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성경을 바탕으로 한 성화들은 예수와 관련되어 있거나 기적에 관련된 내용이 많습니다. 그리고 일화나 비유에 관련 그림이 있는데 보통 사람이 주인공인 그림 중에 유명한 그림이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년-1669년)의 돌아온 탕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렘브란트는 다빈치와 더불어 17세기 유럽미술가에 최고의 화가로, 그림의 종류라고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걸쳐 활약했고 남겨진 작품만 해도 1,000여점이나 된다고 합니다. 작품의 특장은 색이나 모양을 모두 빛으로 표현하였고 명암으로 생명을 불어 넣어 인간심리나 종교적 정감을 잘 표현하여 그를 “빛의 화가”라 부릅니다. 굉장히 자부심이 높았는지 자화상이 많이 그렸는데 100여 점이나 된다고 합니다.
아내와 자식이 먼저 세상을 뜨고 괴로움 속에 그는 호화스런 생활로 파산하고 결국 생활비를 대주던 마지막 아들까지 죽고 그 다음해 세상과 이별을 했다고 합니다.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라는 이 그림은 그런 말년에 그린 작품으로 그의 인생과 인간적 고뇌가 들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자신에게 물려줄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해서 먼 고장으로 갑니다. 그런데 방종한 생화를 한 탓에 재산을 탕진하게 마침 그 고장에 기근이 들게 됩니다.
작은 아들은 돼지 키우는 사람에게 의탁하여 살려 했으나 돼지먹이조차 제대로 얻어 못하다 제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의 일꾼들보다 비참한 자신을 돌아보며 아버지에게 돌아가 하늘과 아버지에게 자신의 잘못을 빌고 품팔이꾼으로 써달라고 하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잘못을 비는 아들을 본 아버지는 아들을 안고 입맞춤을 해주고, 옷을 챙겨주고 송아지를 잡아다 잔치를 벌입니다.
그때 들판에서 돌아온 큰아들이 잔치소리를 듣고 하인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자 아버지가 타이르려 합니다. 큰아들은 종처럼 아버지의 명을 따르며 섬긴 자신의 처지와 자신을 위해서는 염소 한마디 잡아주지 않은 아버지와 창녀들과 뒹굴며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비난합니다.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고 말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림을 조금만 설명하자면 먼저 아버지를 살펴보면 아버지는 표정을 보면 먼저 시선이나 초점을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아 그 동안 아들을 기다리는 고통을 숨기며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보이는 듯합니다. 더욱 특징적인 묘사는 아들의 등에 있는 두 손입니다. 금방 알아보셨겠지만 두 손이 다릅니다. 왼손은 굵은 남자의 손이고 오른손은 매끈한 여자의 손입니다. 아버지의 강함과 어머니의 부드러움이 함께 하는 이 손에 모든 빛이 모여 있고 다른 두 사람의 시선도 아버지의 손에 쏠려 있습니다. 아들에 대한 사랑, 화해와 용서, 치유가 함께 담겨 있으며 아버지의 안식을 상징하고 있는 듯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아들들은 상당히 대조적이기도 합니다. 작은 아들은 머리는 삭발했고, 황갈색의 찢어지진 옷에, 벗겨진 왼발은 상처투성이고, 오른발은 망가진 신발로 겨우 부분적으로 감싸고 있어 그의 비참한 처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를 기쁨 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현재의 상황이 불만스럽다는 듯이 뻣뻣하고 포옹을 원하지도 않으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이들로부터도 한 걸음 물러서 있습니다(그리고 그림의 시커먼 부분에 사람이 있는데 잘 보이질 않네요).
그림에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가톨릭 신부이자 예일대 교수였던 ‘헨리 나우웬’이란 분이 이 그림을 보고 쓰신 감상문이 아주 유명하고, 실제 이 분은 미술관에서 회개하는 아들을 품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모습에 감동을 받아 교수직을 버리고 장애우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에 들어가 일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 그림을 통해 나는 누구의 탕자는 아닌지? 돌아온 탕자를 외면하며 더욱 나락의 구렁텅이로 밀어내지는 않았는지요.
탕자 이야기를 그린 그림은 상당히 많습니다. 삽화로 그려진 것까지 치면 수를 헤아릴 수 없겠지만 여기 몇 점 소개합니다.
구에르치노, 1619
무릴로, 1667-70
잔 스틴, 1668-70
지거 쾨더 Sieger Köder
돌아온 탕자 , 티솟, 1862/아래그림
첫댓글 돌아온 탕자 그림 어디서 구하셨나요
아주귀한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