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이 생각나면 뿌리공원에 가라
2012-05-31 17:07:06
뿌리공원을 옆에 두고도 한 동안 찾지를 못했다. 집에서 뿌리공원까지는 지척이지만 주말이면 인근의 산과 들로 쏘다닌 탓이다. 날씨도 화창한 주말, 일상적으로 오르던 보문산 둘레길을 제쳐두고 뿌리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가 잠시 잊고 지냈던 조상에 대한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뿌리공원 입구 유등천에는 효문화 축제를 알리는 애드벌룬이 공중 높이 떠서 행락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애드벌룬에 매달려 있는 플랑카드가 바람결에 움직일 때마다 마음이 설레었다. 그동안 뿌리공원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족보박물관이 들어선 것이 특이했다.
만성교를 건너기 전 바라다본 뿌리공원은 축제로 술렁거렸다. 잔디구장에 들어선 행사장과 만성산 자락을 두른 성씨유래비들이 쏟아지는 불볕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물이 바싹 마른 유등천에는 재두루미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나가던 행락객 한 사람이 “저게 재두루미 맞지요“하고 관심을 갖는다.
삼남의 화합을 상징하는 삼남기념탑
만성교 끝에 세워놓은 화강암 표지석은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여러 성씨에 대한 폭넓은 상식을 제공해준다. 성은 삼국시대 왕족과 일부 귀족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고려초기부터 귀족은 물론 평민도 성과 본적을 함께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종 때 265성, 영조 때 298성이던 것이 1930년 국세청 조사결과 250성, 1985년 275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래비의 앞면에는 각 성씨들의 유래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그 유래를 상징하는 작품 설명이 깃들어 있다. 흔한 성씨는 물론이고 희귀성인 표씨, 구씨, 면천 복씨 등의 성씨들도 보였는데 그것을 상징하는 조형물도 특이하다.
표씨는 봉황 2마리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했고, 구씨는 2개의 원기둥을 상징물로 삼았다. 또한 면천 복씨의 조형물은 시조인 복지겸 장군을 상징하듯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했다.
충절과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죄스럽게 여길 때도 있다. 서글프게 변해가는 세상의 현실만 봐도 그렇다. 일상의 범죄 속에 감추어진 가정문제는 얼마나 심각한가. 부모를 짐으로 여겨 내다버리는 현대판 고려장도 간간히 뉴스거리로 비쳐지고 있다. 하던 일이 뜻대로 안 풀리면 조상 탓이라고 모든 책임을 조상에게 덮어씌우는 파렴치범도 적지 않다. 뿌리가 튼실해야 화사한 꽃도 피울 수가 있듯이 뿌리와 꽃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에있다. 조상과 후손의 관계를 천륜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인륜과 천륜이 무너지는데 뿌리공원에 와서 그나마 제 조상들의 흔적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그 중에서도 손순의 유래비는 읽는 순간 내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다.
성씨유래비가 들어서있는 만성산은 붉게 물든 단풍과 녹음으로 뒤덮여있다
산책길은 찔레꽃 터널로 덮여있다
다름 아닌 손순의 지극한 효성 때문이다. 얼마나 하늘이 감동했으면 땅 속에서 석종이 나왔을까. 손순의 효성에 비하면 나의 효성은 새발의 피다. 야속하다. 손순의 행적을 몰랐다면 내 마음 이토록 괴롭지는 않을 것을,
흥덕왕 때 손순은 모량리 출신이었다. 남의 집 품팔이로 생계를 연명하던 손순은 끼니마다 아들이 노모의 음식을 축내는 것을 보고 아들을 매장시킬 결심을 한다. 취산의 북쪽들에 땅을 파자 석종이 하나 나왔는데 그것을 두드리자 은은한 종소리가 대궐까지 진동했다. 흥덕왕의 사신이 찾아와 그 사실을 알고 왕에게 아뢰니 왕이 말하기를 "옛날에 곽거가 아들을 묻으매 하늘이 황금 가마솥을 내리셨소. 오늘날 손순이 아이를 묻음에 땅이 석종을 솟아냈으니 앞선 효와 뒤의 효가 같은 본보기가 되겠구나." 하고 집 한 채와 매년 벼 50석을 내려 그 효성을 칭송했다. 정말이지 그 때의 효성관은 별난 데가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노모의 음식을 축낸다고 금쪽같은 아들을 매장할 결심을 했을까. 그것이 더 불효가 될 텐데 말이다. 손자 때문에 앓아누울 노모 생각을 했다면 그런 끔찍한 일은 실행하지도 않았을 텐데, 여하튼 노모에 대한 효성 하나만은 높이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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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박물관 벽에 기록돼있는 전국의 성씨들
손순의 유래비
불행하게도 이곳엔 나의 성씨인 기계 유씨의 유래비는 없다. 모처럼 뿌리공원을 찾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텅 비는 기분이다. 성씨 유래비와 조형물에 눈길을 맞추면서 산책길을 따라 오른다. 야생화 단지와 장미터널에 묻힌 산책길은 발걸음이 가벼워서 좋다.
밤나무 단지에서 뿜어대는 밤꽃 향기를 맡으며 몇 발짝 오르자 삼남기념탑이 눈길을 잡아끈다.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삼남기념탑은 볼수록 특이하다. 삼남(대전 중구, 부산 중구, 광주 동구)의 역사와 전통을 형상화한 전망대가 허공 높이 솟아 은빛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아래에는 자산정이 있다. 소나무의 녹음에 묻힌 자산정은 한봉수 선생이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등 삼남의 화합과 경로 효친 사상을 위해 자신의 호인 자산을 따서 세운 정자다. 정자에서 보면 뿌리공원이 한눈에 잡힌다. 마른 물줄기를 껴안고 있는 효문화 관리원과 뿌리문화 축제를 알리는 애드벌룬이 공중 높이 떠서 행락객들을 부르고 있다.
떠들썩한 잔디구장의 소음을 들으며 수변선착장으로 내려선다. 봄꿈을 꾸듯 하얀꽃을 피운 으아리가 산길가로 손을 뻗치고 있다. 연한 넝쿨줄기에 붙어있는 꽃들이 눈부신 부로찌처럼 귀엽다.
수변선착장에 앉아 봄 햇살을 가득 담은 봇물에 눈길을 맞춘다. 바위 벼랑을 움켜잡고 있던 철쭉 무리도 이제는 인연을 다했는지 시든 꽃잎이 되어 흩날리고 있다. 흩날리는 꽃잎을 배경으로 삼아 오리 보트 몇 척이 한가하게 떠다닌다. 일렁이는 봇물을 받치고 아찔하게 서있는 바위 벼랑이 맞은 편 만성산과 나누는 눈짓이 정답기만 하다. 그런 산을 배경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면 뿌리공원이 명당이 따로 없다. 전형적인 배산 임수의 지형이다. 앞에는 물, 뒤에는 산을 두르고 그 사이에 오밀조밀 일가를 이루고 있는 성씨 유래비들이 영락없는 성씨 마을처럼 정겹다.
자산 한봉수 선생이 건립한 자산정
잔디구장에 들어선 행사장
평소 명당을 중시했던 조상들의 마음이 묻어나는 듯하다. 신명난 보트놀이에 정신을 팔고 있다간 하루해가 언제 지는지 모를 일이다.
일단 오리 보트에서 눈을 떼고 떠들썩한 행사장을 둘러본다. 17개 문중이 참여하는 문화 체험 행사가 열리는 중이다. 매사냥, 초고장(짚풀공예), 단청장, 서당 체험, 뿌리 백일장 등 볼거리들이 너무 많아 구경을 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다.
그 중에서 옛날 결혼식과 장례식에 관한 체험 행사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모여들었다. 한복을 곱게 단장한 신랑 신부가 첫날밤을 보내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아마추어 배우들의 행동에 행락객들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새롭게 단장한 족보박물관을 관람하지 않는 것이 손해일 것 같다. 성씨와 족보에 관한 모든 자료들을 모아놓은 족보박물관, 우리나라 최초로 대전의 뿌리공원에 들어선 것만 해도 자랑이다. 관람객들에게 족보에 관한 것들을 상세히 설명해주는 문화 해설사의 구수한 말에 사람들이 귀를 열고 서성인다. 내 조상이 누구이고 내 뿌리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의성김씨 족보에 실린 글 한 대목을 읽어보지만 그 근원은 알수가 없다.
우리 인간이라는 것은 다함께 시조로부터 비롯되었다. 아! 한 집에 모여 자리를 같이하고, 한 그루의 밤나무같이 모두가 그의 친족으로서 수족과 같았다. 몇 대가 지나며 촌수가 멀어져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게 된 것은 당연한 형세의 흐름이다. 그러나 한 몸에서 갈라진 몸이 저 길가는 낯모를 사람과 같아질 것이니 식자로서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의성김씨보 서 1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