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일곱 교회 모습
교회에 대한 논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계시록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과 그 교회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어떤 말씀들을 하셨는지 살펴보자.
요한계시록은 세상 끝 날에 있을 묵시적인 내용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계시록의 내용을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계시록이 펼쳐진다(계 1:11 참조).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은 사도 요한이 계시 받을 당시에 실제적으로 있었던 교회들임은 분명하다.
그러면서 또한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은 세상 끝 날까지 이 세상에 세워질 모든 교회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시아 일곱 교회들의 모습과 그 교회들을 향하신 주님의 말씀들을 살펴봄으로써
한국교회는 주님께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
또 한국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에베소 교회”(계 2:1-7)
에베소 교회는 그다지 잘못한 점들이 없었지만 주님께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책망을 받았다.
주님은 그 교회에 대하여 처음 행위를 가질 것을 촉구 하시며,
회개하지 않을시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고 하셨다.
촛대를 옮기겠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더 이상 교회로서 인정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다.
큰 비리나 잘못을 저지른 교회도 아니고,
단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만으로도 회개하지 않을 경우
주님은 그런 교회를 인정하지 않으시겠다는 단호한 말씀이다.
그 교회에 주신 권면의 말씀은 이길 것을 촉구하고,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에베소 교회를 향해 하신 이기라는 말씀은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야만 영생의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서머나 교회”(계 2:8-11)
서머나 교회는 환란과 박해 속에서 큰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믿음을 지키는 교회로 말씀하고 있다.
서머나 교회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앞으로 더 큰 환란이 닥치겠지만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시고,
그리하면 생명의 관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버가모 교회”(계 2:12-17)
버가모 교회는 사탄의 권좌 근처에 있는 교회였다.
이는 세속적인 경계선을 넘어가 있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 교회에는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발람은 삯군 목자의 대표적인 사람이며, 니골라 당의 교훈은 주님의 교훈과 다르고 잘못된 교훈이다.
주님은 그 교회를 향하여 회개하지 아니하면 주님이 그 교회를 상대로 싸우실 것을 말씀하셨다.
교회를 통하여 사적인 욕심을 채우려는 이들을 향하여 주님은 친히 그들과 싸우시겠다는 의미이다.
“두아디라 교회”(계 2:18-29)
두아디라 교회는 주님께 칭찬을 받을만한 부분이 많은 교회였다.
그러나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을 용납하는 큰 과오가 있었다.
이세벨은 이방 왕 엣 바알의 딸로서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의 아내이자 이스라엘의 왕비가 되었다.
그녀는 아합의 왕비가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던 이스라엘로 하여금 온통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게 하였다.
두아디라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책망은 기독교의 절대적인 진리를 버리고
세상의 잡다한 종교들과 종교 통합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일 것이다.
주님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것을 미리 아시고 침상에 던지고 그 자녀들을 죽이시겠다는
무서운 심판을 예고하셨다.
침상에 던지신다 함은 질병으로 드러눕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오직 순수한 기독교 진리를 통하여 세상 종교와
그 무엇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신앙을 지키라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사데 교회”(계 3:1-6)
사데 교회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살아 움직이는 교회 같으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생명력이 죽은 교회로 묘사하고 있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명령 받았다.
살아있는 교회는 자연히 교회가 지닌 생명의 힘을 통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아무리 큰 교회요 많은 이들이 모인 교회라 하더라도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교회는 주님이 보시기에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교회들이 속히 회개하지 않을 시에는 주님께서 도둑 같이 임하셔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빌라델비아 교회”(계 3:7-13)
서머나 교회와 함께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께 책망을 받지 않은 귀한 교회이다.
이 교회의 특징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순종하고 믿음을 지킨 교회임을 밝히고 있다(8절).
눈에 보이는 대단한 규모를 가진 것이 아니고,
지극히 작지만 당면한 어려움들을 믿음으로 이긴 신앙의 교회였다.
교회는 크기가 아닌 세상의 불의에 무릎을 꿇지 않고 믿음의 정절을 지키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계 3:14-22)
라오디게아 교회는 사람들이 알기에는 부요하여 아무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교회는 벌거벗은 수치가 있었으며,
눈이 멀어 있었다고 하였는데, 특히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않은 교회였다.
이 교회의 부요함이란 이 세상에 속한 어떤 것들의 부요함이었던 것 같다.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교회당을 짓고 대기업 임원을 능가하는 사례비를 받는
대형교회의 사역자들이 가끔 부끄러운 모습으로 세인들의 눈총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이 가진 가시적인 것들은 부요한데,
그들의 영혼은 한없이 빈핍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영생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열려 있었던들 세상의 것들을 취하려고
하나님의 나라를 욕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님은 그런 교회를 향하여 뜨겁거나 차든지 할 것을 촉구 하시고 고치지 않을 경우
주님의 입에서 토하여 버리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 역시 더 이상은 교회로 인정하지 않으시겠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아시아 일곱 교회와 그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들에 대하여
주님은 흠도 점도 없는 교회로 세우기를 원하신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는 교회들에 대하여는 가차 없이 촛대를 옮기시기도 하고,
주님의 입에서 토하여 내치시기도 하신다는 점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교회에 대한 이런 바람을 가지신 주님의 입장을 헤아리며,
교회에 대하여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