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터멜론 주의보 / Daisy Kim
봄의 동사는 뿔이 자라는 것
사각사각 달 이파리를 갉아먹은 애벌레가 아침과 저녁의 둘레를 정기구독한다
멜론의 이름을 빌린 식물의 부록은 겉과 속이 달랐다
뿌리에 든 바람으로 뿔, 뿔이 흩어진 가족
색을 다 허비한 상처는 부풀어 울퉁불퉁 혹이 되었다
뼈대만 남은 울타리를 기어오르며 노을빛에 허리가 휘어지던 엄마
스쳐가는 여우비에 익기를 반복했다
붉어진 속을 긁어내도 씨앗을 품은 소문과 덩굴
그것을 따라가면 입안 가득 고이는 쓴맛에 통통한 자루 같은 인간의 말을 버리고 싶었다
꽃다운 꽃송이도 없이 곧 떨어질
응달에서 봄처럼 풀어지던 엄마
있는 힘을 다해 바람을 겪어내고
도깨비방망이 같은 열매를 믿어보기로 할 때
지금은 여기 없는,
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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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 / Daisy Kim
아침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려온 여름은 고장 난 시간 쪽으로 자주 쓰러졌다
장애물은 꿈꾸기를 멈춰버린 이상기후 같아
넘는 자리마다 떨어져 멍든 낙과들
바닥이 높이뛰기를 주저하면 둥둥둥 무거워지는 구름들
개미가 기어가는 방향으로 여름 한철의 땡볕이 수평으로 눕는다
오래도록 외우지 못한 날씨는 잠시 머물다 떠나버린
간격과 간격을 이어주던 소나기 같아
태양의 보폭이 시간의 뒷모습을 밀며 달려가는 동안
건기의 여름은 푸른 멍 너머의 결승선을 향하고
다급해진 공중은 깨진 무릎을 넘어야만 착지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자세를 바꾸고 신발끈을 묶는다
장애물이라고 말하는 순간 장애물이 사라질 것을 믿으며
실패한 자리에서 의심하는 발목을 뛰어넘는다
하나의 장애물을 넘으면 다음 장애물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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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파파야 나무 / Daisy Kim
태양이 몽글몽글 파파야 씨앗 같다
늙은 파파야를 양손에 받쳐 들고 숨은 아버지 찾기를 하자, 싱싱한 파파야를 찾아버리자,
노란 식감의 속살이 뭉개져 나뒹구는 파파야, 고르고 골라도 나오지 않는 아버지
먼지가 엉킨 엄마의 머리카락 사이로 별 핀은 노랗게 녹이 슬고, 까만 떼의 촘촘한 개미 행렬은 우리 배처럼 줄줄이 고프고, 우리는 박스처럼 노랗게 질려 바닥처럼 납작하고,
한 개의 파파야는 1달러
두 개의 파파야도 1달러
몽땅 세일을 하자, 팔아버리자, 뭉개진 엄마를 팔고 나면 박스만 남아, 불안한 우리는 우리를 박스에 담고,
싹수가 노랗다는 운명은 사는 거예요? 파는 거예요?
아버지는 꽁꽁 어디에 있나, 파파야의 미래는 노랗게 샛노랗게 누가 칠했나,
잎사귀에 낡은 동전 무늬를 새기는 오후의 햇살
기억에 박힌 당신이 금 간 담장 아래로 쿵.
풀 더미를 헤치고 파파야 나무를 올라올라
별로 가는 진흙 속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