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자네가 보배 일세.

마음 편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내 말에 귀 기울여주고, 내 마음을
읽어주니까. 그리고 스스럼없이 대해주니까. 끝으로는 휴식과 평온을 안겨주니까.
지난 금요일 전철역 종점에 가까운 송정역에서 김포 쪽으로 서른일곱 정거장을 거쳐
김포시 도사리로 유종상을 찾았다. 김포 구시가지에는 ‘짬뽕의 신’ ‘김포 포목점’ ‘나무병원’
같은 다분히 시골풍의 간판이 보이고 차창 틈으로 스며드는 볏짚 태우는 냄새가 서울과의
거리감을 느끼게 해줬다. 멀리서는 김포 뜰을 채우려는 듯 아파트들이 촘촘히 서있다.
“시간 뺏어 미안하다”
“아냐, 너 온다고 해서 문 닫았어”
“일감이 없냐?”
“해도 되고 안 해도 되”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니 2층은 가정집 같았다. 1층에 프레스기 10여대가 도열해 있고 방금 전 까지 일을 한 듯 대형 전기난로가 공장안의 한기를 녹여주고 있었다. 갖가지 고무제품들이 통로를 차지하고 있다.
종상이는 1983년 선친이 운영하던 <유림고무>를 이어받았다. 그가 생산하는 제품은 지하철이나 자동차 브레이크 또는 스프링을 감싸는 특수고무. 처음 시작할 때 인장시험, 노화시험 등등 시험 기구를 갖추고 일본서적을 뒤적이며 고 손수 고무를 배합하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고 한다. 3년 보증 제품이 평균 15년은 쓰고도 남는다고. 그래서 인지 서울메트로 1, 2, 3, 4호선과 부산지하철에는 유림고무의 재품이 독점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한 번은 5톤 트럭 가득한 완성품을 소각시키기도 했단다. 숙련공을 시켜 마무리 작업을 했는데 출하직전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경미한 하자가 발견돼 전량 불태워 버렸단다. 자신의 손을 거친 제품에 대해서는 광적이라고 할 만큼 철저함이 배어나고 있었다.
“돈 좀 벌었겠다?”

“글쎄, 그게 내 한계야. 품질에만 매달렸지 사업 확장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못했으니까.
30여 년간 내가 만든 것이 한국화학시험연구소에서 불합격 받은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면 알만하지?
종상이는 가는귀를 먹어 종종 뜻하지 않은 오해를 산다. 육군 복무시절 똥포(로켓포) 사수였는데 그 때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의사소통에 애를 먹고 있다. 보훈처도 찾아보았으나 시원치 않은 대답에 애초 포기했단다. 그래도 늘 굵은 주름살에 웃음을 잃지 않는 유종상.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먹었어도 새벽 5시 이전에 공장 문을 열고 고무와 씨름하기를 30여년. 자신에게는 너무나 철저한 친구였다.
“언제까지 할 꺼냐?”
“서울메트로 차량도 서서히 바꿀 때가 되었거든. 일감이 떨어져서가 아냐. 내 기술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는 게 문제야. 힘도 들고 화학을 알아야지. 그럭저럭 생활비나 버는 수준으로 하다 그만두어야지 뭐”
“벌어놓은 게 있는 모양이지?”
“설날이고 추석이고 명절 때 납품업체에 선물 한 번 돌려본 일이 없어. 돈 벌었겠냐?
그렇다고 집사람에게 돈 꾸러 다니게 한 일도 없어. 그러면 되는 거 아냐?“
그렇다. 그 기술력에 경영마인드만 갖추었더라면 좀 좋았을까? 그러나 종상이는 수중에 있는
것에 만족했지 없는 것을 더 탐하지 않았다.
그래, 친구가 이 나라 보배다.
“야 효섭아, 요 밑에 가면 오리 셀프집이 있는데, 괜찮아. 그리 가자”
여기서 집엘 가려면 두 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밤은 점점 깊어 가는데, 친구는 한사코 잡는다.

-끝-
첫댓글 유종상 동문의 두둑한 뱃심과 한결같은 품질유지를위한 노력에 경탄을 금치 못하네..그러나 제품이 아무리 좋으면 뭐하나..
후계자도 문제지만 자네 건강유지에 더욱 신경쓰게나..그래야 우리모두 오래 만나지..ㅋㅋ
이젠 취재두댕기는겨? 마지막 까치밥사진이 일품이네ㅡ그려
좋은글 이구만 품잘은 생각 같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지 좋은 일이야
30년 넘게 고무분야개척한노고를 치하합니다 혹시 김해 주촌면 동아화성 임경식사장을 아시는지(50회동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