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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9 주일예배 마8:5-13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
21세기는 감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업에도 사람들의 감성을 이끌어내는 마케팅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감성의 시대에 맞게 찬양을 위주로 하는 교회들이 많이 부흥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온누리 교회처럼 찬양사역을 하고 있는 교회들이 부흥 된다고 합니다. 또한 새에덴교회의 소광석 목사님은 설교할 때도 시나 소설처럼 아주 감성적이게 설교를 하기 떄문에 교회가 부흥되었다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시대 사람들의 특징이 마음이 너무 강팍해져서 웬만한 일로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송 드라마 작가들도 대중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기 위해 날마다 머리를 짜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봉사와 섬김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모두가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통해 어떤 사람이 어떤 일로 하나님을 크게 감동시켰는지 살펴보면서 우리모두 피차간에 은혜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우리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10절에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라고 백부장을 칭찬했던 것처럼 백부장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큰 믿음을 가져서 하나님께 믿음으로 감동시켰습니다. 당시에 백부장은 로마사회에서 보수도 많이 받고 좋은 직업으로 인정받는 군인 지휘관이었습니다. 이 당시에 로마 군대는 군단들로 조직되어 있었는데 각 군단은 6,000명 정도였고 또한 군단 안에는 100명 정도를 지휘하는 백부장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백부장이 여러명 나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베드로를 만난 백부장은 처음으로 이방인 선교가 이 백부장을 통해서 전도되었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늘기도 했으며 경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마27:54에서 보면 예수님을 처형했던 백부장이 나오는데 예수님의 운명을 지켜본 이 백부장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고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많은 구경꾼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바울이 잡혀가 가이사랴에서 로마의 감옥으로 호송될 때 호송을 맡았던 율리오 백부장이 있는데 이 사람은 바울이 탄 배가 파선 지경에 이를 때 그의 군인들이 죄수들을 죽이는 것을 막아서 바울의 생명이 죽을 위기에서 도와준 착하고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밖에 행22:25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천부장에게 알린 백부장도 있었고 바울의 살해음모를 알고 바울의 생질이 바울을 찾아갔을 때 그를 천부장에게로 인도하여 바울에게 도움을 준 백부장도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예수님을 만나 칭찬을 받았던 백부장은 가버나움에 근무했던 백부장으로 마을의 회당까지 지어서 시민들에게도 인정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아마도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백부장은 그리고 자신의 부하를 많이 사랑했습니다. 자기 밑에 있는 하인 한 사람이 중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 백방으로 이 하인을 고쳐보려고 애를 썼지만 고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는 능력있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단숨에 예수님께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엎드려 무릎을 꿇고 간절히 간청을 드렸습니다. 본문 5-6장을 보면 그가 얼마나 애타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간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백부장이 나아와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하자 7절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내가 가서 고쳐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인의 집으로 직접가서 고쳐 주시겠다는 말씀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백부장은 집으로 오지 않아도 말씀만으로도 낫는다는 확신있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큰 감동을 받으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최고의 칭찬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가장 선민이라고 자칭하면서도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불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너무나 실망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이 말씀 한마디에 믿고 하인이 낫겠다는 믿음을 보이는 백부장에게 더욱 큰 감동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감동을 받으신 것은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겸손한 믿음에 감동을 하셨습니다. 당시에 백부장이라면 부하가 100명이나 되는 지위가 있는 신분으로 시민들의 존경을 받고 우러러보는 명예가 있는 사람임에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간청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집으로 가서 고쳐주마 했을 때 예수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떻게 예수님 같이 높으신 분이 감히 미천한 이방인의 집까지 오실 수 있겠습니까 하는 그의 겸손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백부장은 겉모습으로 겸손한 체하는 위선적인 겸손이 아니라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겸손을 보였습니다.
또한 말씀만으로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믿었습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므로 말씀은 하나님과 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했을뿐 아니라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치시고 말씀으로 병도 고치셨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직접 집에까지 가서 하인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지 않아도 말씀만 하시면 하인의 병이 나을 수 있었음을 믿었습니다. 백부장은 말씀은 곧 하나님이심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에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에 감동하신 이유는 몸소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절대 기적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백부장은 말씀을 온전히 믿고 또 그 믿음대로 적용하여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믿음을 하인의 병을 고치려는 사랑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믿음을 보이므로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불신앙으로 예수님을 실망시켰지만 이방인이면서도 참 믿음으로 예수님께 감동을 시켜 하인의 병도 고치고 영혼도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들도 백부장처럼 겸손한 믿음. 말씀을 온전히 믿는 믿음. 말씀대로 믿고 삶에 적용하는 믿음이 되어 믿음으로 예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우리들은 헌신으로 하나님을 감동 시켜야 합니다.
막14:3-9 을 보면 마리아는 자기에게 있는 전 재산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음으로 헌신하여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막 14:3절 예수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말씀한 것처럼 마리아는 자기에게 있는 전 재산이었던 귀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드림으로 예수님께 큰 감동을 주어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처녀들은 결혼할 때 사용하려고 향유를 모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실 것을 이미 알고 유월절 엿새 전에 베대니에 초청을 받아 가셨습니다. 베다니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에 참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을 때 머물렀던 곳이고 예수님을 극진히 모셨던 마르다 마리아가 살고 있는 곳이며 또한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셨던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는 시몬의 집에 모여 있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봅니다. 그런데 에수님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한창하는 중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아가씨가 머리를 풀고 나와서는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서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어드리는 깜짝 이벤트가 벌어진 것입니다. 예정된 일이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몹시 놀랐을 것입니다.
문제는 주위에 믿음이 있어서 예수님을 따랐다는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믿음이 있었다면 마리아를 격려하고 박수를 쳐서 축하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은 없고 마리아의 헌신을 비웃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향유 한 나드는 1년 일한 노동자의 품삭이었다고 합니다. 같이 있던 가롯 유다는 이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큰소리로 말하면서 낭비한다고 비웃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는 믿음이 없어 행하지 못하면서 헌금으로 봉사, 몸으로 봉사, 희생하고 전도하는 것을 불평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가롯유다가 마리아의 헌신을 이렇게 불평불만한 것은 영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가치관 유물론적 가치관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주실 분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마리아는 영적인 사람이었고 확신 있는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사람이 누구를 사랑하면 그를 위해 못할것이 없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용기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용기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있을 때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고 있는 중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예수님께 옥합을 깨뜨려 부어드렸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 있는 믿음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만약 마리아가 두려움이 있었다면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이 혹시 질투하여 욕하면 어떡하나 이상한 사람이라고 쫓겨나지 않을까 아마도 이런저런 두려운 생각 때문에 마음속으로 결단했었던 일이라도 막상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행동으로 직접 옮기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 옥합을 깨뜨려 드렸습니다. 믿음에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소심해서 물질을 드리고 싶은데 돈자랑한다고 남이 욕하지는 않을까 또 봉사를 하고 싶어도 너무 나선다고 욕하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마음은 사단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하나님을 보고 믿는 마음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믿을 때 이렇게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마리아의 이런 신앙의 헌신에 예수님은 크게 감동하셨고 만인 앞에서 칭찬을 하셨으며 이 여인의 헌신은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길이길이 기념되고 있습니다. 마리아처럼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물질로, 몸으로 마음으로 헌신하여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이 되셔서 칭찬받고 모든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우리들은 기도로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사38:1-2 히스기야가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을 감동시키므로 병을 고침받고 15년간 생명이 연장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와서 너는 이제 오래살지 못할 것이니 네 집에 유언하라고 했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므로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살펴보면 (2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절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라고 기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기도했다는 것은 더이상 이 세상에 대한 미련과 기대를 모두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 한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병을 세상적인 방법, 의사나 약이나 인간의 과학적인 방법에 절대로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고쳐주심을 바라고 기도했을 때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3절을 보면 과거의 잘못한 것을 용서하여 주셔서 기억지 마시고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옳게 한 것이 있으면 그것 만을 기억해주시라고 간곡히 통곡하며 기도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과거의 잘못을 통곡하고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5절의 중반절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년을 더하고)라고 응답하셔서 15년을 더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사36장을 보면 앗수르의 산혜립왕이 군사들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을 때 하나님께서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를 18만 오천명이나 물리쳐 주셔서 승리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자신이 잘나서 승리한 줄로 착깍을 했는지 몰라도 하나님앞에 승리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말씀이 없고 또한 그 크신 은혜에 보답을 드리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와 제사로 보답할 때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기도했을때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켰던 히스기야의 기도를 보면 절대로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고쳐주심을 믿고 바라며 기도했고 또한 잘못을 정직하게 내어놓고 통곡하고 회개하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또한 삼상1장에 보면 사무엘 선지자의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을 감동시켰던 것을 볼 수 있는데 한나가 엘가나의 남편과 살아가는데 아기가 없어서 브닌나의 첩을 얻어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아기가 없는 한나에게 더욱 각별한 사랑을 주었고 늘 위로해주었고 먹을 것을 더 주었기만 아기없는 슬픔을 메울 수 없었습니다. 한나는 첩인 브닌나가 아기를 가진 것에 교만하여 한나를 경홀히 할때마다 너무나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늘 기도했습니다. (삼상1:10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기도하고 통곡하며 11절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꼐 드리고 삭도를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한나는 늘 이렇게 통곡하며 마음속에 모든 것을 쏟아놓고 기도했을 때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한나가 하도 통곡하여 기도하니까 엘리 제사장은 술먹고 술주정을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해서 14절에 보면 포도주를 끊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15절 (내가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마음이 슬픈 여자라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 뿐입니다)라고 제사장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처럼 내 안에 있는 슬픈 마음을 모두 내어놓고 토해내며 통곡하는 기도를 할 때 또한 응답되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은혜를 보답하겠다고 서원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을 감동시킬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는 기도를 할때 응답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나의 기도에 감동하신 하나님은 사무엘이라는 훌륭한 아들 주셨습니다. 또한 서원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 갚아 드려야 합니다. 한나는 서원을 갚아 하나님앞에 귀한 아들을 드려서 크게 쓰임받는 크신 역사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밖에도 하나님을 감동시킨 기도를 한 사람들은 모세도 있고 다윗도 있고 다니엘도 있고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정직하게 다 내어놓고 세상적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응답해줄 것을 기도할 때 또한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통곡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와 한나처럼 응답받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가 있길 바랍니다.
오늘의 결론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감동시킬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축복 하십니다. 오늘에 말씀을 통해 여러가지로 하나님을 감동시켰던 믿음을 배웠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감동시킨 맏음을 가르쳐주셨고 자신의 있는 모든 마음과 재물을 털어 옥합을 깨뜨려서 헌신을 통해 하나님을 감동시켰던 마리아의 헌신의 모습을 보았고 히스기야와 한나처럼 기도로 하나님을 감동시킨 선지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저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앞에 부족한 제 자신의 믿음과 헌신과 기도를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회개했습니다. 이제 올 한해는 정말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믿음과 헌신과 기도가 되어져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고 우리 교회를 부흥시키고 가정을 복음화시키고 자신의 영혼도 힘을 얻어서 하나님께 더욱 크게 쓰임받고 축복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