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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힘이 세다 / 이재무
엄니는 신명이 많았다
당신의 감정을 노래로 대신하였다
나는 엄니의 노래를 들으며
엄니의 내면을 읽었다
엄니가 노래를 부르지 않는 날은
까닭 없이 마음이 불안했다
노래는 엄니의 삶과 생의 양식이었고 경전이었다
그러나 엄니는 밝고 높고 경쾌한 노래보다는
어둡고 낮고 무거운 노래를 즐겨 불렀다
슬픔으로 슬픔을 문질러 닦아 내었다
나는 엄니의 노래를 곧잘 따라 불렀다
어린 몸속에 청승을 담고 산 것은
엄니 때문이었다
엄니는 내게 노래를 남기고 돌아가셨다
노래를 살다 가신 엄니
나는 오늘도 엄니의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다
노래는 힘이 세다
수평과 고요 / 이재무
날개를 가진 것들은
날 때나 착지할 때
날개 움직여 수평 잡는다
아슬아슬 수평이 이루어질 때
고요는 심해처럼 깊다
날개 없는 것들은
수평의 고요를 모른다
수평을 견디지 못해
무너뜨리고 깨뜨린다
수평은 넓이가 아니라 깊이다
좋겠다 / 이재무
분별없이 대취해 장광설 늘어놓던
젊은 날의 술자리보다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 귀에 쓸어 담으며
위로 대신 더운술 따라
슬며시 밀어놓는 술자리 가졌으면 좋겠다.
술을 마시는 동안 폭설이
내려 돌아갈 길 끊겼으면 좋겠다.
잠이 모자란 주모가 주방을
맡기고는 슬그머니 잠자리 찾아 들어가고
달빛 선율만이 우리의 지친 어깨
주무르는 자정 너머의,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마주했으면 좋겠다
무화과 / 재무
술안주로 무화과를 먹다가
까닭 없이 울컥, 눈에
물이 고였다
꽃 없이 열매 맺는 무화과
이 세상에는 꽃 시절도 없이
어른을 살아온 이들이 많다
호수 / 이재무
호수는 하나의 커다란 외눈박이
호수는 날마다 풍경을 바라본다
비 오는 날 호수는 눈을 감는다
비 오는 날 외눈박이 호수가 운다
시인론 / 차성환
당신을 떠난 뒤의 노래
— 이재무의 시 세계
이재무 시인은 1983년 시단에 등장한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근 40년이란 시간 동안 쉼 없는 시작 활동을 보여 왔다. 그는 자아와 세계의 화합을 노래하는 서정시의 원리를 충실하게 따르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시 세계를 구축해가는 현재 진행형의 시인이다. 고향과 유년 시절을 다룬 초기 시에서 출발하여 고향을 떠난 자가 맞닥뜨리는 도시에서의 신산(酸酸)한 삶, 물질문명의 광포한 속도에 대한 비판의식과 삶의 근원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성찰, 소박한 일상의 깨달음을 밝히는 생활 시편, 인간과 죽음에 대한 존재론적 사유를 경유해 최근에는 인생에 대한 단형 스타일의 아포리즘 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적 여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재무의 시를 강물에 비유하자면 깊고 슬프고 때로는 경쾌하고 호탕하다. 산과 하늘을 다 담아낼 정도로 강물의 품이 넓다. 고요하고 잔잔하다가도 어느새 울분과 같은 울음소리를 토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강물은 어디에서 발원했을까.
이재무 시인은 시와 산문이 보행을 같이 한다. 시의 많은 부분이 그의 진솔한 산문의 고백과 닮아 있고 산문에서 볼 수 있는 삶에 대한 치열한 사유가 시에 옮겨오는 격이다. 그렇기에 올해 출간된 사랑시집 『한 사람이 있었다』(열림원, 2022)와 산문집 『괜히 열심히 살았다』(천년의시작, 2022)는 여러모로 닮아 있다. 시와 산문을 통해 자기 시의 출발점을 짚어주는 대목이 특별히 눈에 띈다. 여기에 수록된 신작, 자선대표작과 함께 읽어본다면 이재무 시의 정수(精髓)에 더욱더 바투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강물의 시작점은 시인이 태어난 고향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숲속의 작은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시(詩)의 맑은 수원(水原)을 마주하게 된다. 시 「노래는 힘이 세다」는 40년 시력(詩歷)에 이르러 자기 시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그 시의 근원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엄니는 신명이 많았다
당신은 감정을 노래로 대신하였다
나는 엄니의 노래를 들으며
엄니의 내면을 읽었다
엄니가 노래를 부르지 않는 날은
까닭 없이 마음이 불안했다
노래는 엄니의 삶과 생의 양식이었고 경전이었다
그러나 엄니는 밝고 높고 경쾌한 노래보다는
어둡고 낮고 무거운 노래를 즐겨 불렀다
슬픔으로 슬픔을 문질러 닦아 내었다
나는 엄니의 노래를 곧잘 따라 불렀다
어린 몸속에 청승을 담고 산 것은
엄니 때문이었다
엄니는 내게 노래를 남기고 돌아가셨다
노래를 살다 가신 엄니
나는 오늘도 엄니의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다
노래는 힘이 세다
-「노래는 힘이 세다」 전문
‘나’는 “엄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노래”라고 고백한다. “엄니”는 생전에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인 말이 아니라 “노래”에 실어서 표현했다. 어린 ‘나’는 그 “노래”를 통해 “당신의 감정”과 “내면”을 읽어냈기에 “엄니”가 잠잠한 날에는 그 속을 알 수 없어 “마음이 불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찍부터 “나는 엄니의 노래를 곧잘 따라” 부르면서 “어린 몸속에 청승을 담고” 살게 된 것이다. “엄니”에게 “노래”는 “삶과 생의 양식”이자 “경전”으로 평생을 살아가면서 유일하게 붙들고 있던 숨통과 같은 것이었던 듯하다. “엄니의 삶”은 슬프기 때문에 “엄니의 노래”는 “어둡고 낮고 무거운 노래”였을까. “엄니”는 자기 삶에 고여 있는 “슬픔”을 어떻게든지 풀어내야지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슬픔”은 한없이 무겁고 어둡지 않다. “신명”의 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슬픔으로 슬픔을 문질러 닦아 내”듯이 부르는 “노래”의 창법은 고스란히 시인에게 대물림되어 시작법이 된다.
산문 「나의 슬픔, 나의 노래」(『괜히 열심히 살았다』)에도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들은 대개가 어릴 적 엄니에게서 배운 것들이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노래를 살다 가신 엄니”는 ‘나’에게 “노래” 곧, 시를 살아내는 삶의 방식을 몸소 알려주신 분이다. “노래”(시)는 자신의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울리고 전염시키는 정서적 교감의 “힘”을 가진다. “노래”는 얼마나 “힘”이 센지 나는 돌아가신 “엄니의 노래”를 그대로 대를 이어 지금도 그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무형의 재산을 물려받은 ‘나’는 시인의 삶을 살아간다. “엄니의 노래”는 삶이라는 현실의 슬픔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엄니”는 ‘나’에게 “삶”을 주고 “노래”를 주었다. 시인은 “엄니의 노래”를 곡진하게 받아 적는다. “엄니의 노래”는 지금도 들려오고 있다. 삶이라는 현실의 슬픔을 잊지 말라는 듯이.
시 「노래는 힘이 세다」는 이재무의 시가 어머니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여기 또 한 사람이 있다. 사랑시집 『한 사람이 있었다』의 서문인 <시인의 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어릴 적 이웃 마을에 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 시절 그녀는 내 세계의 전부였다. 그녀로 인해 아프고 행복했다. 내 시의 베아트리체였던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숙이라는 첫사랑의 대상은 이탈리아의 시인인 단테에게 영감을 주는 문학의 원천인 베아트리체에 준하는 존재이다. 처음으로 사랑을 깨닫게 한 그 ‘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이재무의 시가 출발하는 것이다. 이 시집은 그 ‘한 사람’에게 바치는 헌시이다.
비와 눈 속을 걷게 한 사람
그 흔한 달개비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하고
기차와 여관과 해안선과 강안을 좋아하게 만들고
바다의 수평선과 연(緣)을 맺어준 사람
슬픔이 거름이고 힘이고 지혜를 준다는 것과
나를 울게 한 이는 나라는 것을 알게 한 사람
모국어와 사랑에 빠지게 하고
마침내 시를 쓰게 한 사람
-「한 사람 1」 부분(『한 사람이 있었다』)
‘나’로 하여금 “비와 눈 속을 걷게”하고 “그 흔한 달개비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한 사람은 누구일까. “기차와 여관과 해안선과 강안을 좋아하게 만들고 // 바다의 수평선”을 오래 바라보게 한 사람. 「첫사랑」이라는 동일한 제목의 시와 산문에는 열여섯에 만난 첫사랑인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첫사랑은 시인이 “마침내 시를 쓰게 한 사람”이다. 첫사랑은 상실을 통해서만이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다.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 속에 위치하고 획득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주체가 영원히 욕망하고 갈망해야하는 대상이다. 그 “한 사람”은 시인에게 최초의 사랑으로 각인된 것이다. “한 사람”을 향한 목마름이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들고 세계의 사물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불완전한 ‘나’를 온전하게 빚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한 사람”은 가닿을 수 없는 영원한 대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 그리움의 곶, / 아득하고 살아서는 닿을 수 없는 / 슬프고 높고 외로운 길을 나는 / 숙명처럼 걷고 달렸다 / 나의 길은 너를 향한 길이었다”(「나의 길」, 『한 사람이 있었다』) 따라서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잃어버린 사랑의 대상을 노래함으로써 첫사랑인 그 “한 사람”과의 합일을 꿈꾸기 위함이다. 서정시가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재무 시인에게는 잃어버린 첫사랑과의 합일을 간절하게 바라는 일에서 시의 언어가 최초로 생성된다. ‘나’의 첫사랑에 대한 결핍이 시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초의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삶이 시작되는 것이고 비로소 시가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는 없는 ‘너머’를 꿈꾸는 낭만적 삶의 양식이다.
만약 첫사랑의 빈자리를 계속 비워두고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으로 되돌아가려고만 한다면 시는 슬픔과 아픔으로 점철되어 병적이고 퇴행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재무 시인은 최초의 사랑을 통해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을 배우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려고 한다. 이재무의 시가 가진 건강함은 최초의 사랑에 함몰되지 않고 그 첫사랑의 빈자리에 어떤 존재가 들어오더라도 자신이 경험한 최초의 사랑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 데에 있다. 첫사랑의 기억은 이웃과 타자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고 이는 자신이 속한 세계를 무한히 긍정하는 보편적 사랑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첫사랑의 빈자리에는 “달개비꽃”과 “기차와 여관과 해안선과 강안”이 들어와 앉는다. 이재무 시의 언어는 그 빈자리에 들어온 대상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한다. 그의 시는 첫사랑을 잃은 “슬픔”이 도리어 더 큰 사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그 “슬픔”이 내게 “거름이고 힘이고 지혜를 준다는 것”을 증거한다. 최초의 사랑을 잃었지만 그는 최초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시를 얻었다.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발원하는 사랑의 힘을 깨닫게 한 “한 사람”에게서. “내 노래는 온전히 / 한 사람을 위한 것”(「노래를 위하여」, 『한 사람이 있었다』)이다.
당신을 떠난 뒤 나는
눈먼, 거리의 악사가 되었습니다
연주와 노래가 산 넘고 강 건너
당신 사는 마을에 닿을 날을 꿈꾸며
그러나 오롯이 당신만을 위한
내 노래와 연주는
맹목의 초록 더욱 짙게 하고
강물의 수위 높이고
시름겨운 이들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계단이 무릎을 켜듯
세상이 나를 연주하던 날도 있었습니다
당신을 떠난 뒤 나는
거리의 악사가 되어
슬프고 높고 외로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가 밤하늘로 번져 별꽃으로
활짝 피어나기를 꿈꾸며
-「당신을 떠난 뒤」 전문(『한 사람이 있었다』, 열림원, 2022)
기형도의 시 「빈집」에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첫 구절은 시 쓰기의 출발점이 사랑의 상실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눈먼, 거리의 악사”, 곧 시인이 되었다. 내가 꿈꾸는 것은 “당신”과 다시 만나 하나가 되는 일이다. ‘나’는 그 사랑을 “노래”함으로써 “거리의 악사”라는 새로운 삶을 부여받는다. “당신을 떠난” 일은 불행한 일이지만 바로 “당신”을 떠났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노래”하는 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 또한 영원한 사랑의 대상의 지위를 얻게 된다. “당신을 떠난 뒤”에야 ‘나’는 “노래와 연주”를 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이 “슬프고 높고 외로운 노래”는 “맹목의 초록”을 “더욱 짙게” 만들고 “강물의 수위”를 높인다. ‘나’의 “노래”는 자연과 교감하고 “세상”과 만나는 방식이 된다. 분명히 “당신만을 위한/내 노래와 연주”였지만 그것은 당신만을 향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향해 활짝 열린다. “시름겨운 이들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고 “밤하늘로 번져 별꽃으로 / 활짝 피어나기를 꿈꾸”기도 한다.
첫사랑을 잃은 지는 오래이고 “이웃 마을 소녀를 그리워하”던 “소년”은 “초로의 노인이 되었”지만 그 시절 “갓 낳은 새알처럼 / 두근거리는 감정”(「소년이었을 때 나는」, 『한 사람이 있었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잃어버린 사랑은 고통스럽다. “때로 사랑은 찬란한 축복이 아니라 지독한 형벌이라는 것을 / 침략자처럼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사랑은 / 점령군처럼 삶을 제 맘껏 주무르다가 / 생의 안쪽에 지울 수 없는 화인을 찍어놓고 / 어느 날 홀연 도둑처럼 떠나버린다”(「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이재무의 시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을 통해서만이 영원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시적 진리를 보여준다. 그 상실을 메우려는 우리의 몸짓이 슬프고 아름다운 시(詩)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일러준다. “한 사람 안에 만인이 피어납니다 // 사랑은 한 사람을 사는 동안 // 만인을 피우는 일입니다”(「한 사람 2」, 『한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을 향한 노래가 만인을 위한 노래가 되고 만인을 향한 노래는 한 사람을 향한 노래가 된다. 베아트리체가 영원한 사랑의 뮤즈이자 보편적 사랑의 대상으로 승화되듯이, 그 ‘한 사람’은 만인의 연인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된다. 우리는 그의 시를 통해 각자 마음속에 간직한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 나의 유일한 근원이자 영원한 사랑의 대상. 영영 잃어버려 가닿을 수 없는 ‘한 사람’으로 인해 내가 삶-시-사랑이라는 삼위일체를 간신히 지금까지 살아낼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재무의 시는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서 흐르는 강물이다. 어린 ‘나’에게 삶의 슬픔을 알려준 ‘엄니’와 첫사랑을 일깨워준 ‘한 사람’. ‘엄니’와 ‘한 사람’은 각각 현실과 낭만이라는 이재무 시의 중요한 두 축으로 작동한다. 새의 “날개”가 “아슬아슬 수평이 이루어질 때 / 고요는 심해처럼 깊다”고 말하듯이 그의 시(詩)는 이 현실과 낭만이 균형을 이룰 때 아름다운 미학적 “깊이”(「수평과 고요」, 『한 사람이 있었다』)를 얻는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오르는 경지에 이른 듯하다. 활공滑空.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움직이지 않아도 나는 경지.
이재무는 재미 있는 사람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 폭설이 / 내려 돌아갈 길 끊겼으면 좋겠다”(「좋겠다」)며 못 말리는 낭만 술객이 되었다가, “꽃 없이 열매 맺는 무화과”를 먹다가 문득 행복한 “꽃 시절도 없이 / 어른을 살아온 이들”(「무화과」)의 힘든 인생살이를 떠올리며 애잔하게 눈물을 흘리거나, 또 어떤 때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맑고 천진난만한 시심(詩心)으로 “비 오는 날 외눈박이 호수가 운다”(「호수」)고 천연덕스럽게 읊는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그와 함께 “천천히 / 흘러가는 시간을 마주했으면 좋겠다.”(「좋겠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시와 사랑과 삶이 있다.
시인론-차성환 l
2015년 《시작》 등단. 시집 『오늘은 오른손을 잃었다』, 연구서 『멜랑콜리와 애도의 시학』이 있음. 2018년 〈시작문학상〉 수상. 현 한양대 겸임교수.
2022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