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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une, Governance, Devil『어쌔신크리드 4 블랙플래그』
(자막 : 리얼보이 / 제공 : 유니소프트)
개발 : 유비소프트 몬트리올
유통 : 유비소프트
발매 : 2013. 11. 01
공자의 대동사회는 맹자의 왕도와 맞닿아 있다. 家가 무너지면 國이 무너진다. 따라서 國을 관리함에 있어 家를 지킴을 우선해야 한다. 家와 國 (私와 公)은 나누어 볼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孝가 중요하고, 孝한 자는 忠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치관점을 우리는 '동기주의'라고 한다. 동기주의는 '동기가 선하면 결과도 선하다'라고 보는 주의다. '결과가 선하면 동기는 아무래도 좋다'고 바라보는 결과주의와는 대립되는 관념이다.
(결과주의의 파생은 법치주의이다. 현대정치는 법치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법가가, 서양에서는 마키아벨리가 대표적인 결과주의자이다.)
『어쌔신크리드』시리즈의 대표 세력인 암살단Assassin과 템플기사단Templer은 둘 모두 동기주의에서 파생된 단체이다. 두 집단 모두 동기주의를 기반으로 한 단체이다. 정확히는 템플기사단에서 암살단이 분리되어 나온 것으로 굳이 따지자면 조선의 붕당정치와 유사한 개념이다. 주자학 해석에서 의견이 갈려 분파한 것이 당시의 붕당정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암살단과 템플기사단은 둘 모두 선한 동기를 추구하고 있으나 그 도구가 다르다. 템플기사단은 무지한 민중이 제대로 깨우치지 못해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고, 이 모두의 동기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고 본다. 반대로 암살단은 그 갈등과 분쟁은 개인의 자율성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두 집단은 평화 Peace라는 동기(목표)를 기반으로 시작하지만 그 방향은 각기 자유 Freedom와 질서 Order로 차이를 보인다. 또한 두 집단은 과도한 동기 집착 때문에 '惡'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결과를 도출해내기도 한다.
사설이 길었다.『어쌔신크리드』시리즈는 1과 레벨레이션, 3를 통해 이와 같은 논제에 대해 저마다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서사적으로는 큰 가치를 갖고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레벨레이션은 제외한다.) 철학적으로 바라봤을 때 위 작품은 충족될만한 철학적 고찰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그에 못지 않게 대중성도 적잖이 가미해 들어간다는 점에서 현대 게임 내에서는 독특한 위치에 서 있는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 다루고자 하는 『블랙플래그』는 기존의 담론을 좀 더 다양한 관점에 확장하여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금을 통해 안정을 이루고자 하는 에드워드 켄웨이, 통치를 통해 질서를 이루고자 하는 벤자민 호니골드, 공포를 통해 안정될 수 밖에 없게끔 하고자 하는 검은 수염. 영국 왕의 해적 사면을 계기로 드러나게 되는 세 사람의 관점 차이에서 에드워드 켄웨이는 암살자로서의 신념을 가슴에 품기 시작한다. 위 일련의 과정을 서사적으로 분석해보고, 이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철학적 논의를 파악해보고자 한다.
"위험하긴 해도 돈은 짭짤하게 벌잖아. 해군 나리들 얘기는 꺼내지도 마. 내가 1실링을 벌면 선장이란 놈이 반도 넘게 가로채고 있어. 필요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캐롤린. 난 그냥 바람들지 않는 집에서 하루 세끼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삶을 바라는 거지."
- 에드워드 켄웨이, 『블랙플래그 오프닝』 중
『블랙플래그』의 이야기에서 해적들의 동기를 이해하려면 우선 이 영상을 먼저 보아야 한다.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은 해상의 평화와 안전을 가져왔으나 그와 함께 선원 다수의 일자리를 앗아가버렸다. 평화의 결과는 혼란이 되었고 그 혼란은 안전을 위한 통제에서 발현했다. 버림받은 선원들은 이 때문에 기존의 통치체제에서 벗어난 자유체제를 추구하고자 나소를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카리브 해의 해적이 된다. 이들에게 '통제'는 '죽음'인 것이다. 죽더라도 자유로움 안에서 죽을 수 있는. '도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완연한 자유의 추구. 그것이 해적의 상징이고 나소의 상징이다.
에드워드 켄웨이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뼈빠지게 고생해서 번 돈이 '통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 의해 조율되고, 내가 하는 행동들이 통치를 통해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에 혐오를 느껴 바다로 나온다. 그 발단은 '돈을 많이 주니까'였지만,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여지가 그를 계속 바다에 묶어 놓는다. 에드워드 켄웨이는 모 함선을 공격하다 얻가 되는 정체불명의 보물과 암살자 후드를 이용해 일확천금을 이루고자 한다. 이를 통해 '템플기사단'의 존재를 알게 되고, 타인의 행동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관측소의 존재를 알게 된다. 에드워드 켄웨이는 이것이 '돈이 될 것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이를 찾아나선다. 호니골드는 그에 대해 "그건 기회가 아니야, 환상이지. It isn't Fortune. it's fantasy" 라고 말한다. 에드워드 켄웨이의 성우를 맡았던 맷 라이언은 그의 성격에 대해 "성미 급하고 재기 넘치는 무뢰한"이라고 평가한다. 에드워드의 단순한 성격은 그가 행하는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은 망각하게 한다. 이 때문에 에드워드가 일으킨 사건들은 암살단과 나소에 큰 위기를 가져온다.
벤자민 호니골드는 에드워드와는 다른 방향의 인물이다. 호니골드는 약탈할 적에도 약탈의 목적과 대상이 해야 할 행동들을 당사자에게 '친절하게' 알려줄 정도로 나름의 '신사적인' 면모를 유지하려 한다. 왕의 사면 사태에서는 "사면이 함정이든 아니든 지금은 영국군과 부딪쳐서 좋을 게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왕의 사면 사태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사면에 동참한 인물이고, 이후에는 템플기사단에 들어가 템플기사단으로서 활동하는 인물이다. 호니골드는 통솔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왕의 통솔 방식이 안 좋았던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괜한 화를 불러 피해를 입는 것이 부조리에 눈감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민중의 안전을 위해 민중을 정신적 노예로 만들려는 템플기사단의 사상을 정의라고 믿는다.
벤자민 호니골드의 사상에 전면 반발하는 이가 검은 수염, 에드워드 대츠다. 그는 "해적이 해적질을 못하는 게 말이나 되느냐"라며 호니골드의 말에 반박하고, 영국군과 스페인군에 계속된 저항을 이어나간다. 이때 핵심 요소로 등장하는 게 "약"이다. 당시 나소에는 전염병이 돌았고, 약을 구하지 못해 난관을 겪고 있었다. 호니골드는 약이 필요해도 영국군과 충돌할 필요는 없다며 충돌을 저지했고, 검은 수염은 그냥 약탈로 구비하면 문제가 없지 않냐고 반박한다. 에드워드 켄웨이는 이 사이에서 둘을 중제해나간다. 하지만 점차 검은수염에 동화해 배를 약탈하기 보다는 아예 약제소를 약탈하자고 제안한다. 이 사건은 후에 검은 수염을 죽게 만드는 계기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 또한 벤자민 호니골드와 에드워드 켄웨이가 사상적인 분열을 일으키는 기점이 되기도 한다. 이 두사람은 에드워드 켄웨이에게 해적질을 가르친 인물들이다. 때문에 이 두사람의 분열에서 에드워드는 조금씩 그 태도를 변화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한테 좋은 일이란 게 뭔데? 애쓸 만한 가치도 없는 도시를 구하려고 애쓰는 거? 우린 애초에 어딘가를 통치하는 일은 안 맞아. 우리한텐 취하고 쓰고 누리는 일이 맞아. 어딜 가든 말이야. 답은 정치가 아니라, 부와 권력에 있는 거야. "
-에드워드 켄웨이, 호니골드와 검은수염의 갈등에 대한 아데왈레의 견해에 대해
에드워드가 추구하는 것은 돈이다. 돈으로는 모든 물건과 안정을 살 수 있다. 철저히 '이기주의'에 의거한 인식이다.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한 자신의 행동의 결과가 어떤 파급을 낳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자유롭게 돈을 벌고 안정될 수 있으면 좋다는 인식. 그러나 이 안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 '자유'는 '혼돈'을 낳는다. (헤이덤 켄웨이의 견해) A가 자유롭고 B가 자유롭다면 Goal이 존재하고 그 Goal을 둘 다 추구한다면 그 안에서는 합의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조장된다. 이 때문에 합의와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에드워드의 견해는 나 이외의 타인에게도 '자유'와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구상한 가치관이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때문에 암살자의 신조에 대해 "자유롭게 하라면서 왜 신조를 따라야 하나"는 의문을 던질수 있는 것이다.
호니골드의 견해는 동기주의에 입각한 결과의 잔혹성을 보여준다. 모두가 공통된 가치관을 가진다는 것은 교육의 일환이기도 하다. 정리되지 않은 가치와 관념은 앞서 말한 대로 혼란을 조성한다. 문제는 그렇게 안치된 '안정'이 과연 '정의로운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안정'이라는 그 결과치에 그대로 순응해버린다. 그러나 에드워드나 검은 수염은 그 결과가 '영국 선원들에 대한 핍박'으로 이어졌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호니골드는 템플기사단의 신념을 믿는다. 그것은 선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검은 수염은 결과주의에 기반한 공포정치를 추구한다. 인간은 법으로 규제하고 공포고 강압하면 그 당사자의 도덕성이나 명령의 정당성은 차치하고 일단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법가는 "사소한 범죄일수록 더욱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자연히 공포가 발현되고 군중은 따르게 된다는 것. 이에 조선 정치가 정도전은 "법은 피할 생각만 강구하게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에는 그것이 도덕적인가 아닌가에 대한 분별이 필요하다"라며 도덕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방향이 나아간다. 이것이 동기주의와 결과주의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조심하기만 하면 그건 멍청한 거라고. 멍청하게만 행동하면 결국 주위에는 멍청이 밖에 안 남아. 악마처럼 행동해야 주의에서 따르는 법이지. 너의 사냥감에 공포심을 심어주어라. 과열된 꿈에서 솟아난 기분 나쁜 괴물을 선사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신께 간청하리라.!"
- 에드워드 대츠, 호니골드에 반대하며
위의 서술은 이러한 검은 수염의 견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검은 수염의 공포 정치는 로베스피에르가 망하게 된 경위와 마찬가지로 도리어 대상의 반발을 끌어올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손자는 『손자병법』에서 "적을 공격할 때에 반드시 퇴로를 열어놓고 공격하라. 사면을 장악당한 적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라고 말했다. 검은 수염의 막무가내 공포정치는 결국 영국군으로 하여금 검은 수염을 계속 추적하게 만든다. 검은 수염은 해적생활에서 은퇴해 은거중이었음에도 영국군에 척살당한다.
(에드워드의 이기주의에 호니골드는 질타하지만... 그것 또한 결국 해적들이 증오하던 '통제'에 대한 추앙에 지나지 않았다.)
검은 수염의 죽음을 통해 에드워드의 인식은 조금씩 변한다. 일확천금을 노리다 배신으로 인해 맛이간 찰스 베인과 암살단의 신조를 받아들이기를 권고하는 메리 리드 사이에서 계속 '금'을 추구하지만 추구할수록 상황은 망가진다. 기껏 추구한 금은 팔아넘기기에는 너무나도 막대하고 무거운 힘이고, 그 마저도 바톨로뮤 로버츠가 차지하고 에드워드를 배신해버린다. 여기에서 바톨로뮤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짧고 즐겁게 사는 인생"을 모토로 도덕성이 결여된 완전한 자유를 행사하는 바톨로뮤는 말 그대로 "진실은 없다. 모든 것은 허용된다"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등장할 수 있는 "혼란 Chaos" 그 자체인 것. 또한 이는 "난 그냥 바람들지 않는 집에서 하루 세끼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삶을"살기를 원하는 에드워드와는 대조되는 부분이며, 암살자의 신조에 대해 조롱하던 에드워드의 모습이기도 하다. 바톨로뮤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을 남겨놓고 떠나는 자신의 선원들. 그리고 메리 리드의 죽음을 통해 에드워드는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템플 기사단은 질서와 규율을 알아, 켄웨이. 하지만 너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대 모르겠지."
-벤자민 호니골드, 템플러가 되고
"2년이라고 나랑 약속했잖아! 왜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거야? 내가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서?"
-캐롤린 스콧, 에드워드의 환상 속
"넌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때 항상 그걸 부숴버린다고."
-메리 리드, 에드워드의 환상 속
"개인의 영광을 위해 움직이는 자와 같이 일하는 건 힘든 일이지, 에드워드"
-아데왈레, 암살단 은신처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일만 골라 하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지. 내가 주는 피해는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부와 명성을 얻긴 했지만, 고향을 떠날 때보다 더 현명해진 것 같진 않아.
-에드워드 켄웨이, 암살자가 되길 희망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고통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지키고 싶은 것이 하나 둘 생기다 보면 열망에 대한 것은 점점 나 자신의 것만이 아니게 된다. 나아가서 세상에 대해 추구하는 바가 생긴다는 것은, 지키고 싶은 것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하던 많은 것을 잃은 후에야 에드워드는 이기주의가, 황금만능주의가 얼마나 어리석은 가치관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암살단으로 전향한다.
그가 암살단으로 전향한 이유는 설사 그가 이기주의에서 탈피한다 하더라도 통제와 통솔은 그가 본질적으로 혐오하던 가치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켄웨이는 템플러들에 대해 "모든 인류를 말끔하고 가구가 갖춰진 감옥 안에 집어넣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안전하고 깨어는 있지만, 이성이며 정신은 무너진 상태고 말이야"라고 평한다. 이는 그간 그가 해온 '해적질'이 추구하는 방향이며,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그가 해온 일들이 암살단의 신조와 거리가 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메리 리드의 선견지명에 따라 그는 암살단에 적합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정리가 되자 그는 6년 전 자신이 벌였던 잘못을 수습하기 위해 템플러들을 사냥한다. 그리고 템플러들을 사냥하면서 정립된 가치관을 추구하는데, 암살 대상들은 변한 켄웨이의 모습에 놀라며 죽는다.
자 여기서 의문이 하나 남는다. 에드워드 켄웨이는 '자유'와 '안정'이라는 공존하기 힘든 가치를 추구했다. 그러다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바톨로뮤를 보며 그에는 거부감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안정을 추구하는 호니골드를 보며 자신들이 그토록 증오했던 대상에 충성하는 호니골드에 대해 분개한다. 그럼에도 에드워드는 암살단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에드워드의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진실은 없다. 모든 것은 허용된다." 라는 신조에 대해 에드워드는 이것은 시작일 뿐이지 끝은 아니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세상의 원형은 이런 것이라는 뜻이다. 템플 기사단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본래 세상은 정해진 것이 없는 혼재된 것'이라는 점이다. 무언가가 옳다라는 완연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고 다만 다수가 그에 옳다라고 했을 때 그에 긍정할 수 있는 게 전부다. 이는 善이라는 가치는 늘 변하며 어떤 형태로 존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 즉 그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공자의 의식으로 돌아온다. 공자는 대동사회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것은 화和라고 했다. 和를 통해 받아들일 때 대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이끌어가는 주체가 군자의 경지에 이르고 모두가 선하고자 한다면 大同에 이르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본질적으로 템플 기사단과 암살단이 차이를 가지는 부분이다. 템플 기사단의 가치는 善은 결국 상황과 인식과 가치에 따라 바뀐다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때문에 누군가의 가치 인식이 범용화 되었을 때 알아서 정의는 따라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가치 결정은 누가 결정하는 것이며, 그 결과가 정의로우리라는 결과는 어디에서 도출할 수 있는가. 이 때문에 통제에는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에는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진실은 없다. 모든 것은 허용된다" 는 신조는 결국 모든 것의 기원을 강조한 것일 뿐 그 위에 쌓아올려야 하는 것 '각자의 몫'이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에드워드는 평화란 결국 전쟁과 전쟁 사이의 혼란이라고 보고 있다. 해적들이 내몰렸던 현실과, 그에서 추구했던 방향이 이러한 큰 흐름에서 나타나는 작은 경향이라는 냉소적인 발언을 통해 그가 바라보는 평화에 대한 가치를 정립하고 있다. 어쩌면 평화는 모두가 소리낼 수 없도록 조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시끄럽게 떠들어댈 때 발현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여지이기도 하다. 지금껏 작품들이 전개해왔던 의문들은 모두 에드워드 켄웨이를 통해 해소되며 마무리된다. 지금껏 에드워드가 도망쳐온 '가정'이라는 위치로 돌아가면서 말이다.
(지금은 떠나간 이들을 회상하며)
『블랙플래그』는 서사적 관점에서는 대단히 아쉬운 작품이다. 좋은 대사들은 많지만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했고, 배치가 불안정했다. 또, 실제 역사와의 차이가 너무 커서 '잭 렉컴'이나 '스티드 보넷'은 평가절하 당하다 시피 했다. 윌리엄 키드의 아들로 나오는 '제임스 키드' 또는 '메리 리드'는 그의 인생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물로 나오고 '앤 보니'는 억지로 히로인으로 넣으려고 전개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고질적인 문제인 '시간 정리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했다. 대체 몇년이나 지났는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조리 잘라먹는 통에 가늠하기가 힘들다. 물론 당시 날짜는 시퀀스 곳곳에 나오긴 하지만 며칠 안 지났겠거니 하면 1~2년씩 훅훅 지나가 있다. 에드워드가 암살자 지도를 팔아먹고, 암살단에 정식으로 들어가기 기간이 6년이나 걸렸는데 체감상으로는 한 두 달 지났나 싶을 정도. 대체 어디에서 뭘 잘못한 건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정신없이 흘러간다. 또 『어쌔신크리드』의 또 다른 고질병으로, 사건 전달이 약하다. 분명 사건과 사건 사이에 개연성이 치밀하게 짜여져 있는데.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왜 이렇게 전개되는지 갈피를 못 잡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건을 전달하고는 있지만 괜히 어렵게 전달하고, 사건보다는 인물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담으로 『레트리뷰션』이 지루하다는 평가는 위의 사건 전달력이 심히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곱씹어보면 다 말이 되고 중요한 사건들이고 담론들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걸 쉽게 느끼기가 힘들다. 어렵게 쓴 어려운 내용이라고 정리하면 간단할 듯 하다.
그럼에도 『어쌔신크리드』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건 자연스레 녹아있는 '과거사'라는 배경과 그 안에서 나타나는 인간에 대한 담론들이 충분히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 주인공들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필자는 서사는 '인물'이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인물과 인물이 모이면 자연스레 사건은 생긴다. 때문에 『어쌔신크리드』는 지금까지도 (심지어 『유니티』와 『신디케이트』가 개판을 쳤어도) 기대받는 프렌차이즈로서 남을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얼음병정의 게임서사평론
ㄴ과연 해피 엔딩일까?『투 더 문』: http://cafe.daum.net/ReviewRepublic/bIZ4/180
ㄴ"멍청한 SF, 멍청한 가족주의" 『리멤버 미』: http://cafe.daum.net/ReviewRepublic/bIZ4/218
ㄴ"인류를 '길러볼까?'"『DMC 데빌메이크라이』: http://cafe.daum.net/ReviewRepublic/bIZ4/219
ㄴ"만약 당신이 인생과 대면하고 싶다면" 『저니 Journey』 1부 : http://cafe.daum.net/ReviewRepublic/bIZ4/231
ㄴ"만약 당신이 인생과 대면하고 싶다면" 『저니 Journey』 2부 : http://cafe.daum.net/ReviewRepublic/bIZ4/251
얼음병정의 게임 리뷰
ㄴ『리멤버 미』: http://cafe.daum.net/ReviewRepublic/bIZ4/210
ㄴ『Journey』 : http://cafe.daum.net/ReviewRepublic/bIZ4/225
첫댓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시리즈가 진행되며 때에 따라 미묘하게 평가가 달라지는 암살단과 템플러의 사상 차이가 이 시리즈에 더 빠져들게 하죠.
블랙 플래그는 게임 중후반까지도 암살자가 아니던 주인공을 내새워 '암살단의 신조'를 돌아보게 하는 방식이 참 좋았습니다.
블랙플래그는 다른 시리즈에 비해 비교적 그 내용이 직설적이고 쉬워서 이해하기는 편했어요 :) 에드워드의 변화하는 모습도 좋았고. 마지막에 에드워드 참 멋있더군요. 다른 무엇보다 검은수염이 죽을 때 진짜 친한 친구 죽은 거 처럼 마음이 허한게 참...
3편이 게임내 스토리가 비는 부분이 많아서 4편의 직설적인 내용이 더 와닿았지요 ㅋㅋ
맞아요. 3편은 너무 에둘러갔다는 느낌이... 그래도 스토리 자체는 3편이 제일 수준이 높았던 듯 합니다. 플롯과 서사는 유니티 이외 역대 최악...
3편은 전작까지의 '암살단은 좋고 템플러는 나쁜놈들이야'를 벗어나서 템플러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는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다만 게임 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라도 미싱링크를 조금씩 채워줬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게임성제외하고 스토리로만 치자면 에지오 사가, 그중에서도 레벨레이션이 최고져
@HO不HO 리벨레이션 스토리는 다른건 다 괜찮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악역이 별로 큰 인상이 없었네요
전작의 미친놈들이 너무 존재감이 컸던 탓일수도 있고요 ㅋㅋ
@HO不HO 2와 브라더후드가 사용하고 있는 테마와 모티프가 단순해서 주동인물과 반동인물 간의 선악이 뚜렷한 편입니다. 때문에 반동인물들이 전형적인 악역으로 등장하죠. 레벨레이션에서 그런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탈피해서 에지오의 인생을 초점화하기 위해 인물들을 구성했더군요. 모티프는 비슷하지만 테마는 전작들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레벨레이션의 악역은 상대적으로 그 깊이가 약한 감이 있지요. :) 3는 인물성을 잡은 대신 스토리 전달 자체를 못했구요 :(
어크 시리즈는 4 이후의 행보가 너무 실망스러워서 3까지만 플레이하고 관심을 접고 있습니다만 두 집단이 선악의 이분법으로 구별되지 않기에 게임 외적으로도 참 할 얘기가 많은 시리즈 같습니다. 글 읽고 4까지는 해보고 싶어지네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3까지는 두 집단의 구성원들이 두 집단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었는데, 블랙플래그에서는 두 집단의 밖에 있는 이들이 두 집단에 대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또 동기주의 안에서만 담론을 전개하던 전작들과는 달리 결과주의와 이기주의의 측면에서도 생각해보고 있단 점이 좋았구요. 물론 스토리 자체에도 결함이 많습니다만, 어쌔신크리드4가 가지고 있는 훌륭한 게임성에 장식을 달아주기에는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플레이해보셔도 후회없을 거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