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中庸 至厚往薄來處 每致疑焉 於艮齋田先生 聞是帝王事 然後始無疑焉 少時愛酒 晩乃絶飮 曰酒引出 他時之氣 如引用 明日之食 而無食也 能補養 他日之氣 則可飮矣 預發後氣 醒後疲困 豈可飮此 而促壽乎
中庸을 읽으며 厚往薄來(후왕박래)에 이르러서는 늘 疑訝(의아)해 하셨는데, 艮齋 田先生으로부터 帝王의 일들임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의심이 없었다. 어려서는 술을 좋아하셨는데, 나이 들어 술을 끊고는 말씀하시길, 술은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내놓는 것이고, 내일 먹을 음식을 미리 쓰는 것과 같아 마시지 않겠다. 그러나 앞날의 기운을 補養(보양)한다면 마시겠다. 술을 마신 후에는 기운이 넘치고, 술을 깨고 나면 피곤한데, 어찌 이를 마셔서 壽命(수명)을 재촉하겠는가? 라고 하셨다.
※厚往薄來: 갈 때는 후하게 하고, 올 때는 박하게 한다는 뜻으로, 王이 諸侯에게 돌아갈 때는 후하게 선물을 내리고, 朝會를 올 때는 공물을 적게 한다는 뜻. 艮齋 田愚(1841~1922) 근대 성리학자, 遺蹟은 전북 익산시 삼기면 기산리에 있는 묘역, 초명은 田慶倫·田慶佶이며 자는 子明, 호는 臼山·秋潭·艮齋·蠱翁(고옹)·陽下尫人(양하왕인)이다. 본관은 潭陽이며 전주 출생으로 야은 전녹생(田祿生)의 16대손이다. 율곡 李珥와 우암 宋時烈로 이어지는 기호학파를 계승한 성리학자로 1905년 을사늑약 때 오적을 참수하기를 상소하고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1910년 일제의 강제병합 이후 공자의 뜻을 취하고자 해도로 들어가 연구와 후진을 양성하며 항일 정신 고취 및 민족정기를 드높이기 위하여 힘썼다. 任憲晦의 문인인 전우는 吳震泳·崔秉心·李炳殷·宋基冕·權純命·柳永善·金炳駿·金澤述 등 3,000여 명의 제자를 양성, 장례식에 영구를 따르는 사람이 2,000여 명이었고 6만여 명의 인파가 모였다고 전한다.
雜技非士 君子所可戒也 稍有知覺者 豈爲此事也
雜多(잡다)한 재주나 놀이는 선비가 할 바가 아니니 君子라면 가히 경계할 바이다. 조금이라도 知覺(지각)한 자라면 어찌 이런 일을 하겠는가?
誠勤事 無不成 儉朴人 無不給
誠實하고 부지런하게 일을 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고, 儉素(검소)하고 素朴(소박)한 사람에게는 제때 공급되지 않을 게 없다.
條束一洞之人 使之各守其分 雖衣服飮食 犯分 則痛禁
한 동리 사람이 단결하여 각자 자신의 분수를 지키도록 한다면, 비록 衣服이나 飮食이 지나칠지라도 엄하게 금지시킬 수 있다.
※犯分: 제 처지나 신분을 생각하지 않고 윗사람에게 버릇없는 짓을 함, 자기 분수를 넘다, 신분에 어긋나는 짓을 하다. 痛禁: 嚴禁