所以者가 何오 須菩提야 過去心不可得이며 現在心不可得이며 未來心不可得이니라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수보리야, 지나간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음이니라.
說誼 因甚道諸心이 非諸心일새 是名常住妙圓眞心과 若定諸心이 是妄非眞인댄 何者가 是過去心이며 何者가 是現在心이며 何者가 是未來心고 過去心不可得이며 現在心不可得이며 未來心不可得이니라
旣總不可得인댄 唯一妙圓眞心이 無去來相하며 無現在相하야 光通三際하고 體徧十方이니 佛之所以言此者는 示現沙界衆生의 差別心行이 卽是如來妙圓眞心이라
與佛無殊也니라 所以로 永嘉가 云諸行無常一切空이라 卽是如來大圓覺이라하시니라 然이나 此는 但依會妄歸眞之義하야 論之而已니 若但伊麽商量인댄 恐妨捨妄歸眞之路일가하노라
若以捨妄歸眞之義로 論之則沙界衆生의 若干種心을 如來悉知하시나니 因甚得知之也오 沙界衆生의 若干種心이 卽非常住眞心이라 皆爲虛妄浮心일새 故得知之也니라 因甚如此오
若是常住眞心인댄 是過去耶아 現在耶아 未來耶아 若道過去心인댄 過去已滅이라 心不可得이요 若道現在心인댄 現在空寂이라 心不可得이요 若道未來心인댄 未來未至라 心不可得이니 寂然無有去住하며 廓然無有諸相하야 一切時中에 不可得而見也며 一切法中에 亦不可得而知也니라
佛之所以言此者는 令捨虛妄浮心하고 契乎常住眞心也니라 所以로 道로대 妄心滅盡業還空하니 直證菩提超等級이라하시니라
font size: 12pt>설의 무엇을 인하여 모든 마음이 마음이 아니고 이름하여 상주, 묘음, 진심이라 하는가. 만약 결정코 모든 마음이 妄이고 眞이 아니라면 무엇이 과거심이며 무엇이 현재심이며 무엇이 미래심인가.
과거심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심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심도 얻을 수 없음이니라. 이미 모두 얻을 수 없으면 유일한 묘원진심이 과거나 미래의 相도 없으며
또 현재의 相도 없어서 그 광명이 三際(과거, 현재, 미래)에 통하고 體가 시방에 두루함이니 부처님이 이것을 말한 까닭은 항사세계 중생의 차별 行心이 곧 여래의 묘원진심이어서 부처와 더불어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나타냄이니라.
그러므로 永嘉스님이 이르시되 諸行이 無常하여 一切가 空함이라. 이는 곧 여래의 大圓覺이라 하시니라.
그러나 이것은 다만 妄을 알고 眞에 돌아가는 뜻에 의지하여 논했을 따름이니 만약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妄을 버리고 眞에 돌아가는 길을 방해할까 염려하노라.
마약 妄을 버리고 眞에 돌아가는 뜻으로 논한다면 사바세계 중생들의 가지가지 마음을 여래가 다 아노니 무엇 때문에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사바세계 중생의 가지가지 마음이 곧 변함없는 마음(常住眞心)이 아님이라.
다 허망한 뜬마음이 되므로 그것을 알 수 있느니라. 어찌하여 그런가.
만약 常住眞心이라면 이는 과거인가 현재인가 미래인가. 만약 과거심이라 말하면 과거는 이미 멸하여 그 마음을 얻을 수 없으며
만약 현재심이라면 현재는 텅 비어 그 마음 또한 얻을 수 없으며 만약 미래심이라 하면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므로 그 마음을 가히 얻을 수 없으니,
적연하여 가고 머무름이 없으며 확연하게 모든 相이 없어서 일체의 시간중에 가히 얻어볼 수 없으며 일체의 法中에 또한 알 수 없느니라.
부처님이 이것을 말한 까닭은 허망부심을 버리고 常住眞心에 계합하기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말하되 妄心이 멸진하고 業 또한 空하여서 바로 보리를 증득하여 등급을 초월한다 하시니라.
圭峰 無着이 云過去는 已滅故며 未來는 未有故며 現在는 第一義故라 하다
규봉 무착이 이르되 과거는 이미 멸한 연고이고 미래는 아직 있지 않은 연고이며 현재는 第一義인 까닭이라 하다.
六祖 過去心不可得者는 前念妄心이 瞥爾已過에 追尋無有處所요 現在心不可得者는 眞心이 無相하니 憑何得見이리오 未來心不可得者는 本無可得이라 習氣已盡하야 更不復生이니 了此三心不可得이면 是名爲佛也니라
육조 '지나간 마음은 얻을 수 없다'란 앞생각의 妄心이 문득 지나가매 찾아봐도 그 처소가 없음이요.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라는 것은 참마음엔 相이 없으니 무엇을 의지하여 얻어볼 것인가.
또한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란 본래 가히 얻을 수 없음이라. 習氣가 이미 다해서 다시 또 나지 않으니 이 세 가지 마음을 얻을 수 없음을 요달하면 이를 부처라 이름하느니라.
傅大士 依他一念起하면 俱爲妄所行이라 便分六十二하야 九百亂縱橫이로다 過去는 滅無滅이요 當來는 生不生이니 常能作此觀하면 眞妄坦然平하리라
부대사 依他의 일념이 일어나면 모두 妄의 行한 바가 됨이라. 문득 六十二소견(마음의 온갖 변화를 숫자로 표현함)을 나누어서 구백 가지의 어지러움이 종횡하도다. 과거는 멸하되 멸함이 없고 미래는 나되 나지 않음이니 항상 능히 이런 觀을 지으면 眞과 妄이 탄탄히 평등하리라.
冶父 低聲低聲하라 直得鼻孔裏出氣하야사하리라
說誼 此心을 向三際求하야도 求之不得이요 向十方覓하야도 覓之無蹤이니 進之에 如銀山鐵壁이요 退之에 若萬丈深坑이라 無有掛目處며 無有下脚處로다 雖然如是나 若但伊麽提持하면 後學이 無有進身之路하야 便見陸地平沈하리라 所以로 道호대 低聲低聲하라 直得鼻孔裏出氣하야사하리라하시니라
야부 소리를 낮추고 낮추어라. 바로 콧구멍 속에서 氣가 빠져 나가게 되리라
說誼 이 마음은 三際를 향해 구하여도 구할 수 없으며 시방을 향해 찾아도 그 찾음에 자취가 없으니 나아가면 은산철벽과 같고 물러나면 만길의 깊은 굴과 같도다.
눈을 걸 곳이 없으며 발붙일 곳이 없도다. 미록 이같으나 만약 다만 이렇게 이끌어 가면 후학들이 나아갈 길이 없어서 문득 땅이 꺼짐을 보리라.
그러므로 말하되 소리를 낮추고 낯추어라. 바로 콧구멍 속에서 氣가 빠져 나가게 되리라 하시니라.
冶父 三際求心心不見하니 兩眼이 依前對兩眼이라 不須遺劍刻舟尋이니 雪月風花에 常見面이로다
說誼 作麽生出氣去오 三際求心心不見하니 兩眼이 依前對兩眼이로다 要識兩眼對兩眼麽아 看取古境裏影子어다 不須求劍이니 劍不曾失이요 不須刻舟니 刻舟奚爲리오 只如古境裏影子를 作麽生看取오 雪月風花無限事여 頭頭常現劍全身이로다
야부 三際에 마음을 구하여도 마음은 볼 수 없으나 두 눈은 예전처럼 두 눈을 대하도다. 모름지기 칼을 빠뜨리고 배에다(빠뜨린 곳을) 표해서 찾지 말지니 눈과 달과 바람과 꽃에서 항상 그대 얼굴을 보리라.
설의 어떻게 氣가 빠져 나가는가 삼제에 마음을 구하여도 마음은 벌 수 없으니 두 눈은 그대로 두 눈을 대함이로다.
두 눈이 두 눈을 대하고 있음을 알고자 하는가 옛 거울 속의 그림자를 볼지어다. 모름지기 칼을 구하지 말지니 칼은 일찍이 잃은 적이 없음이라. 모름지기 배에다(빠진 곳을) 표하지 말지니 배에 표한즉 무엇하리오. 다만 저 옛거울 속의 그림자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눈, 달, 바람, 꽃의 무한한 경관이여. 頭頭에서 항상 칼의 全身(佛性)이 나타남이로다.
宗鏡 五眼이 悉圓明이여 如揭日耀恒沙之世界요 三心을 不可得이여 似撥火覓滄海之浮漚로다 縱使窮諸玄辯하고 竭世樞機라도 到此하야는 總須茫然이니라 且道하라 是何標格고 直饒講得千經論이라도 也落禪家第二籌니라 心眼이 俱通法界周하니 恒沙妙用이 沒蹤由로다 雲收江湛天空濶하니 明月蘆花一樣秋로다
說誼 此心이 周法界여 佛眼으로 亦乃通이요 此心妙用이 沒蹤由여 佛眼이 雖明이나 覰不得이니 伊麽則十方이 都是一眼睛이라 更無纖塵到此間이로다
종경 五眼이 모두 두렷이 밝음이여. 마치 해가 높이 떠서 항하사 세계를 비춤과 같도다. 세 가지 마음을 얻을 수 없음이여. 마치 불을 밝히고 바다에 뜬 물거품을 찾는 것 같도다.
비록 모든 깊은 이치[玄辯]를 다 통달하고 세상의 중요한 근본[樞機]을 다할지라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두 다 망연함이라. 또 말하라.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설사 千의 경론을 강의하더라도 禪家의 第二籌(이차적인 것)에 떨어지느니라. 心眼이 함게 통하여 법계에 두루하니 항하사의 妙用이 자취가 없음이로다. 구름 걷힌 강은 맑고 하늘은 드넓으니 밝은 달과 갈대꽃이 한무늬의 가을이로다.
설의 이 마음이 法界에 두루함이여, 佛眼으로 또한 이에 통하도다. 이 마음의 妙用이 자취가 없음이여. 佛眼이 비록 밝으나 그 妙用을 엿볼 수 없으니 그러한즉 시방이 모두 한 눈동자로다. 다시 작은 티끌도 이 사이에 이를 수 없음이로다.
무비 끝없는 우주 한량없는 세계의 많고 많은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들은 무엇으로 이루어 졌는가. 모두 다 하나의 망념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 하나의 망념이 없어지면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들도 텅비고 깨끗하여 진다. 그렇게 되면 중생마음이 곧 부처마음이고 부처마음이 곧 중생마음이다.
오직 맑고 깨끗한 깨달은 마음 뿐이며 중생과 부처를 한 몸으로 같이 볼 뿐이다. 즉 하늘과 땅은 나와 뿌리가 같고, 온갖 만물은 나와 한몸이리라.
그럴진대 부처님이 갖춘 특별한 다섯 가지 눈이 있은들 달리 무엇을 볼 것인가. 한몸을 보는 데는 다섯 눈은 필요치 않다. 아니,한몸으로 같이 본다는 말도 실은 맞지 않다.
그러므로 한몸인 그 마음에서는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나눌 수 없다. 공간도 시간도 혼연히 하나이거니 무슨 과거 현재 미래를 분별할 수 있단 말인가.
圭峰 第十六은 斷福德例心顚倒疑라 論에 云向說心住顚倒일새 皆不可得이라하니 若如是인댄 福德도 亦是顚倒니 何名善法이리오할새 斷之니라 文二니 一은 問福答福이라
규봉 ㉴十六. 福德을 마음에 규정하면 전도된다는 의심을 끊음이라. 論에 이르되 앞에서 말한 “마음이 전도되면 다 얻을 수 없다”고 하니 만약 이와 같음인댄 복덕도 또한 전도됨이니 무엇을 이름하여 善法이라 하는가 하므로 그것을 끊음이라. 文에 두 가지니 ㉵一. 복을 물으니 복을 답함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