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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선열전(八仙列傳)1 - 선인(仙人) 한상자(韓湘子)
- 이름의 유래
옛그림 '팔선도(八仙圖)'에서 퉁소를 불고 있거나, 혹은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는 미장부는 바로 선인 한상자(韓湘子)이다. 이름은 상(湘)이고 존칭으로 이름자 뒤에 자(子)를 붙여 한상자라고 한다. 전해내려 오는 기록으로 자(字)는 청부(淸夫)이며, 당나라 때 대문장가이며 유학자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 768~824)의 조카이다.
- 총명한 어린 시절
한상자의 아버지 한회(韓會)는 그가 어린시절부터 과분할 만큼 총명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동생 한유에게 "이 아이는 타고난 재질이 뛰어나, 장래 큰 재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선생을 초청해 공부시키는 게 어떻겠는가?" 하였다. 숙부인 한유는 사방에 수소문해서, 훌륭한 스승을 모셔 한상자에게 단독으로 학문을 전수케 하였다.
그러나 어린 한상자는 태어나면서 전생의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어느 경서를 막론하고 한번 보기만 하면 암송하였고 선생의 도움이 없어도 그 경서의 깊고 현묘한 이치를 철저히 깨달아 알았다. 경서 중의 어떤 부분은 선생도 해석할 수 없는 곳이 있었으나, 한상자는 경전과 전고를 인용하여 그 도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곤 하였다. 가르치는 선생조차 탄식하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한상자가 12 ~ 13세쯤 되었을 때, 이미 4 ~ 5명의 이름난 스승을 바꾸어가면서 학문을 닦았다. 그리하여 한상자가 신동이라는 소문이 원근, 수 백리에 퍼졌다.
- 조실부모하고 불량청소년으로 허송하다
어떤 기록에는 한상자가 12 ~ 13세 쯤 되었을 때, 그의 부모들이 모두 타계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한상자는 숙부 한유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후 그는 공부와 거리가 먼 불량한 생활을 하며, 숙부 한유의 속을 무던히 상하게 하였다.
더 학문을 닦지 않고 술 마시기를 즐기면서 무위도식을 하였다는 것이다. 숙부 한유는 수차례난 한상자를 꾸짖으며 학문을 닦도록 권했다. 그러면 한상자는 웃으면서 "숙부님, 더는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것은 숙부님과 같지 않습니다. 또한 책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밖의 공부일 따름 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한유는 화가 나서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십여 년 종적을 감추다
한상자는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는 집을 나가 외박하는 일이 많았다. 20여 세 때에는 낙양으로 친척을 만나러 간다고 하며 집을 나갔는데, 그후로 거의 20년 동안 소식이 끊겼었다.
당나라 헌종 원화 년에 한상자는 돌연 장안에 나타나, 숙부 한유 집으로 돌아왔다. 몸에 걸친 의복은 남루하기 짝이 없고, 얼굴에는 땟국물이 줄줄 흘렀다. 이를 본 한유는 마음이 불쾌했으나, 이제 막 집에 돌아온 한상자를 차마 꾸짖을 수는 없었다.
한유는 한상자에게 밖에서 있었던 몇 가지 근황을 물어본 후, 집안에서 운영하고 있던 서당으로 가서 글공부를 하도록 하였다. 다른 형제들이 글공부에 빠져있을 때, 한상자는 시서(詩書)를 가까이 하지 않고 혼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마치 그 형상이 나무인형과도 같았다.
때로는 서당을 나와 집안 심부름꾼 아이들을 찾아가서 함께 노름을 하거나, 혹은 술을 마시고는 크게 취하여 외양간의 풀더미 위에 누워 잠을 자기도 하였다. 그는 한번 잠을 자면 3일에서 5일 정도 지속되었다고 한다. 때로는 갑자기 밖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타나기도 했다. 한유는 한상자가 밖에서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르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시간을 내어 종종 한상자를 타일렀다. 그러나 한상자는 건성으로 '예~ 예~' 하면서 얼버무릴 뿐이었다.
- 숙부 한유의 생일잔치에 나타나다
한상자는 숙부 한유의 집에 기거하다가, 한번씩 자취도 없이 사라지곤 하였다. 집에 다시 나타나서는 삼촌에게 선도(仙道)를 배울 것을 권했다가, 삼촌 한유의 노여움을 산 때도 많이 있었다.
한번은 한유의 팔순 잔치가 열리는 날, 한상자가 모처럼 그 앞에 나타났다. 한상자도 손님으로 초청된 당대의 기라성 같은 벼슬아치들과 섞여서 술을 권하면서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 손님들에게 장생법(長生法)을 이야기하다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한상자의 시원한 풍모와 거침없는 달변에 매료되었다. 하는 얘기들마다 장생(長生)의 도(道)요, 늙음을 늦추는 방법 등이었다. 한상자의 언변은 도도하여 좌중을 압도하였고, 생활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유익하게 하는 방법들을 전하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당대의 잘나가는 손님들은 모두 한상자가 신선공부를 제대로 한 진인(眞人)이라고 여겼다.
- 신선의 경지를 시(詩)로 읊다
이러한 사태를 지켜보던 유학자인 한유는 발끈하면서 나무랐다. “어디 내 앞에서 이러한 사설(邪說)을 늘어 놓는가?” 그리고는 한상자를 불러서 “너의 구변은 현하의 달변이나, 이 자리에 참석한 많은 어른들 면전에서 무슨 해괴한 망언이냐? 도대체 너는 요즘 밖에서 무슨 공부를 하였는가?” 하면서 꾸짖었다.
한상자는 이 말을 듣고는 “제가 밖에서 배운 것을 묻는다면, 이 자리에서 이 조카가 그 개황을 시(詩)로 지어 올리겠습니다.” 하였다. 그리고는 “숙부님, 제가 읊는 시를 한번 음미해 보십시오.” 말을 끝내자 그는 천천히 다음과 같이 시를 낭랑하게 읊었다.
靑山雲水隔 청산운수격 (푸른산은 구름과 물에 막혀 있고)
此地是吾家 차지시오가 (이 땅은 바로 나의 집일세.)
終日餐雲液 종일찬운액 (종일 구름의 진액을 먹고)
淸晨?落霞 청신철낙하 (맑은 새벽엔 떨어지는 노을을 맛보네.)
琴彈碧玉調 금탄벽옥조 (거문고로 벽옥같은 가락을 타며)
爐煉百朱砂 노련백주사 (화로에선는 백가지 주사를 단련하네.)
寶鼎存金虎 보정존금호 (보배 솥에는 황금 호랑이가 있고)
芝田養白鴉 지전양백아 (지초밭에선 하얀 까마귀를 기른다네.)
一瓢藏造化 일표장조화 (표주박 하나에 온갖 조화 감춰 있고)
三尺斬妖邪 삼척참요사 (석자 검으로 요사함을 베어 내네.)
解造逡巡酒 해조준순주 준순주를 즉석에서 만들고
能開頃刻花 능개경각화 능히 순간에 꽃을 피울 수 있으니
有人能學我 유인능학아 나를 따라 배우는 사람이 있다면
共同看仙? 공동간선파 함께 신선의 꽃송이를 보게 되리라.
이 시를 다 듣고 난 한유는 “이런 미치광이 같은 말이 어디 있는가?” 하면서 노여워하였다. 그 자리에 같이 한 많은 손님들은 “이미 큰소리는 쳤으니, 반드시 무슨 재주가 있을 것이다. 조카로 하여금 기이한 재주를 한번 보이게 하여, 우리들이 친히 볼 기회를 주시오. 한상자가 이러한 신통을 보여 우리에게 안목을 넓힐 기회를 주려고 하는데, 어찌 방해하시오?” 하였다.
이에 한유가 조카 한상자에게 “너는 능히 술을 만들고 즉석에서 꽃을 피게 한다고 하였으니, 이 자리에서 한번 시험해 보라.”고 하였다.
- 즉석에서 술을 만드는 기적을 보이다
숙부 한유의 생일잔치에 참석한 당대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은 한상자의 시(詩) 중 “해조준순주(解造逡巡酒), 능개경각화(能開頃刻花)” 대목을 보더니, 한번 이를 시험해 보라고 하였다.
한상자는 웃으면서 "이것은 단지 작은 술법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대도와는 무관합니다. 삼가 명을 받들어 술을 만들어서, 숙부님을 축수(祝壽)하고 꽃을 피워 손님들을 즐겁게 하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자그마한 술법이 숙부님을 현혹하게 한다면 진실로 불경할 따름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숙부 한유는 "너는 말로만 백번 떠들어도 소용 없다. 어찌 빨리 해내지 않는가?" 라며 재촉하였다.
한상자는 묵묵히 하인에게 빈 항아리 하나를 가져와 마당에 놓고는 뚜껑을 덮으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서 손가락 세 개를 튕기면서 몇 마디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덮개를 벗겨 보니, 놀랍게도 항아리 안에는 미주(美酒)가 가득하였다.
한상자는 우선 한유에게 한 잔 올리고는, 뒤이어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손님들에게 한 잔씩 권했다. 한상자는 웃으면서 “이 자리에 계신 대인 여러분! 빈도(貧道)가 권한 이 술은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선들이 사는 곳(仙府)의 옥액(玉液)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한 잔만 마시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고, 평생의 고질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 말에 뭇 손님들은 서로 다투어 가면서 그 술을 마셨다.
- 신선주 마시고 고질병을 고치다
한상자는 상석에 앉은 몇 분의 손님을 가리키면서 "존체에 어떠어떠한 병이 있었는데, 이제 다 나았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때에 유(劉)모 대인이라는 손님은 심한 천식으로 평생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이 술 한잔이 배속으로 들어가자 곧 담이 제거되고 기가 평안해지면서 가슴속이 편안해졌다.
그러자 그는 큰 소리로 한유에게 “한대인, 당신의 이 조카 분은 진실로 도를 갖춘 신선이십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한상자가 준 한 잔의 선주(仙酒)로 소제의 반평생 고질병이 즉각 다 없어졌습니다. 어찌 신선의 묘도(妙道)가 아니란 말입니까!" 라고 하였다.
한편 한유도 나이가 들면서 신체가 날로 쇠약해지고 있었고, 항상 요통과 동통이 떠나지 않았다. 또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눈이 침침하였다. 그런데 이 술을 한잔 마시자, 즉시 눈이 밝아지고 귀가 잘 들리며 허리 관절이 시원한 것이 전과 비할 바 없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기뻐할 뿐이었다. 그는 유 대인의 말에 찬성한다는 듯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서왕모의 정원에서 꽃을 빌려오다
그러자 한상자는 도리어 웃으면서 "자, 그러면 꽃을 피우는 법을 보여드려서, 이 자리에 계신 대인들의 자리를 빛내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한상자는 그 자리에 계신 분들께 '무슨 꽃을 보고 싶은가' 물었다. 많은 사람들은 고의적으로 이미 때가 지난, 여러 가지 꽃들을 요구했다.
한상자는 "이러한 꽃들은 때가 지난 꽃들입니다. 짧은 시간에 어디 가서 구해오라는 것입니까?"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숙부 한유는 "보건대 네가 큰 소리만 쳤지, 절반이 허황된 말 뿐이다." 하면서 일갈하였다.
그러자 한상자는 웃으면서 "숙부님, 너무 급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늘이 숙부님의 팔순잔치이오니 조카가 어찌 힘든 일이 있더라도 사양하겠습니까? 세상에는 주문하신 꽃들이 없습니다. 다만 서왕모의 정원에 가서 조금 빌려 오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한유가 물었다. "서왕모의 정원이 이곳에서 얼마나 먼가?"
한상자가 "만약 노정으로 말하자면 구름을 타고 가면 3 ~ 5년 걸리고, 보통 사람이 걸어서 가면 2 ~ 3천 년 걸립니다. 다만 신선의 경계와 형상은 작위(作爲)가 없는 것으로, 실제로는 비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신령스러운 산은 곧 영대(靈臺)에 있고, 선경(仙境)은 한 마디(方寸)에 불과합니다. 이 조카가 보건대 세계 밖, 세계 가운데가 눈앞에 있습니다. 서왕모의 정원도 다만 문밖과 문안에 있을 따름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는 말을 끝내고 뜰로 나와서 공중을 향하여 한번 외치자, 어디선가 새 소리가 들려오는데 무수히 많은 흰 학(白鶴)이 날아왔다. 한상자는 웃으면서 " 이 자리에 계신 높으신 분들께는 허황하게 들리겠지만, 이 흰 학들은 제 전생의 도우(道友)들입니다. 이제 그들이 꽃을 빌리러 갈 것입니다." 하였다.
한상자가 한 무리 학들에게 몇 마디 분부하자, 학들은 공중으로 높이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사라지면서 순간 보이지 않았다. 한상자는 자리에 앉아 손님들과 잠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잠시 후 밖에서 학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모두들 정원으로 나와 고개를 들어보니, 무수한 학들이 수십 종의 기화요초를 물고 온 것이 아닌가.
한상자는 "이것은 서왕모께서 빈도에게 특별히 배려해주신 덕분입니다. 제가 보낸 학들이 꽃을 가져오기에 충분치 않아 특별히 서왕모 정원의 선학(仙鶴)들이 같이 가져온 겁니다."라고 하였다. 말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한 무리 학들이 정원에 모여들면서 땅에 내려앉자 한 마리 한 마리씩 선학이 눈썹이 빼어나고 미모가 청수한 동자들로 변하더니, 가져온 꽃들을 들고 대청으로 들어왔다.
이 자리에 있던 손님들이 보니, 여러 지방의 유명한 꽃들로 피는 계절이 각기 다른 꽃들이며, 이 세상에선 볼 수 없는 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색깔들이 화려하기 그지없고, 맑은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여, 잔치집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 주고 있었다.
[* 술과 꽃이 관련된 준순주(逡巡酒), 경각화(頃刻花)는 흔히 신선 한상자를 나타낸다.]
- 흰꽃의 색깔을 바꾸다
예전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숙부 한유가 한상자에게 "너는 학문수련은 하지 않고 빈둥거리면서 신선도를 수련한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별난 재주라도 있느냐?" 하였다. 이때 마침 뜰에는 흰 목단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한상자는 "저는 이 꽃의 색깔을 바꿀 수 있습니다." 했다. 한유는 "그렇다면 네가 한번 꽃의 색깔을 바꿔 보아라." 라고 하자, 한상자는 품안에서 무슨 약을 꺼내더니, 흰목단꽃 뿌리 밑에 그것을 묻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년 봄에 이 한 무더기 흰 목단꽃이 다시 필 때, 반드시 푸른색 꽃으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또한 꽃의 네 면에는 다섯 가지 색깔이 서로 뒤섞여 있을 것입니다."
한유는 내년이 되어야만 한상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한상자의 말이 황당무계하게 발뺌하는 말이라며 의심하였다. 그래서 그 자리에선 더 거론하지 않고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다.
며칠이 지난 후, 한상자는 집을 떠나,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는 한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자 숙부 한유는 한상자가 꽃의 색깔을 바꾸겠다는 그 말을 한층 더 못 믿게 되었다. 꽃이 필 때 쯤에 난처하게 될 것을 우려하여, 몰래 달아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 한유, 귀양길에 큰 눈을 만나다
이때 당 헌종이 사신을 봉상에 파견하여 천축국으로부터 오는 부처사리를 맞아 오게 하였다. 또 장안에 사리가 도착하였을 때는 헌종이 어전 누각에 친히 올라 의식에 참관하고, 일반 백성들도 경축 퍼레이드에 참가하게 하는 등 행사가 성대하기 그지없었다. 상가들을 철시하고, 식음을 전폐할 정도였다.
헌종이 이렇게까지 하자, 유학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이에 한유도 상소를 올려 이를 직간하다가, 황제 헌종의 노여움을 샀다. 헌종은 한유를 조주(潮州)자사로 강등시켜서 당장 임지로 출발하라고 하였다.
한유가 길에 올라 상산(商山)에 도착했을 때, 홀연 짙은 먹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더니 차가운 바람이 갑자기 몰아쳤다. 그리고는 어지럽게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한유는 말을 탄 채 눈발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갔으나, 가면 갈수록 눈이 많이 내려서 앞길도 보이지 않고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말을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인적도 인가도 끊겨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내가 이곳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가' 하고 생각하니, 그의 입에서 장탄식이 절로 나왔다.
- 눈보라 속에 홀연히 나타난 조카
한유가 말을 멈추고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데, 홀연 멀리서 한 사람이 눈바람 속에 다가왔다. 이 사람이 말 앞까지 다가왔을 때에야 비로소 한유는 그가 조카 한상자임을 알았다. 한상자는 눈이 내리는 길에서 한유에게 총총히 안부를 묻고는, 말고삐를 붙잡아 길을 인도했다. 한유와 길벗이 되어 인근 남관(藍關) 역참까지 와서 함께 투숙을 하였다. 한유는 조카 한상자의 도움으로 추위와 굶주림을 면하게 되자, 비로소 한상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 눈이 그치고 한상자는 또 한유와 길벗이 되어 함께 길을 출발하여 정주까지 가서는 이별을 고하면서 "숙부님! 저의 스승님께서 저와 함께 현호(玄扈) 의제봉(倚帝峰)에 가기 위해 지금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는 더는 숙부님을 모시고 갈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 한유, 한상자에게 이별시를 지어주다
이때서야 한유는 조카 한상자가 기이한 인연을 만났다는 것을 알고는, 더 붙잡지 않고 즉석에서 시(詩)를 한 수 지어 한상자에게 주었다.
一封朝奏九重天 일봉조주구중천 (아침에 황제께 상소를 올렸더니)
夕貶潮陽路八千 석폄조양로팔천 (저녁에 조양으로 팔천리 귀양길에 올랐구나)
本爲聖朝除弊事 본위성조제폐사 (상소는 원래 조정을 위해 그릇된 일을 바로잡기 위함인데)
豈將衰朽惜殘年 기장쇠후석잔년 (늙고 쇠잔한 몸으로 귀양길에 올랐으니 어찌 말년이 애석치 않은가)
雲橫秦嶺家何在 운횡진령가하재 (구름 빗긴 진령 위에 서니 고향은 어디메뇨)
雪擁藍關馬不前 설옹남관마불전 (눈이 남관을 가로막아 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知汝遠來應有意 지여원래응유의 (네가 멀리서 온 뜻이 응당 있을 터이니)
好收吾骨?江邊 호수오골장강변 (풍토병이 있는 이 강가에 내 뼈를 잘 수습해 다오.)
시를 읽으면서 그들은 서로 위로하고 눈물을 뿌리면서 이별하였다.
- 흰 목단꽃이 푸른색으로 바뀌고, 꽃잎엔 글자가 새겨지다
한유의 귀양지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 해 봄, 집에서 보낸 편지가 한 통 조양에 있는 한유에게 왔는데, 그 편지에는 기이한 이야기 하나를 전했다.
“집 마당에 있던 그 흰 목단꽃이 금년 봄에 피었는데 ,그 색깔이 전부 푸른색(碧色)이며, 또한 꽃의 네 면에는 다섯 가지 색깔이 섞여있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것은 그 푸른색 목단 꽃의 매 꽃잎 위에는 모두 파리 머리만한 작은 해서체로 14자가 씌어져 있습니다. 그 14글자는 "雲橫秦嶺家何在 (운횡진령가하재) 雪擁藍關馬不前 (설옹남관마불전)"인데, 새겨진 글자는 천의무봉한 서법으로 정교하여 능히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편지를 받은 한유는 비로소 한상자가 기연을 만나 이미 신선이 되었음을 시인하였다. 만약 신선이 아니라면, 어떻게 능히 금년에 지을 시(詩)를 그 이전인 작년에 미리 알 수 있단 말인가? 아울러 시구를 꽃 잎 위에 나타낼 수 있다니!
- 숙부 한유를 수도의 길로 인도하다
일설로는, 이런 일이 있고나서 한유도 일심으로 도문(道門)에 들었다고 한다. 한상자는 한유(八仙)를 인도하여 팔선 중에 한 분인일원 종리권과 여동빈 두 분의 스승을 만나게 해주었다.
두 분 선인께서는 한유에게 그의 전생(前生) 일을 설명해 주었다. 한유는 높은 학식과 지혜가 있고 또한 태어나면서 도가(道家)와 선연(仙緣)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오도(悟道)를 했다고 한다. 그는 수도한지 불과 10년 만에 심성을 확철대오하였다는 것이다. 후일 하남 숭산 소실봉에서 득도하고는 태백성군(太白星君)의 인도 하에 하늘에 올라서 옥황상제를 알현하고 원래의 천직(天職)을 찾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 전해지고 있는 "한상자가 문공 한유를 제도한 일장 고사"이다.
출처: 삼류인생 원문보기 글쓴이: 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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