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와 4B는 무슨 뜻이지?'
연필심의 종류를 뜻하는 이 분류는 세계 최장수 기업 중 하나이자 '연필의 아버지'로 불리는 Farber Castell이 만들었다. 단단한 정도(H)에 따라 8H부터 HB를 거쳐 8B까지 18단계로 나눠놓은 이 체계는 연필심에 포함되는 점토와 흑연의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점토가 많을수록 연필심은 단단하고 글씨는 옅으며, 흑연이 많으면 심은 무르고 글씨가 짙다. 파버카스텔이 1794년에 만든 이 경도체계가 지금은 전 세께 모든 연필심을 구분하는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육각형 연필을 만들고, 18센티미터를 연필의 길이로 정했으며, 작은 지우개를 달고, 세라믹 연필심을 도입한 것도 모두 파버카스텔이다.
파버카스텔은 자식을 가르치고 싶어하는 부모의 심정도 읽어냈다. 걸름마도 시작하기 전에 아이는 연필부터 건네받는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치발기를 얻은 아기는 페이트가 칠해진 나무막대를 연신 물어뜯기 바쁘다. 부모가 보면 기겁하겠지만, 파버카스텔은 표면부터 심까지 '먹어도 되는' 재료를 사용하니 안심해도 된다.
파버카스텔 중에서도 고전에 속하는 '카스텔9000'은 우리가 익히 아는 인류의 문화유산을 쓰고 그려왔다. 반고흐가 데생을 할 때, 헤르만헤세와 괴테가 글을 쓸 때, 바흐가 악보를 그릴 때 사용했던 연필이 모두 카스텔 9000이다.
반 고흐는 카스텔 9000을 앞에 놓고 자신의 귀를 잘랐고, 귄터 그라스는 '양철북' 전체를 카스텔 9000으로 써내려가 노벨문학상을 탔다.
지금도 문구점에서 800원이면 살 수 있는 이 105년 된 연필을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2000년 올해의 10대 상품'으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