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티시스트 승낙君
정현수
그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다.
그의 어눌한 말은 처음 듣는 사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행동은 늘 부자유스럽다. 안타깝지만 의도적인 몸 짓은 전혀 할 수 없고 늘 자유(?)롭다. 그런 그는 늘 꿈을 꾸고 있으며 뭔가를 이뤄야겠다는 열혈 의지가 항상 엿 보인다. 마음먹은 일이면 주저 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의지의 한국인 승낙, 때로는 사색에 잠겨 소(小) 창 너머 먼 하늘을 바라볼 때는 그 큰 눈망울에 이슬이 맺히는 로맨티시스트이다. 막 눈밭에서 솟아난 청아한 진 노랑의 복수초 같고, 맑은 가을 하늘에 상쾌함을 더하는 고추잠자리 같은 항상 야무진 꿈을 꾸는 멋진 친구다.
지난 8 월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아스팔트 열기가 후끈거리는 종로 보신각 거리에 어눌하고 간절한 아우성이 퍼졌다. 그 자리에는 역시 그가 있다. 금년 말쯤 있을 장애인 복지법 개정이 예상되면서 그들은 합리적이고 더 나은 그들의 삶을 위하여 집회를 열었다 한다. 거기에는 우리의 열혈남아 승낙이 가 경계를 늦추지 않는 전경들 앞에서 그의 전동차에서 일어나 용쓰듯 지탱하며, 어눌한 말투와 하늘거리는 육신으로 죽을 각오를 한 전사처럼 우직하고 힘 있게 동료들을 독려하며 지휘하고 있었다. 그의 무엇으로도 표현이 부족한 그 무엇이 저 깊은 아련한 곳에서 솟아오르는 옳음을 주장하고 있을까? 운현동 공간사(空間社) 옆 현대빌딩에 있는 복지부까지 행군하며 그들의 주장을 목이 터져라 호소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육신을 길바닥에 내던지며 가장 작은 그들의 몫을 찾고자 할 때에는 하늘은 왜 이다지도 불공평한가. 그들의 육신은 하나같이 다 연약하며 모든 게 부족한지 안타깝고 답답할 뿐이다. 그러나 승낙은 조금도 굴하거나 물러섬이 없이 그가 할 일을 그 더위에 묵묵히 다했다 한다.
9 월에는 글로벌한 연극 무대에 선 그를 나는 영웅을 찬양하듯 우러러봤다. 남산 한옥마을 국악당에서 공연한 일본 극단 타이헨의 '황웅도 잠복記' 연극이다. 일본의 장애인 연출가 이자 극작가며 연극인인 재일 동포 '김 만리' 선생의 극작인 장애인 극이다. 암울한 일제강점기의 한 젊은이의 방황과 애환을, 결코 순탄치 않은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퍼포먼스다. 사뭇 승낙의 인생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여기에는 무용가인 '박 경랑'의 미(美)를 추구하고, 때로는 나긋나긋하면서 흥이나는 몸놀림의 살풀이가 극의 아름다운 무게감을 더한다. 고성 오광대 예능 보유자인 '이 윤석' 선생의 투박하면서 정교한 춤사위, 그리고 남해안 별신굿 예능 보유자인 '정 영만' 선생의 한풀이 춤은 마치 영혼이나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 주기도 하는 몸짓으로 이 극을 더 슬프게 하고 애련함을 갖게 하였다.
그 극 중에 그가 있다. 그들 속에 그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로맨틱 가이 승낙이 있다. 무대 휘장막 커튼에는 조명에 의해 반사되는 그의 처절하고 하늘거리는 실루엣이 아슬아슬하게 쓰러질 듯 그의 앙상한 몸이 흐느적거린다. 겨우 자기 본연의 의무를 다하듯이 다 타버린 바람에 쓰러질 듯 간닥간닥 흔들리는 촛불처럼 애처롭다. 그의 처절한 춤사위는 나를 숙연케 하고 감성을 젖게 한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뒤섞여 한 많은 순간을 표현할 때에는 저만큼에서 묘한 여운을 안겨 주기도 한다.
나는 그런 젊은이 승낙이 좋다. 연극이 끝나고 작은 리셉션 파티장에서 담소를 하며 축하할 때 그가 동료 배우들과 모습을 드러낼 때에 그는 첫 몽정을 경험한 아이처럼 서먹하고 계면쩍은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다. 그 순수하고 티 없는 모습이 더 큰 애정을 느끼게 한다.
그가 이번에는 일본 극단 초청에 보름의 일정으로 오사카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왔다. 꽤 성황을 이루었다 한다. 그야말로 한류스타(?)가 되어 돌아왔다. 서로 바빠 오랜만에 보는 승낙君은 상기된 얼굴로 현지 공연 상황을 열심히 이야기한다. 참! 맑은 모습이고 가식이 없다. 그의 노력은 비장애인의 견지에서 본다면 참으로 놀랍다. 일반적인 사람이 그것에 접근할 수는 있어도 달성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는 해내고 만다. 새로운 습관을 꾸준히 노력하고 답습하여 자리 잡은 다음 자신감을 가지고 이제 됐다는 확신의 과정을 거쳐 비로써 자기 것으로 만드는 요술쟁이이기도 하다. 신은 그에게 가혹한 시련만 남겨 놓았지만 그는 일상의 고난 속에서도 뭔가를 추구하고 장애인으로서 제한된 모든 어려움을 바꾸려 노력한다. 그의 의지는 존경과 찬사를 받을만하다. 500CC 생맥주를 빨대로 30초 안에 들이키는 것 빼고는……
11 월에는 다시 일본에 공연을 하러 간다 한다. 이런 일을 계기로 이제는 진정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할 뿐이다. 그럼으로써 장애인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정상인도 살기 힘든 이 어려운 세상을 견디어 나가길 바랄 뿐이다. 아직도 그의 말을 자연스럽게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어눌한 말과 의도하려는 눈빛, 진정을 더 익히고 알고 싶다. 다음 주 일요일에는 대학로 연극을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 점심에는 누구도 개의치 않고 하늘거리며 제멋대로 움직이는 로맨티시스트 승낙의 숟가락을 또 한 번 볼 것이다.
2011. 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