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4/ 부르심에 순종하여 가는 모세를 죽이려 하시다니?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출 4:24~26)
이 구절의 난해함은 다른 구절과의 충돌이나 단어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다. 전후 문맥과 동떨어진 내용의 의외성 때문이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너무나 돌발적인 사건이다. 전개 과정도 매우 극적이고 격렬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이라는 대사명을 맡기기 위해불타는 떨기나무 사이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그리고 주저하는 모세에게 용기를 주시고 이적으로 징표를 주시고, 심지어 노를 발하기까지 하시며 그를 애굽으로 가게 하셨다. 그러나 막상 모세가 순종하여 애굽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 죽이려고 하셨다.
왜 하나님은 자신이 친히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도록 지도자로 세우신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는가? 무슨 일이 있었는가?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한 모세는 장인에게 요청하여 그로부터 허락을 받았다(출 4:18). 하나님은 그런 모세에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라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19절)고 지시하신다. 이에 모세는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20절) 길에 올랐다. 여기서 '아들들'이라는 복수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세에게는 게르과 엘리에셀 두 아들이 있었다. '아들들'이라는 복수로 표현되었으니 이 두 아들이 모두 귀향길에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게르솜은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 온 후에 십보라에게서 얻은 아들(출 2:22)이다.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은 "내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출 18:3)는 모세 자신의 '낙담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엘리에셀은 '나의 하나님은 도움'이라는 의미로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4절)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 광야 세월이 지나면서 '감사'를 느끼기 시작한 심정을 고백한 것이다. 아들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은 모두 그의 광야 생활을 반영하고 있다.
여하튼 이런 갑작스러운 돌발 사태에 십보라의 즉각적인 반응이 사태를 진정시킨다. 사태의 돌발성만큼 십보라의 즉각 반응도 현저하다. 그녀는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25절) 벤다. 즉 할례를 행한다. 이 구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십보라가 포피를 벤 아들이 단수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아들 두 명 모두의 포피를 벤 것이 아니라 두 아들 중 한 명의 포피를 베었다. 다시 말해 한 명은 이미 할례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때 할례를 행한 아들이 누구였을까? 말할 것도 없이 둘째 아들인 엘리에셀이었을 것이다.
모세는 이때까지 작은아들 엘리에셀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 할례를 태만히 한 이유는 아무래도 십보라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종교와 문화적 풍습이 달랐던 미디안 출신 십보라는 어떤 이유에서든 엘리에셀의 할례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십보라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했을 때, 그녀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녀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를 곧바로 파악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돌을 취하여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출 4:25) 할례를 행하였다.
할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의 표로 주어졌다. 이 언약을 행치 않을 경우에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되어 있었다(창 17:10~14). 모세는 지금 언약의 백성을 구원하러 가면서 정작 자기 아들에게는 언약의 증거를 행치 않은 것이다. 백성을 해방시켜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고, 또 백성을 위해 율법을 받아 선포할 자신이 할례를 등한히 한 큰 죄를 범한 것이다. 엘렌 G. 화잇도 같은 맥락에서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미디안에서 나오는 길에 모세는 여호와의 불쾌히 여기심에 대한 놀랍고도 무서운 경고를 받았다. 그를 당장 죽일 것처럼 한 천사가 그에게 위협하는 몸짓으로 나타났다. 아무 설명은 없었으나 모세는 그가 하나님의 요구 중 하나를 무시한 것을 기억하였다. 아내의 권유에 못 이기어 그는 막내아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을 등한히 하였다. 모세는 그의 아들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받을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 저희가 선택한 지도자의 이런 태만은 백성에게 보내시는 하나님의 교훈의 능력을 감소시킬 뿐이었다.” (부조, 255~256).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했을 때, 어떤 방법으로 죽이려고 했을까? 출애굽기 4장26절의 놓으시니라'를 '치료하셨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모세는 할례 사건으로 인해 아마도 지독한 질병에 걸려 죽게 되었던 것으로 추측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히브리 단어 라파는 '치료하셨다'보다 문자 그대로 놓아 주셨다'로 보는 것이 더 일반적인 해석이다. 출애굽기 4장 24절의 '만나사의 히브리어 파가쉬는 '대면하다'(toencounter)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발람의 경우에서처럼 가현적으로 나타나시어 모세를 상면하셔서 붙잡아 죽이려고 했던 것이 분명하다. 모세 부부는 이 사건으로 자신들이 받은 사명이 얼마나 엄숙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얼마나 엄정(正)하게 자신을 관리해야 하는지도 새삼 확인했을 것이다.
모세는 이 사건 후에 아내와 두 아들을 장인에게로 돌려보내고 홀로 애굽으로 떠났던 것 같다. 이후 아말렉과의 전쟁이 끝난 후, 시내산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돌려보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 그의 두 아들을 데리고"(출 18:2~3) 돌아왔다. 그리고 이드로는 다음 날 모세가 홀로 모든 백성들의 문제를 담당하는 것을 보고서 부장 제도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