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성공 황희는 도량이 넓어 조그마한 일에 거리끼지 아니하고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을수록 더욱 스스로 겸손했다.
나이 90여 세인데도 한 방에 앉아서 종일 말없이 두 눈을 번갈아 뜨면서 책을 읽을 뿐이었다.
방 밖의 서리 맞은 복숭아가 잘 익었는데 이웃 아이들이 와서 함부로 따니, 느린 소리로, “나도 맛보고 싶으니 다 따가지는 말라.” 라고 하였으나 조금 있다가 나가 보니 한 나무의 열매가 모두 없어졌었다.
아침저녁 식사를 할 때마다 아이들이 모여들면 밥을 덜어주며, 떠들썩하게 서로 먹으려고 다투더라도 공은 웃을 따름이었으니 사람들이 모두 그 도량에 탄복하였다.
재상이 된 지 20년 동안 조정은 공을 의지하고 중히 여겼으니 개국 이후 재상을 논하는 자는 모두 공을 으뜸으로 삼았다.
黃翼城公, 寬洪大度, 不拘細事, 年高位重, 愈自謙抑. 年九十餘, 嘗坐一室, 終日無言, 互開兩眼看書而已. 室外霜桃爛熟, 隣兒爭來摘之, 公緩聲而呼曰, 勿盡摘, 吾亦欲嘗之, 少焉出視之, 一樹之實盡矣. 每晨夕飱飯, 群兒來集, 公除飯與之, 叫噪爭食, 公但笑而已, 人皆服其量. 爲相二十年, 朝廷倚以爲重, 論開國以後相業者, 皆以公爲首.
출처 : ≪용재총화(慵齋叢話)≫(成俔, 1439-1504)
황희(黃喜 : 1363-1452)
청백리이자 명재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며 조선조 최장수 재상이다. 그는 정치 일선에서 원칙과 소신을 견지하면서도 때로는 관용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건국 초기 조선의 안정에 기여하였다.
≪용재총화(慵齋叢話)≫
조선 중기에 성현(成俔)이 지은 잡기류(雜記類) 문헌이다. 고려 때부터 조선 성종 때까지의 왕가(王家)ㆍ사대부ㆍ문인ㆍ서화가ㆍ음악가 등의 인물 일화를 비롯해 풍속ㆍ지리ㆍ제도ㆍ음악ㆍ문화ㆍ소화(笑話) 등 사회 문화 전반을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