수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삼수령에서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 잠깐 임도를 따라가다 산길로 접어든다. 삼수령에서 건의령까지는 약 6.5km이며, 업다운은 크지 않다. 그런데 웬일인지 초반부터 정갱이가 뻐근하다. 헤드렌턴에 비치는 등산로는 몇평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지형과 지세는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떤 불빛도 침투가 허용되지 않는 오지(?)의 山속,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총총하다.
▼ 건의령 방향 등산로
어느 순간 건의령이다. 등산로 안내도가 이곳이 건의령임을 알게 해준다. 여전히 숲속의 새벽은 어둡기만 하다. 오염되지 않은 공기는 차갑기도 하지만 시원하게 느껴진다.
▼ 건의령 (856m, 삼수령에서 6.5km)
[건의령] 관모를 뜻하는 건(巾)과 관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서 건의령(巾衣嶺) 또는 한의령(寒衣嶺)이라고 한다. 태백시와 상사미동과 도계읍 고사리를 넘다드는 고개로 건의령과 한의령은 같은 지명을 두 개의 지명으로 부르는 것으로 이명이지(異名異地)가 아니고 이명동지(異名同地)이다. 건의령(巾衣嶺)은 高麗의 왕인 공양왕이 이성계에 납치되어 원주, 고성, 강릉을 전전하다 최후의 유배지인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 정착하나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의해 피살되자 그를 모시던 신하들이 시신을 거두어 고돌치(고돌재)에 장례를 치루고 조선군의 칼날을 피해 도마재를 지나 건의령에 도착하게 된다. 건의령에서 그들은 망국의 한을 통곡하며 관복과 관모를 벗어서 나무에 걸어두고 피재와 싸리재를 넘어 두문동에 숨어들어 두문불출(杜門不出)하니 개성 땅 만덕산 서쪽 골짜기 두문동재에 이은 두 번째 두문동이 된다. 후세인들은 그들이 살았던 마을을 두문동(杜門洞)이라 하고 뒷 山의 고개를 두문동재라 부르고 있고, 후손들은 공양왕의 두 아들이 죽은 날에 지금도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 처루의 山)
건의령에서 푯대봉까지는 짧은 거리지만 오르막길이다. 어둠속의 오르막길은 눈보다 가슴이 먼저 알게 된다. 희미한 헤드렌턴에 비치는 등산로의 파고를 눈으로는 쉽게 구분하지 못하지만, 가슴은 금방 깊고 거친 숨을 토해낸다. 푯대봉은 푯대봉 사거리에서 뒷편으로 약 100m를 더 가야 하며, 대간길은 푯대봉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지나간다.
▼ 푯대봉 사거리 (건의령에서 1.1km)
▼ 푯대봉 (1009m, 푯대봉 사거리에서 0.1km)
푯대봉에서 푯대봉 사거리로 되돌와 대간길을 이어간다. 아직도 어둡기 때문에 이정표에 유의하지 않으면 무심코 푯대봉 사거리에서 왔던 길(삼수령 방향)로 도로 내려가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푯대봉을 지나 이제는 구부시령으로 향한다. 푯대봉에서 구부시령 사이에도 한내령, 961봉, 997봉 등을 지나지만 딱히 이정표도 없기 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구부시령 직전으 1055봉 까지는 비교적 업다운이 적은 편이다.
▼ 구부시령 방향 등산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모처럼 맑은 날씨라 일출의 장관이 기대된다. 나무에 메달려 있는 겨우살이도 여명에 반사되어 한폭의 그림을 선사해준다. 날은 점점 밝아오는데 '오늘의 태양'은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저 너머의 산자락에는 이미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데... 알고 보니 일출방향으로 작은 산이 일출을 가리고 있다. 일출시간을 넘기고서야 작은 산위로 떠오르는 일출(?)은 일출인가 아닌가....
갑자기 잠깐의 급강하와 급상승이 나타난다. 1055봉이다. 부산의 모산악회에서 붙여놓은 안내판에 적혀 있는 '百酒不如一山' 이라는 글귀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나처럼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래도 산행 중에 곁들이는 한잔의 술(酒)도 一山의 일부일 것이다.
▼ 1055봉
1055봉에서 다시 급강하하여 초겨울의 산길을 걷다보면 작은 돌무덤이 있는 구부시령에 도착한다. 아홉명의 남편을 보냈다는(?) 기구한 팔자의 어느 여인의 사연이 숨어 있는 곳이다.
▼ 구부시령 방향 등산로
▼ 구부시령 (1107m, 푯대봉 사거리에서 5.7km)
[구부시령] 아주 먼 옛날 이 고개마루에는 주막집이 한 채 있었다. 주막집에는 금술이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죽었다. 하루 아침에 과부가 된 여인은 그렇게 한동안 홀로 외로이 살다가 이 재를 넘어가던 한 남정네와 눈이 맞아 짝을 이뤄 살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또 남편이 죽었다. 홀로 된 여인은 또 남편을 얻었다. 그 남편이 또 죽었다. 그녀는 또 새 남편을 들였다. 이렇게 해서 이 기구한 운명의 여인은 아홉명의 남편을 모시게 되었다. 그 때부터 이 재를 아홉 구, 지아비 부, 모실 시, 재 령을 써서 구부시령(九夫侍嶺)이라고 불렀다. (출처: 처루의 山)
구부시령에서 바람을 피해 Shelter를 뒤집어 쓰고 옹기종기 둘러앉은 아침식사시간이 피로를 풀어준다. 장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shelter와 코펠, 버너 그리고 맛있는 식재료(어묵, 우동, 라면 등등) 까지 준비한 산우님들이 고맙기도 하고, 그 체력이 부럽기도 하다. 긴(?) 아침식사후 다시 덕항산으로 향한다. 구부시령에서 덕항산까지는 오늘 구간중에서는 가장 오르막길이다. 아침식사로 배가 부르고 아침 햇살에 등까지 따뜻하니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 덕항산 방향 등산로
덕항산 정상에 정상석이 보이지 않는다. 아담한 정상석이 분명 있었는데... 저마다 이정목에 적혀있는 '덕항산' 이라는 표시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느라 분주하다.
▼ 덕항산 (1071m, 구부시령에서 1.2km)
[덕항산] 환선굴이 있는 산이며, 이 덕항산 일대가 대이동굴지대로 천연기념물 제 1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기면 대이리 군립 공원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중턱에는 지하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동양최대의 동굴인 환선굴이 자리잡고 있다. 봉우리마다 독특한 멋을 한껏 뽐내며 산세가 아늑하기는 “여인의 품”과 같아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산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 진 병풍암이 동남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산으로 주변에는 너와집, 굴피집, 통방아 등 많은 민속유물이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덕항산(1072.5m)은 해발 1,000m 이상의 산지로는 남한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노출된 석회암벽이 분포하는 석회암지대 중 하나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삼척시와 태백시에 걸쳐 있으며 백두대간의 줄기로서 북으로 청옥산과 두타산이, 남으로는 함백산과 태백산과 같은 아고산에 해당하는 산지와 연결되어 있다. 덕항산 일대는 특산식물 및 희귀식물들이 다수가 분포하며, 여러 북방계 식물의 남방한계가 되는 곳으로 식물지리학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6월 덕항산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야생화로는 환선굴로 올라가는 구간의 석회암지대에는 참작약, 가는대나물, 산새콩, 벌깨풀, 솜방망이 등을 관찰 할 수 있으며, 골말~지암재 구간에는 백리향, 터리풀, 하늘말나리, 초롱꽃 등을 관찰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덕항산 정상을 지나 환선봉(지각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우측으로 절벽을 낀 능선길이다. 우측 절벽 아래에 환선굴이 있으며, 환선굴 주차장이 내려다 보인다.
▼ 내려다본 환선굴 방향
▼ 쉼터 (덕항산에서 0.4km)
쉼터를 지나 환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진행방향으로는 귀네미마을의 평원(?)이 다가오고, 그 아래로는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에 공룡의 비늘처럼 기암괴석들이 돋아 있다. 고개를 돌리면 멀리 동해바다가 지척처럼 가까워 보인다. 정말 얼마만에 햇볕을 받으며 걷는 대간길인가...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귀네미마을
▼ 동해항 방향 조망
▼ 환선봉/지각산 (1080m, 덕항산에서 1.8km)
[지각산] '찌걱산'이라고도 하며,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오지의 으로 환선굴에서 덕항산까지 산악행군을 했는데 지각한 사람들을 여기까지 한번 더 돌고 오라고 해서 지각산이라고 한다는 유래가 있지만 불분명하다. 정상석은 환선봉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산 아래에 있는 환선굴로 인하여 환선봉으로 불려지게 된 것 같다.
환선봉을 지나면 자암재를 향해 뚝! 떨어진다. 햇살이 따스하다. 광합성을 하니 몸도 마음도 상쾌해진다.
▼ 댓재 방향 등산로
▼ 자암재 (920m, 환선봉에서 1.5km)
[자암재] 환선굴이 있는 삼척 대이리로 내려서는 길에 장암목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봐서 자암재는 장암재가 맞을 듯 하다.
자암재를 지나면 귀네미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1036봉과 1059봉을 차례로 지난다. 고원지대라 이곳도 고랭지 채소를 재배한 흔적이 많다. 특히 올해는 배추값이 좋아 한포기도 남김 없이 수확된 배추밭이 오히려 풍요로와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결코 녹녹치 않으리라...
▼ 귀네미마을 이모저모
[귀네미마을(골] 귀네미골은 현재 광동댐 이주민의 거주지 이름이다. 정감록에 이르기를 귀네미골이 이상향(무릉도원)으로 가는 길목이라 했다. 귀네미골은 우귀(소)의 이두표기인 우이령 (牛耳嶺)으로 되었다가 "귀넘이" → "귀내미"로 변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뒤돌아본 매봉산 풍력발전단지
임도를 따라 1059봉을 오르면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하늘을 휘젓고 있다. 풍력발전의 메카 대관령을 연상케 한다. 풍력발전기 아래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명풍 트레킹 코스를 보는 듯 하다.
큰재를 향해 임도를 따라간다. 멀리 다음코스인 청옥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큰재에서는 다시 황장산을 거쳐 댓재까지 산길이 이어진다. 업다운이 크지 않아 비교적 무난하나, 거리가 길어지면서 다리의 피로가 가중되는 느낌이다.
▼ 큰재 (970m, 자암재에서 3.4km)
큰재와 황장산 중간지점에는 철쭉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봄에는 울긋불긋한 멋진 장관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1062봉을 지나고 1059봉에서 잠깐의 휴식.... 남아 있는 음식을 서로 나누는 모습이 흐뭇하다.
▼ 댓재방향 등산로
황장산을 100m 앞두고 등산로에 삼각점이 있다. 원래 이곳이 황장산 정상이라는 이야기도 있는 듯 하다. 황장산에는 정상석이 따로 없으며 이정표 중간에 '황장산'이라고 적혀 있다. 황장산을 끝으로 등산로는 댓재를 향하여 짧지만 급격하게 하강한다. 아마도 오늘 코스중에서 가장 고도차가 큰 곳일 것이다. 게다가 내려가는 길이라 또한 다행이다 ^^
▼ 황장산 삼각점
▼ 황장산 (1059m, 큰재에서 4.4km)
[황장산] 삼척시 신기면 활기리와 하장면 댓재 사이에 있는 산으로, 이곳의 유래는 찾기 힘드나 경북 문경에 황장산이 있는데, 금강송 소나무의 군락지로서 누를 黃, 창자 腸으로 소나무 껍질을 벗기면 누런 창자와 같다고 하여 황장산이라고 유래하였다고 한다.
▼ 댓재방향 등산로
▼ 댓재 (810m, 황장산에서 0.6km)
[댓재] 고지도에는 죽치(竹峙)로 표기하였는데 이것은 "대"를 대나무를 뜻하는 "竹"의 훈을 빌려 쓴 것으로 보인다. 대동여지도 등에 댓재의 서쪽에 죽현전, 죽령현이 표기되어 있고, 고구려 때는 죽현현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때 "죽령현"으로 개칭되었다.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 까지는 죽현, 죽령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는 죽치로 불렸고 구전으로 전해 져 온 우리말은 "대고개 → 댓재"이다.
오늘 구간은 다음구간인 '댓재~백봉령' 구간의 예행연습에 불과하다. 다음 구간은 두타산과 청옥산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두개나 넘어야 하며, 그 다음도 빨래판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업다운을 통과해야 한다. 게다가 거리도 30km에 육박하기 때문에 백두대간 코스 중에서도 어렵기로 손꼽히는 구간이다. 12월 중순이면 오지 산간 이곳은 한겨울과 다름 없을 텐데... 날씨와 체력과 코스 매니지먼트가 관건이다. 또 한고비를 넘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시간이다.
▼ 댓재 부근에서 바라본 두타산과 청옥산 (펌)
▼ 뒷풀이 (동해 묵호항 횟집)
▼ 묵호항 이모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