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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30 접붙임2-예복(義복)을 입었는가?- 이주용 장로
성도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도 귀한 안식일을 허락하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 함께 나눌 말씀은 예복을 입었는가 가운데 한문은 의(義)자죠 예복(禮服)은 의복(義服)입니다.
의복을 입었는가 예복을 입었는가 예복을 입었는가 원래 실물 교훈에는 예복을 입지 않음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목이 굉장히 부정적이죠 예복을 입었는가 이렇게 나왔으면 좋겠는데 예복을 입지 않음 이렇게 와이 부인께서 쓰셨어요.
저도 이 제목을 그대로 달고 하려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제가 예복을 입었는가 입었는가가 더 낫겠죠 입지 않으면 이렇게 단정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오늘 마태복음 22장에 혼인 잔치의 비유 실문교 24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예복은 의복입니다. 의복은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게 옷 의(衣) 자죠 의복(衣服) 이거는 신체를 가리는 신체에 입는 옷이죠 몸에 맞는 이 두 번째 의복(義服)은 뭐예요? 품성의 옷
우리 교회에서는 신체 옷이 아니라 품성의 옷을 다루죠 예복은 무엇인가 왜 우리가 입어야 하는가 그다음에 어떻게 입을 것인가 이 시간에 우리가 함께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우리 대표로 좀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데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세.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원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감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아멘. 혼인잔치를 베푸는데 결론이 어떻게 나왔어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구속의 역사의 도표를 보면 간략하게 창조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의 두루마리를 입었죠 그다음에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두루마리가 벗겨집니다.
그다음에 무화가 옷을 해 입죠 가리개로 하나님이 그걸 벗기시고 가죽 옷을 해 입히세요.
그 가죽 옷은 표상적인 옷이죠 양가죽 옷 그다음에 가죽 옷을 해 입히고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보냅니다.
쫓겨나죠 그리고 이제 다시 이 땅에 살면서 세마포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들어가게 돼 있어요. 이게 성경
66건 6천년 역사의 도표입니다. 쫓겨날 때 왜 쫓겨났죠? 영광의 두루마리가 벗겨졌죠 그리고 다시 세마포 옷을 입고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올 때는 뭐 하러 쫓겨나온 거예요 세마포 옷을
입으려고 맞죠 성경이 이게 진짜 핵심입니다.
영광의 두루마리가 벗겨졌어요. 그리고 무화가 옷으로 해 입었어요.
근데 하나님이 무화과 옷은 안 된다.
가죽 옷으로 임시 표상적인 옷이죠. 그 가죽은 양가죽이죠.
양은 누구예요? 예수님 예수님의 옷으로 이게 세마포 옷인데 예수님의 옷으로 갈아입으면
그다음에 다시 에덴 동산 들어올 자격이 있다.
성경 지금 제가 창세기서부터 계시록까지 1분 사이에 다 보여드렸습니다.
지금 이게 핵심이에요. 오늘 내용이에요.
선곽의 대쟁투는 옷 갈아입히는 싸움입니다.
옷 갈아입는 싸움이 아니고 옷 갈아 입히는 싸움이에요.
우리의 싸움이 아니고 하나님의 싸움이시죠
루스벨은 하나님의 영광의 옷을 무허가 옷으로 갈아입혔어요.
누가요? 루스벨리. 그다음에 하나님은 무아가 옷을 가죽 옷으로 입혔다가 그다음에 예복 그리스도 의의 옷으로
갈아입히십니다. 마귀는 이걸 방해하겠죠 그죠? 의의 옷 만들고 무허가 옷 벗기고 하나님의 옷 입히는 데 이게 6천년 걸려요.
6천년 역사입니다. 구속의 역사는 옷 이야기로 시작해서 옷 이야기로 마칩니다.
빛의 두루마기 이게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의 형상이에요.
이게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영광의 옷 그다음에 무허가 옷을 해 입죠 이게 죄인이 만든 옷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만드시는 가죽 옷이죠 양가죽 옷 이건 표상적인 옷입니다.
네 번째 이제 속옷이 나옵니다.
속옷이 이 예수님의 옷 예수님의 의 이게 신성의 옷입니다.
다섯 번째 흰옷입니다. 계시록 3장에 나오죠 이게 옷은 사는 옷이라 그래요.
흰 옷을 사서 입어라. 이건 칭의라고 제가 이야기합니다.
이 옷을 처음에 입으면 칭의예요.
근데 그 옷을 입고 살면 또 죄로 더러워지죠 옷이 그걸 두루마기라 그래요.
그래서 빠는 옷 두루마기는 빠는 옷입니다.
그 옷을 빠는 자들은 복이 있다. 옷을 세탁해 입어라.
자꾸 더러워지니까 이건 회개를 상징하면서 이건 성화 때 입는 옷이에요.
그 다음에 일곱 번째는 혼인 예복입니다.
이 혼인 예복을 입어야 무엇을 통과합니까? 조사 심판 그럼 조사 심판이 뭐예요? 혼인 예복을 입었나 안 입었나를 검사하는 거예요.
이해하셨죠?
그래서 조사 심판을 통과할 수 있는 일이 오늘 공부하는 이 혼인 예복입니다.
이 조사 심판만 통과하면 우리가 이제 영원한 세계로 다시는 죄가 없고 사망이 없고 아픔이 없고 죽음이 없는 영원한 세계로 우리가 접어들어가는 거죠.
타락은 루스벨이 하나님의 영광의 두루마기를 벗겨서 생겼죠
회복은 하나님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히십니다.
옷 싸움이에요. 그죠? 사단이는 옷을 벗겨버렸고 하나님은 옷을 다시 입히는데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의 두루마리가 좋을까요? 원래 입었던 두루마리가 좋을까요? 예수님의 세마포 옷이 더 좋을까요?
제가 전에 많이 힌트를 드렸는데 비교가 안 됩니다.
나중에 또 할 시간 있으면 하겠습니다만 예복이 무엇인가? 이제 오늘 말씀 아까 본문을 읽었죠 본문을 말씀을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가 10가지 한 질문들을 만들어 봤습니다.
예복이 무엇인가? 혼인잔치에 들어갈 자격은 무엇인가? 무엇이지? 혼인잔치에 들어갈 자격이 예복을 입는 거죠 예복을 입을 자격은 그럼 무엇일까요? 예복을 입을 자격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악한 자와 선한 자 예복을 입을 자는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다 예복을 입을 수 있어요.
그럼 악한 자와 선한 자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악한 자도 예복을 입을 수 있고 선한 자도 예복을 입을 수 있습니다.
예복을 입을 수 있는 자격은 죄인이 되면 돼요.
죄인만 되면 이 예복은 죄인에게 입혀주는 겁니다.
의인 만들려고 차이점이 있어요 없어요? 있긴 있지만
있긴 있는 것 같지만 없어요. 그래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원하는 자는 다 예복을 입을 자격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 임금이 준비한 예복을 입지 않았으며 둘 중 안 입을 확률이 더 높은 자는 누구일까요? 여러분 악한 자와 선한 자의 선한 자가 하나님이 임금이 준비하신 이 예복을 안 입을 확률이 누가 더 많을 것 같아요?
장로님은 벌써 그냥 예리하게 그냥 딱 짚으셨습니다.
선한 자가 많을 것 같지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누구죠? 자칭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언제나 성경에 한 사람 나올 때는 반드시 누구예요? 나예요.
나.
성경은 성경의 주인공은 나입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오늘 본문에서 많을까요 적을까요? 모르세요 넘어갑니다.
왜 유구무언했으며 그 수족을 결박했고 슬피 울며 이를 갈았을까?
너 예복 안 입었다 하니까 이 사람이 유구무언이어 유구무언이에요.
가만히 있어요. 나가 하니까 안 나가죠.
그러니까 수족을 결박했고 어두운 데 내동댕이 쳤어요.
그래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부드득 부드득 가는 겁니다.
이 장면이에요.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어떤 옷을 과연 입었길래 예복을 입지 않았을까?
예복보다 좀 더 좋은 옷을 입었겠죠 그러니까 예복을 안 입죠.
모조 예복은 누가 무엇으로 만들어 입었겠는가? 그가 모조 옷을 입었는데요.
오늘 주제는 혼인잔치 초청에 응한 자와 응하지 않은 자 이야기가 아닙니다.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예복 입음과 입지 않음 얘기가 아니고 둘 다 다 예복을 입었는데
어떤 예복을 입었느냐여 가짜 예복이냐 진짜 예복이에요.
예복을 입었냐 안 입었느냐가 아니라 가짜 입었느냐 진짜 입었느냐 그러니까 마태복음 22장은 신자와 비신자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을 구분하는 게 아니고
똑같이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데 그중에는 가짜가 있고 진짜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예복을 입었느냐를 구분하는 것이 오늘 마태복음 22장의 핵심입니다.
왜 예복을 입어야만 하는가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죠? 죄인이 하늘에 들어가지 못하는 정확한 원인이 무엇일까요? 이제 생각하고 따라오십시다.
이에 그들이 눈에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허가나무 잎을 엮고 치마를 하였더라.
알몸이 됐습니다.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옷이 벗겨졌어요. 벗겨진 것이 무엇인가? 그들의 몸을 두르고 있던 빛의 두루마귀는 이제 사라져버렸다.
빛의 두루마기는 하나님의 영광의 옷입니다.
품성의 옷이에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이나 품성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는데 하나님의 형상이 걷어지고 사단의 형상이 되면서 이 옷이 벗겨졌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벗겨진 다음에 아담이 너 왜 먹었니? 했더니 뭐라 그래요? 저 여자 때문에 먹었습니다.
먹기 전에는 어땠는지 아세요? 이 여자 없이는 하와가 먼저 먹었죠 그죠? 하와가 먼저 먹고 아담에게 갖다 줬더니 아담이 깜짝 놀래요.
근데 결심을 하기를 이 여자 없이는 내가 혼자 살아야 뭐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지.
그래서 이 여자 없이는 나는 못 살아 하고 이 여자를 너무 사랑했어요.
하와를 그래서 먹었는데 먹고 난 다음에 너 왜 먹었니? 하니까 뭐예요 저 여자 때문에 먹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신 그 여자 그가 그 나무의 실과를 내게 주물러 먹었다.
저 여자 골치 아픈 여자야 나를 먹게 한 여자야.
이렇게 바뀌었어요.
영광의 두루마리 바뀌지니까 품성이 이렇게 바뀌었어요.
그거 먹기 전에는 하와 없이는 못 살 만큼 사랑했는데 이제는 저 여자 때문에 내가 죽게 생겼다고 원망하고 원망을 하와에게 돌리는 하나님에게 돌리는 이렇게 품성이 따로
하나님 마귀의 형상을 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벨을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러분 가인이 살인 연습을 한 것도 아니에요.
근데 이 살인하는 마음 동생을 돌로 쳐죽일 만큼 얼마나 미웠으면 그렇게 했을까
요즘에도 보기 쉽지 않은 장면인데 여러분 어떻게 가인이 이렇게 동생을 죽일 수 있을까? 여러분 이 품성이 어디서 왔어요? 예 이 품성이 어디서 왔어요? 아담에게 물려받았어요.
아담에게 아담은 어디서 왔습니까? 그 품성이 루스벨에게 왔습니다.
죄인 아담과 죄인 가인의 차이점이 뭔지 아세요? 죄인 아담과 죄인 가인의 차이점 보세요.
아담은 범법한 죄인입니다. 선택적 죄인이라 그래요.
선악가를 먹음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됐어요.
아담은 이해하시죠?
아담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데 가인은 유전적 죄인이에요 타고난 죄인이에요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됐어요.
아담의 죄가 책임이 클까요? 가인의 죄가 책임이 클까요? 아담이 커요.
여러분 가인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되었어요.
여러분 이걸 알아야 돼요. 그럼 우리 모두는 아담의 후회예요 가인의 후회예요
가인의 후회예요 물론 아담의 후회지만 아담 범죄하기 전이 아니라 아담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됐고 가인은 이미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죄를 지었어요.
이제 이 근본을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사과를 달기 때문에 사과나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가 달립니다.
맞죠? 이걸 유전적 전자동 죄인이라 그래요.
전자동 죄인 유전적 죄인 그러니까 뭐예요? 죄를 짓는 것은 뭐예요? 당연한 거고 죄를 안 지을 수가 없는 거예요.
죄인은 여러분 이 문제를 여러분이 책임지시려고 그러면 안 돼요.
우리가 책임질 부분은 다른 부분이에요.
그리스도가 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기심으로 부패하여진 것과 죄뿐이다.
인간은 순결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몹시 불쾌감을 주는 더럽고 타락한 것과 죄로 오염된 것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읽어보시겠어요?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인간은 죄 나무이기 때문에 절대로 의를 생산할 수 없다.
이제 인간은 나무가 죄나무가 됐어요.
제가 보니까 사과나무는 사과밖에 못 달더라고요.
복숭아 나무는 복숭아밖에 못 달아요.
그러니까 인간은 죄 나무가 됐기 때문에 죄밖에 못 따라요.
의는 절대 못 따라요. 이걸 절대적 죄인 유전적 죄인 어쩔 수 없는 죄인 죄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읽어보세요.
잔칫자리에 임금이 손님을 심사하는 일은 심판을 표상한다.
복음 잔치에 참석하는 손님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자들이며 생명책에 저희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다 참된 제자는 아니다.
최후의 상급을 주기 전에 먼저 누가 의인의 유업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결정은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이다.
하늘 궁정에서 진행되는 조사 심판은 사람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 행해진다.
재림하시기 직전에 이제 조사 심판이 완성되지.
조사 심판을 무엇으로 하는가? 하나님의 율법은 심판 때에 사람의 품성과 생애를 측정하는 표준이다.
조사 심판은 하나님의 율법으로 합니다.
읽어보실까요?
하나님의 율법의 적용 범위는 겉으로 드러난 행동 범위는 물론이오 감정과 동기까지 이른다.
그것은 어둠 속에 숨겨진 것들 위에도 빛을 비추기 때문에 마음에 숨겨진 비밀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모든 생각과 목적과 동기를 아신다.
하늘 책에는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범했을 죄도 적혀 있다.
그분은 율법을 가지고 모든 사람의 품성을 측정해 보고 계신다.
감정과 동기까지 행동 범위는 물론이지만 감정 동기 밑에 파란 글씨는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범했을 죄도 적혀 있다.
이 말은 뭘까요? 죄 지을 가능성이 있는 품성이냐 아니냐를 율법이 심사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거 통과할 자신 있으세요?
우리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옷 벗겨놓고 저주를 퍼붓고 가시면 식고 뺨을 때리고 침을 뱉고 그런 경험이 없지.
만약에 그런 우리가 그런 경험을 하게 될 때에 내 품성이 그럴 때에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한다는 거야.
만약에 있다 그러면 통과를 못하고
없다. 그래야 통과가 된다는데 우리 인간의 품성으로 죄인의 품성으로는 이게 불가능해요.
이게 조사 심판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조사 심판을 통과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예수께서 준비하신 예복을 입지 않으면 절대 통과할 수 없어요.
그래서 왜 우리가 예복을 입어야 하는가 이제 이해하셨죠?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예수님이 만드신 예복 그리스도의 의 그리스도의 품성뿐이라는 거예요.
우리의 품성 갖고는 절대 통과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까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선한 자도 이 여기에 통과를 못 해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그도 예복이 필요하고 악한 자도 예복이 필요해요.
강도도 예복이 필요하고 니고데모도 예복이 필요해요.
근데 강도는 자기가 죄인인 걸 아는데 니고데모는 자기가 죄인인 걸 몰라.
지금 성경은 이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니고데모보다 강도가 예복을 입을 확률이 매우 높아요.
성경이 참 아이러니하죠? 율법은 죄인의 품성을 들여다보는 현미경입니다.
첫 번째 생애 행동 범위 죄들 열매 행위 내가 화를 낸 거 도둑질하고 이런 것들 죄의 열매들을 측정을 합니다.
두 번째는 뭐예요? 품성 감정 동기 죄 죄된 본성 뿌리 이것을 살피는 거 이 품성이 품성은 죄 지을 가능성이 있는지를 없는지 살펴봐요.
처음에는 죄 지은 것들을 살피지만은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핀다는 것입니다.
왜 예복을 입어야만 하는가? 무화가 옷 입고는 절대로 율법을 통과할 수 없어요.
맞죠? 율법은 의 읽어보세요.
율법은 의 즉 의로운 생의 완전한 품성을 요구하지만 인류는 그 요구에 미칠 수 없다.
인류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서 지상에 오셔서 거룩한 생애를 사시고 완전한 품성을 개발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받고자 하는 모든 자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신다.
그분의 생명은 사람들의 생명을 대신하신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끊임없이 이 말씀을 인용할 수밖에 없어요.
율법은 의를 요구하는데 우리는 의가 없어요.
그 의가 뭐냐 하면 완전한 품성 단 한 순간도 한 번도 죄를 짓지 않는 절대 죄를 지을 가능성까지도 없는 그 완전한 품성 그걸 의라 그래요.
근데 그걸 예수님이 만드셨다고요 왜요?
우리에게 주기 위하여 근데 그걸 어떤 자에게 준다고요? 여기 그것을 받고자 하는 모든 자에게 받고자 하는 모든 자에게 그러니까 관건은 받고자 하느냐 안 하느냐예요.
제가 여러분들께 질문한다면 여러분들은 다 받고자 한다고 말할 거예요.
그렇죠?
근데 저는 거기다 어떻게 대답하는지 아세요 여러분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진짜 받고 싶은 사람은 우리가 그냥 이럭저럭 살지 않습니다.
여기 인생 다 걸고 목숨 다 걸죠 그것은 선물이고 완전하고 거룩한 품성인데 이게 율법의 요구예요.
그걸 의라 그러죠
그것을 소유한 상태를 예복 입은 자라 합니다.
예복 입은 자는 이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한 상태를 예복을 입었다 이래요.
한번 읽어보세요.
신의 성품을 나누어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크신 의 표준 곧 그분의 거룩한 율법에 일치하게 될 것이다.
이 율법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행위를 헤아릴 때 사용하는 표준이다.
이것이 심판대에 사람의 품성을 시험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갖게 될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은 뭐냐 하면 신의 성품입니다.
위에 신의 성품을 받은 사람 이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고 계명을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죠.
두 번째 이제 예복이란 그럼 무엇인가? 예복 예복은 혼인 잔치에 참석할 자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합당한 품성을 의미한다.
비유 가운데 예복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순결하고 흥미 없는 품성을 표상한다.
이 세마포는 그리스도의 의 곧 믿음으로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흥미 없는 품성을 표상한다.
합당한 품성 흥미 없는 품성 세마포 그리스도의 의 이것을 예복이라고 합니다.
왜 임금이 준비한 예복을 그러면 입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기가 막히고 좋은 예복인데 왜 임금을 이 예복을 입지 않고 쫓겨날까요?
옷이 모자라서요 아니 자기 옷만 못해서 아니면 예복을 몰라서일까요? 셋 중 어느 걸 것 같아요 가로데 친구의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 오늘 유구무언이 뭡니까? 이분 있는데 말을 못해요.
왜 말을 못할까요? 이 사람이요 왜 말을 안 할까요? 보세요.
임금이 사람들에게 말하되 그 소적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이 있으리라 하니라 결박해서 내쫓아버리죠.
근데 왜 결박해서 내쫓을까요?
너는 예복 입지 않았어 그러니 미안하지만 나가줄래? 여기는 예복 입은 사람만 있는 곳이야.
이 사람이 멍해요. 말을 안 못해요 말을 기가 막혀서 왜요? 본인도 예복을 입었는데 나가라니까 나가요 안 나가요 안 나가요 왜요? 예복 입었는데 이 예복을 내가 몇 년 동안 해 입었는데
평생 이 해보게 해보려고 인생 다 걸고 성경도 많이 보고 기도도 많이 하고 건축도 많이 내고 선교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저 같은 경우에 버려진 할머니도 모시고 거지도 모시고 치매 노인도 모시고 그때 공짜로 노인 성계 4년씩 하고
안 나가요. 그러니까 수족을 결박하여 내쫓습니다.
그러니 거기서 뭐 해 어떻게 해요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표현이 뭘까요? 너무너무 억울해서 속았어요.
이 비유가 이래요. 여러분 성경에 예수님이 들은 비유는 다 이거하고 똑같아요.
다 속아서.
그 성경은 신자와 비신자의 얘기가 아니고 똑같은 신자인데 어떤 신자냐 얘기예요.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이는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가려내는 기별이에요.
예수 안 믿고 구원 못 받으면 안 억울해요.
근데 예수님을 열심히 평생을 믿고 구원을 못 받으니까 이게 억울한 거예요.
왜 유구원이에요 왜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던져요? 슬피 울며 이를 간 이것은 새카맣게 감쪽같이 속았어요.
여러분 루스벨은 우리를 속이는 건 식은 죽 먹기예요.
루스벨은 경우의 수를 엄청 많이 갖고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똑똑하고 아이큐가 200이 넘어도 루스벨에게 다 속아요.
100번
100% 다 속습니다. 읽어보시겠어요?
벌거벗게 되자 부끄러워서 저희는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몸을 가림으로 하늘의 옷을 대신하려 했다.
이 일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모든 사람들이 늘 해온 일이다.
그들은 죄로 말미암아 벌거벗게 된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무화가 나뭇잎을 엮었다.
저희는 저희 자신이 만든 옷을 입었다.
저희 자신의 행위로서 저희 죄를 가리려 했고 저희 자신을 하나님께 간압되게 하려 했다.
우리가 가정에서 아이를 야단치거나 또 부부가 싸울 때에 기분이 매우 상했는데 손님이 들이닥치면 우리가 갑자기 또 선해지죠.
그죠? 이런 것들은 뭘요? 다 가리게 해요.
이게 무아가 옷이에요. 무아가 옷 속은 썩었는데 겉은 페인트칠한 회칠한 무덤 속은 썩었는데 겉만 헤챈다고 그 무덤이 깨끗해지느냐?
그리스도께서 친히 준비하신 옷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게 할 수 있다.
하늘 배틀로 짠 이 두루마기에는 사람이 만든 실은 한 올도 섞이지 않았다.
인성으로 나타나신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품성을 나타내셨고 이 품성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다.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죄로 더럽혀졌다.
여러분 이런 예복을 준비해 주신 우리 예수님 감사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희망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 아시죠? 예복 만들으려고 오신 거예요.
우리에게 입혀줄 예복
그래서 그분이 33년 반 동안 이 예복을 완벽하게 만드셨고 이 예복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것만 입으면 뭐예요? 의인이 되는 거예요 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될 것 같아요? 그럼 성경에 아까 거기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라고 말을 했는데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다수일 것 같아요 소수일 것 같아요? 네
소수일 것 같아요. 임금이 손을 보러 올때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여기 한 사람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뿐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예복을 입은 사람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 한 사람을 대표해서 말한 것 같아요 후자 같죠 두 부류의 신앙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옷을 만들어 입는 자예요.
이걸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라 그래요.
두 번째는 옷을 갈아 입힘을 받는 자 믿음에 의해요.
잘 읽으셔야 돼요. 옷을 갈아입는 자가 아니고요.
갈아입힘을 받는 자
여러분 갓난 아기는 엄마가 다 입혀주죠 똑같아요.
여러분 죄인은 자기가 옷을 절대 못 입어요.
누가 입혀요? 하나님이 성경에 나와요.
이 예복은 속옷인가 겉옷인가 겉옷이겠어요 속옷이겠어요 예 소어시래요.
이것도 성경에 나옵니다.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받고 그의 옷을 취하여 4기에 각각 나눠 각각 1기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그럼 노란 글씨는 겉옷이라는 뜻이죠 그렇죠 겉옷은 네 것으로 나눕니다.
네 깃으로 그다음에 속옷은 나누지 않아요.
짖지 말고 누가 언나 제비 뽑자 하니 이게 지금 시편에 예언이 돼 있었어요.
내 겉옷을 나누며 겉옷은 찢어서 나눕니다.
그다음에 속옷은 제비 뽑아요. 통째로 찢지 않고요.
겉옷을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복은 속옷이에요.
이거 실제로 이거 십자가상에서 입었던 옷인데 그 옷은 표상적인 거예요.
그게 진짜 이제 표상적이에요. 가죽 옷과 같이 표상적인 옷인데 보십시다.
겉옷은 의복이에요. 신체를 가리는 옷 이걸 인성을 상징하고 속옷은 뭐예요 의복에 의복 품성의 옷 이건 신성을 상징해요.
예수님의 옷이 두 개예요. 겉옷이 있고 속옷이 있어요.
속옷은 품성의 옷 의복 우리에게 입혀줄 의복을 상징하고 속옷은
인성 신체를 가리는 옷을 상징하는데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옷을 다 벗겼어요.
속옷까지 나체로 여자들도 많이 있었어요.
나체로 그냥 예수님이 그림에는 이렇게 했지만 그게 아니에요.
그리스도의 의는 자복하지 않고 버리지 않은 죄를 덮는 외투가 아니다.
무화가 옷 겉옷 무화가 옷은 겉옷입니다.
품성을 아름답게 화장하는 옷 미화 행위 신앙이에요.
이 행위 신앙은 할 수 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
이렇게 출발해요. 근데 알고 보면 착시 현상이고요.
예수의 옷 예수님의 의의 옷은 속옷입니다.
본성이 성화대 본성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 신앙은 굴복 신앙이에요. 행위 신앙이 아니고 굴복 신앙 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루어짐입니다. 누가 이루어져요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 이루는 것이 아니고 이루어짐이에요.
이루는 것은 내가 하는 거고 이루어짐은 내 대신
내 밖에 다른 분이 해주시는 것이죠.
세 번째 예복을 어떻게 입는가 마지막 주제입니다.
내가 갈아입는가 하나님이 갈아입히시는가 답은 나왔죠 아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다.
옷도 지고 여호와 하나님이 지우고 입히는 분도 하나님이세요.
예수님은 옷감을 만드셨습니다. 33년 반 동안 그다음에 하나님은 옷을 만드셨어요.
하나의 밀알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나의 밀알 예수님이 내놓은 그 생명 그 밀알을 가지고 밀들로 만들어요.
하나님이 그래서 우리 각자에게 주는데 성령님은 옷을 갈아입히시는 분입니다.
갈아입힐 때 어떻게 해요 내 옷을 다 벗겨야 되겠죠 이 옷은 속옷이라고요 겉옷이 아닙니다.
겉옷은 내 옷 위에다 걸쳐 입으면 되는데 이 옷은 속옷이에요.
속옷은 내 옷을 다 벗고 벗기만 하나요? 속옷 갈아입을 때 아무 때나 안 갈아입죠 우리가 반드시 목욕 하고 갈아입죠.
그죠? 그게 회개예요. 회계
무화가 옷 벗음 그다음에 목욕 그다음에 예복을 입습니다.
의복 여기 샤워는 샤워는 뭐냐면 죄들을 씻어내는 거야.
열매들 샤워할 때는 때가 안 불어요.
그냥 겉에 있는 피부에 묻은 땀만 씻어내는 겁니다.
속에 있는 때가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물속에 오래 참 이게 회개예요.
이거 목욕은 죄를 근원적인 죄의 뿌리를 캐내는 걸 목욕이라 그래요.
여러분 성령은 샤워시키는 분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오늘 죄 짓고 또 기도하고 용서해 주세요.
또 내일 똑같은 죄 짓고 용서해 주세요.
이거 한 두세 번 하면 성령께서 뭐라고 그러신 줄 알아요
야 너도 피곤하고 나도 피곤하니까 한 번에 다 하자.
우리 맨날 또 짓고 또 짓고 하는데 성령은 죄들을 샤워시키시는 분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샤워가 나쁘다는 거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목욕을 해야 돼요. 우리가 오늘 짓고 내일 또 죄를 지으면 이 원인을 캐야죠.
이거 하나님이 어디 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이거 근본적으로
죄 지은 거 용서가 급한 게 아니고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대책을 좀 마련하셔야 되는 거 아닐까요? 성령님 좀 가르쳐 주세요.
이렇게 나와야 돼요. 우리가 그렇게 그게 기도인데 또 용서해 주세요.
내일 또 지을 거 또 용서해 주세요.
애들도 아니고 우리가 우리가 그런 신앙을 자꾸 해요.
자꾸 샤워만 하려고 그래요. 목욕을 안 하고
죄의 옷 벗음 이건 목욕이죠 목욕을 하고 흰옷을 입습니다.
칭의 그다음에 흰옷을 입었지만 여전히 또 죄를 져요.
조금씩 옛날하고는 좀 다르지만 그다음에 두루마귀 그래서 이걸 빨아입는 의의 옷이에요.
두루마귀는 성화
그다음에 이게 세마포 깨끗한 세마포 이제 이거는 늦은 비 때 완전히 굳혀요.
죄된 본성을 완전히 빼버리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아요.
그래서 이 옷이 의의 옷이 더러워지지 않아요.
그래서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늦은 밑에 굳혀서 영화로 접어드는 거예요.
하늘로 갑니다.
예복을 그럼 어떻게 구입할 것인가 이게 매우 중요한데요.
이게 제일 중요하죠. 어떻게 구입할 것인가 예복은 선물인가 매매인가 여러분 예복이 매매인 것 같아요 선물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아까 공부했죠 선물이에요 매매예요 선물이죠 여러분들이 선물일 거라고 얘기할 줄 제가 알았습니다만
보십시다. 선물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원하는 자에게 갑 없이 선물로 주신다.
선물 분명히 맞죠 이 예복은 임금이 마련하신 선물이었다.
근데 여러분들이 참고적으로 성경을 볼 때는 언제나 예언의 신도 그렇고 언제나 선물이라 그러면 반대도 있어요.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있고요. 그죠? 높은 데가 있으면 낮은 데가 있고 언제나 반대편에 똑똑같은 말씀이 있다는 걸 여러분들이 항상 상기해야 돼요.
그래서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잘 조합을 해야 되는데 매매라는 또 예언의 신이 많아요.
성경에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어떻게
사라 이게 여기는 기름이에요 기름 기름하고 예복하고 똑같은 거예요.
다 그리스도의 의예요. 여기는 뭐라 그랬어요? 사라 그랬어요.
성경에 아니 한쪽에서는 선물이라 그러고 한쪽에서는 사라.
그러면 이게 뭘까?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 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여러분 예복이 선물이에요 매매예요
선물도 되고 매매도 돼요. 조금 아까 선물이라 그랬죠 언제나 성경은 반대편도 있습니다.
매매와 선물이란 이 상충 논리를 그러면 어떻게 조화시킬 건가 이걸 조화시키는 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예요.
이거 잘 보십시다. 부조화의 양극단 사단이는 이걸 조화를 안 시키고 한쪽만 강조해서 극단으로 치우치게 해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을 멸망시키는 데 대가예요 대가.
제가 죄송하지만 이걸 깨닫고 나서 제가 이거를 참 많이 연구했어요.
이렇게 돼야 되는구나. 사단이가 이렇게 해서 속이는구나.
이렇게 해서 사람을 성경 말씀대로 살긴 사는데 다 극단으로 치우쳐요.
이것만 보세요.
선물파에 선물 파가 있어요. 선물파는 십자가를 강조하고 믿음을 강조하고 근데 무법주의에 법이 율법이 없어요.
값싼 은혜예요. 자유 방임주의라고 그랬는데 율법 없는 십자가 율법 없는 십자가에서 모든 것 다 용서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거야. 믿기만 하면 돼.
그리고 율법을 지킬 생각도 안 하고 이 은혜를 값싸게 여기고 자유방임주의라고 제가 써놨는데 아주 자유분방해요.
안식일도 사람을 위하여 있는 거야. 안식일날 농구 좀 하면 어때 수영 좀 하면 어떻고 여행 좀 가면 어때 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이 만들어놓는거야.
사람이 행복하면 되지
맞잖아 논리적으로 그죠? 이걸 자유주의라 그래요.
그럼 메메파는 율법을 강조해요. 십자가보다 율법 행함을 많이 강조해.
순종해야지 행위를 많이 강조하고 이걸 율법주의라 그러고 행함의 의 이걸 바리새인주의라 그럽니다.
이건 십자가 없는 율법이에요. 십자가의 은혜 없이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의의 없이 자기 자신이 율법을 지키려고 거기다 조금 더 고차원적으로는 성령의 도움을 힘입어서 이것도 다 율법주의입니다.
이걸 매매파라 그래요. 선물과 매매 어느 것이 더 성경적일까요? 둘 다 다 똑같아요.
다 성경 이야기예요. 똑같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타협이 아닌 중용이다.
엄마와 아빠가 했죠 선물판은 엄마만 강조해요.
노란 글씨 써놨죠 매매파는 아빠만 강조해요.
그럼 믿음으로 말미암는 복음주의는 뭘 강조해야 돼요? 부모를 얘기해야 해.
부모 부모를 이야기하는 게 성경이에요.
그죠?
여러분 제가 구원은 100% 선물입니다만 강조하면 그건 잘못된 거죠.
구원은 전적으로 사는 겁니다. 그것도 잘못된 거예요.
구원은 선물이기도 하고 사는 것도 되고 그 부모를 항상 부모를 말할 수 있어야 돼.
부모를 말하는 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예요.
균형진 신앙 중용
중용은 타협하고 달라요. 시간이 없어서 넘어갑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두 가지를 100% 잘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구원은 걷어주는 동시에 주시는 동시에 매매되는 것이다.
명쾌하죠 화이부인께서 그렇죠
구원은 걷어주는 선물인 동시에 어떻다? 매매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물만 강조하면은 문제가 되는 거죠.
극단이에요. 그게 극단 매매만 강조해도 극단입니다.
그래서 선물과 매매를 100대 100으로 똑같이 강조를 해야 돼요.
예복은 걷어주는 동시에 매매되는 것이다.
맞습니까? 이거 제가 만드는 말이에요.
구원은 걷어주는 동시에 매매되는 것이다.
예복은요 걷어주는 동시에 매매되는 것이다.
그럼 거절은 뭐고 매매는 뭘까 이제 이걸 성경으로 풀어야죠.
기가 막힌 겁니다. 이거는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표본이에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샘플입니다. 아브라함이 들린 모리아산에 두 재물이 있죠 이삭이라는 재물이 있습니다.
이삭은 매매용이에요. 아브라함이 모두 드린 것입니다.
이삭을 드렸다는 것은 이걸 예물이라 그래 예물
아브라함의 불신의 값이에요. 수양은 하나님이 주신 거죠 이건 선물용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선물 이삭은 아브라함이 구원을 살 때 쓰는 매매용이고 수양은 뭐예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주신 것이에요. 그 수양이 누구예요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을 바치는 거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을 주신 거예요.
모두 주신 것 이건 재물이라 그래요.
율법 요구의 대성물 만약에 이삭이 드리는 이삭이 없었다면 수양을 받을 수 있을까요? 어떨 것 같아요? 못 받아요.
이해하시겠죠 만약에 수양을 안 받았다면 이삭은 어떻게 돼요 끝나요.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이 예복을 입은 장소예요.
이날 아브라함이 예복을 입었어요. 아브라함이 이삭으로 매매를 했어요.
맞죠 매매를 했어요. 어린 양을 선물로 받았어요.
맞죠 매매 이삭을 가지고 매매를 했죠
자신의 전부를 드린 거예요. 그랬더니 뭐예요 하나님은 전부를 드렸지만 뭐예요 하나님도 전부를 들여주세요.
수양을 근데 이삭은 받았지만 안 죽인 거는 그분은 이삭은 사람 생명이라 그래요.
근데 이삭을 다른 걸로 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해요? 다 받으시겠죠 그죠?
어린 양이라는 선물은 반드시 이삭이라는 예물 뒤에만 존재합니다.
여러분들 이걸 잘 이해하셔야 돼요. 이걸 모르면 구원을 예복을 우리가 사는 걸 몰라요.
구원의 완성은 물물 교환으로 이루어져요.
이삭을 들여서 뭘 얻어요?
수양을 얻어요. 이삭을 들여서 수양을 얻어요.
근데 결론적으로 이삭을 들인 게 손해입니까 이익입니까? 이익이에요.
이삭을 드렸지만 이삭은 멀쩡해요. 이해하시겠어요? 우리가 건축 헌금을 드리고 감사 헌금을 드렸지만 여러분 그게 없어지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이 받으시지만 안 받으셔요. 이게 아주 묘한 겁니다.
그러면 안 받으셨다는 건 뭘까요? 하나 받고 둘 주신다 이 말이에요.
그럼 안 받은 거죠 맞죠? 표현이 좀 그런데요 죄인은 죄를 드립니다.
이게 매매용이에요. 그다음에 하나님은 뭘 주세요? 의를 주셔요.
이건 선물이에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매매는 죄인의 행위에요. 이제 나오셨죠
이제 선명하죠 매매는 뭐예요? 돈 갖고 구원사라는 게 아니고 내 죄를 드리고 의를 사라는 거구나.
이제 구원이 성매매라는 거에 부담 없죠 죄가 매우 좋은 것 같으면 하나님이 그거 안 받아요.
하나님이 우리 손해 보게 하지 않는 분이에요.
죄가 나한테 있으면 절대로 안 되기 때문에 그거 뺏으려고 매매하는 거예요.
그거 갖고 사라는 거예요. 너 이게 보통 값이 아니니까 너도 인마 값을 내야지 공짜가 어딨어 이게 아니고 니가 갖고 있는 그거는 절대로 갖고 있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그거를 하나님이 뺏으려고 강제로 뺏을 수 없으니까 사라.
내가 더 기가 막힌 거 줄게. 그러니까 죄를 주고 의를 사는 것 죄를 주는 것은 내에 의를 얻는 것은 선물 여러분이 오늘 저녁 이거 하는 거 잊지 말아야 되는데 걱정입니다.
이삭이 수양의 값인가? 이삭이 수양의 값입니까? 이삭은 수양의 매매 대금이 아니에요.
수양을 얻기 위한 수단물입니다. 수양의 값은 너무너무 비싸서
어떤 인간도 그 값을 지불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그건 선물이에요.
그러나 이삭을 드린 것은 그 선물 값이 아니고 뭐예요? 그 선물을 얻기 위한 수단물이에요 수단물.
어린아이가 양손에 이렇게 과자를 장난감을 5천 원짜리 들고 있어요.
양손에 그럼 만 원이겠죠 근데
5천 원짜리를 들으면서도 하나 3천 원짜리를 주면 두 개 안 놔요.
근데 만 원짜리 주면 하나는 넣고 그거 받아요.
근데 5만 원짜리 50만 원짜리 주면 두 개 다 버리고 그거 받아요.
이해하시겠죠? 이게 바로 이삭이에요.
수양의 값은 결코 인간이 지불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기에 선물일 수밖에 없지만은 이 선물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는 나의 가장 소중한 이삭을 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드린 것에 비해 받은 것이 너무 엄청난 것이기에 그 입으로는 구원이 매매라는 말을 결단코 하지 못할 것이다.
이삭은 수양의 값이 아니라 죄의 원인이 되는 불신과 거기에서 파생된 가불을 해결하는 요체이다.
이 가불은 사상 소송이에요.
하나님이 이삭을 선물로 줬어요. 아브라함에게 사단에게 소송을 걸었어요.
왜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저 쫄장부 같은 저 아브라함 저 녀석에게 왜 이삭을 줍니까? 이삭은 믿음으로 받기로 원래 약속되어 있는데 내가 주는데 가만히 있어 루스벨 이 사람아 좀 기다려 봐.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가을로 이삭을 줬어요.
그리고 20년 만에 증거를 야 도로 내놔라.
본재단을 본제로 들여 죽여서 들려 아브라함이 옛날 같으면 절대 그걸 안 이제 아브라함이 철이 났거든요.
하나님을 경험해서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아무 말하지 않고 그 고뇌를 겪으면서 순종을 합니다.
하나님이 뭐라 그래 이제야 내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안다.
이 말은 사단이 앞에서 하나님이 이제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봤지 우리 아브라함 믿음 있어 없어? 있어요 없어요.
아브라함이 옛날에 받을 때는 없었어요.
그래서 가을로 받았어. 근데 지금은 믿음이 너무너무 좋아진 거죠.
그죠?
이거를 해결하는 거예요. 이삭은 그래서 이삭을 들이라는 것은 아브라함이 갑을로 받았기 때문에 야 갑을 한 거 그거 좀 갚아야 되는 거 아니냐 내가 지금 사단에게 시달려서 미치겠다.
저 루스벨이 맨날 이거 갖고 너한테 나한테 시비를 하는데 니가 한번 본떼를 보여주면 안 되겠니? 이거예요.
이해했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삭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자신을 전적으로 그에게 바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모든 보화와 아울러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다.
하늘 모든 보아는 수양의 가치를 인식한 거고요.
당신 자신은 의 품성 생명 신성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그들의 죄를 가져가도록 허락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의를 나누어 주신다.
아브라함의 아브라함 범죄는 이삭 드림입니다.
수양을 받습니다. 받습니다. 우리들의 예배는 자신의 죄된 본성을 드리고 예복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거예요.
이게 예배예요. 내 죄를 드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걸 예배라 그래요.
아시겠어요?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 받으러 오는 거예요.
드릴 게 있어야죠. 죄 내 전부 내 자신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칠 때에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우리의 뜻은 그분의 뜻과 합병되고 우리의 정신은 그분의 정신과 하나되고 우리의 생각은 그분에게 사로잡힌 바 되어 마침내 우리는 그분의 생애를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의의 옷을 입었다는 의미이다.
마음 마음 연합 뜻 합병 정신 하나 생각 사로잡힘 이것은 예수님과 혼인을 한 거예요.
이걸 젖부침이라고 그러는데 혼인이 뭐야 결혼 품성 결혼을 해서 품성 결혼 그분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는 결혼 혼인 결혼인데 이걸 품성 결혼이라 그래요.
예복에 대한 비유는 가장 중요한 공과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혼인으로서 인성과 신성의 연합이 표상되었으며 인성과 신성의 연합이 표상되었다.
이건 뭐냐 하면 혼인은 인성과 신성의 연합 표상인데 이게 품성 결혼입니다.
인성은 나예요. 나 나 더하기 신성 예수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걸 거듭남 믿음으로 얻는 의라 그러고요.
여기 인성은 내 개성 좀 설명하면 내 개성 있죠 내 마음에 타고날 때 내 개성 이 개성과 신성 그리스도의 의가 하나가 되는 것을 하나가 될 때 이게 하나님의 형상 회복이 됐다 이래요.
이걸 재창조라고 그럽니다. 하늘에서 쫓겨난 이유가 뭐예요? 영광의 두루아래 벗겨졌죠 그럼 하늘에 못 들어가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에 의해 예복을 입지
못해서예요. 그 이해복만 입으면 하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청함은 이제 결론입니다. 이게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여러분들이 읽어보세요.
준비한 옷은 되 옷 입은 자는 적으니라.
이렇게 해석하면 되겠죠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준비한 옷은 많되 옷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맞죠 하자 없죠 이렇게 해석해도 옷을 입었다고 하는 자는 많되 실제로 옷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이게 이 비유의 핵심이에요. 오늘 말씀의 원 제목은 예복을 입지 않음입니다.
예복을 입지 않음이 제목이에요. 화이프인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렇게 썼을까라는 걸 한번 제가 생각을 해봐요.
예복은 속옷입니다. 내 옷 벗고 목욕하는 자에게만 입혀주시죠.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러 연다는 금을 사서 부여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
흰 옷을 사서 입어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예복을 받는 것입니다.
마지막 요거 읽고 마치겠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시니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우리가 확신하노라.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예복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의 더러운 무화가 누더기 옷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의 옷을 벗기시고, 우리를 목욕시키시고, 우리에게 이 예복을 입히시는 성령께서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이 예복을 갈아입히는 일을 시작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마침내 예수님의 재림의 그날까지 이것을 온전히 이루시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고 마칠게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귀한 시간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준비하신 예복, 의복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왜 입어야 되는지도 배웠고,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사서 입는지를 배웠습니다.
아버지, 우리의 전부를 다 예복과 바꿀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갈망을 주셔서 예복 없이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예복 없이도 잘 살아갔던 그런 모든 삶을 청산하고, 이제 다시는 예복 없이는 살 수 없는,
차라리 예복 없이 살 바에는 죽음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그러한 목숨을 건 갈망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셔서 예복을 꼭 사서 입을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