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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국내외에서 전체주의와의 대결이 시작된 해
2022년도 어느덧 연말을 향해가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용어가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올해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하지만 2022년은 그것만으로는 형언이 약하다. 국제정치적으로 예년과는 다른 중대 사태가 발생하고 이어지고 있다. 연초부터 그랬으며 연말을 향해가는 지금 그 양상은 더 심화되고 있다.
2022년이 시작될 무렵 한국은 대통령 선거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당연히 한국민의 모든 관심은 그 승패로 쏠려 있었다. 그런데 3월 9일 대통령 선거를 불과 2주 남짓 앞둔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다.
▲ 지난 10월 22일 중공당 당대회 중 후진타오 전 주석의 강제 퇴장은 ‘화평굴기’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 AP=뉴시스
침략당한 우크라이나에 책임 돌린 민주당
지리적으로만 보면 우크라이나는 한반도의 지구 반대편이다. 먼 나라의 일이었다. 통상적으로만 생각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의 대선(大選)에서 이슈가 될 것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국의 대선에서도 이슈가 되었다. 국제정치에 전문적 식견이 없는 일반 국민들도 지정학적(地政學的) 상황의 유사성을 느낄 만한 사태였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한반도는 괜찮을까 하는 느낌이 없을 수 없었다. 한국의 여야(與野) 대선 주자들도 무관심할 수 없었다.
여야 후보 모두 입장을 내놓았다. 상반된 입장이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우리에게 준 생생한 교훈은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말로만 하는 종전(終戰)선언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며 “한미 동맹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평화가 곧 경제고 밥”이라며 예의 그들 특유의 평화론을 내세웠다. 어떻든 평화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이재명 후보는 2월 25일 대선 후보 토론 도중 “6개월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서 (…)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은 충돌했다”고 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폄하하면서 그가 러시아의 침공을 자초했다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도 “우크라이나는 대통령을 잘못 뽑아 전쟁이 났다”고 했다. 박범계 전 법무장관도 “러시아 침공 예측 못 하고 위기 키운 아마추어 대통령”이라는 기사를 트위터에 올렸다. 문재인 정권이 임명한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은 “우크라이나의 어리석음이 주요 요인”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더불어민주당 측 인사들의 이 같은 발언이 줄을 이었다.
단순히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결례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그랬다. 그들은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런 식이었다. 그들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북한을 규탄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자극하지 않아야 된다는 논리로 일관했다. 북한의 주장과 논리적 맥락이 동일했다.
이적(利敵)의 위험을 품은 논리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런 평화팔이를 계속했다. ‘설마’ 하는 회피의 심리를 겨냥한 것이었다. 국민들 사이에는 이런 심리가 존재했다. ‘설마 북한이 직접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기야 하겠느냐’라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어떻든 북한을 달래는 게 좋다’는 심리가 있다.
‘설마’와 ‘혹시’ 사이
하지만 ‘설마’와 ‘혹시’ 사이의 간격은 결코 멀지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그것을 확인시켜주는 사건이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 국제사회는 적어도 세계적 차원에선 대체로 평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세계 도처에서 국지적(局地的)으로 갈등과 충돌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지만 ‘선’을 넘지는 않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일원인 러시아가 침략전쟁을 자행했다. 금기(禁忌)의 선이 허물어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의 침공에 강력히 맞서고 있을 뿐 아니라 반격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단결된 힘과 미국을 위시한 서방 자유민주 진영 국가들의 강력한 지원 덕분이다.
러시아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위협까지 계속 내비치고 있다. ‘설마’라는 분위기가 있지만, 금기는 한 번 깨지면 그 이상의 위험으로 얼마든지 치달을 수 있다. 국제정세가 변곡점(變曲點)을 지나버린 양상이다. 선을 넘는 유혹은 또 다른 나라들에도 퍼져갈 수 있다.
공산 중국이 이런 모습을 노골화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美)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당시 대만에 대해 전례(前例) 없는 대규모 군사행동을 보였다. 이어 지난 10월 16일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은 “대만에 대한 무력(武力) 사용 포기를 절대 약속하지 않을 것이며 대만 통일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시진핑은 이번 당대회에서 “중국공산당의 중심 임무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전면 건설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는 것”이라며 “21세기 중엽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미국을 꺾고 세계 1위 패권(覇權)국가가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의 충돌을 격화시키고 있는 가운데 중국도 미국과의 패권전쟁 본격화를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시진핑은 10월 23일 3연임을 확정 짓고 마오쩌둥(毛澤東)을 끝으로 사라졌던 ‘인민의 영수(領袖)’의 칭호를 다시 받았다. 북한의 김가 일족과 같은 식이다.
‘화평굴기’의 시대는 끝났다
▲ 지난 2월 4일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즈음하여 만난 시진핑과 푸틴. 이로부터 20일 후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 AP/뉴시스
러시아의 푸틴은 이미 황제와 같은 지위에 있다. 그런데 시진핑도 중국에서 황제의 지위를 공식화했다. 유라시아 대륙 동서에 전근대적(前近代的) 전제군주와 같은 존재가 동시에 자리 잡은 채 미국과의 충돌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 싸움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화평굴기(和平崛起)’의 시대는 영영 끝났다는 것이다.
화평굴기는 ‘평화롭게 일어선다’는 뜻으로,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 천명된 중국의 대외 전략이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감추고 인내하면서 때를 기다린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에 이어 후진타오 당시에는 화평굴기를 기본 방침으로 조심스럽게 힘을 키우는 전략을 지켜왔다.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직접적 충돌을 삼가 왔다. 그러나 시진핑이 등장하면서부터 중국몽(中國夢)과 대국굴기(大國崛起)를 내걸고 패권의 야심을 노골화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제20차 당대회 도중 후진타오 전 주석이 강제 퇴장당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중국만의 사건이 아니다. 화평굴기 시대를 대표하는 후진타오의 강제 퇴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국제적으로 한 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상징적 징표다. 2022년 세계는 이렇게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10월에는 중국에서 화평굴기의 강제 퇴장과 대국굴기의 황제 등극이 이뤄지면서 연말을 향해가고 있다.
문명의 충돌
2022년의 이 같은 국제적 사태 전개는 표면적으로는 그저 강대국 간의 국제정치적 격돌이라 여길 수 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미어샤이머 저서 제목의 표현을 빌리자면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이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단지 강대국 간의 패권경쟁이라는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사태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대결의 바탕에는 문명적·이념적 가치의 충돌이 있다. 푸틴의 러시아와 시진핑의 중국 스스로가 그 점을 분명히 했다. 푸틴과 그 이데올로그들은 서구 자유민주 문명의 문제점을 비난하며 그에 맞설 것임을 선언했다. 시진핑과 그 이데올로그들도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적 가치를 거부하며 사회주의에 입각한 위대한 중화의 부흥을 외치고 있다. 그냥 핑계로 내세우는 형식적 명분이 아니다.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고 확신하고 있다.
미소 냉전 종식 후 미국 등 서구 자유민주국가들은 세계는 결국 평화롭게 자유민주 질서로 하나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했다. 소련을 정점(頂點)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은 무너졌으며, 중공이 표면적으로는 사회주의를 내걸고는 있지만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 결국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적응하게 되리라 여겼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은 경제적 하부구조가 정치적·정신적 상부구조를 결정짓는다는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이 잘못된 것과 마찬가지로 틀린 생각이었다. 현재 러시아와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 자체가 바로 그 증명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립은 그냥 강대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힘의 갈등이 아니다. 이념과 가치를 달리하는 전체주의 문명과 자유민주 문명 간의 충돌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지난 9월부터 대대적으로 미사일 도발을 하고 있다. 북한은 9월 25일부터 11월 4일까지 미사일 발사 26회, 포병사격 11회, 항공기 기동 2회, 북방한계선 침범 1회 등 총 40회의 도발을 감행했다.
한국민들은 언젠가부터 북한의 도발에 대해 긴장하는 분위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최근의 연쇄적 도발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지난 11월 2일 북한은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의 우리 영해 근처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전에 해안포와 방사포를 NLL 이남으로 쏜 적은 있으나 미사일 발사는 처음이었다. 북한은 이날 4차례에 걸쳐 모두 25발가량의 미사일을 퍼부었다. 울릉도에는 한때 공습경보까지 발령됐다.
“제2차 남조선 해방전쟁이 임박했다”
더욱이 북한의 이번 도발은 10월 29일 이태원 사고로 애도기간이 선포된 와중에 자행된 것이었다. 이태원 사고에 대해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윤석열 대통령 앞으로 조전(弔電)을 보내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자국에 대한 국제제재에 동참한 한국을 비(非)우호국가로 지정했다. 10월 27일에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는 협박 메시지를 공표하기도 했다. 그런 러시아조차 애도의 뜻을 표했는데 북한은 아예 아랑곳없이 도발을 행한 것이다. 무엇을 겨냥한 것일까?
지난 11월 4일 주사파 핵심분자 한 명이 종북(從北) 인터넷 매체 ‘자주시보’에 “제2차 남조선 해방전쟁이 임박했다”는 글을 기고한 사실이 포착됐다. 북한은 전략핵무기와 전술핵무기를 모두 갖추어 6·25에 이은 제2차 남조선 해방전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으며, 그 시기가 임박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본토에 대한 전략핵 공격 능력도 갖게 되었으니 미국은 함부로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광적(狂的)인 종북 ‘또라이’의 공격적 망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때로 중대한 사고는 바로 이런 식으로 발발하곤 했다. 북한은 지난 11월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 진행된 한미연합공중훈련에 맞춰 미사일 30여 발을 발사했었다. 그러다 11월 9일 북한은 또다시 동해상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의 중간선거에 맞춰 감행한 도발이었다. 미국에 대한 메시지였다. 예의 종북 매체 기고문의 “미국은 함부로 개입하지 못한다”는 다시 말해 “미국은 끼어들지 말라”는 뜻을 담은 것일 수 있다.
전쟁의 유혹
김정은은 지난 4월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이성적·합리적으로만 생각한다면 김정은이 그렇게 선제 핵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의 핵공격은 한국에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피해를 주겠지만 동시에 북한도 완전히 멸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김정은 일당도 합리적 사고를 할 것이라 전제할 때의 얘기다. 나름의 독단적 계산과 판단에 사로잡히면 이성과 합리라는 잣대가 의미가 없어진다. 양차 대전도 그렇게 발발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수뇌부도 그랬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나름의 합리적·군사적 계산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한 러시아의 푸틴도 마찬가지였다. 푸틴은 구(舊)소련 정보기관 KGB 요원 출신으로 냉철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는 정평이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이 보여주듯 푸틴의 러시아는 지금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고 있다. 푸틴이 계산 착오를 한 것이다. 지금 북한의 김정은은 어떨까?
전쟁의 발발은 계산과 판단이 없어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전쟁을 선제적으로 감행하게 하는 바탕에는 자신이 옳고 상대가 부당하다고 믿는 가치관이 있다. 그 가치관이 야욕을 합리화시키며 감행을 충동질하게 된다. 그럼에도 현실적인 압박과 금기선이 강력할 때는 함부로 자행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제동을 걸고 있던 현실적 금기선이 무너졌다고 느끼게 되면 잠재적 야욕은 급격히 현실화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도 그랬으며 지금의 푸틴도 마찬가지다. 미국과의 패권전쟁을 본격화하겠다고 나선 시진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히틀러는 영국이 내리막길이며 미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푸틴도 서구와 미국에 대해 마찬가지로 판단했다. 시진핑의 중국도 미국의 시대는 갔다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히틀러가 그랬듯 푸틴과 시진핑 모두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다. 북한의 최근의 대규모 연쇄 도발은 이 같은 국제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 유혹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2022년 세계는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위험의 시대로 들어섰다. 한국도 그러하다.
北-中-러는 동반자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러시아가 북한의 재래식 무기를 수입한 사실이 포착됐다. 러시아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밀착 관계의 확인이다. 그런데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를 보여주는 게 또 하나 확인됐다. 지난 11월 2일 북한이 속초 앞바다로 발사한 미사일 잔해에 러시아어가 적혀 있었다. 구 소련이 개발한 미사일을 러시아가 공급한 것이었다.
중국이 북한의 배후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만이 아니다. 지난 10월 27일 미국 의회가 설립한 국제방송인 자유아시아방송(RFA·Radio Free Asia)은 미국의 비영리 연구기관 ‘핵위협방지구상(NTI·Nuclear Threat Initiative)’이 분석한 내용 하나를 보도했다. 1984~2022년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의 성공률 분석이었다. 성공률은 76%였다. 특히 2013년 이후 4년 동안은 성공률이 100%였다.
미 군사전문가 브루스 베넷(Bruce W. Bennett) 랜드(RAND)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 미사일의 비교적 높은 발사 성공률의 배경에 러시아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기술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 러시아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시험한 미사일을 북한이 도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 잔해에서 러시아어가 확인된 것이다. 북한·중국·러시아가 동반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인 것이다.
종북 세력들의 총공세
▲ 지난 11월 12일 서울 삼각지에서 열린 ‘촛불대행진’. 이른바 진보 세력들은 이태원 참사 이후 윤석열 정권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 뉴시스
한국은 지금 비상한 국제정세의 파도가 엄습해오는 가운데 북한의 전례 없는 도발도 마주하고 있다. 상식적으로만 본다면 한국은 여야를 떠나 이에 맞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가 헛된 것임은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 세력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초부터 곧바로 공세를 시작했으며 2022년 연말을 향해가는 지금 그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이태원 압사 사고를 계기로 기회를 만난 듯이 정권 퇴진 요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제2의 세월호 선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와 같은 일의 재현을 기도하는 것이다. 물론 그 같은 일이 다시 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양식을 가진 국민들은 이미 그들의 사특한 행태를 학습했으며, 지난 5년의 재앙의 시대는 깨우침을 주었다. 하지만 저들의 세력은 만만치 않다. 저들의 지역적 지지 기반과 종북 좌익 무리는 이미 하나가 돼 있다. 그렇게 형성된 세력이 사회 전 영역과 제도적 기구 도처에 똬리를 틀고 있다. 저들은 그 힘을 바탕으로 도발을 강화하고 있다.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타협이 가능하지 않은 싸움이다. 지금 저들의 도발의 바탕에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강화되고 퍼져온 성향이다. 강단을 장악하고 교단을 장악했다. 몇 차례 정권을 잡으면서 교과서를 뜯어고쳐 그릇된 역사 인식을 퍼뜨려 왔다. 그리하여 지역적 지지 기반에 더해 좌익적 성향의 세력을 전역으로 확장시켜왔다. 그 결과 한국은 지금 내적(內的)으로 거대한 균열을 안게 됐다.
소위 진보 세력은 북한이 최근 들어 대대적인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을 때 북한을 규탄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한미 동맹을 공격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에겐 이미 이 같은 행태가 상식이다. 민노총은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미군 철수를 외쳐댔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노동운동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한미 동맹을 공격하고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게 노동자의 권익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런데 이 같은 행태가 횡행하고 있다.
지금 한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대결은 자유민주체제에서 통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정치적 경쟁과 대립의 선을 넘어섰다. 자유민주 진영보다는 중국·러시아·북한이라는 전체주의 세력을 더 가깝게 여기는 세력이 한국의 자유민주체제 자체를 공격하고 있다. 고의적이든 아니든 그렇게 됐다. 국내외 모두에서 전체주의 세력과 자유민주 세력 간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려 했던 이유
근대 이래 세계의 번영은 자유민주 문명의 힘으로 이룩되고 지켜졌다. 모든 문명이 그렇듯 그 바탕에는 그것을 지탱한 ‘문명적 가치관’이 있다. 자유민주 문명도 그러하다. ‘인적(人的) 지배’가 아닌 ‘계약의 율법’을 원리로 한다. 그리고 ‘힘에 의한 약탈’이 아닌 ‘거래를 통한 이익’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영토의 정복’보다는 ‘길의 개척’을 중시했다. 물론 미성숙의 시기도 있었고 때로는 일탈도 있었다. 그러나 기나긴 역사적 시야에서 보자면 그 문명적 가치관의 힘이 관철됐다.
서구 근대문명의 선두주자 영국이 전형적인 경우다. 고립된 섬나라인 만큼 대륙에 대한 영토적 야심은 애초에 한계가 있었다. 해양으로 진출해 세계와 연결하는 길을 개척했다. 그런 가운데 후대의 자유민주 문명의 선두가 된 미국의 탄생도 잉태됐다.
하지만 대륙 유럽에선 근대에 접어들 때도 영토주의 흐름이 강했다. 땅의 크기에 집착했으며 힘에 의한 지배의 질서를 중시했다. 동쪽으로 갈수록 더했다. 독일이 그랬고 러시아가 그랬다. 이 같은 속성이 전체주의를 낳았다. 볼셰비키 러시아도 그랬으며 나치 독일도 그랬다. 지금 유라시아 내륙을 양분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그 속성을 그대로 상속했다. ‘대륙 전체주의 문명’이다. 지금 러시아의 신유라시아주의, 중공의 신(新)중화주의 중국몽은 과거 나치 독일의 침략 논리였던 레벤스라움(Lebensraum·생존공간) 논리와 다르지 않다.
반면 자유민주 문명은 다르게 갔다. 대항해로 깃발을 올렸으며 상업문명의 길을 갔다. ‘동인도회사’라는 상업 집단이 앞장을 섰다. 무력도 동반하고 식민지도 개척했으나 본질적으로는 영토보다는 상업적 이익을 중시했다. 그 전통이 이후로도 이어져 오늘날에도 기본을 이루고 있다. ‘해양 자유민주 문명’이다. 대서양 일대의 미국과 서유럽이 만든 국제적 군사동맹체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인 것은 어떤 측면에선 그 상징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려 했던 것은 자유민주 문명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였다.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푸틴의 침공은 자유민주 문명에 대한 전체주의의 공격이었다. 푸틴 자신이 그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에 대한 도전을 공식화한 시진핑의 중국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에 대해 거센 도발을 감행하고 있는 김정은의 북한은 그 양대 전체주의 세력의 꼭두각시 돌격대다.
‘재앙 세력’의 도발
한반도는 ‘대륙 전체주의 문명’과 ‘해양 자유민주 문명’ 격돌의 최전선의 하나다.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그렇게 출발했다. 대한민국의 번영의 성취는 자유민주 문명의 세계적·세계사적 성취의 대표적 상징이다. 그 성취가 지금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외부에서만이 아니다. 한국의 번영을 가능케 한 선택을 뒤집으려는 ‘재앙 세력’의 도발이 내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들과의 싸움은 국내적 대결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세계사적 문명의 대결이기도 하다.
61년 전 5·16 당시의 공약 “반공태세 강화, 미국을 위시한 자유 우방과의 유대 공고히 함”은 지나간 옛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제적으로 자유민주 진영과의 결속을 강화해야 하며, 내적으로는 전체주의 진영과 결탁하려는 재앙 세력을 제압해야 한다.
간단히 끝날 일이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이념적 병리(病理)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문명적 가치는 단시간에 무너지지도 않지만 곧바로 회복되지도 않는다. 자유민주적 가치를 회복하고 수호하는 시민운동을 강력하고 끈기 있게 펼쳐야 한다. 세대를 넘어 이어가는 지구전(持久戰)의 각오가 필요하다. 중요한 지점을 하나씩 되찾아오는 진지전(陣地戰)이 돼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고비마다의 결단을 확실히 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기동전(機動戰)의 결단을 소홀히 하면 지구전·진지전도 의미가 없다. 저들의 범죄적 행각이 이미 다 드러났다. 때를 놓치지 않고 단호하고 신속하게 척결해야 한다. 2023년을 더 나은 해로 맞이하려면 그래야 한다.⊙
이강호 /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월간조선 2022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