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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금덩어리
그는 그 때, 10 여년간 한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고 공부를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다. 말단 공무원에서 신나게 승진을 해서 두계단을 올라가 한참 신이 나 있던 그에게 그 나이 또래의 사무관이 나타나셔 그의 기분을 매일 잡치게 만들고 있었다. 갑짜기 공무원 계급이 너무 많은 것 같았고 지금 완행열차를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특급이 타고 싶어졌다. 새마을 열차의 창 넓은 식당칸에서 식사를 하며 눈내리는 벌판을 바라보며 품위있게 폼을 잡으면서 인생의 새로운 정착역을 즐기며 가고 싶었다. 그는 갑짜기 지겨워진 이 완행 열차에서 내리고 싶어졌다. 만년 주사의 그의 계장님은 꾸겨진 천원 지폐를 3일 동안 안쓰고 다녔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었다. 비오는 대전 거리를 헤집어 책을 한 보따리 사서 조치원 봉암 안동네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손엔 퇴직금이 들어있는 통장이 있었다. 이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 돈은 이제 그에게 구원이고 생명줄이 되고 있었다. 12년전에 서울의 모대학 기숙사를 도망하면서 志士를 꿈꾸면서 살고 싶었던 그가 부산행 밤 기차 타고 떠나서 이제 노총각으로, 달랑 백 여만원이 든 통장 하나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는 바로 위의 형님 댁에 곁방을 얻어 우선 몇 달만 식객 노릇을 하기로 하고 시간표를 짜서 책상에 붙여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의 알량한 경제학 지식으로 보아도 원유가가 오르면 국제 금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신문에도 연일 이란의 석유 금수조치가 뉴스로 오르고 있었다.
그는 부여에서 금방을 하는 형님 친구에게 금을 사기로 마음먹고 오십 돈을 샀다. 돈당 이만 천원 씩으로 통장엔 돈이 몇만원 만 남았다. 금은 정사각형의 덩어리로 두 덩어리를 플라스틱 통에 담았다 처음 그 노란 돌덩어리를 사온 날 형에게 보여주었을 때, 형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것을 둘 장소를 걱정했다. 그는 이미 지난밤에 그 장소에 대해 생각해 둔게 있었다.
"형은 별걱정을 다해요, 형은 이것을 비밀로만 해주면 되요."
그는 방안의 휴지통 맨 밑바닥에 신문지로 몇 겹을 싸서 두 덩어리의 휴지 덩어리로 만들어 넣었다. 위에는 다른 종이 쓰레기로 덥었다 그는 방을 비울 수가 없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긴 했지만 본인이 직접 그 일을 실천에 옮긴 입장이 되니 느낌이 달랐다. 그에게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쓰레기 통을 헤집어 그 두덩어리의 종이 쓰레기 뭉치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 쓰레기통은 뚜껑이 없는 둥근 것으로 푸른색 푸라스틱으로 되어있는데, 높이가 무릅 위쪽에 오를 만큼 큰 편이었다. 아무튼 그 통은 그의 신경세포조직이 된 양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그 방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매일 라디오 뉴스에 귀를 귀울였다. 드디어 원유가가 상승하면서 현물시장의 금값이 뛰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금값은 일주일 정도 늦게 반영되긴 했지만 상승폭은 거의 비례적으로 뛰어 올랐다. 처음으로 돈으로 돈을 번다는 짓을 시작한 그는 그 자신이 생각해도 대견했다. 형도 고무된 표정으로 눈길을 마주치며 둘만의 비밀에 흡족해 했다.
2만 2천원 하던 금값이 4만원대를 넘고 있었다. 이제는 팔아야 한다. 그는 대전 시내로 나가 금방에가서 값을 알아 보았다. 4만5천원 이지만 매입을 할때는 4만원에 할 수 있단다. 물론 금을 보고 감정해서 97%이상의 순도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려 한 돈당 오천원의 차이가 있었다. 전체 금액으로 이십오만원의 차이가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는 자신이 너무나 대견했다. 그래도 한달 사이에 배로 돈을 불려 놓았으니, 이돈으로 서울 어디나 절간에 밖히면 1년 반은 족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돈을 벌수 있게한 그 자신에 대한 신뢰가 공부에 대한 선택을 한 자신의 선택도 당연이 잘된것으로 결말을 볼 거라는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 그러나 그 순간 생각지 못한 일이 터진 것이다. 대전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고 습관처럼 쓰레기통으로 눈길을 보냈을 때 그의 등에 소름이 돗아 나고 경악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순간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그래, 상황을 파악해야한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그다음에 행동해야지"
쓰레기통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방안과 책상위를 돌아 보았다. 모두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형수가 청소를 해놓은 것이었다. 근 한달여 동안 내방의 청소를 해준적이 없던 형수가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그가 대전간 사이에 모처럼 시동생 방을 청소한 것이었다. 그는 마음을 가라듬고 형수를 찾아서 태연하게 청소 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하며 쓰레기 속에 메모한 종이가 딸려들 어간 모양이라며 쓰레기장이 어디냐고 물었다.
"아고, 이걸 어쩐다냐, 동네 초입에 쓰레기장인디 바람불어 쓰레기가 날려 다니길래 지가 모아서 모두 태웠는디요. 한참을 애를 썼구먼유" 식은 땀이 등에서 나고 손을 어쩌질 못해 맞잡고 그는 마루 위에서 서성거렸다. "생각을 해야한다. 이걸 말하면 형수는 쓰레기 소각장으로 당장 달려가고 온 동네 사람이 금덩어릴 찾는 소동에 동참하려 할거구. 이건 분명 내게 안 어울리는 코메디다."
그는 동네 쓰레기장 언저리에서 누가 볼세라 산책 나온 듯 가장하고 그 주위를 해가 지도록 배회하기 시작했다. 곁눈질로 보아도 도대체 잦을 것 같지가 않았지만 선뜻 달려들어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곳을 떠날 수도 없었다. 해가 질 무렵 형이 자전거를 타고 퇴근해서 돌아오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형은 한번 쓴 웃음을 짓더니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아차렸는지 암담한 표정이었다.
저녁을 먹고 집게와 랜턴으로 중무장하고 그와 형은 쓰레기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소문이 나도 할 수 없고 이 밤으로 찾아내고 말 결의로 그들은 쓰레기장으로 달려갔다.
아마 이른 장마비가 시작될양 마른 번개가 비치더니 형과 그가 쓰레기장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추적거리기 시작했다.
막상 쓰레기장 앞에 서서 살펴보니 3평 남짓한데 그에게는 그렇게 커보일 수 없었다. 가운데는 뒤엄을 내다 쌓아두고 옆으로 군데 군데 쓰레기를 모아 태운 잿더미가 쌓여 있었다. 재가 되면 위쪽으로 올렸는지 가운데 뒤 엄도 잿간처럼 재로 뒤 덥혀 있었다.
형은 형수를 데리러 다시 집으로 갔다. 형의 설명을 들은 형수가 넋이 빠진 표정으로 왔다. "아이구, 이걸 어쩐대유. 전날 되련님 방에 도배할 때 나온 벽지랑 우리 쓰레기가 너무 많구 바람에 날려다녀서 맘먹구 갈키질을 해서 태웠는디" 형은 계속 어느 쪽에 그 쓰레통의 쓰레기가 있었던지를 생각해 보라며 욱박질러댔다.
별수 없이 셋은 집게로 한 귀퉁이씩 차지하고 랜턴 아래 잿더미를 헤집어 나가기로 했다.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그의 등에서는 땀이 나고 있었다. 그는 무엇으로 살았는지 모를 10년간의 부산 생활을 검은 잿더미 속에서 헤집어 보고 있었다. 기숙사를 도망나와 공무원 생활을 할 때도 식구들 모두를 적으로 만들고 이제 또 실업자가 된 자신의 선택을 은근히 걱정하던 차에 거사자금을 잃어버린 그는 군자금을 잃어버린 독립군 마냥 비통해졌다.
"아, 하나님, 이번에 이것을 찾게 해 주십시요. 이건 일확천금을 노린 것이 아니구요. 가난한 청년이 지사의 뜻을 펴기 위한 군자금입니다. 이번에 찾게만 해주시면 다시는 쓰레기 통에서 혼자 돈이 크는 일은 만들지 않겠습니다."
그는 집게를 내려놓고 면장갑으로 검정 덩어리 마다 만져나갔다. 흙덩어리, 타다만 종이 뭉치, 뒤엄덩어리가 겉엔 재를 묻혀 모두 똑같은 검정덩어리 였다. 만질 때마다 그제야 부서지고 혹은 굳어진 형태로 그의 손에 잡혀왔다. 제법 굵어진 빗줄기에 면장갑을 낀 손이 비에 흠씬 젖었다. 그는 장갑을 벗었다. 맨손으로 만져 나갔다. 어느새 지나던 동네사람 둘이서 빗속의 소동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형은 뭘 잊어버렸노라고 만 말하고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마침내 형수가 한덩어리를 찾았다. 그 과정에서 반가운 나머지 형수는 "금덩어리 찾았다! 되련님, 이건 곽이 하나도 상하지 않았어요" 그 제사 옆에 서 있던 동네 사람들이 찾고 있는게 금덩어리라는 것을 알고 자리를 뜰줄을 몰랐다.
그는 재에 뒤엄으로 범벅이 된 손이라 눈으로 만 그 상자를 확인하고 형수를 먼져 가지고 올라 가시게 했다. 이제 남은 한 덩어리는 기필코 이 밤이 지나기 전에 찾아야만 한다. 낼 아침에는 온동네에 소문이 날 것이고 모두 이 쓰레장으로 시선이 집중될테니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를 궁리하던 그의 손에 뭔가 꺼끌꺼끌한 덩어리가 손에 잡혔다. 그건 아니었다. 곽은 정사각형의 통이었으니까. 그의 손에서 미끌어진 그 덩어리가 발옆의 돌에 부딛쳐 떨어지는데 아주 가벼운 소리를 냈다. 그건 돌의 부딛침도 아니었다. 그는 다시 그것을 집어들었다. 플라스틱이 불에 녹아 일그러져 재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빗물에 언듯언듯 분홍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상자는 아주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그 안에 금덩어리도 일그러졌을 것 같았다.
그날밤 소동은 새벽녁에야 끝이 났다. 그는 형내외에게도 미안하고 이놈의 금덩어리가 너무 야속해서 빨리 팔아치울 결심을 했다. 날 이 밝자 금을 산부여 형 친구에게 다시 가공을 부탁했다. 그리고 시세를 다시 물어 그사이 값이 이천원 오른 것을 알았다. 거기서도 사는 것은 오천원 정도 차이가 있었다.
다음날 그는 부산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금값을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해 살펴보니 어찌된 영문인지 부산은 돈당 삼천원 정도가 높은 사만 오천원이었다. 부산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팔고와도 경비가 남는 돈이었다. 가공이 끝나려면 오일 정도를 기다려야 했지만 부산에 갈 수 있고 친구들에게 퇴직한 첫 그의 작품이 성공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다.
다시 가공된 금덩어리를 기다리는 동안도 금값은 오르고 있었다.얼마나 오를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부산에서는 돈당 4만 8천원까지 판매되고 있었다. 이제 배가 더 뛰어 있었다.
다시 찾은 금은 한 덩어리로 만들어졌다. 직사각형으로 영화에서 본 금괴의 작은 형태가 되었다. 푸른색 융으로 된 상자 안에 빨간천 위에 누워있었다. 먹지도 못할 것이 온갖 조화를 부려 그의 간을 조리게하고 마치 그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양으로 웃는 듯 누워있었다. 그는 그 금덩어리를 찾아온 날 이부자리 아래에 넣고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형에게 다녀오마고 인사를 하고 금덩어리와 책 몇권을 넣은 가방을 들고 부산행 열차에 올랐다. 그의 기분은 금덩어리를 따라 그가 끌려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부산을 다시 간다는 것이 그의 인생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는 실감을 주어 그는 주문처럼 자신은 잘할 수 있다는 말을 계속 되뇌고 있었다. 그에게 부산은 삶의 굴곡과 추억을 간직한 그런 곳이되고 있었다.
부산에 도착한 첫 날 밤은 그가 묶었던 하숙집에 가서 함께 기거하던 친구들과 보냈다. 금덩어리 이야기는 말도 꺼내지 않고 금시세를 알아본 친구에게만 그 금덩어리를 늦은 밤에 꺼내 보여주었다. 이 금덩어리는 이제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신비한 물건이 되고 있었다. 그날 밤 그 친구에게 금덩어리 분실 사건을 소근거리며 얼마나 킥킥 거리고 웃었는지 나중에 그들 둘다 허탈에 빠져 작은 침묵 속에서 잠들었다.
다음 날 하숙집 친구들이 모두 출근을 한뒤 그는 하루만 더 묵겠노라고 말하고 버스를 타고 광복동 금방 골목을 누비기 시작했다. 장사는 살 때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팔 때가 더중요하다는 교훈을 가슴에 간직하고 인내력을 가지고 금방마다 파는 금액을 묻고 다녔다. 파는 가격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4만 8천원에서 4만 9천원 사이였다. 그것은 그가 여지것 들어본 가격 중 최고가 였다. 그는 점심을 먹고 이제 본격적으로 매입자를 찾아나설 요량으로 이번엔 꺼꾸로 돌면서 살 금액을 묻기 시작했다.
두 세집을 거칠 때는 긴가 민가 했지만 네집째가게문을 나설 때 그의 발길은 더이상 내딛지 못할 만큼 충격이 그를 휩싸고 있었다. "아, 뭔가 착각을 했구나... 이일을 어쩌지 모두 약속이나 한듯이 팔고 사는 금액의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사질 못하겠다고 거절을 하는걸 보면, 내가 생각을 잘못한 것이구나."
그는 새삼 그가 장사에 대한 보석에 대한 상식이 없었음을 한탄했다. 값이 오를 만큼 올랐기 때문에 지금은 어떤 금도 매수하면 손해를 본다는 것이었다. 값을 메기면파는 입장에서는 살려는 사람을 도둑놈이라고 욕 할거니 아예 사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준 주인이 있었다. 그주인에게 "아저씨는 얼마면 사실수 있는데요" 그는 웃기만 할뿐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상상하는것 이상으로 금방주인은 내려 부를 용기가 나질 않았던가 보다.
그는 수다방 옆을 돌아 용두산 공원 쪽으로 발을 옮겼다. 공원벤취에 앉아 생각을 해 보았다. 도대체 얼마나 낮은 금액으로 살려구 하는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금을 사달라고 할 때도 옆에서는 최고가로 금을 팔고 있었다. 모두 도둑놈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 에 싼값으로 팔고 싶지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그때 금값을 좀 더 받으려는 생각에만 잠겨 있었던 것은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그는 그날 밤에 그에게 닥칠 또 하나의 금 때문에 생긴 재앙을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용두산 공원벤취에 종일 소일하던 노인들이 한사람씩 일어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바다 끝으로 노을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이 애물단지를 갖고 있고 싶지가 않았다. 오늘 안으로 처분하고 싶었다. 어차피 산 값보다는 더 받을 것인데 욕심을 부리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동안 방값, 밥값, 책값을 계산하면서 제대로 팔기만 하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벌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으로 생각했던가!
"도대체 얼마를 받고 싶은건가? 사만원? 이정도면 팔 수 있는데.." 그는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가늠하면서 광복동 쪽으로 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오늘 들른 곳 중 그래도 점잖아 보이는 나이든 주인을 찾아가기로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 저 충청도에서 왔는데, 오늘 이걸 팔고 올라가야하거든요. 받으실 금액을 말씀하시면 좋겠는데요."
그의 표정이 아까와는 달리 빠른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요, 청년 사정이 그러하니 나두 사줘야겠는데, 하지만 내가
몇 군데 알아봐서 값을 어느 정도해야 할지 생각해야 겠어요. 그러니요 옆 이층 건물에 있는 수다방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래요."
그의 말투로 보아 진심으로 그를 위해 배려해주는 것 같았다. 그는 마음이 놓였다. 웬만하면 이 애물단지를 이제 그에게서 떠나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다방으로 들어서 두리번 거리다 뮤직 박스에 있는 디스크 자키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여길 지나치며 그러지 않아도 금을 팔면 그 친구와 한잔하고 내일 떠나려 했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뮤직박스에 그가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삶의 즐거움이 많지만 뜻하지 않은 친구가 멀리서 불현듯 찾아오면 정말 기쁘죠... 제가 오늘 지금 막 도착한 내 친구에게 띄움니다"
그가 좋아하는 Counifransic의 노래였다. 그 친구는 판을 걸고 헤드폰을 내려놓고 제 친구가 누군지 보여줄 양으로 내게 웃으며 유별나게 폼을 잡고 그의 손을 흔들어 댔다.
그는 갑짜기 무대위에 연극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 주져앉고 싶은데 이게 뭔 코메딘가 싶었다. 마치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자들을 위해 기념 촬영을 하는 정상처럼 의자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고 있었다. 더 참지 못하고 그의 입에서 침뱉듯 말이 튀져나왔다. "우라질, 고만 폼좀 잡어라. 저기 가시내들이 네가 관리하는 애들이냐. 나 지금 너 만나러 온게 아니구 사업상 여기 온거니까, 너도 일절만 하구 저 어항 속으로 꺼져 줬으면 좋겠어"
그는 재빨리 메모지에 자기 자취방 전화번호와 퇴근 시간을 적어 주었다. 그리고 앉자마자 공부가 잘되냐, 잘되면 봐주라, 어쩌구하면서 너스레를 일방적으로 떨더니 대답도 들을 시간도 주지 않고 다시 뮤직박스로 들어갔다. 미안한 생각에 그는 뮤직박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는 커피를 시켰다. 그 보석 가계 주인이 올라오면 그의 커피는 마실 필요 없이 내려갈 분위기를 잡아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Wedding Cake이 끝나고 두곡이 더 끝나도록 보석가게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머리 속에는 그 주인이 금값을 얼마를 부를지 그것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때 그의 정면 유리창 너머 두 사람의 사내가 들어오지 않고 그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급히 그를 향해 똑바로 걸어 들어왔다. 신사복의 마른 사내가 그 앞에 앉았다. 또 다른 사내는 그의 옆에 서있었다. 다방 안은 음악 소리로 낮은 목소리의 그 사내의 말은 그에게 들리지 않았지만 이미 분위기는 험상스럽게 변하고 있었다. "금을 파실 분인가요?" "네, 그런데 주인어른이 아니신 것 같은데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사내는 신사복 앞 단추를 풀으며 비스듬이 자세를 바꾸었는데 셔츠사이에 어깨로 내려온 권총벨트와 권총이 보였다. "부산 시경 외사과에서 왔어요, 잠시 동행을 해야겠는데.." "전 그런데 갈일이 없는데..... 왜들 이러는거죠?"
그는 배에 힘을 주고 태연하게 좀 짜증스런 투로 말했다. 옆에 서 있던 사내의 오른팔이 그의 왼쪽 어깨에 얹혀졌다. 그가 약간 누르고 있었다. 위협적인 메시지로 느껴졌다. 맞은 편의 사내가 위협적이지만 낮은 목소리로 또박 또박 말했다. 오른 쪽 벨트에 매달린 수갑통을 치면서 "지금 이자리에서 수갑을 채워 끌고 갈수 있어, 조용히 여기서 함께 자연스럽게 나가는게 좋을거야. 죄가 없다면 잡아먹을 일도 없을 거야."
이게 뭔 뚱딴지 같은 영화촬영인가? 그는 다방안의 음악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유령들의 소리처럼 들렸다. 자기도 모르게 뮤직 박스를 돌아다 보았다. 그는 어깨를 흔들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저런 병신같은 새끼...... 뭔지도 모르면서...."
그는 그의 구원은 단념해야했고 옆에 있던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그 순간 그의 오른 손에 들린 가방을 옆에 서있던 잠바의 사내가 낚아챘다. 그리곤 앞장서 나갔다. 신사복의 사내는 그의 뒤에 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카운터에 가서 커피 값을 치루고 잔돈을 받는 동안 머리 속으로 왜 이런 상황이 온걸까?를 생각해 보았다. "외사과라...흠.. 내 금이 밀수품이란 말이지. 금방 주인이 신고를 한거구" 그의 머리가 맑아졌다. 그 정도는 별것 아닐 수 있는 것이니 안심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밖엔 그 복잡한 도로에 찝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외사과 취조실로
간 것은 거기서 십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가 공무원 생활을 할 때도 몇번 가본적이 있던 곳이고 아는 과장도 있었다. 하지만 취조실에 들어가 좁은 방에 들어갔을 때 주눅이 들고 있었다. 잠바차림의 사내는 그의 가방을 책상 위에 두고 나가고 신사복의 사내는 윗도리를 벗고 옆에 걸린 녹색의 잠바를 걸치고 마주 앉았다.
그 사내는 제법 정중하게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그는 열심이 볼려구 했지만 계급이 경위고 이름이 박으로 시작되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는 그의 가방을 거칠게 거꾸로 ? 아 소지품을 책상위에 벌려 놓았다. 헌법1, 민법책 두권, 잡지, 연필 볼펜 등이 있었다 그 사내는 그의 주민등록증과 소지품을 꺼내놓게 했다. 그리곤 그의 금덩어리 상자를 밖에 있던 다른 수사관에게 감정을 해오라며 보냈다. 금덩어리가 그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그의 수중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박모라는 사내는 그에게 자술서를 쓰라며 종이를 내밀었다. 그 사내는 그에게 어떤 예비적 질문도 없이 범인 취급을 할 태세이고 그의 금을 일언반구의 어떤 증명도 없이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 분하고 괘씸했다.
"아니,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내가 현행범입니까?" 그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즌편 그의 옆으로 다가와 그가 앉아 있던 의자의 한 모서리를 발로 걷어찼다. "자식이... 먹물을 뒤집어 썼나본데,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짜식아"
그 사내의 발이 그의 업퍼진 등짝으로 내리 꼿혔다. "저 금덩어리가 어째 네거냐, 임마. 광안리 물곰꺼지. 물곰이 떳다는 정보가 이미 들어왔어, 자식아. 넌 판매책으로 오늘 첨 온 놈 아니야!" 그의 등쪽에 대고 그 사내는 지껄여 댔다. 그는 신음을 좀 과장스럽게 내며 바닥에 코를 박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등이 도끼에 찍힌 듯 쪼개지는 느낌이었다. "흠...... 뭔가 심한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온 거야. 광안리 물곰은 뭐구, 판매책은 뭐야. 근데 이 자식은 대한민국 경찰 경위가 맞는 거야. 이리 무지막지 하다니......그래, 끝나고 보자"
"너, 사실대로 자술서에 기록해둬. 내가 30분 후에 와서 보고 사실이 맞으면 넌 집행유예까진 갈 수 있어. 그건 보장하지." 그사내는 문을 닫고 나갔다. 곧 누군가 또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새로 들어 온 사내는 발로 그의 옆구리를 뚝 가볍게 쳤다. 그는 일어나 바닥에 퍼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잠바의 사내는 책상에 걸터앉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볼펜으로 책상 위의 백지를 두드리며 쓰라는 듯 사뭇 냉정을 가장하며 겁을 주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입가에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코메디인가. 저놈의 금덩어리가 쓰레기통에서부터 말썽을 부리더니 이제 날 이곳에서 떡을 만들고 있나. 그건 그렇다치고 뭐 이런 닭대가리들이 있나 하는 생각에 슬슬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도대체 뭘 묻고 말고도 없이 다짜고짜로 각 본대로 대역을 하라니 이건 할 수도 없지만, 우선은 시간을 벌어두고 설득을 해야하는데 지금은 누구도 말하지 않고 기를 죽이려고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바의 사내는 그에게 다가와 시계와 벨트를 풀게하고 상의를 벗겼다. 그리곤 윗옷을 뒤져 동전 한 잎까지 모두 책상 위 그의 소지품 옆에 던졌다. 그리곤 그에게 헝겊 쪼가리 같은 것을 던졌다. 넘어질 때 책상 모서리에부딛쳤는지 그의 코와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거울에 비쳐 보고 싶었다. 근데, 그 방에는 거울이 없었다. 창문도 손이 겨우 닿을 높은 곳에 하나만 있었다. 잠바의 사내는 넘겨진 의자를 세워 맞은편 책상에 놓고 앉아 쓰라는 시늉을 하고 그의 소지품을 하나씩 보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피가 그의 옷 앞섭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자술서 용지 위에 흐르는 피가 떨어지게 하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며 보복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잠바의 친구는 코웃음을 치면서 계속 그의 지갑을 뒤지고 있었다. 그친구 눈에 뭔가 색다른게 보였는지 자세를 고쳐서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건 그의 공무원증 이었다. 퇴직을 하면서 반납을 해야 하는 걸 잊고 습관처럼 가지고 다닌 것이었다. 순간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근무처는 기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그 곳에 전화를 하면 동료들이 그를 확인해 줄 것이고 자신의 신원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용기가 났다. 그 잠바의 사내를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그는 피 붙은 자술서 용지를 들어 보란듯이 여러 번에 나누어 찢어 심호흡과 함께 책상 위에 놓았다. 그런 그의 행동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잠바의 그 친구는 공무원증을 그 앞에 흔들며 지껄였다. "당신, 공무원이야. 그럼 말을 해야지. 거 참 별난 친구네"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면 지금은 공무원이 아니고, 아니라고 하면 또 말이되고 그는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 잠바의 친구는 공무원증을 가지고 나갔다. 그는 이곳을 나간다는 생각보다 이 친구들을 어떻게 골탕을 먹여야 할지 궁리가 언뜻 서질 않았다. 우선 병원에 들려 진단서를 만들고 공무원 불법행위성립 요건을 만들어 일단은 고발을 해야하고..... 그보다 다 그만두고 의자에 앉혀두고 똑같이 한번 걷어차고 관둘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프고 쓰린 입술로 형광등 아래 놓여 있는 전쟁포로 같은 그의 소지품을 보면서 그는 갑짜기 울컥 눈물이 났다. 입에 고인 비릿한 피가 한 웅큼 목젖을 타고 넘어갔다. 이 넓은 세상에서 버림받아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발길질이나 당하면서 밀수품 판매책 누명이나 쓰고 있는 그 자신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에 그 가난한 마음을 추수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딴 생각과는 별개로 주책없이 배가 고프다는 생각으로만 마음이 쏠리고 있었다. 그것이 더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잠시후 박모라는 사내가 들어왔다.
"자네 아주 재미있더군, 진급을 하고 석달만에 사표를 내고......"그의 미소는 뭔가 자신 있다는 투였고 미안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 "이봐요, 임의동행으로 사람을 데려와서 고문하고 언제까지 이런 불법구금 상태로 둘 작정입니까?" 그는 울먹이고 있었다.
"뭐, 불법구금, 법률서적을 보시는걸 보니, 꽤 유식한 모양인데, 그럼 검사에게 요청에서 구속영장을 받아 정식으로 시작을 해볼까? 그것도 아직 시간이 있으니 우선 금을 갖게 된 과정과 퇴직부터 지금까지 과정을 솔찍하게 쓰는게 능률적일거야." 그는 차분하게 낮은 목소리로 마디를 끊듯 아주 천천히 말하며 책상 서랍에서 다시 자술서 용지 서너 장을 꺼내 그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그는 지금 그가 근무하던 **국제우체국에 대해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쪽하고 연관을 지으면 밀수 혐의로 조사할 명분은 충분하다는 생각인듯 했다.
그는 볼펜을 잡았다. 손에 묻혀진 피가 끈적거렸다. 헝겁에 볼펜과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무엇을 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가 흔들리듯 턱 전체에 통증이 번지고 있었다. 그 사내는 그의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며 메모지나 여백에 적어둔 글들을 살피고 가방 안을 다시 세밀하게 보고 있었다.
그는 생각나는 대로 간단 간단하게 퇴직한 후 금을 산 경위와 팔게된 경위를 썼다. 특히 금을 산 부여의 금방 이름과 주인과의 관계를 적고 살 때의 금액을 정확하게 기록했다. 그사이에 그 사내는 그에게 그의 상의에서 나온 메모지의 전화번호에 대해 물었다. 그는 친구의 자취방 전화번호라고 말했다.
그의 자술서를 받아든 그 사내는 방을 나갔다. 그는 다시 배가 고팠다. 피가 멎은 입술 안쪽이 쓰려왔다. 책상위에 머리를 묻고 눈을 감았다. 이제 그들에겐 확인하는 시간이, 그에겐 기다리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얼마 후 잠이 든 그를 박모라는 사내가 깨웠다. 그 사내도 피곤한 듯 하품을 하면서 다시 자술서 용지를 꺼내 그 앞으로 밀어 놓았다. "천천이 잘 생각해서 써야 해, 자네가 근무할 때 우편선을 타고 외항에서 우편물을 인수하는 과정이나 콘테이너 선적편 우편물을 인수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예를 들어 써, 우린 당신을 현재로선 믿을 수가 없어. 부여의 금방에서 금을 판 적이 없다고 경찰에 진술했어." 그는 다시 볼펜을 들었다. 상황이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다. 생각지도 않은 쪽으로 그들은 그를 밀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산 금이 부여의 가계에 들어올 때 잘 못 들어온 금이었고, 그들은 그가 근무하던 "**국제 우체국"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발착 계란 곳에 근무를 했었고 그곳은 세계 각국에서 오는 선편 우편물을 우편선으로 외항에 정박중인 화물선으로 부터 직접 인수 해오는 작업을 했었다. 그는 차석으로 실무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의 근무처에서도 잦지는 않지만 밀수와 관계된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 날이 밝으면 그의 사무실 서류들과 동료들이 줄줄이 소환될 양으로 사건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새벽이 오기전에 이일을 마무리 짓고 옛 동료들에게 이런 달갑지 않은 해프닝을 선물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적극적으로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적의를 보이기보다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모라는 사내는 백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우편물이 인계되어 배달되는 과정을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너무 빨리 이쪽에서 굽힌다면 아마 그들은 그의 호의를 오해하여 그를 밀수범으로 몰아가는데 자신감을 가질런지도 모를일이었다. 이미 그들은 우편물이 인계되는 과정이나 처리되는 과정을 대강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고, 세관이 개입하기 전에 외항에서 우편선에 우편물이 옮겨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우편물의 표찰이나 봉인의 검사 여부, 배에서 인수인계시에 정검장의 확인 등을 자세하게 물었다. 그는 대답하면서 점점 다급하고 당황스러워지고 있었다. 그가 예상한대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우선 그가 원하는 내용을 쓰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는 이번에는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내가 원하는 것만 쓸수는 없었다. 그는 부여에 금을 사러갔던 때의 기억을 살려 그가 그곳에 간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머리 속에 아까부터 자꾸 외사과장이었던 "황모 경정"의 이름을 그들에게 들먹여 그에게 구원을 청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황모 경정이 지금도 그를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는 지금 자술서에 그가 빠져 나갈 수 있는 유력한 단서를 쓰고 그걸 빨리 확인하게 그분의 이름을 거명해서 도움을 요청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는 집에 있는 국민은행 통장의 입 출금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하고 싶었다. 그 통장에는 그가 퇴직금을 수령한 날과 금을 사기 위해 부여에서 목독으로 거의 몽땅을 인출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측에서 국민은행 부여지점 쪽에 연락을 하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마지막 부분에 통장 이야기와 금을 잃어버렸던 "쓰레기통 사건" 그리고 그걸 다시 부여 금방에서 가공한 이야기까지 썼다. 제발 그들이 부여 금방에서 잘못 들여온 금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 할 수 있다는 것을 재고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몇 시나 되었는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잠바의 사내가 쟁반에 라면 세그릇을 담아 가지고 왔다. 그는 그릇 수를 보고 안도 했다. 그들이 호의적이라는 생각과 그걸 먹고 자신이 여유를 찾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천상 그들은 아옹다옹하면서도 같이 라면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라면을 국물까지 다마시고 난 그는 그제야 입술이 다시 쓰려옴을 느꼈다.
박모라는 사내는 담배를 피워물고 그의 헌법책의 첫장을 하릴없이 넘기고 있었다. 그는 슬며시 기침을 한번 하고 그 사내와 눈이 마주쳤을 때 황모 경정의 말을 꺼냈다. 그 사내는 그 말이 떨어지자 의자를 돌려 앉았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가 아직도 외사과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거나 한청 안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는듯 싶었다. 그는 황모경정을 만나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사내는 그에게 심하게 대했던 부분이 걱정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그 황모 경정과 그는 잘 아는 사이가 아니고 오래전 업무로 몇번 대화를 나눈 적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에게도 황모 경정에게도 특별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기억을 할듯 했다. 사건의 실마리를 황모 경정에게 그가 결정적으로 제공했기 때문에 황모 경정이 그를 기억하고 있을성 싶었다.
국가 모기관에서 독일로 부터 우편행낭을 가장한 채 기막힌 총의 샘 풀을 받기로 되어있었는데 그 행랑이 포함된 함브르크에서 온 행낭 7개가 귀신같이 사라졌었다. 각기관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비상이 걸려 찾고 있었고 황모 경정은 외사과팀을 지휘하는 팀장이었다. 그가 어느날 점심시간에 황모 경정과 마주쳤을 때, 신분을 밝히고 자기 생각에는 혹 그것이 세관 창고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충고를 해주었었다. 그의 예상대로 세관 창고에서 한 달이나 잠을 자고 있던 행낭을 찾아내 황모 경정이 그를 찾아와 저녁을 사주며 고마워했었다. 그 행낭은 하역 작업을 할 때 아마도 영문자 M을 N으로 잘 못 읽은 일등항해사가 세관 창고 보관으로 분류했던 것이다. 그는 하역을 할때 아시아계 항해사들이 mail을 nail로 잘못 읽는 경우를 보았었던 것이다.
다쓴 조서를 박모라는 사내에게 넘겨주었다. 이번에는 그 사내가 읽어가며 묻기 시작했다. 그는 남의 이야기를 하듯 우편 행낭을 인수인계하는 이야기며 만국 우편 통계조사 이야기며 그 친구가 모르는 이야기를 슬쩍 슬쩍 삽입해서 시간을 끌며 분위기를 호의적으로 잡아나갔다. 그 사내는 눈치를 채고 있었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말을 많이 해봐라 넌 언젠가 네 말에 네가 채일테니 하는 식으로 계속 듣고 있었다. 그들은 어차피 중요한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 사내는 날이 밝으면 국제우체국을 덮칠 궁리이고 그는 통장의 잔고 확인을 받고, 다시한번 부여 금방주인에게 답을 받아야 했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밖의 차도의 차소리가 많아지고 있었다.
"황경정님은 만날 수 없어, 사건이 끝날 때까지. 하지만 국제우체국을 조사한 후에 부여 쪽을 다시 한번 확인할 용의는 있어."박모라는 사내는 여전히 그를 굴비 엮듯 엮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모양이었다. "어차피 잘못 시작된 건 우리가 아니라 자넬쎄, 우린 어제 아침부터 금방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어. 자네가 너무 어설퍼서 우린 잠시 조사만 하고 보낼 작정이었는데...... 뜻밖에 국제우체국이 걸려 나오는 바람에 그쪽을 조사해야만 된단 말이야. 거긴 가끔 냄새가 나는 곳이거든." 그 사내는 차분하게 그에게 이해시키려는 투가 되어가고 있었다.
간간이 메모지를 전달하던 잠바의 사내가 이번에는 제법 큰 서류를 가지고 들어왔다. 박모라는 사내는 그 서류를 그의 코앞에 밀어놓았다. 그건 현재 근무하는 **국제 우체국 직원의 명단이었다. 그는 그에게 함께 근무한 직원들의 이름 옆에 표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침이 되면 그들을 차례로 소환하겠다는 것이었다.
하루가 더 연장되면 검사에게 영장을 청구할 것이고 조사를 시작하면 어떻게든 엮기 위해 그가 근무하던 사무실을 발칵 뒤집어 놓고 먼지가 나지 않으면 먼지를 만들어낼 작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쇼가 더 연장공연이 된다고 생각하니 더우기 그 많은 엑스트라들까지 동원 된다니 등에서 소름이 솟아올랐다. 그는 전에 이와 비슷한 조사를 하던 것을 본적이 있었다.
그는 아주 간곡하게 박모라는 사내에게 **국제우체국을 조사하기전에 부여 쪽을 다시 한번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할 수 있지. 하지만 자네가 그전에 내게 약속을 해 줄게 있어. 만일 부여 쪽에서 금을 팔았다는 게 확인되면 자네는 내게 오늘 일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겠다는 각서를 내게 써 줄 수 있겠어? 그리고 자네는 황경정님을 만날 필요없이 여길 떠나는 거야" 그 사내는 지금 그의 결백을 믿는 눈치인데 일의 정황상 뭔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투였다.
"난 억지를 부리는 것은 아니야, 일단 부여 쪽 조사는 어제 확인되었으니 우체국 쪽을 조사하는게 자연스런스럽지 않느냐 말이야." 그는 백지에 썼다. "어제밤부터 오늘까지의 금덩어리와 관련된 일은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일자와 무인까지 찍었다. 그 사내는 웃으며 "어차피 법적효력은 없는거지만 자네가 약속을 어기면 나도 양심의 가책 없이 얼마든지 심하게 할 수 있는거지."
두 사내가 나간지 30분쯤 들어와 소지품과 벨트, 가방을 챙기게 했다. 금덩어리 상자를 가져와 확인시키고 주었다. 밖엔 아침 출근길로 거리가 분비고 있었다. 그는 뒷쪽길로 부산역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밥집에 들려 국밥을 한 그릇 먹었다.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마다 욕찌거리가 삼켜졌다. "야비한 자식!"그는 이 도시를 빨리 떠나고 싶었다. 보도불럭 위에 빈깡통을 걷어찼다. 30분이라는 시간으로 부여 쪽을 다시 조사한 것은 아니고 이미 새벽녁에 재조사한 통보가 이쪽으로 도달해 있었고, 우체국쪽을 조사한다는 것은 이의를 달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내려는 속임 수였던 것이다.
아무에게도 떠난다는 전화도 없이 조치원행 기차에 올랐다. 자리에 앉자 그는 창과 무릅 사이에 가방을 끼워놓고 기차가 떠나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그는 꿈을 꾸었다. 어린 그가 큰 나무들 사이 숲에서 매미채를 들고 매미를 잡기 위해 하늘쪽으로 난 나무가지를 보며 살금거리며 걷고 숲엔 정적이 감돌았다. 순간 그는 다른 나무둥치에 부딛쳐 나뒹굴었다. 기차가 구포역에서 급정차하며 그는 앞 등받이에 부딛치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아물던 입술이 다시 터졌는지 쓰려왔다. 그와중에도 그의 눈은 가방만 찾고 있었다. 순간 그는 그의 미래가 그가 생각한 대로 펼쳐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