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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편전쟁 은 최신식 증기선을 가진 영국 함대가 일방적으로 승리했어요.
이 전쟁에 앞서 영국은 중국에서 차를 들여오면서 무역 적자에 시달렸어요. 19세기 영국 중산층 가정에서 차를 마시고 있어요(오른쪽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특히 영국 귀족들이 차를 좋아했어요. 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보다 늦은 1664년에 처음으로 차 2파운드 2온스(약 950g)를 공식 수입했어요. 하지만 불과 60년 만에 연간 차 수입량이 100만파운드(약 455.6t)로 50만배 늘고, 1790년에는 거의 2000만파운드(약 9000t)로 1000만배 늘어났어요.
영국은 엄청나게 늘어난 차 수요를 따라가기 위해 #조지-매카트니 (Macartney) 백작과 #윌리엄-애머스트 (Amherst) 백작을 잇달아 국왕의 대사로 청나라에 보내 영국과의 #교역 을 확대해 달라고 청원해요.
하지만 #청나라 #황제 #건륭제는 매카트니 백작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죠.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짐은 괴이하거나 기이한 물건은 가치가 없다고 믿으므로 귀하의 나라의 생산품은 필요가 없다."
23년 뒤 애머스트 백작이 청나라에 갔지만 가경제는 그를 만나주지도 않았어요. 차 수입량은 나날이 늘어만 가는데 수출할 물건이 없었던 영국은 청에 대해 천문학적인 수치의 #무역적자 를 떠안아야만 했어요.
◇ 차를 수입하기 위한 추악한 전쟁
무역 적자 때문에 고민하던 영국은 나쁜 꾀를 냈어요. #영국식민지 인 인도에서 #아편 을 생산해 중국에 팔기로 한 거에요. 아편은 강력한 마약이에요. 영국의 행동은 서구 역사에서 가장 추악한 대목 중 하나지요. 자국에 차를 공급하기 위해 남의 나라에 마약을 퍼뜨린 셈이니까요. 이뿐만 아니라 중국에 아편을 팔기 위해 청나라 관리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뿌렸어요. 이때 주었던 #뇌물 을 차값 (Tea-money)이라고 하는데 오늘날까지도 대가를 기대하고 뇌물을 주는 행위를 뜻하는 관용구로 쓰여요.
청나라에선 빠르게 아편 중독자가 늘어났어요. 청나라 황제 도광제의 아들도 아편 때문에 목숨을 잃을 정도였어요.
#임칙서 (林則徐)라는 청렴한 청나라 관리가 아편 유통을 막기 위해 애썼어요. 1839년 광둥 항구에서 아편 25만파운드(약 113t)를 압수해 모두 폐기해버린 거죠.
화가 난 영국은 전쟁을 선포하고 상하이를 점령해 청나라의 항복을 받아냅니다. 일명 '아편전쟁'이지요. 영국 국회의원조차 "이보다 더 비윤리적인 전쟁은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다"고 분개했어요.
ㅡ 아편전쟁 동영상 🎥 ㅡ
https://band.us/band/59995183/post/53475
◇ 영국, 산업스파이를 보내다
영국은 아편전쟁 후에도 무역 적자를 해소하지 못했어요. 몇 번인가 영국 스스로 재배하려고도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어요. 당시 중국이 차를 재배하고 생산하는 기술을 비밀 중 비밀로 다뤘기 때문이에요. 궁리 끝에 영국은 #왕립원예학회 회원인 로버트 포천 (Fortune)이라는 #식물학자 를 중국에 보내 차 종자와 묘목을 확보하고 이를 생산할 기술을 가져오게 합니다. 포천은 그 전에 이미 중국을 여행하면서 서양 식물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종들을 가지고 돌아와 유명해진 학자였어요.
중국에 간 포천은 어떻게 됐을까요? 중국은 생김새가 다른 외국인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걸 금지하고 있었어요. 산간 지역 차 농장까지 가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았죠.
포천은 중국 옷에 중국 가마를 타고 중국인 관리 행세를 하며 내륙까지 들어갔다고 해요. 중국 변발을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초보 이발사가 비누칠도 하지 않은 채 포천의 머리를 밀어 두피가 벗겨지다시피 했다고 해요. 오죽하면 포천이 자신의 일기에 '뺨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며 고통으로 울부짖었다'라고 써놓았을까요. 멧돼지 덫에 걸려 죽어가다가 간신히 나뭇가지를 타고 기어 나오기도 하고 강도에게 배를 약탈당하기도 했어요.
포천은 3년 동안 중국 차 재배지를 돌며 고생한 끝에, 1851년 봄 묘목 2000개와 종자 1만7000개, 숙련된 차 일꾼 한 팀을 데리고 홍콩에서 인도로 출발합니다.
이후 영국은 인도에서 아편 대신 차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19세기 말에는 인도 #아삼 지방의 차 경작지가 1376㎢까지 늘어났지요. 인도 북서부 #다즐링 과 남부 실론 섬에도 #차경작지 가 퍼져 갔어요. 반세기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영국이 중국을 제치고 세계 #차시장 의 #최대공급국 이 됐어요. 한때 중국이 전 세계 차시장을 독점했지만 이 무렵엔 점유율이 10%로 떨어졌다고 해요.
오늘날은 기술 발전 속도가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빨라요. 지금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들이 못 따라오는 첨단 기술들이 많이 있지요. 우리나라가 핵심 기술을 잘 지키지 못한다면 누군가가 우리 기술을 훔쳐서 앞질러 가버릴지도 몰라요.
출처: 프리미엄조선|[안영우]명덕고 역사교사
기획·구성=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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