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한없이 맑고 햇살은 나뭇가지사이로 길게 금빛 잔디를 쪼이고 있다 충청남도 아산
시 음봉면 어라산자락 넓은 공터에는 겨우내 눈 뒤집어 쓰고 잠자든 잔디가 움돋이
준비에 여념이 없고 오는 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홍살문을 지나서 묘소 올라가
는 길목에 오래 묵은 꾸불한 소나무가 은은하게 청향을 발한다.
장군의,
묘소에 잠시 묵념을 드리고 낮선 사람을 용케도 알아본 까마귀가 깍! 깍!마구 짖어
댄다 백척간두(百尺竿頭)위기에 처한 이나라를 구한 이순신(李舜臣)장군이야말로
오래도록 존경받아 마땅하다 새로 발행되는 지폐에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肖像畵)
를 넣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왜군의 조총에 육군은 여지없이 무너진 반면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해전에서 승승
장구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수군 대장 구키요시다가(九鬼嘉隆)는 한산도 앞바
다에서 우리 수군에 혼쭐이 나서 훈도시에 오줌찌리고 코 빠지게 도망쳐 겨우 목숨
만 건진 것이다.
러일전쟁에서,
막강한 극동함대를 전멸시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대마도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일본
의 군신(軍神)“도고헤이하치로”는 승전 축하연에서 어떤 신문 기자가 도고 제독에
게"각하의 업적은 영국의 넬슨 제독 조선의 이순신(李舜臣) 제독에 비견할 만한 빛
나는 업적이었습니다."라고 아부 성 발언을 하자 도고 제독은 그 기자를 크게 야단
을 쳤다는 기록이 있다.
"나를 이순신(李舜臣)제독에 비교하지 말라 그 분은 전쟁에 관한한 신의 경지에 오
른 분이다.이순신(李舜臣)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
황에서 매번 승리(勝利)를 끌어내었다.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李舜臣)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세계적인 전쟁 영웅 도고 헤
이하치로(東鄕平八郞)제독의 이 말은 사실로 기록되어있다.
이순신(李舜臣)
장군 어록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이 말은 지금도 교훈적으로 들린다.집안이 나
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逆賊) 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
집에서 자라났다.머리가 나쁘다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유성룡이나 원균처럼 화려한 문벌(門閥)도 가문
도 없었던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없었으면 삼천리강토(三千里疆土) 는 일본군에
게 더욱 오래도록 유린 되었을 것이다.
대부분 아산 현충사(顯忠祠)는 가 봤을 테고 시간나면 충무공(忠武公) 묘소(墓所)
를 들려보고 가까이 있는 아산온천에서 몸 담그고 돌아오는 길에 회 한 접시 하면
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충무공 (忠武公)옛집,
충무공(忠武公) 이 혼인하여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아 살았던 옛 집이다.무과(武科)
에 급제하기 전부터 사시던 집으로 종손이 대대로 살았으며 일부는 개수되어 오늘
에 이르고 있다.대대로 충신 효자가 많이 나는 것으로 유명한 이 집이 년전 충무공
(忠武公)15대 후손인 종손 며느리의 소유인 집과 집터 그리고 충무공 (忠武公) 의
아들과 장인 장모의 묘지가 포함된 토지를 채권자가 경매를 붙였다는 기사를 본 적
이 있다 가슴 아프게도
(비각에는 충무공의 업적을 기린 비문이 빼곡히 적혀있다.)
(넓은 잔디를 지나 언덕진 곳에 묘소가 자리하고 비석 상석 혼유석 무인석의 석상
이 묘를 지키고 있다.)
첫댓글 을지문덕장군과 이순신장군이 일전하면 누가 이길까.
을지문덕은 수나라 30만 대군을 청야전술로 유인하여 청천강을 막아
수공으로 적을 전멸시킨 살수대첩은 고구려의 전사에 길이 빛난다.
이순신은 13척의 함선으로 벽파 울돌목에서 조류를 이용하여
200척의 왜선을 격파했다.전함대에 닻을 올리고 공격을
명령하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고, 살려고
피하면 죽을 것이다.”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
이순신 장군의 이 말을 오염된 정치인이 심심찮게
인용해서 기분은 나쁘다.
위대한 두 장군은 지리를 이용하고 물을 이용해서 크게
이긴 공통점은 같다.그때 내가 군사를 지휘했더라면 위로는
천문 아래로는 지리를 통달한 수색대는 천지의 조화를
최대한 이용하여 바다에는 해일, 육지에는 지진을 이용하여
적병을 초토화 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