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를 믿으라고 난리를 치는가?(
왜 베드로는 예수를 전하다가 옥에 갇히는 수난을 겪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기까지 했을까요? 왜 스데반은 예수를 전하다 돌에 맞아 죽었을까요? 왜 사도 바울은 옥에 갇히고, 수없는 매를 맞고, 자지 못하고, 주리며 헐벗으면서도 끝까지 예수를 전했을까요? 그 외에 많은 믿음의 선친들이 예수를 전하다 사자에 찢기고, 화형을 당하고, 굶주리고, 인격적인 모독을 당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저도 협박과 위협을 무릅쓰고 낯설고 물선 나라를 다니며 예수를 전할까요? 도대체 ‘예수’가 누구시길래 예수를 믿으라고 난리를 치는 것일까요?
마태복음 16장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답합니다. 틀렸습니다. 요즘도 예수님을 ‘4대 성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오해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보냄을 받으신 분이요, 하나님과 하나 되신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건 사람의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닌지라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요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다른 종교는 ‘무엇을 가르치느냐’를 중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체가 중하신 분입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을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려고, 즉 당신이 피 흘려 죽으심으로 대가를 치르고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려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그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가는 길은 오직 ‘나’, 예수 외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독교의 핵심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히9:27). 그런데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사람은 영존체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수명을 다하면 옷을 벗듯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은 영원히 삽니다. 육신을 벗은 영은 심판을 받게 되는데, 심판의 기준은 바로 ‘예수를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에 따릅니다. 예수님이 길이기에 그 길을 따라온 사람은 천국에 가지만, 그 길을 이탈하거나 애당초 그 길로 가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천국은 통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선한 일을 해도, 평생 도를 닦아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절대 천국에 못 갑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라’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럼 안 가면 되지.” 하시는 분들, 천국을 안 가면 가야 할 곳은 지옥뿐입니다. 지옥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곳인지 압니까? 뜨거운 사우나에 넣고 밖에서 문을 잠가놓고 있어 볼까요? 조금만 지나도 숨이 막혀 죽겠다고, 문 열어달라고 난리를 칠 것입니다. 지옥이 그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옥에는 출입구가 없습니다. 음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예수는 안 믿고 불쌍한 이웃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배만 불리다 죽은 어느 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16:24). 물 한 바가지도 아니고, 물 한 방울의 자비를 구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곳이 지옥입니다. 또 성경은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막9:47~49)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으로 향하는 네 눈을 빼고, 세상 것을 움켜쥔 네 손을 찍어버리고라도 지옥에는 떨어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추어탕 끓일 때 미꾸라지에 소금을 치면 난리가 나지요? 그걸 막 문지르고, 물을 부었다가 다시 소금을 치고 막 문지르고 합니다. 그리고 불에 올려놓는데, 미꾸라지는 죽어버리니까 괜찮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절대로 지옥에서 안 죽습니다. 그게 계속됩니다. 너무 끔찍하고 무섭지 않습니까?
‘꺼지지 않는 불못(마2:41)’, ‘불로서 소금 치듯 하는 곳(막9:49)’, ‘영원한 멸망의 곳(살후1:9)’… 이곳이 지옥입니다. 그러니 절대 그곳에 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 그럽디다. 빌어먹더라도 지옥엔 가지 말라고요.
반면, 천국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좋고 멋진 곳입니다. 천국에는 눈물이나 애통함이 없고 곡하는 것이 없으며 사망, 질병(계21:4), 저주가 없습니다(계22:3). 그리고 천국에서는 장가나 시집가는 일이 없습니다(마22:30). 항상 열매를 내는 과실수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수정 같은 물이 흐르고 보석으로 지은 집 등, 우리가 아무리 상상해도 부족한 아름다운 곳이 천국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그곳에 사는 것입니다. 그곳에 가려면 반드시 예수를 믿어야 하기에 ‘예수를 믿어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그런데 언제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 어디로 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명절 때 비행기 표나 기차표나 버스표를 미리 예매해둔 사람은 제시간에 터미널이나 공항에 가면 고향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 사지.’ 하는 사람은 티켓이 없어 고향에 못 갑니다. 천국행 티켓도 예매해놔야 합니다. 그 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들어갈 수 있는 비자요, 천국행 티켓이요, 천국 문을 여는 마스터키입니다.
언젠가 대구집회를 다녀오다가 구미 비행장에 1분 늦게 도착해서 비행기를 못 탄 적이 있었습니다. 1분 늦었다고 출입문을 열어주지 않습디다. 저는 ‘만일 이것이 천국 문이었다면 어떡할 뻔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찔했습니다. 천국 문은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번 크리스마스 때 믿지 않은 자들을 초청하여 예배를 드린 이유도 이래서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하겠지만, 씨를 뿌리는 것은 먼저 믿은 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요, 이를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도 제 건물에 세 든 교회 목사님들이 “이 사장님, 예수 믿으세요.” 했기에 때가 되니 예수를 믿은 것이고, 이렇게 주의 종까지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전하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을 예약해놓은 것 아닙니까? 때를 얻든 못 얻든 예수를 전하여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를 막아야 합니다. 소경이 벼랑을 향해 가고 있는데 막지 않는다면 그보다 악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 사랑의 확증입니다. ‘내 아들을 죽이기까지 너를 사랑한다’는 절절한 사랑의 표현입니다(요3:16). 그 사랑이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온전히 은혜로 구원을 얻고 천국까지 가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래서 먼저 믿는 자들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16:31)며 예수를 전하느라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천국이냐 지옥이냐
선택은 네 몫이다
영생의 길을 택할 것이냐
영멸의 길을 택할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